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왕(日王) 생일파티가 서울에서 열리는 이유

입력 2014.12.10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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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오후 서울 남산에 위치한 한 호텔. 주한 일본대사관 주최로 ‘아키히토’ 일왕의 생일을 축하하는 행사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과 주한 외국 대사 부부 등 국내외 인사 400여 명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조태용 외교부 1차관과 이상덕 동북아국장이 우리 정부를 대표해 참석했고, 공로명 동아시아재단 이사장과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 김석기 한국공항공사 사장도 자리를 함께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과 동원그룹, 한진그룹 등 우리 기업이 보낸 화환도 행사장 입구를 장식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감한 여론을 의식한 탓인지, 행사장은 철저하게 출입이 통제됐고 언론사 취재도 금지됐다.

연회 시작 전에는 행사장 앞에서 일부 보수단체가 반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날 출입구 근처에서 입장하는 차량을 향해 욕설을 퍼부은 한 여성의 모습이 유튜브에 공개돼 200만 건 가까운 조회수를 기록하며 화제가 됐다.

행사 개최를 비판하는 언론 보도가 이어졌고,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대한민국 땅에서 이 같은 광경은 해마다 반복된다. 주한 일본대사관이 해당 행사를 매년 개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0년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당시 한나라당 의원 등이 참석해 큰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온갖 비난 여론을 감수하면서까지 일본대사관이 이 같은 행사를 열고 있는 이유는 뭘까?

그것도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말이다.



◇ 재외공관이 개최하는 국경일 연회 "문제 삼기 어려워" 

재외공관을 두고 있는 나라들은 대부분 주재국에서 1년에 한 번씩 자국의 국경일을 기념하는 연회를 개최한다. 이를 ‘내셔널 데이 리셉션’(National day reception)이라고 한다.

일 년에 한 번씩 국내외 주요 인사와 외교사절을 불러 나라 간 화합과 친목을 다지기 위한 자리다.

나라별로 상황이 다르지만 대개 건국기념일처럼 가장 중요한 국경일을 ‘내셔널 데이’로 정해 행사를 진행한다.

외교부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전 세계 공통으로 10월3일 개천절을 전후로 국경일 연회를 개최하고 있다. 이는 도쿄에 있는 주일 한국대사관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아키히토’ 일왕의 생일인 12월23일을 내셔널 데이로 정해 12월 초에 기념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주한 일본대사관 관계자는 “외교적으로 매년 개최하는 행사일 뿐, 내부적으로 별다른 의미를 가진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행사를 바라보는 우리 국민정서가 좋지 않다는 점을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행사를 중단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일본처럼 입헌군주제를 택한 나라들은 대개 국왕의 생일을 ‘내셔널 데이’로 정한다.

영국대사관은 매년 5~6월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생일을 기념하며 대사관저에서 파티를 개최하고 있다.

네덜란드와 태국 등 다른 입헌군주제 국가들도 국왕의 생일을 기념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다만 덴마크는 국내에서 따로 내셔널 데이 행사를 개최하지는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각 나라와 주재국 상황에 따라 재량껏 행사를 개최하는 것이다.

재외공관이 주최하는 행사인 만큼 우리 정부에 승인을 받거나 사전 통보를 할 필요는 없다. 주일 한국대사관도 일본 정부의 승인을 받지 않는다.

다만 주한 대사관들은 외교부가 참고할 수 있도록 행사 일시와 장소를 사전에 통보하고 있다.

연회에 초대받을 경우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참석하는 것이 외교적 관례인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 관계자는 “국경일 연회에는 주재국의 정부 요인도 초대받게 되는데, 외교적 관례상 참석하고 있다. 이는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주일 한국대사관에서도 일본 정부 요인을 초대해 행사를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내셔널 데이 행사가 세계적으로 치러지는 만큼 감정적 대응보다는 포용력을 발휘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덕민 국립외교원장은 “일본도 반한 여론이 많아서 내셔널 데이 행사를 열면 참석 인원이 예전만큼 많지 않다고 들었다. 의례적인 외교행사가 감정싸움으로 번져 한일관계의 골을 더 깊게 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며 “무조건적인 비난은 양국관계에 득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만약 일본대사관의 행사를 문제 삼을 경우 다른 입헌군주제 국가들과의 형평성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는 게 외교계 안팎의 목소리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의 아픔을 간직한 국민정서상, 머리로는 이해해도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이 현실이어서 국내 여론을 의식한 외교계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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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왕(日王) 생일파티가 서울에서 열리는 이유
    • 입력 2014-12-10 16:56:30
    국제
지난 4일 오후 서울 남산에 위치한 한 호텔. 주한 일본대사관 주최로 ‘아키히토’ 일왕의 생일을 축하하는 행사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과 주한 외국 대사 부부 등 국내외 인사 400여 명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조태용 외교부 1차관과 이상덕 동북아국장이 우리 정부를 대표해 참석했고, 공로명 동아시아재단 이사장과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 김석기 한국공항공사 사장도 자리를 함께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과 동원그룹, 한진그룹 등 우리 기업이 보낸 화환도 행사장 입구를 장식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감한 여론을 의식한 탓인지, 행사장은 철저하게 출입이 통제됐고 언론사 취재도 금지됐다. 연회 시작 전에는 행사장 앞에서 일부 보수단체가 반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날 출입구 근처에서 입장하는 차량을 향해 욕설을 퍼부은 한 여성의 모습이 유튜브에 공개돼 200만 건 가까운 조회수를 기록하며 화제가 됐다. 행사 개최를 비판하는 언론 보도가 이어졌고,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대한민국 땅에서 이 같은 광경은 해마다 반복된다. 주한 일본대사관이 해당 행사를 매년 개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0년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당시 한나라당 의원 등이 참석해 큰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온갖 비난 여론을 감수하면서까지 일본대사관이 이 같은 행사를 열고 있는 이유는 뭘까? 그것도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말이다. ◇ 재외공관이 개최하는 국경일 연회 "문제 삼기 어려워"  재외공관을 두고 있는 나라들은 대부분 주재국에서 1년에 한 번씩 자국의 국경일을 기념하는 연회를 개최한다. 이를 ‘내셔널 데이 리셉션’(National day reception)이라고 한다. 일 년에 한 번씩 국내외 주요 인사와 외교사절을 불러 나라 간 화합과 친목을 다지기 위한 자리다. 나라별로 상황이 다르지만 대개 건국기념일처럼 가장 중요한 국경일을 ‘내셔널 데이’로 정해 행사를 진행한다. 외교부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전 세계 공통으로 10월3일 개천절을 전후로 국경일 연회를 개최하고 있다. 이는 도쿄에 있는 주일 한국대사관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아키히토’ 일왕의 생일인 12월23일을 내셔널 데이로 정해 12월 초에 기념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주한 일본대사관 관계자는 “외교적으로 매년 개최하는 행사일 뿐, 내부적으로 별다른 의미를 가진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행사를 바라보는 우리 국민정서가 좋지 않다는 점을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행사를 중단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일본처럼 입헌군주제를 택한 나라들은 대개 국왕의 생일을 ‘내셔널 데이’로 정한다. 영국대사관은 매년 5~6월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생일을 기념하며 대사관저에서 파티를 개최하고 있다. 네덜란드와 태국 등 다른 입헌군주제 국가들도 국왕의 생일을 기념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다만 덴마크는 국내에서 따로 내셔널 데이 행사를 개최하지는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각 나라와 주재국 상황에 따라 재량껏 행사를 개최하는 것이다. 재외공관이 주최하는 행사인 만큼 우리 정부에 승인을 받거나 사전 통보를 할 필요는 없다. 주일 한국대사관도 일본 정부의 승인을 받지 않는다. 다만 주한 대사관들은 외교부가 참고할 수 있도록 행사 일시와 장소를 사전에 통보하고 있다. 연회에 초대받을 경우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참석하는 것이 외교적 관례인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 관계자는 “국경일 연회에는 주재국의 정부 요인도 초대받게 되는데, 외교적 관례상 참석하고 있다. 이는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주일 한국대사관에서도 일본 정부 요인을 초대해 행사를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내셔널 데이 행사가 세계적으로 치러지는 만큼 감정적 대응보다는 포용력을 발휘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덕민 국립외교원장은 “일본도 반한 여론이 많아서 내셔널 데이 행사를 열면 참석 인원이 예전만큼 많지 않다고 들었다. 의례적인 외교행사가 감정싸움으로 번져 한일관계의 골을 더 깊게 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며 “무조건적인 비난은 양국관계에 득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만약 일본대사관의 행사를 문제 삼을 경우 다른 입헌군주제 국가들과의 형평성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는 게 외교계 안팎의 목소리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의 아픔을 간직한 국민정서상, 머리로는 이해해도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이 현실이어서 국내 여론을 의식한 외교계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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