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물 분쇄기’ 판매업체 말만 믿고 설치 했다간 낭패

입력 2015.05.20 (14:00) 수정 2015.05.20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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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 인증까지 받았으니 이제는 불법이라는 말에 주저하지 말고 선택해 주세요.”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가정용 음식물 분쇄기 홍보 문구다. 이 업체는 “음식물 쓰레기를 미세하게 분쇄해 하수구로 직접 배출 한다”며 “설거지 후 음식물 찌꺼기 처리까지 한 방에 해결하라”며 판매를 독려한다.

더 이상 음식물 쓰레기 때문에 인상 찌푸리지 않아도 된다니, 이게 웬 희소식일까.



▲ 인터넷에 있는 분쇄기 홍보 문구

◆ “환경부 인증 제품” 가정집 상대로 불법 영업

주부 박혜림 씨는 최근 방문 판매원의 권유로 음식물 분쇄기를 설치했다. 구매 여부는 체험 기간 후에 결정하는 조건이다. 몇 달 전만 해도 109만 원이라던 제품은 파격 할인이라며 29만 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박 씨는 설거지 후 개수대에서 음식물 찌꺼기를 비워내지 않는 편리함은 좋았지만, 분쇄물을 하수구로 직접 배출해도 되는지 궁금했다. 음식물 분쇄기가 고스란히 하천으로 유입될 경우 환경오염이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에서다.

“환경이 오염될 것 같은데 불법 아니냐”는 박 씨의 질문에 판매원은 “환경부 인증을 받은 제품이고, 환경부에서도 2016년부터 가정용 음식물 분쇄기 사용을 허용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인터넷에서 관련 기사를 검색해보니, ‘음식물 분리수거 불편, 2016년 사라질 듯’, ‘음식물분쇄기 20년 만에 허용’ 등의 기사도 있지만, 일부 지자체에서는 여전히 사용을 금지한다는 내용도 눈에 띈다.

박 씨는 “대체 가정용 음식물 분쇄기를 써도 된다는 건지 아니라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 2016년부터 사용 가능? 환경부 “진행 불투명”

박 씨는 해당 제품을 계속 사용해도 되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용할 수 없다.

환경부는 지난해 4월 2016년부터 지역에 따라 제한적으로 ‘가정용 음식물 분쇄기’를 허용하는 하수도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2012년부터 분쇄물의 20%만 배출되는 ‘음식물 쓰레기 감량기(감량 분쇄기)’ 사용을 허용하고 있었지만, 전량 배수하는 제품 허용 요구가 꾸준히 제기되자 검토에 나선 것이다.

당시 환경부는 경기도 일부 지역에서 시범사업을 통해 분류식 하수관로 지역에서는 분쇄기를 사용해도 하수관로와 맨홀에서 악취나 퇴적이 발생하지 않았고 하수처리장 운영에도 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환경단체들은 음식물 쓰레기를 분쇄해 하수구로 버린다면 그동안 환경부에서 추진해온 음식물 쓰레기 자원화 사업과 상반된다며 크게 반발했고, 환경오염에 대한 우려도 잇따랐다.

환경부 생활하수과 임갑선 사무관은 “관련 단체뿐 아니라 환경부 내부에서도 반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며 “더 이상 진행된 것이 없는 만큼 2016년부터 음식물 분쇄기 사용이 허가될 것을 기대하기란 힘들다”고 했다.

◆ 마치 ‘100% 배출 분쇄기’ 환경부 인증받은 것처럼 홍보

취재진 역시 인터넷에서 손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음식물 분쇄기 업체에 문의해봤다. 전화한 업체 3곳 모두 100% 하수구로 배출하는 분쇄기 제품이‘환경부 인증’을 받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전량 배출에 대해서는 허가 난 것이 없어 불법 아니냐는 질문에, “환경부 인증을 받았기 때문에 완전한 불법이라고는 할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사실 분쇄물의 20%만 하수구로 배출하는 '음식물 쓰레기 감량기(감량 분쇄기)’만 환경부 인증을 받아놓고, 100% 하수구로 배출하는 제품도 마치 인증받은 것처럼 소비자들을 현혹하는 것이다.

또 다른 업체는 “지금은 아니지만 2016년부터 전량 배출이 허용된다”며 “소비자 대부분이 100% 배출되는 제품으로 설치하고 있다”고 했다. 혹시 나중에라도 문제가 되면 조정할 수 있으니 일단 설치해보라는 권유가 이어졌다.

이에 대해 환경부 관계자는 “환경부에서는 음식물 찌꺼기가 전량 배출되는 분쇄기를 인증한 사례가 없다”며 “이런 제품은 모두 불법”이라고 했다. 이어 “불법개조 제품을 판매하거나 사용하다가 적발되면 판매자와 사용자 모두 처벌받는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불법제품 판매자는 하수도법에 따라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부과할 수 있고, 불법제품 사용자는 1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인증받은 음식물 분쇄기(전량 배출이 아닌 20%만 배출하는 감량기)는 총 36개 업체의 60종이다. 제품 명단은 한국 상하수도협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지난해 전국서 적발 단 3건…관리 단속에 어려움

불법제품의 유통도 문제지만, 인증받은 제품의 불법 개조 설치도 골치다. 가정집에 설치된 불법 제품 확인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환경부는 인증기관 및 지자체와 함께 불법제품 단속을 하고 있지만, 적발 건수는 미미하다. 지난해 전국에서 불법 분쇄기 유통으로 적발된 경우는 총 3건에 불과하다.

서울시 물재생계획과 관계자는 “가정의 경우는 적발이 쉽지 않기 때문에, 기업체 위주로 감시하고 있다”면서도 “불법 업체 명단을 입수하고 방문을 해도 사무실이 없거나, 연락이 닿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환경부는 지난해부터 유통 관리를 위해 음식물 분쇄기를 판매, 설치할 때 인증기관인 한국 상하수도협회에 신고하도록 했다. 하지만 기업에 자체적으로 판매 신고를 맡긴 만큼, 신고 현황은 미진하다.

한국 상하수도협회 성과평가팀 담당자는 “기업이 주면 받고, 제출하지 않으면 요청해서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며 “제출하지 않는다고 강제할 수는 없으므로 집계나 관리에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설치실적을 제출하지 않을 경우 인증을 취소할 수 있지만, 현재까지 제품인증을 취소한 경우는 없다.

환경부는 “음식물 분쇄기는 환경부 고시로 관리되는데 허술한 것이 사실”이라며 “관리·단속에 어려움이 있는 만큼 정비가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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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식물 분쇄기’ 판매업체 말만 믿고 설치 했다간 낭패
    • 입력 2015-05-20 14:00:00
    • 수정2015-05-20 15:3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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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 인증까지 받았으니 이제는 불법이라는 말에 주저하지 말고 선택해 주세요.”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가정용 음식물 분쇄기 홍보 문구다. 이 업체는 “음식물 쓰레기를 미세하게 분쇄해 하수구로 직접 배출 한다”며 “설거지 후 음식물 찌꺼기 처리까지 한 방에 해결하라”며 판매를 독려한다.

더 이상 음식물 쓰레기 때문에 인상 찌푸리지 않아도 된다니, 이게 웬 희소식일까.



▲ 인터넷에 있는 분쇄기 홍보 문구

◆ “환경부 인증 제품” 가정집 상대로 불법 영업

주부 박혜림 씨는 최근 방문 판매원의 권유로 음식물 분쇄기를 설치했다. 구매 여부는 체험 기간 후에 결정하는 조건이다. 몇 달 전만 해도 109만 원이라던 제품은 파격 할인이라며 29만 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박 씨는 설거지 후 개수대에서 음식물 찌꺼기를 비워내지 않는 편리함은 좋았지만, 분쇄물을 하수구로 직접 배출해도 되는지 궁금했다. 음식물 분쇄기가 고스란히 하천으로 유입될 경우 환경오염이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에서다.

“환경이 오염될 것 같은데 불법 아니냐”는 박 씨의 질문에 판매원은 “환경부 인증을 받은 제품이고, 환경부에서도 2016년부터 가정용 음식물 분쇄기 사용을 허용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인터넷에서 관련 기사를 검색해보니, ‘음식물 분리수거 불편, 2016년 사라질 듯’, ‘음식물분쇄기 20년 만에 허용’ 등의 기사도 있지만, 일부 지자체에서는 여전히 사용을 금지한다는 내용도 눈에 띈다.

박 씨는 “대체 가정용 음식물 분쇄기를 써도 된다는 건지 아니라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 2016년부터 사용 가능? 환경부 “진행 불투명”

박 씨는 해당 제품을 계속 사용해도 되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용할 수 없다.

환경부는 지난해 4월 2016년부터 지역에 따라 제한적으로 ‘가정용 음식물 분쇄기’를 허용하는 하수도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2012년부터 분쇄물의 20%만 배출되는 ‘음식물 쓰레기 감량기(감량 분쇄기)’ 사용을 허용하고 있었지만, 전량 배수하는 제품 허용 요구가 꾸준히 제기되자 검토에 나선 것이다.

당시 환경부는 경기도 일부 지역에서 시범사업을 통해 분류식 하수관로 지역에서는 분쇄기를 사용해도 하수관로와 맨홀에서 악취나 퇴적이 발생하지 않았고 하수처리장 운영에도 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환경단체들은 음식물 쓰레기를 분쇄해 하수구로 버린다면 그동안 환경부에서 추진해온 음식물 쓰레기 자원화 사업과 상반된다며 크게 반발했고, 환경오염에 대한 우려도 잇따랐다.

환경부 생활하수과 임갑선 사무관은 “관련 단체뿐 아니라 환경부 내부에서도 반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며 “더 이상 진행된 것이 없는 만큼 2016년부터 음식물 분쇄기 사용이 허가될 것을 기대하기란 힘들다”고 했다.

◆ 마치 ‘100% 배출 분쇄기’ 환경부 인증받은 것처럼 홍보

취재진 역시 인터넷에서 손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음식물 분쇄기 업체에 문의해봤다. 전화한 업체 3곳 모두 100% 하수구로 배출하는 분쇄기 제품이‘환경부 인증’을 받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전량 배출에 대해서는 허가 난 것이 없어 불법 아니냐는 질문에, “환경부 인증을 받았기 때문에 완전한 불법이라고는 할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사실 분쇄물의 20%만 하수구로 배출하는 '음식물 쓰레기 감량기(감량 분쇄기)’만 환경부 인증을 받아놓고, 100% 하수구로 배출하는 제품도 마치 인증받은 것처럼 소비자들을 현혹하는 것이다.

또 다른 업체는 “지금은 아니지만 2016년부터 전량 배출이 허용된다”며 “소비자 대부분이 100% 배출되는 제품으로 설치하고 있다”고 했다. 혹시 나중에라도 문제가 되면 조정할 수 있으니 일단 설치해보라는 권유가 이어졌다.

이에 대해 환경부 관계자는 “환경부에서는 음식물 찌꺼기가 전량 배출되는 분쇄기를 인증한 사례가 없다”며 “이런 제품은 모두 불법”이라고 했다. 이어 “불법개조 제품을 판매하거나 사용하다가 적발되면 판매자와 사용자 모두 처벌받는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불법제품 판매자는 하수도법에 따라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부과할 수 있고, 불법제품 사용자는 1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인증받은 음식물 분쇄기(전량 배출이 아닌 20%만 배출하는 감량기)는 총 36개 업체의 60종이다. 제품 명단은 한국 상하수도협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지난해 전국서 적발 단 3건…관리 단속에 어려움

불법제품의 유통도 문제지만, 인증받은 제품의 불법 개조 설치도 골치다. 가정집에 설치된 불법 제품 확인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환경부는 인증기관 및 지자체와 함께 불법제품 단속을 하고 있지만, 적발 건수는 미미하다. 지난해 전국에서 불법 분쇄기 유통으로 적발된 경우는 총 3건에 불과하다.

서울시 물재생계획과 관계자는 “가정의 경우는 적발이 쉽지 않기 때문에, 기업체 위주로 감시하고 있다”면서도 “불법 업체 명단을 입수하고 방문을 해도 사무실이 없거나, 연락이 닿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환경부는 지난해부터 유통 관리를 위해 음식물 분쇄기를 판매, 설치할 때 인증기관인 한국 상하수도협회에 신고하도록 했다. 하지만 기업에 자체적으로 판매 신고를 맡긴 만큼, 신고 현황은 미진하다.

한국 상하수도협회 성과평가팀 담당자는 “기업이 주면 받고, 제출하지 않으면 요청해서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며 “제출하지 않는다고 강제할 수는 없으므로 집계나 관리에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설치실적을 제출하지 않을 경우 인증을 취소할 수 있지만, 현재까지 제품인증을 취소한 경우는 없다.

환경부는 “음식물 분쇄기는 환경부 고시로 관리되는데 허술한 것이 사실”이라며 “관리·단속에 어려움이 있는 만큼 정비가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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