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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버마 전선의 위안부, “그들은 모두 조선인”
입력 2015.03.02 (13:57) 취재후
■사진 속 그녀들

스무 살을 이제 갓 넘겼을까? 군인들에 둘러싸여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모습은 그들이 언제나 억압에서 자유롭지 못한 존재였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치마저고리를 입고 있는 사진 오른쪽의 여인. 그녀는 강제로 끌려온 낯선 땅 버마(지금의 미얀마)에서의 황망한 생활이 3년이나 흘렀음에도 고국의 옷차림 그대로이다. 1945년 8월 미국 전시정보국 심리전 팀이 버마 미트키나의 조선인 군 위안부 20명을 심문하면서 남긴 사진 자료이다.



■어느 일본군이 기억하는 위안부들

"일본군 위안부는 모두 조선인입니다."

류 이츠시, 버마 전선에 투입돼 포로가 될 때까지 3년여간 전장의 위안부들을 경험한 일본군 18사단 소속 기관총 분대장 류는 그녀들을 이렇게 기억했다. 기밀이 해제돼 70여 년 만에 공개된 미군의 일본군 심문 보고서에 나온 증언이다.

위안부에 대한 류의 이런 발언은 버마 전장에서 그의 이동 경로를 볼때도 신빙성이 높다. 1942년 4월 버마 남부 랑군(Rangoon)에 도착한 그는 모메익(Momeik)을 거쳐 북부 메이묘(Maymyo)와 왈라우붐(Walawbum) 으로 향한다. 중국으로 이어지던 연합군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동시에 인도를 점령하기 위한 일본의 야욕대로 전선이 확장되는 듯했다. 그가 한때 주둔했던 메이묘와 왈라우붐은 일본군이 위안소를 운영하던 곳이다. 왈라우붐은 앞서 사진으로 밝혀진 미트키나와도 멀지 않다.

김득중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는 그의 발언을 이렇게 해석한다.
"버마 미트키나에 있던 20명의 위안부가 모두 조선인이었다는 점은 기존 자료에 의해 알려져 있습니다. 류 이츠시의 말은 이외의 지역에도 조선인 위안부가 굉장히 많이 있었다. 그리고 위안부의 대다수는 조선인이었다는 사실을 재확인해준 것입니다."

미군 보고서는 류의 또 다른 진술도 덧붙였다.

[위안부는 군 주둔지 주변의 도시에 정주했다. 부대에는 그들을 방문할 특정일이 할당되었다. 위안부는 전투지대에 파견되지는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그들은 성에 굶주린 군인들(the sex-starved soldiers)에게 죽었을 것입니다."라고 포로는 말했다.]

전장의 광란이 다른 방식으로 그녀들의 삶을 참혹하게 했음을 짐작케 하는 말이다.

■ "위안부에 대한 조선인들의 저항은 무엇인가?"

미군은 일본군 포로들을 심문하며 조선인 출신 일본군에 대해서는 30개 항목의 특별 심문을 별도 진행했다. 이 질문의 18번 항목은 다음을 묻고 있다.

[18. 일본군의 위안부 동원을 알고 있는가? 조선인들은 이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저항이나 마찰은 없었나? ]

이 특별 질문에는 위안부 문제를 강제징병과 징용, 창씨 개명 등과 함께 미국의 주요 관심사로 다뤘다. 강성현 서울대 인권센터 공동연구원은 이 질문을 통해 위안부 문제가 조선인과 일본인 간의 갈등에 굉장히 중요한 핵심 사안이었음을 미국도 직감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군의 '사기 진작' 차원에서 '보급품'의 하나로 강제 동원했던 위안부의 반인권성을 당시 미국이 잘 알고 있었다는 얘기이다. 동시에 미국은 전쟁 말미 진행한 이런 질문의 결과를 토대로 전후 일본의 전쟁범죄 처리를 준비했다.

국사편찬위원회와 서울대 인권센터가 밝힌 위안부 관련 문서는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기밀이 해제돼 세상에 드러났다. 일본군이 위안부 모집, 수송, 관리 등에 개입한 사실을 담고 있는 문서들이다. 일본이 부인하고 싶어하는 반인권 범죄의 민낯이 시간이 갈수록 하나하나 밝혀지고 있다.

국사편찬위원회와 서울대 인권센터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국의 자료 100여 건을 수집해 분석이 끝나는 대로 위안부 관련 자료를 공개할 계획이다.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으로 20여 년 전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일본의 전쟁범죄가 객관적인 사료로 증명돼 논란을 종식시킬 수 있길 기대해본다.

참고: 유엔 시민.정치적 권리위원회는 지난해 '일본군 위안부'를 '강제 성 노예'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하며 일본의 사죄가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나비 필레이 유엔인권최고대표 역시 피해 여성들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촉구한 바 있다.

☞바로가기 [뉴스9]  “버마 위안부는 모두 조선인”…‘일본군 심문’ 입수
 
  • [취재후] 버마 전선의 위안부, “그들은 모두 조선인”
    • 입력 2015-03-02 13:57:29
    취재후
■사진 속 그녀들

스무 살을 이제 갓 넘겼을까? 군인들에 둘러싸여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모습은 그들이 언제나 억압에서 자유롭지 못한 존재였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치마저고리를 입고 있는 사진 오른쪽의 여인. 그녀는 강제로 끌려온 낯선 땅 버마(지금의 미얀마)에서의 황망한 생활이 3년이나 흘렀음에도 고국의 옷차림 그대로이다. 1945년 8월 미국 전시정보국 심리전 팀이 버마 미트키나의 조선인 군 위안부 20명을 심문하면서 남긴 사진 자료이다.



■어느 일본군이 기억하는 위안부들

"일본군 위안부는 모두 조선인입니다."

류 이츠시, 버마 전선에 투입돼 포로가 될 때까지 3년여간 전장의 위안부들을 경험한 일본군 18사단 소속 기관총 분대장 류는 그녀들을 이렇게 기억했다. 기밀이 해제돼 70여 년 만에 공개된 미군의 일본군 심문 보고서에 나온 증언이다.

위안부에 대한 류의 이런 발언은 버마 전장에서 그의 이동 경로를 볼때도 신빙성이 높다. 1942년 4월 버마 남부 랑군(Rangoon)에 도착한 그는 모메익(Momeik)을 거쳐 북부 메이묘(Maymyo)와 왈라우붐(Walawbum) 으로 향한다. 중국으로 이어지던 연합군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동시에 인도를 점령하기 위한 일본의 야욕대로 전선이 확장되는 듯했다. 그가 한때 주둔했던 메이묘와 왈라우붐은 일본군이 위안소를 운영하던 곳이다. 왈라우붐은 앞서 사진으로 밝혀진 미트키나와도 멀지 않다.

김득중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는 그의 발언을 이렇게 해석한다.
"버마 미트키나에 있던 20명의 위안부가 모두 조선인이었다는 점은 기존 자료에 의해 알려져 있습니다. 류 이츠시의 말은 이외의 지역에도 조선인 위안부가 굉장히 많이 있었다. 그리고 위안부의 대다수는 조선인이었다는 사실을 재확인해준 것입니다."

미군 보고서는 류의 또 다른 진술도 덧붙였다.

[위안부는 군 주둔지 주변의 도시에 정주했다. 부대에는 그들을 방문할 특정일이 할당되었다. 위안부는 전투지대에 파견되지는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그들은 성에 굶주린 군인들(the sex-starved soldiers)에게 죽었을 것입니다."라고 포로는 말했다.]

전장의 광란이 다른 방식으로 그녀들의 삶을 참혹하게 했음을 짐작케 하는 말이다.

■ "위안부에 대한 조선인들의 저항은 무엇인가?"

미군은 일본군 포로들을 심문하며 조선인 출신 일본군에 대해서는 30개 항목의 특별 심문을 별도 진행했다. 이 질문의 18번 항목은 다음을 묻고 있다.

[18. 일본군의 위안부 동원을 알고 있는가? 조선인들은 이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저항이나 마찰은 없었나? ]

이 특별 질문에는 위안부 문제를 강제징병과 징용, 창씨 개명 등과 함께 미국의 주요 관심사로 다뤘다. 강성현 서울대 인권센터 공동연구원은 이 질문을 통해 위안부 문제가 조선인과 일본인 간의 갈등에 굉장히 중요한 핵심 사안이었음을 미국도 직감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군의 '사기 진작' 차원에서 '보급품'의 하나로 강제 동원했던 위안부의 반인권성을 당시 미국이 잘 알고 있었다는 얘기이다. 동시에 미국은 전쟁 말미 진행한 이런 질문의 결과를 토대로 전후 일본의 전쟁범죄 처리를 준비했다.

국사편찬위원회와 서울대 인권센터가 밝힌 위안부 관련 문서는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기밀이 해제돼 세상에 드러났다. 일본군이 위안부 모집, 수송, 관리 등에 개입한 사실을 담고 있는 문서들이다. 일본이 부인하고 싶어하는 반인권 범죄의 민낯이 시간이 갈수록 하나하나 밝혀지고 있다.

국사편찬위원회와 서울대 인권센터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국의 자료 100여 건을 수집해 분석이 끝나는 대로 위안부 관련 자료를 공개할 계획이다.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으로 20여 년 전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일본의 전쟁범죄가 객관적인 사료로 증명돼 논란을 종식시킬 수 있길 기대해본다.

참고: 유엔 시민.정치적 권리위원회는 지난해 '일본군 위안부'를 '강제 성 노예'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하며 일본의 사죄가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나비 필레이 유엔인권최고대표 역시 피해 여성들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촉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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