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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정부 증명서를 업자들이 만들어 팔았다
입력 2014.11.10 (11:00) 수정 2014.11.10 (11:31) 취재후
[취재후] 정부 증명서를 업자들이 만들어 팔았다
"정부 서식을 사설 협회에 가입해서 돈까지 내야만 쓸 수 있다는 게 말이 됩니까?" 얼마 전 몇몇 폐차 업체 대표들이 전해온 하소연을 듣고, 의문이 들었습니다.

대체 무슨 정부 서식일까? 정말로 협회를 통해서만 쓸 수 있는 걸까?

문제의 서식은 '폐차 인수 증명서'였습니다. 일반인에겐 생소하지만, 폐차 처리 업체들에겐 운영에 필수인 서류입니다. 차량 소유자로부터 폐차를 넘겨받은 뒤, 그 증빙으로서 업체가 작성해 반드시 정부에 제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서식 하단부에는 '유의사항'이란 제목 아래 뭔가 특이한 내용이 눈에 띕니다. "이 폐차인수증명서는 한국자동차해체재활용업협회가 제작하고 검인을 한 것만 유효"하다는 문구입니다.



쉽게 말해, 정부 서식인데도 특정 협회의 것만 효력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 바로가기 [뉴스9] 사설 협회, 30년간 정부 서식 ‘증명서 독점’

대체 무슨 상황인지, 업계를 상대로 확인해 봤습니다. 이해가 안 가는 실태가 드러났습니다. 자동차해체재활용업협회는 회원으로 가입한 뒤, 각 지역 지부의 운영 규정에 따라 한 장에 3~4천 원을 내야만 증명서를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이 증명서에는 협회가 부여한 일련번호가 찍히는데, 이 번호가 없으면 증명서를 전산에 입력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습니다.

결국, 국내 520여 개 폐차 업체들은 폐차인수증명서를 쓰려면 원하든 원치 않든 '정부 서식 독점권'을 가진 협회에 가입한 뒤, 폐차 처리 규모에 따라 '증명서 값' 하나로만 한 곳당 해마다 수백~수천만 원씩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시스템을 가능하게 한 규정은 대체 뭘까하는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일단 폐차인수증명서 관련 조항이 담겨 있는 자동차등록규칙을 찾아봤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뒤져봐도 '협회'는 물론이고, 제3의 기관을 지칭하는 단어조차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거 말고 다른 법규에 관련 조항이 들어있나 보다'하는 생각으로, 국토교통부 담당자에게 규정을 문의했습니다. 그런데 황당한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따로 규정이 있는 것은 아니고, 서식에만 그렇게 나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설마 규정에도 없이 정부가 사설 협회에 공인 서식을 독점으로 맡겼을까 싶어서 거듭해서 물었지만, 답변은 같았습니다.

증명서 업무를 정부가 아닌 제3의 기관이 대행할 근거조차도 전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국토교통부는 규정이나 근거도 하나 없이, 사설 협회가 만들고 검인한 증명서만 인정해 주는 거냐'고 묻자, 담당자는 머뭇거리더니 "그런 것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규정도 없이 그러면 안 되는 것 아니냔 지적에, 국토부 담당자는 "협회가 대행할 수 있게 하는 조항을 올해 안으로 관련 시행령에 넣을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규정에도 없는 '초법 행위'를 계속해오다가, 문제를 지적받자 법만 슬쩍 고쳐 합법화시키는 것으로 넘어가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우리나라의 연간 폐차 발생량은 80만 대 수준. 다시 말해 해마다 80만 장의 폐차인수증명서가 발급된다는 얘기입니다.

증명서 1장마다 지역에 따라 최소 3천 원을 받는다는 점을 받는 걸 고려하면, 협회는 아무런 근거 규정도 없이 정부 공인 서식을 독점하면서 연간 24억 원이 넘는 돈을 거둬들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1984년부터 1장당 500원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점차 값을 올려 온 점으로 볼 때, 협회가 30년간 벌어들인 돈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산됩니다.

그럼 대체 협회가 이처럼 많은 돈을 업체들로부터 받는 이유는 무엇이고, 그 돈은 어떻게 쓰이는 것일까요?

협회를 찾아가 봤습니다. 협회장을 비롯한 협회 관계자들의 설명은 이랬습니다. 증명서를 제공할 때마다 받는 돈은, 서류가 위조되거나 허위로 발급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검인' 비용이라고 했습니다.

1980년대엔 영세 폐차 업자들이 난립한 가운데, 허위로 폐차인수증명서만 만들어 정부에 신고한 뒤, 차량을 폐차시키지 않고 범죄자 등에게 일종의 '대포차'로 불법 제공하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이에 협회가 '자정' 차원에서 회원들이 발급하는 증명서의 진위를 검증하겠다고 정부에 제안했고,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제도가 시작됐다고 했습니다. 업자들의 서류를, 업자들의 협회가 검증하고 돈까지 받겠다는 제안을 정부가 수용했다는 겁니다.

그럼, 대체 '검인'이란 건 어떻게 이뤄지는 것인지, 업체를 직접 찾아가서 실제로 폐차를 운전자로부터 매입해 넘겨받은 것인지 눈으로 확인하는 것인지 물었습니다. 하지만 협회 측은 그런 절차는 없다고 했습니다. 대신, 증명서가 허위임이 차후에 발생했을 경우, 이에 대한 보증을 협회가 서는 취지라고 했습니다.

처음엔 '검인' 비용이라더니, 이젠 '보증' 비용이라고 설명이 바뀌었습니다. 더군다나 증명서 수입은 '검인'이나 '보증'과 무관한 직원 인건비와 회장 업무추진비, 직원 복리후생비, 전산 운영비 등 협회의 운영 비용으로 대부분 쓰이고 있었습니다.



규정이 없다는 지적에 대한 답변 역시 황당했습니다. 협회의 고위 인사는 "소홀했던 부분은 분명히 있다. 왜 법조문에 (관련 조항을) 넣어야 하는데, 안 넣었느냐는 부분"이라며 "이건 곧 넣겠다"고 했습니다. "내가 넣겠다고 하면 좀 건방지긴 한데, 공무원이 넣을 것"이라며 한 번 더 강조했습니다.

법 개정에 자신감을 보이는 태도가, 마치 정부나 국회의 관계자를 보는 듯했습니다. 문득, "협회가 대행할 수 있게 하는 조항을 올해 안으로 관련 시행령에 넣을 예정"이라던 국토부 담당자의 말이 기억났습니다. '초법 행위'를 법을 고쳐서라도 합법화시키겠다는 협회 관계자의 자신감엔 이유가 있는 듯했습니다.

생각할수록 이해가 가지 않는 '협회의 30년 넘는 초법적 정부 증명서 독점' 행위는 KBS 9시 뉴스를 통해 보도됐습니다. 보도가 나간 뒤, 국토부 측은 "협회가 증명서를 검인하는 제도를 폐지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협회가 증명서 업무를 계속 대행할 수 있게 관련 규정을 만들려던 것 아니냐'고 묻자, 절대 그런 계획은 없었다며 "곧 폐지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감사원은 협회가 규정에도 없이 정부 증명서 배급을 독점하면서 돈을 받는 이유가 뭔지 조사해 달라는 폐차 업체들의 청구에 따라, 국토부와 협회에 대한 감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참고로 정부 서식을 이용해 회원 업체들로부터 돈을 걷어온 협회가 정부의 감사를 받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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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정부 증명서를 업자들이 만들어 팔았다
    • 입력 2014.11.10 (11:00)
    • 수정 2014.11.10 (11:31)
    취재후
[취재후] 정부 증명서를 업자들이 만들어 팔았다
"정부 서식을 사설 협회에 가입해서 돈까지 내야만 쓸 수 있다는 게 말이 됩니까?" 얼마 전 몇몇 폐차 업체 대표들이 전해온 하소연을 듣고, 의문이 들었습니다.

대체 무슨 정부 서식일까? 정말로 협회를 통해서만 쓸 수 있는 걸까?

문제의 서식은 '폐차 인수 증명서'였습니다. 일반인에겐 생소하지만, 폐차 처리 업체들에겐 운영에 필수인 서류입니다. 차량 소유자로부터 폐차를 넘겨받은 뒤, 그 증빙으로서 업체가 작성해 반드시 정부에 제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서식 하단부에는 '유의사항'이란 제목 아래 뭔가 특이한 내용이 눈에 띕니다. "이 폐차인수증명서는 한국자동차해체재활용업협회가 제작하고 검인을 한 것만 유효"하다는 문구입니다.



쉽게 말해, 정부 서식인데도 특정 협회의 것만 효력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 바로가기 [뉴스9] 사설 협회, 30년간 정부 서식 ‘증명서 독점’

대체 무슨 상황인지, 업계를 상대로 확인해 봤습니다. 이해가 안 가는 실태가 드러났습니다. 자동차해체재활용업협회는 회원으로 가입한 뒤, 각 지역 지부의 운영 규정에 따라 한 장에 3~4천 원을 내야만 증명서를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이 증명서에는 협회가 부여한 일련번호가 찍히는데, 이 번호가 없으면 증명서를 전산에 입력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습니다.

결국, 국내 520여 개 폐차 업체들은 폐차인수증명서를 쓰려면 원하든 원치 않든 '정부 서식 독점권'을 가진 협회에 가입한 뒤, 폐차 처리 규모에 따라 '증명서 값' 하나로만 한 곳당 해마다 수백~수천만 원씩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시스템을 가능하게 한 규정은 대체 뭘까하는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일단 폐차인수증명서 관련 조항이 담겨 있는 자동차등록규칙을 찾아봤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뒤져봐도 '협회'는 물론이고, 제3의 기관을 지칭하는 단어조차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거 말고 다른 법규에 관련 조항이 들어있나 보다'하는 생각으로, 국토교통부 담당자에게 규정을 문의했습니다. 그런데 황당한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따로 규정이 있는 것은 아니고, 서식에만 그렇게 나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설마 규정에도 없이 정부가 사설 협회에 공인 서식을 독점으로 맡겼을까 싶어서 거듭해서 물었지만, 답변은 같았습니다.

증명서 업무를 정부가 아닌 제3의 기관이 대행할 근거조차도 전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국토교통부는 규정이나 근거도 하나 없이, 사설 협회가 만들고 검인한 증명서만 인정해 주는 거냐'고 묻자, 담당자는 머뭇거리더니 "그런 것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규정도 없이 그러면 안 되는 것 아니냔 지적에, 국토부 담당자는 "협회가 대행할 수 있게 하는 조항을 올해 안으로 관련 시행령에 넣을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규정에도 없는 '초법 행위'를 계속해오다가, 문제를 지적받자 법만 슬쩍 고쳐 합법화시키는 것으로 넘어가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우리나라의 연간 폐차 발생량은 80만 대 수준. 다시 말해 해마다 80만 장의 폐차인수증명서가 발급된다는 얘기입니다.

증명서 1장마다 지역에 따라 최소 3천 원을 받는다는 점을 받는 걸 고려하면, 협회는 아무런 근거 규정도 없이 정부 공인 서식을 독점하면서 연간 24억 원이 넘는 돈을 거둬들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1984년부터 1장당 500원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점차 값을 올려 온 점으로 볼 때, 협회가 30년간 벌어들인 돈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산됩니다.

그럼 대체 협회가 이처럼 많은 돈을 업체들로부터 받는 이유는 무엇이고, 그 돈은 어떻게 쓰이는 것일까요?

협회를 찾아가 봤습니다. 협회장을 비롯한 협회 관계자들의 설명은 이랬습니다. 증명서를 제공할 때마다 받는 돈은, 서류가 위조되거나 허위로 발급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검인' 비용이라고 했습니다.

1980년대엔 영세 폐차 업자들이 난립한 가운데, 허위로 폐차인수증명서만 만들어 정부에 신고한 뒤, 차량을 폐차시키지 않고 범죄자 등에게 일종의 '대포차'로 불법 제공하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이에 협회가 '자정' 차원에서 회원들이 발급하는 증명서의 진위를 검증하겠다고 정부에 제안했고,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제도가 시작됐다고 했습니다. 업자들의 서류를, 업자들의 협회가 검증하고 돈까지 받겠다는 제안을 정부가 수용했다는 겁니다.

그럼, 대체 '검인'이란 건 어떻게 이뤄지는 것인지, 업체를 직접 찾아가서 실제로 폐차를 운전자로부터 매입해 넘겨받은 것인지 눈으로 확인하는 것인지 물었습니다. 하지만 협회 측은 그런 절차는 없다고 했습니다. 대신, 증명서가 허위임이 차후에 발생했을 경우, 이에 대한 보증을 협회가 서는 취지라고 했습니다.

처음엔 '검인' 비용이라더니, 이젠 '보증' 비용이라고 설명이 바뀌었습니다. 더군다나 증명서 수입은 '검인'이나 '보증'과 무관한 직원 인건비와 회장 업무추진비, 직원 복리후생비, 전산 운영비 등 협회의 운영 비용으로 대부분 쓰이고 있었습니다.



규정이 없다는 지적에 대한 답변 역시 황당했습니다. 협회의 고위 인사는 "소홀했던 부분은 분명히 있다. 왜 법조문에 (관련 조항을) 넣어야 하는데, 안 넣었느냐는 부분"이라며 "이건 곧 넣겠다"고 했습니다. "내가 넣겠다고 하면 좀 건방지긴 한데, 공무원이 넣을 것"이라며 한 번 더 강조했습니다.

법 개정에 자신감을 보이는 태도가, 마치 정부나 국회의 관계자를 보는 듯했습니다. 문득, "협회가 대행할 수 있게 하는 조항을 올해 안으로 관련 시행령에 넣을 예정"이라던 국토부 담당자의 말이 기억났습니다. '초법 행위'를 법을 고쳐서라도 합법화시키겠다는 협회 관계자의 자신감엔 이유가 있는 듯했습니다.

생각할수록 이해가 가지 않는 '협회의 30년 넘는 초법적 정부 증명서 독점' 행위는 KBS 9시 뉴스를 통해 보도됐습니다. 보도가 나간 뒤, 국토부 측은 "협회가 증명서를 검인하는 제도를 폐지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협회가 증명서 업무를 계속 대행할 수 있게 관련 규정을 만들려던 것 아니냐'고 묻자, 절대 그런 계획은 없었다며 "곧 폐지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감사원은 협회가 규정에도 없이 정부 증명서 배급을 독점하면서 돈을 받는 이유가 뭔지 조사해 달라는 폐차 업체들의 청구에 따라, 국토부와 협회에 대한 감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참고로 정부 서식을 이용해 회원 업체들로부터 돈을 걷어온 협회가 정부의 감사를 받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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