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묻지도 말고 알려고도 하지 마라”…국회 대책비

입력 2015.05.21 (06:00) 수정 2015.05.21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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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 1

-KBS 황현택 기자입니다. 국회 대책비 관련해서 여쭤보려고 하는데요?
=(국회 사무처 관계자) 답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궁금하시면 정보공개 청구를 하시든가요.
-정보공개 청구하면 답은 주십니까?
=(국회 사무처 관계자) 아마 비공개 결정을 할 겁니다.

# 장면 2

-의원님, 국회 대책비라는게 뭡니까?
=(전 원내대표) '국회 대책비'라는 아이템이 없어. 국회가 무슨 대책이 필요해? 원내대표한테는 예산이 좀 나오는데 어떻게 나오는지 몰라. 기준도 모르고. 시기마다 다른 것 같기도 하고.
- 홍 지사님은 월 4~5천만 원을 언급하셨는데요?
= (전 원내대표) 그럼 떼부자되게? 돈 나오면 상임위에도 가야 되고, 당에도 가야 되고, 또 뭐 이렇게 탁탁 분배가 되게 되어 있어. 그래서 자기가 쓸 수 있는 돈은 몇 푼 되지도 않아.


준 사람도, 받은 사람도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돈, 한창 논란인 '국회 대책비'입니다. 다만, 돈의 실체를 인정하는 사람이 두 명 있었죠. 공교롭게도 각각 수사와 재판을 받고 있는 홍준표 경남지사와 신계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입니다. 일각에서는 모호한 뭉칫돈의 출처를 소명하기 위한 알리바이로 '국회 대책비'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말도 돕니다. 판도라 상자가 한번 열렸으니 또 다른 피의자나 피고인들도 같은 방법을 쓸 거란 말도 나옵니다. 어쨌든 두 사람 주장의 진실성 여부는 수사와 재판을 통해 가려져야 할 일입니다.

'국회 대책비', 참 미스터리합니다. 일단 '국회 대책비'라는 항목 자체가 없습니다. 취재 내용을 종합해 보면 각 예산 항목 내에서 '특수활동비'라는 세목으로 편성된 것들을 통칭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시 말해 국회 주요 직책의 판공비 성격의 돈인 거죠.

다만, 국회 회계결산 보고서를 보면 총액은 나옵니다. 1년에 80~90억 원 정도 됩니다. 국회의장과 부의장, 여야 원내대표, 18개 상임위원회, 각종 특별위원회 등에 지급됩니다. 국회 운영위원장을 겸하고 있는 여당 원내대표에게는 월 5천만 원(연간 6억 원) 정도 지급되는 걸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정확히 모릅니다(또는 모른다고 합니다).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는 "나는 마누라한테 갖다준 적(이) 없다"고 웃어넘겼습니다. 이를 담당하는 국회 사무처 운영지원과도 입을 꾹 닫고 있습니다.

그런데 흔적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습니다. 국회 사무처는 국회 대책비, 즉 특수활동비 내역을 일부 공개한 적이 있었습니다. 시민단체인 '바른사회시민회의'가 지난 2012년, 국회 (비상설)특별위원회 예산에 대해 정보공개를 청구한 내용입니다. 자료를 보면 당시 8개 특위에 2억 원의 특수활동비를 지원했다고 돼 있습니다. 문제는 8개 특위의 평균 회의 횟수가 3회, 회의 시간은 99분에 불과했습니다. 특히 당시 남북관계특위나 민간인불법사찰조사특위의 경우 단 차례도 회의를 하지 않았는데 각각 2천 6백만 원과, 3천여 만원의 특수활동비를 받았습니다. 당시 심재철 의원이 "하는 일 없이 활동비만 챙겼다"면서 9천만 원을 반납했던 게 바로 '민간인불법사찰조사특위'였습니다. 여러 특위들, 물론 이 돈을 어디에 썼는지는 증빙하지 않았습니다. 의무 사항이 아니기 때문이죠. 국회 사무처는 "특별위원회 운영비 활용은 위원장의 권한이다"라고 밝혔다는군요. '바른사회시민회의'는 추가 정보공개 청구를 했습니다. 이후 모두 비공개 결정이 났습니다. 당시 공개 내역은 아래와 같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또 다른 흥미로운 사실도 확인됐습니다. 국회는 정부 예산과 기금 운용 계획을 결산 심사하는 기능을 갖습니다. 당시 자료를 살펴보니 지난 2012년부터 해마다 빠뜨리지 않고 정부 부처의 특수활동비에 제동을 걸어 왔습니다. 내용을 일부 정리해 봤습니다.

■ 2012년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 집행 지침

○ 특수활동비에 대한 집행 관리 강화
- 업무추진비, 특정 업무경비 등 다른 비목으로 집행 가능한 경비는 특수활동비 사용을 지양
- 현금 사용을 자제하고, 집행 내역 확인서 생략 최소화

■ 2013년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 집행 지침

○ 특수활동비. 업무추진비, 특정업무경비 집행 요건 엄격화
- (특정업무경비) 정부 구매카드 사용이 원칙, 불가피할 경우 외에는 현금 지급 금지
지급일자, 지급금액, 지급 사유 등 지출 내역을 구체적으로 기록.관리

■ 2014년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 집행 지침

○ 대통령실, 총리실, 국회 등은 세출예산지침 및 감사원의 계산증명지침에 따라 특수활동비를 집행하여야 한다 (국회 부대 의견)




결국 타인에게 엄격하지만, 스스로에게 관대한 '이중적 태도'를 보인 겁니다. 새누리당 김태호 최고위원은 20일, 공개 회의에서 "(국회가) 국정감사 등에서 다른 기관에 철저하고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국가 예산을 유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백번을 변명해도 용서받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이를 "X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보고 나무라는 격"이라고도 했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는 "국민 보는 눈이 아주 차갑다"고 했습니다. 비난이 들끓자 여야가 뒤늦게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해 보겠다고 합니다.

물론 '국회 대책비' 하나로 국회 전체가 잘못하는 것으로 매도할 일은 아닙니다. 다만, '거리낄 것 없는 돈'이라면 그 취지를 툭 터놓으면 될 일입니다. 의정 활동에 꼭 필요한 경비라면 납세자인 국민들에게 양해를 구하면 될 일입니다.

만약 거리낌 있고, 불요불급하다면 이참에 없애면 될 일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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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묻지도 말고 알려고도 하지 마라”…국회 대책비
    • 입력 2015-05-21 06:00:59
    • 수정2015-05-21 08:03:55
    취재후·사건후
# 장면 1

-KBS 황현택 기자입니다. 국회 대책비 관련해서 여쭤보려고 하는데요?
=(국회 사무처 관계자) 답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궁금하시면 정보공개 청구를 하시든가요.
-정보공개 청구하면 답은 주십니까?
=(국회 사무처 관계자) 아마 비공개 결정을 할 겁니다.

# 장면 2

-의원님, 국회 대책비라는게 뭡니까?
=(전 원내대표) '국회 대책비'라는 아이템이 없어. 국회가 무슨 대책이 필요해? 원내대표한테는 예산이 좀 나오는데 어떻게 나오는지 몰라. 기준도 모르고. 시기마다 다른 것 같기도 하고.
- 홍 지사님은 월 4~5천만 원을 언급하셨는데요?
= (전 원내대표) 그럼 떼부자되게? 돈 나오면 상임위에도 가야 되고, 당에도 가야 되고, 또 뭐 이렇게 탁탁 분배가 되게 되어 있어. 그래서 자기가 쓸 수 있는 돈은 몇 푼 되지도 않아.


준 사람도, 받은 사람도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돈, 한창 논란인 '국회 대책비'입니다. 다만, 돈의 실체를 인정하는 사람이 두 명 있었죠. 공교롭게도 각각 수사와 재판을 받고 있는 홍준표 경남지사와 신계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입니다. 일각에서는 모호한 뭉칫돈의 출처를 소명하기 위한 알리바이로 '국회 대책비'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말도 돕니다. 판도라 상자가 한번 열렸으니 또 다른 피의자나 피고인들도 같은 방법을 쓸 거란 말도 나옵니다. 어쨌든 두 사람 주장의 진실성 여부는 수사와 재판을 통해 가려져야 할 일입니다.

'국회 대책비', 참 미스터리합니다. 일단 '국회 대책비'라는 항목 자체가 없습니다. 취재 내용을 종합해 보면 각 예산 항목 내에서 '특수활동비'라는 세목으로 편성된 것들을 통칭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시 말해 국회 주요 직책의 판공비 성격의 돈인 거죠.

다만, 국회 회계결산 보고서를 보면 총액은 나옵니다. 1년에 80~90억 원 정도 됩니다. 국회의장과 부의장, 여야 원내대표, 18개 상임위원회, 각종 특별위원회 등에 지급됩니다. 국회 운영위원장을 겸하고 있는 여당 원내대표에게는 월 5천만 원(연간 6억 원) 정도 지급되는 걸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정확히 모릅니다(또는 모른다고 합니다).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는 "나는 마누라한테 갖다준 적(이) 없다"고 웃어넘겼습니다. 이를 담당하는 국회 사무처 운영지원과도 입을 꾹 닫고 있습니다.

그런데 흔적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습니다. 국회 사무처는 국회 대책비, 즉 특수활동비 내역을 일부 공개한 적이 있었습니다. 시민단체인 '바른사회시민회의'가 지난 2012년, 국회 (비상설)특별위원회 예산에 대해 정보공개를 청구한 내용입니다. 자료를 보면 당시 8개 특위에 2억 원의 특수활동비를 지원했다고 돼 있습니다. 문제는 8개 특위의 평균 회의 횟수가 3회, 회의 시간은 99분에 불과했습니다. 특히 당시 남북관계특위나 민간인불법사찰조사특위의 경우 단 차례도 회의를 하지 않았는데 각각 2천 6백만 원과, 3천여 만원의 특수활동비를 받았습니다. 당시 심재철 의원이 "하는 일 없이 활동비만 챙겼다"면서 9천만 원을 반납했던 게 바로 '민간인불법사찰조사특위'였습니다. 여러 특위들, 물론 이 돈을 어디에 썼는지는 증빙하지 않았습니다. 의무 사항이 아니기 때문이죠. 국회 사무처는 "특별위원회 운영비 활용은 위원장의 권한이다"라고 밝혔다는군요. '바른사회시민회의'는 추가 정보공개 청구를 했습니다. 이후 모두 비공개 결정이 났습니다. 당시 공개 내역은 아래와 같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또 다른 흥미로운 사실도 확인됐습니다. 국회는 정부 예산과 기금 운용 계획을 결산 심사하는 기능을 갖습니다. 당시 자료를 살펴보니 지난 2012년부터 해마다 빠뜨리지 않고 정부 부처의 특수활동비에 제동을 걸어 왔습니다. 내용을 일부 정리해 봤습니다.

■ 2012년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 집행 지침

○ 특수활동비에 대한 집행 관리 강화
- 업무추진비, 특정 업무경비 등 다른 비목으로 집행 가능한 경비는 특수활동비 사용을 지양
- 현금 사용을 자제하고, 집행 내역 확인서 생략 최소화

■ 2013년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 집행 지침

○ 특수활동비. 업무추진비, 특정업무경비 집행 요건 엄격화
- (특정업무경비) 정부 구매카드 사용이 원칙, 불가피할 경우 외에는 현금 지급 금지
지급일자, 지급금액, 지급 사유 등 지출 내역을 구체적으로 기록.관리

■ 2014년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 집행 지침

○ 대통령실, 총리실, 국회 등은 세출예산지침 및 감사원의 계산증명지침에 따라 특수활동비를 집행하여야 한다 (국회 부대 의견)




결국 타인에게 엄격하지만, 스스로에게 관대한 '이중적 태도'를 보인 겁니다. 새누리당 김태호 최고위원은 20일, 공개 회의에서 "(국회가) 국정감사 등에서 다른 기관에 철저하고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국가 예산을 유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백번을 변명해도 용서받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이를 "X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보고 나무라는 격"이라고도 했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는 "국민 보는 눈이 아주 차갑다"고 했습니다. 비난이 들끓자 여야가 뒤늦게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해 보겠다고 합니다.

물론 '국회 대책비' 하나로 국회 전체가 잘못하는 것으로 매도할 일은 아닙니다. 다만, '거리낄 것 없는 돈'이라면 그 취지를 툭 터놓으면 될 일입니다. 의정 활동에 꼭 필요한 경비라면 납세자인 국민들에게 양해를 구하면 될 일입니다.

만약 거리낌 있고, 불요불급하다면 이참에 없애면 될 일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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