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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퍼] 9시 26분 어떤 일이?…세월호 재판 6개월의 기록
입력 2015.04.12 (09:02) 수정 2015.04.13 (01:37) 디지털퍼스트
[디·퍼] 9시 26분 어떤 일이?…세월호 재판 6개월의 기록


세월호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는 건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겨우 탈출에 성공한 생존자들에게 그렇고 자식을, 남편을, 아내를, 부모를 잃은 유가족들에게도 그렇다. 살인 혐의를 받고 있는 선원들 또한 다르지 않다. 한 개인에게 있어서 세월호에 대한 기억을 건져내는 일은 세월호 선체를 건지는 일 못지않은 어렵고 위험한 작업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들의 기억을 건져냈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던 순간의 축축하고 끈적거리는 악몽은 그들의 입을 통해 말이 되었고, 글자가 되어 종이 위에 안착했다. 지난해 6월부터 11월까지 진행된 6개월간의 재판 기록이 그것이다.

■ 6개월의 재판 기록 5천 쪽 분석

<취재파일K>는 세월호 선원들에 대한 재판 기록을 입수했다. 검찰의 공소장부터 공판준비기일조서와 증인신문을 포함한 29차례에 걸친 공판조서는 모두 5천 쪽에 이른다. 선원과 해경, 단원고 학생들을 비롯한 생존자 등 80명이 넘는 이들의 증언이 담겼다. 취재진은 이를 바탕으로 출항부터 침몰까지의 14시간 30분을 재구성했다.

☞ [취재파일K] 기억을 건지다 - 6개월의 재판 기록

예정보다 두 시간 늦은 밤 9시에 출발한 세월호는 이튿날 오전 8시 37분 이미 맹골수도를 통과했다. 안개는 모두 걷혔고 바람도 없는 날씨였다. 운항에 방해가 될 수 있는 다른 선박도 보이지 않았다. 병풍도 변침 구간이 다가오자 3등 항해사 박 모 씨는 조타수 조 모 씨에게 135도에서 140도로 변침할 것을 지시한다. 8시 45분이었다.

8시 46분. 140도로 변침을 완료한 세월호는 2분 동안 항로를 유지한다. 145도로 다시 변침해야할 시점이 왔다. 8시 48이었다. 이때 조타수가 당황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어...타가 안 돼요!”

세월호는 오른쪽으로 빠르게 돌며 왼쪽으로 기울었다. 갑판에 있던 컨테이너가 한쪽으로 쏠리면서 굉음을 냈다. 불과 1분 만에 벌어진 일이다. 무슨 문제가 있었던 걸까? 먼저 조타수의 주장이다.

조타수는 140도 변침 명령을 받은 뒤 타를 돌려 선수 방향을 140도로 맞췄다. 이후 키를 잡고 있는데도 선수는 오른쪽으로 돌았다. 그래서 왼쪽으로 3도까지 돌렸지만 배는 멈추지 않고 143도까지 돌았고, 왼쪽으로 2도를 더 돌려 좌현 5도에 맞췄는데도 배는 145도까지 돌았다. 이때 3등 항해사는 "반대로요"라고 말했고 조타수는 이 말에 따라 좌현으로 10도를 더 돌려 좌현 15도에 맞췄다.

검사 : 3등 항해사가 얘기한 "반대로"라는 것은 좌현과 우현 중 어디를 말하는 것 인가요?
조타수 : 좌현 쪽입니다.
검사 : 그 말을 듣고 어떤 조치를 취했는가요?
조타수 : 좌현 5도로 잡았던 키를 15도까지 돌렸습니다.
(선원 재판 20회 공판. 2014. 10. 1.)


좌현으로 핸들을 돌렸는데 배는 우현으로 돌았으니 방향타가 고장 났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 조타수 “조타기가 말을 듣지 않았다”

3등 항해사의 진술은 조금 다르다. 조타수의 주장과 달리 140도까지 방향을 튼 뒤 145도로 다시 변침을 지시했고, 이 지시대로 방향을 바꾸는 과정에서 사고가 났다고 진술했다.

검사 : 피고인은 140도를 지시한 이후 레이더를 통하여 우현으로 도수가 바뀌는 것을 확인하고 레이더와 조타기 사이로 가서 전방견시를 하면서 선수가 우측으로 도는 것을 보았고 다시 레이더 앞으로 와서 보니까 140도여서 이를 확인하고 조타수에게 "145도요"라고 지시하였지요?
3등 항해사 : 예.
(선원 재판 22회 공판. 2014. 10. 7.)


또 "반대로"가 아닌 "포트"(왼쪽을 의미하는 항해 용어. 오른쪽은 '스타보드'라고 한다)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배가 우현으로 돌기 시작할 때 이 명령을 내렸고, 이상을 느끼자 바로 선장에게 연락하려고 조타실 왼쪽의 선내 전화기로 이동했지만 통화가 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 사이 배는 기울어 쓰러져버리고 만다.

변호인 : 조타수가 "어... 타가~"라는 말을 하였고, 배가 좌현으로 기울기 시작하였지요?
3등 항해사 : 예.
변호인 : 피고인이 지시하고 나서 시간상 얼마나 지나서 조타수가 "어... 타가~"라는 말을 하던가요.
3등 항해사 : 그냥 거의 바로인 것 같습니다.
변호인 : 피고인은 위험을 느끼고 선장을 부르기 위해 엔진텔레그래프에 있는 선내전화로 가면서 ”포트포트”라고 하였지요?
3등 항해사 : 예.
(선원 재판 22회 공판. 2014. 10. 7.)


■ 항해사 “140도 변침 확인 후 지시…사고 원인 몰라”

당시 조타실에 함께 있던 기관장 박 모 씨는 3등 항해사의 조타 지시를 들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그것이 140도인지 145도인지는 불명확하다고 말했다. 3등 항해사는 145도 변침 지시를 했지만 조타수는 듣지 못했을 수도 있다. 3등 항해사가 145도 변침 지시와 거의 동시에 조타수의 당황하는 목소리를 들었다고 진술하는 것에 비춰 사고가 난 시각에 대한 둘의 진술엔 큰 차이가 없다.

기관장은 또 3등 항해사가 "반대로"라고 한 말도 들었다고 진술했다. 따라서 3등 항해사는 다급한 나머지 "반대로"라고 말했고 이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3등 항해사는 평소에도 자신은 '포트'나 '스타보드'같은 항해 용어는 잘 쓰지 않는다고 했다. '반대로'라는 지시엔 어떤 문제가 있는 걸까?

재판부는 조타수가 우현 15도 이상의 타각을 40초 이상 유지하는 대각도 조타를 했다고 판단했다. 3등 항해사의 145도 변침 지시를 받고 타를 우현으로 돌렸는데 예상보다 배가 빨리 돌았고, 당황한 조타수가 좌현으로 키를 돌리려는 순간 "반대로"라는 말을 듣고 좌현의 반대인 우현으로 돌렸다는 것이다. 모호한 지시는 조타수에게 오해의 소지를 줬다.

3등 항해사는 세월호가 08:48경 전남 진도군 병풍도 북방 1.8 해리 해상에 이르자 침로 약 140도, 엔진 최대 출력을 유지한 채 145도 방향의 우현 변침을 시도하면서 (중략) 조타수가 어느 방향으로 몇 도 타각을 사용하는지, 세월호가 선수 방향대로 진행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전방견시를 하지 않아 이를 곧바로 시정하지 못하고, 조타수는 3등 항해사의 지시에 따라 우현 변침을 시도하던 중 원하는 대로의 변침이 이루어지지 않자 당황하여 임의로 조타기를 우현 측으로 대각도로 돌리는 잘못을 저지르는 바람에 선수가 급속도로 우회두하면서 외방경사의 영향으로 선체가 좌현 측으로 급속히 기울어졌다.
(선원 재판 1심 판결문)



■ 재판부 “조타수 과실로 침몰…항해사 지휘 책임”

재판부는 조타수의 주장대로 세월호의 방향타가 고장 난 것도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사고 당시 동영상엔 방향타는 한가운데, 즉 0도를 가리켰고,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향타가 고장 난 것이 아니라 조타수가 본인의 과실을 숨기려고 탈출 전 0도로 돌려놓았다고 주장했다.

일반적인 선박은 급박한 충돌 위험 등을 피하기 위해 타각을 최대 35도까지 사용할 수 있다. 세월호가 사고 당시 시도했던 변침은 배가 기울 정도의 급격한 변침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세월호는 증축과 과적으로 복원성이 떨어진 상태였다. 세월호의 또 다른 선장 신모 씨는 평소 선원들에게 '배의 복원성이 약하니 변침을 할 때는 5도씩 끊어서 하라'고 말했다. 그는 세월호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다.

변호인 : 물류팀 직원들에게 화물량에 관하여 문제제기를 한 적이 있지요?
신모 씨 : 예.
변호인 : 문제제기를 한 어떤 계기가 있을 것 같은데, 어떤 사고가 있었나요? 아니면 항해해 보니까
화물 때문에 복원성이 안 좋다는 등의 이유가 있었나요?
신모 씨 : 후자입니다. 항해해 보니까 복원성이 안 좋다는 느낌이 들어서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변호인 : 2013년 가을경 물류팀에게 "선박의 복원력이 좋지 않은 느낌이 드니까 화물 적재시 신경을 많이 써 달라"는 취지로 말을 한 사실이 있지요?
신모 씨 : 예.
(선원 재판 11회 공판. 2014. 8. 26.)


세월호의 화물 최대 적재량은 1,077톤이다. 사고 당시엔 이보다 2배 많은 2,142톤이 실렸던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평형수는 761.2톤으로 복원성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1,694.8톤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세월호가 20도 정도 기울었을 때 고박 상태가 약했던 화물들이 미끄러졌다.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배가 기운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침몰한 세월호에서 구조작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이유는 뭘까?

■ 또 다른 선장 “세월호는 복원성 약해”

사고 현장에 헬기 B-511호기가 도착한 시각은 9시 27분이다. 비슷한 시각 100톤 급 소형 경비정 123정도 도착한다. 그런데 해경 등 구조대의 눈에 사고 현장은 당혹스러울 정도로 고요했다. 헬기 기장과 해경 대원의 진술이다.

B-511호기 기장 : 저는 벌써 인원들이 나와서 갑판에 대기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런데 한 바퀴 선회할 때까지 인원들이 안 나와서 '어... 이상하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검사 : 증인은 당연히 현장에 도착하면 승객들이 갑판에 나와서 대기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는 말인가요?
B-511호기 기장 : 예.
(선원 재판 9회 공판. 2014. 8. 19.)

검사 : 사고 현장에 도착해 무었을 했나요?
123정 정장 : 저희들은 사고 현장에 도착하기 전에 세월호 승객들이 모두 구명조끼를 입고 퇴선 위치에 집결해있거나, 구명벌을 투하해서 해상에 다 내려와 있을 것이라고 가상하고 갔었는데, 현장에 도착하고 나서 너무 당황했습니다.
(선원 재판 8회 공판. 2014. 8. 13.)


여객선은 침몰해 가는데 승객들은 갑판에도 없고 바다 위에 떠있지도 않았다. 늘 바다에서 일했던 해경 대원들에겐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광경이었다. 그런데, 여객선 안에 400명이 넘는 승객이 구명조끼를 입고 대기하고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상황실은 이들에게 전달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 같이 '당황했다'.

상황실과 현장, 헬기와 항공구조사, 123정과 헬기 사이 의사소통과 협력은 찾아볼 수 없었다. 헬기에서 세월호 선체로 내려갔던 항공 구조사가 헬기와 교신할 무전기조차 갖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도 재판 과정에서 드러났다.

검사 : 세월호에 내려갔을 때 헬기와의 교신은 어떤 식으로 하는가요?
항공 구조사 : 저희가 선체로 내려가면 헬기와 할 수 있는 것은 수신호 밖에 없습니다.
검사 : 따로 무전기를 들고 내려가지 않나요?
항공 구조사 : 다른 통신을 갖추고 있는 것은 없습니다.
(선원 재판 8회 공판. 2014. 8. 13.)


교신기록을 보면 123정은 9시 46분에야 승객들이 안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파악한다. 2분 뒤인 9시 48분쯤 123정은 상황실로부터 선체 진입 명령을 받는다. 하지만 정장은 '당황해서' 대원들에게 지시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검사 : 진입 명령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진입 명령을 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요?
123정 정장 : 그때 조타실의 인명을 구조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쪽에 직원이 두 명 있었는데 미끄러져서 못 올라갔습니다. 제가 올라가라고 지시하지는 않았습니다.
검사 : 지시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요?
123정 정장 : 그때 당황해서 깜빡 잊었습니다.
(선원 재판 8회 공판. 2014. 8. 13.)


■ 소통, 협력없는 구조…“당황해서”

가상 탈출 시뮬레이션 결과 선원들이 탈출했던 9시 45분쯤, 59도로 기울어진 배에서 탈출이 시작됐다면 6분 25초 만에 승객 전원이 탈출할 수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조류도 약했고 수온은 12.6도로 보호장비 없이도 6시간을 견딜 수 있었다. 주변에 있던 2천7백 톤급 유조선 둘라에이스호엔 세월호 승객 전원을 태울 공간이 있었다.

검사 : 만약 구조한 사람이 있었다면 유조선에는 몇 명까지나 수용할 수 있었는가요?
둘라에이스호 선장 : 구명뗏목으로 탈출한다면 몇 명이 아니라 세월호 선박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구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검사 : 세월호에 승선하였던 모든 사람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의 면적이 충분히 있다는 것인가요?
둘라에이스호 선장 : 예,그렇습니다.
(선원 재판 10회 공판. 2014. 8. 20.)


해경 대원들은 선체에 올라타 창문을 부순 뒤 승객들을 구조했다. 물에 빠진 승객을 건져내 심폐소생술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끝내 퇴선 방송은 세월호에서도, 해경에서도 이뤄지지 않았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만이 선내를 유령처럼 떠돌았다. 주변을 맴돌던 유조선과 어선 10여 척 역시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10시 18분. 세월호는 108도로 완전히 기울었다. 배의 모든 입구는 물에 잠겼다. 10시 21분. 상황실은 123정에 "승객들 해상탈출 적극 유도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한 시간 전에 보냈어야 할 메시지다. 잠수가 가능한 해경 특공대가 도착한 시각은 11시 28분이었다. 이미 세월호는 앞부분 일부만 남기고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

재판부는 9시 26분을 선원들이 승객들을 위험에 처하도록 버려뒀다는 유기죄, 즉 범죄가 성립된 시점으로 봤다. 그 시각, 해경이 10분 뒤에 도착한다는 사실이 선내 방송을 통해 학생들에게도 전해졌다. 학생들은 구명조끼를 입고 차분하게 기다렸다. 이 때 탈출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면 희생은 크게 줄었을 것이다. 선장은 '가만히 있다'가 선원들과 함께 해경 경비정에 올랐다.

검사 : 선장인 피고인은 당시 조타실에서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가요?
세월호 선장 : 거의 실신상태에 있었습니다. 교신내용을 듣지 못하고 사람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가... 사실 제가 기억은 못하지만 그 상태가 아니었는가 생각됩니다.
검사 : 승객들을 구조해야겠다, 승객들을 챙겨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는 것인가요?
세월호 선장 : 그것보다도 사고가 나고 퇴선할 때까지 무엇을 한지도 모르고,저는 그 자리에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고 합니다.
(선원 재판 22회 공판. 2014. 10. 7.)


■ 운명 가른 9시 26분…퇴선방송 끝내 없었다

세월호는 도입부터 개조, 검사, 승인, 관리와 선적, 출항, 운항까지 모든 부분에서 문제를 갖고 있었다. 선원 재판을 통해 이 가운데 일부의 잘못이 드러났다.

우리가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던 질문은 세 가지다. 세월호는 왜 침몰했는가? 승객들은 왜 구조되지 못했는가? 누가 얼마나 어떤 책임을 져야하는가?

사고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진실은 세월호와 함께 바닷속에 잠들어있다. 그러나 법정에 선 선원들과 해경, 생존자들, 그리고 전문가들의 진술이 담긴 재판 기록은 어둠에 잠긴 진실을 드러내는 조명과 같다. 비록 희미해보일지라도 진실을 찾는 탐험의 준비물로서는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중요한 건, 이제 시작이라는 것이다.


[연관기사]

☞ [취재파일 K] 기억을 건지다…6개월의 재판기록

※ 이 기사는 4월 12일 밤 11시 20분 KBS 1TV <취재파일K> 에서 방송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디·퍼(디지털 퍼스트)는 KBS가 깊이있게 분석한 기사를 인터넷을 통해 더 빨리 제공하기 위해 마련한 디지털 공간입니다.
디·퍼(디지털 퍼스트)는 KBS가 깊이있게 분석한 기사를 인터넷을 통해 더 빨리 제공하기 위해 마련한 디지털 공간입니다.
  • [디·퍼] 9시 26분 어떤 일이?…세월호 재판 6개월의 기록
    • 입력 2015.04.12 (09:02)
    • 수정 2015.04.13 (01:37)
    디지털퍼스트
[디·퍼] 9시 26분 어떤 일이?…세월호 재판 6개월의 기록


세월호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는 건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겨우 탈출에 성공한 생존자들에게 그렇고 자식을, 남편을, 아내를, 부모를 잃은 유가족들에게도 그렇다. 살인 혐의를 받고 있는 선원들 또한 다르지 않다. 한 개인에게 있어서 세월호에 대한 기억을 건져내는 일은 세월호 선체를 건지는 일 못지않은 어렵고 위험한 작업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들의 기억을 건져냈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던 순간의 축축하고 끈적거리는 악몽은 그들의 입을 통해 말이 되었고, 글자가 되어 종이 위에 안착했다. 지난해 6월부터 11월까지 진행된 6개월간의 재판 기록이 그것이다.

■ 6개월의 재판 기록 5천 쪽 분석

<취재파일K>는 세월호 선원들에 대한 재판 기록을 입수했다. 검찰의 공소장부터 공판준비기일조서와 증인신문을 포함한 29차례에 걸친 공판조서는 모두 5천 쪽에 이른다. 선원과 해경, 단원고 학생들을 비롯한 생존자 등 80명이 넘는 이들의 증언이 담겼다. 취재진은 이를 바탕으로 출항부터 침몰까지의 14시간 30분을 재구성했다.

☞ [취재파일K] 기억을 건지다 - 6개월의 재판 기록

예정보다 두 시간 늦은 밤 9시에 출발한 세월호는 이튿날 오전 8시 37분 이미 맹골수도를 통과했다. 안개는 모두 걷혔고 바람도 없는 날씨였다. 운항에 방해가 될 수 있는 다른 선박도 보이지 않았다. 병풍도 변침 구간이 다가오자 3등 항해사 박 모 씨는 조타수 조 모 씨에게 135도에서 140도로 변침할 것을 지시한다. 8시 45분이었다.

8시 46분. 140도로 변침을 완료한 세월호는 2분 동안 항로를 유지한다. 145도로 다시 변침해야할 시점이 왔다. 8시 48이었다. 이때 조타수가 당황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어...타가 안 돼요!”

세월호는 오른쪽으로 빠르게 돌며 왼쪽으로 기울었다. 갑판에 있던 컨테이너가 한쪽으로 쏠리면서 굉음을 냈다. 불과 1분 만에 벌어진 일이다. 무슨 문제가 있었던 걸까? 먼저 조타수의 주장이다.

조타수는 140도 변침 명령을 받은 뒤 타를 돌려 선수 방향을 140도로 맞췄다. 이후 키를 잡고 있는데도 선수는 오른쪽으로 돌았다. 그래서 왼쪽으로 3도까지 돌렸지만 배는 멈추지 않고 143도까지 돌았고, 왼쪽으로 2도를 더 돌려 좌현 5도에 맞췄는데도 배는 145도까지 돌았다. 이때 3등 항해사는 "반대로요"라고 말했고 조타수는 이 말에 따라 좌현으로 10도를 더 돌려 좌현 15도에 맞췄다.

검사 : 3등 항해사가 얘기한 "반대로"라는 것은 좌현과 우현 중 어디를 말하는 것 인가요?
조타수 : 좌현 쪽입니다.
검사 : 그 말을 듣고 어떤 조치를 취했는가요?
조타수 : 좌현 5도로 잡았던 키를 15도까지 돌렸습니다.
(선원 재판 20회 공판. 2014. 10. 1.)


좌현으로 핸들을 돌렸는데 배는 우현으로 돌았으니 방향타가 고장 났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 조타수 “조타기가 말을 듣지 않았다”

3등 항해사의 진술은 조금 다르다. 조타수의 주장과 달리 140도까지 방향을 튼 뒤 145도로 다시 변침을 지시했고, 이 지시대로 방향을 바꾸는 과정에서 사고가 났다고 진술했다.

검사 : 피고인은 140도를 지시한 이후 레이더를 통하여 우현으로 도수가 바뀌는 것을 확인하고 레이더와 조타기 사이로 가서 전방견시를 하면서 선수가 우측으로 도는 것을 보았고 다시 레이더 앞으로 와서 보니까 140도여서 이를 확인하고 조타수에게 "145도요"라고 지시하였지요?
3등 항해사 : 예.
(선원 재판 22회 공판. 2014. 10. 7.)


또 "반대로"가 아닌 "포트"(왼쪽을 의미하는 항해 용어. 오른쪽은 '스타보드'라고 한다)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배가 우현으로 돌기 시작할 때 이 명령을 내렸고, 이상을 느끼자 바로 선장에게 연락하려고 조타실 왼쪽의 선내 전화기로 이동했지만 통화가 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 사이 배는 기울어 쓰러져버리고 만다.

변호인 : 조타수가 "어... 타가~"라는 말을 하였고, 배가 좌현으로 기울기 시작하였지요?
3등 항해사 : 예.
변호인 : 피고인이 지시하고 나서 시간상 얼마나 지나서 조타수가 "어... 타가~"라는 말을 하던가요.
3등 항해사 : 그냥 거의 바로인 것 같습니다.
변호인 : 피고인은 위험을 느끼고 선장을 부르기 위해 엔진텔레그래프에 있는 선내전화로 가면서 ”포트포트”라고 하였지요?
3등 항해사 : 예.
(선원 재판 22회 공판. 2014. 10. 7.)


■ 항해사 “140도 변침 확인 후 지시…사고 원인 몰라”

당시 조타실에 함께 있던 기관장 박 모 씨는 3등 항해사의 조타 지시를 들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그것이 140도인지 145도인지는 불명확하다고 말했다. 3등 항해사는 145도 변침 지시를 했지만 조타수는 듣지 못했을 수도 있다. 3등 항해사가 145도 변침 지시와 거의 동시에 조타수의 당황하는 목소리를 들었다고 진술하는 것에 비춰 사고가 난 시각에 대한 둘의 진술엔 큰 차이가 없다.

기관장은 또 3등 항해사가 "반대로"라고 한 말도 들었다고 진술했다. 따라서 3등 항해사는 다급한 나머지 "반대로"라고 말했고 이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3등 항해사는 평소에도 자신은 '포트'나 '스타보드'같은 항해 용어는 잘 쓰지 않는다고 했다. '반대로'라는 지시엔 어떤 문제가 있는 걸까?

재판부는 조타수가 우현 15도 이상의 타각을 40초 이상 유지하는 대각도 조타를 했다고 판단했다. 3등 항해사의 145도 변침 지시를 받고 타를 우현으로 돌렸는데 예상보다 배가 빨리 돌았고, 당황한 조타수가 좌현으로 키를 돌리려는 순간 "반대로"라는 말을 듣고 좌현의 반대인 우현으로 돌렸다는 것이다. 모호한 지시는 조타수에게 오해의 소지를 줬다.

3등 항해사는 세월호가 08:48경 전남 진도군 병풍도 북방 1.8 해리 해상에 이르자 침로 약 140도, 엔진 최대 출력을 유지한 채 145도 방향의 우현 변침을 시도하면서 (중략) 조타수가 어느 방향으로 몇 도 타각을 사용하는지, 세월호가 선수 방향대로 진행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전방견시를 하지 않아 이를 곧바로 시정하지 못하고, 조타수는 3등 항해사의 지시에 따라 우현 변침을 시도하던 중 원하는 대로의 변침이 이루어지지 않자 당황하여 임의로 조타기를 우현 측으로 대각도로 돌리는 잘못을 저지르는 바람에 선수가 급속도로 우회두하면서 외방경사의 영향으로 선체가 좌현 측으로 급속히 기울어졌다.
(선원 재판 1심 판결문)



■ 재판부 “조타수 과실로 침몰…항해사 지휘 책임”

재판부는 조타수의 주장대로 세월호의 방향타가 고장 난 것도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사고 당시 동영상엔 방향타는 한가운데, 즉 0도를 가리켰고,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향타가 고장 난 것이 아니라 조타수가 본인의 과실을 숨기려고 탈출 전 0도로 돌려놓았다고 주장했다.

일반적인 선박은 급박한 충돌 위험 등을 피하기 위해 타각을 최대 35도까지 사용할 수 있다. 세월호가 사고 당시 시도했던 변침은 배가 기울 정도의 급격한 변침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세월호는 증축과 과적으로 복원성이 떨어진 상태였다. 세월호의 또 다른 선장 신모 씨는 평소 선원들에게 '배의 복원성이 약하니 변침을 할 때는 5도씩 끊어서 하라'고 말했다. 그는 세월호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다.

변호인 : 물류팀 직원들에게 화물량에 관하여 문제제기를 한 적이 있지요?
신모 씨 : 예.
변호인 : 문제제기를 한 어떤 계기가 있을 것 같은데, 어떤 사고가 있었나요? 아니면 항해해 보니까
화물 때문에 복원성이 안 좋다는 등의 이유가 있었나요?
신모 씨 : 후자입니다. 항해해 보니까 복원성이 안 좋다는 느낌이 들어서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변호인 : 2013년 가을경 물류팀에게 "선박의 복원력이 좋지 않은 느낌이 드니까 화물 적재시 신경을 많이 써 달라"는 취지로 말을 한 사실이 있지요?
신모 씨 : 예.
(선원 재판 11회 공판. 2014. 8. 26.)


세월호의 화물 최대 적재량은 1,077톤이다. 사고 당시엔 이보다 2배 많은 2,142톤이 실렸던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평형수는 761.2톤으로 복원성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1,694.8톤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세월호가 20도 정도 기울었을 때 고박 상태가 약했던 화물들이 미끄러졌다.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배가 기운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침몰한 세월호에서 구조작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이유는 뭘까?

■ 또 다른 선장 “세월호는 복원성 약해”

사고 현장에 헬기 B-511호기가 도착한 시각은 9시 27분이다. 비슷한 시각 100톤 급 소형 경비정 123정도 도착한다. 그런데 해경 등 구조대의 눈에 사고 현장은 당혹스러울 정도로 고요했다. 헬기 기장과 해경 대원의 진술이다.

B-511호기 기장 : 저는 벌써 인원들이 나와서 갑판에 대기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런데 한 바퀴 선회할 때까지 인원들이 안 나와서 '어... 이상하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검사 : 증인은 당연히 현장에 도착하면 승객들이 갑판에 나와서 대기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는 말인가요?
B-511호기 기장 : 예.
(선원 재판 9회 공판. 2014. 8. 19.)

검사 : 사고 현장에 도착해 무었을 했나요?
123정 정장 : 저희들은 사고 현장에 도착하기 전에 세월호 승객들이 모두 구명조끼를 입고 퇴선 위치에 집결해있거나, 구명벌을 투하해서 해상에 다 내려와 있을 것이라고 가상하고 갔었는데, 현장에 도착하고 나서 너무 당황했습니다.
(선원 재판 8회 공판. 2014. 8. 13.)


여객선은 침몰해 가는데 승객들은 갑판에도 없고 바다 위에 떠있지도 않았다. 늘 바다에서 일했던 해경 대원들에겐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광경이었다. 그런데, 여객선 안에 400명이 넘는 승객이 구명조끼를 입고 대기하고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상황실은 이들에게 전달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 같이 '당황했다'.

상황실과 현장, 헬기와 항공구조사, 123정과 헬기 사이 의사소통과 협력은 찾아볼 수 없었다. 헬기에서 세월호 선체로 내려갔던 항공 구조사가 헬기와 교신할 무전기조차 갖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도 재판 과정에서 드러났다.

검사 : 세월호에 내려갔을 때 헬기와의 교신은 어떤 식으로 하는가요?
항공 구조사 : 저희가 선체로 내려가면 헬기와 할 수 있는 것은 수신호 밖에 없습니다.
검사 : 따로 무전기를 들고 내려가지 않나요?
항공 구조사 : 다른 통신을 갖추고 있는 것은 없습니다.
(선원 재판 8회 공판. 2014. 8. 13.)


교신기록을 보면 123정은 9시 46분에야 승객들이 안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파악한다. 2분 뒤인 9시 48분쯤 123정은 상황실로부터 선체 진입 명령을 받는다. 하지만 정장은 '당황해서' 대원들에게 지시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검사 : 진입 명령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진입 명령을 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요?
123정 정장 : 그때 조타실의 인명을 구조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쪽에 직원이 두 명 있었는데 미끄러져서 못 올라갔습니다. 제가 올라가라고 지시하지는 않았습니다.
검사 : 지시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요?
123정 정장 : 그때 당황해서 깜빡 잊었습니다.
(선원 재판 8회 공판. 2014. 8. 13.)


■ 소통, 협력없는 구조…“당황해서”

가상 탈출 시뮬레이션 결과 선원들이 탈출했던 9시 45분쯤, 59도로 기울어진 배에서 탈출이 시작됐다면 6분 25초 만에 승객 전원이 탈출할 수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조류도 약했고 수온은 12.6도로 보호장비 없이도 6시간을 견딜 수 있었다. 주변에 있던 2천7백 톤급 유조선 둘라에이스호엔 세월호 승객 전원을 태울 공간이 있었다.

검사 : 만약 구조한 사람이 있었다면 유조선에는 몇 명까지나 수용할 수 있었는가요?
둘라에이스호 선장 : 구명뗏목으로 탈출한다면 몇 명이 아니라 세월호 선박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구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검사 : 세월호에 승선하였던 모든 사람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의 면적이 충분히 있다는 것인가요?
둘라에이스호 선장 : 예,그렇습니다.
(선원 재판 10회 공판. 2014. 8. 20.)


해경 대원들은 선체에 올라타 창문을 부순 뒤 승객들을 구조했다. 물에 빠진 승객을 건져내 심폐소생술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끝내 퇴선 방송은 세월호에서도, 해경에서도 이뤄지지 않았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만이 선내를 유령처럼 떠돌았다. 주변을 맴돌던 유조선과 어선 10여 척 역시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10시 18분. 세월호는 108도로 완전히 기울었다. 배의 모든 입구는 물에 잠겼다. 10시 21분. 상황실은 123정에 "승객들 해상탈출 적극 유도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한 시간 전에 보냈어야 할 메시지다. 잠수가 가능한 해경 특공대가 도착한 시각은 11시 28분이었다. 이미 세월호는 앞부분 일부만 남기고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

재판부는 9시 26분을 선원들이 승객들을 위험에 처하도록 버려뒀다는 유기죄, 즉 범죄가 성립된 시점으로 봤다. 그 시각, 해경이 10분 뒤에 도착한다는 사실이 선내 방송을 통해 학생들에게도 전해졌다. 학생들은 구명조끼를 입고 차분하게 기다렸다. 이 때 탈출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면 희생은 크게 줄었을 것이다. 선장은 '가만히 있다'가 선원들과 함께 해경 경비정에 올랐다.

검사 : 선장인 피고인은 당시 조타실에서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가요?
세월호 선장 : 거의 실신상태에 있었습니다. 교신내용을 듣지 못하고 사람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가... 사실 제가 기억은 못하지만 그 상태가 아니었는가 생각됩니다.
검사 : 승객들을 구조해야겠다, 승객들을 챙겨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는 것인가요?
세월호 선장 : 그것보다도 사고가 나고 퇴선할 때까지 무엇을 한지도 모르고,저는 그 자리에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고 합니다.
(선원 재판 22회 공판. 2014. 10. 7.)


■ 운명 가른 9시 26분…퇴선방송 끝내 없었다

세월호는 도입부터 개조, 검사, 승인, 관리와 선적, 출항, 운항까지 모든 부분에서 문제를 갖고 있었다. 선원 재판을 통해 이 가운데 일부의 잘못이 드러났다.

우리가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던 질문은 세 가지다. 세월호는 왜 침몰했는가? 승객들은 왜 구조되지 못했는가? 누가 얼마나 어떤 책임을 져야하는가?

사고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진실은 세월호와 함께 바닷속에 잠들어있다. 그러나 법정에 선 선원들과 해경, 생존자들, 그리고 전문가들의 진술이 담긴 재판 기록은 어둠에 잠긴 진실을 드러내는 조명과 같다. 비록 희미해보일지라도 진실을 찾는 탐험의 준비물로서는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중요한 건, 이제 시작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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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파일 K] 기억을 건지다…6개월의 재판기록

※ 이 기사는 4월 12일 밤 11시 20분 KBS 1TV <취재파일K> 에서 방송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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