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간 닫혔던 의대 신설 ‘빗장문’ 열리나?

입력 2015.05.08 (12:01) 수정 2015.05.08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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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030년까지 의사 숫자가 최고 1만명 부족할 것이라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의 연구 결과에 대해 의료계와 교육계가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다른 연구에 비해 큰 폭의 의사수 부족을 예상한 데다, 무엇보다 이번 연구가 국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는 정부 연구기관에 의해 이뤄졌다는 점에서 의료계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최근 5~6개 지역을 중심으로 의대 신설 요구가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부가 18년간 중단됐던 의대 신설을 재개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8일 의료계에 따르면 보사연은 ‘2013년 보건의료인력 수급 중장기 추계결과’를 최근 발표했다. '보건의료인력 수급 중장기 추계’는 보건의료인력 수급 정책 추진을 위한 통계 자료 확보를 목적으로 5년 주기로 실시된다.

이번 연구에서는 의료 직군별로 수급 전망이 엇갈렸다.

우선 한의사와 치과의사는 공급 과잉이 예측됐다. 한의사 인력은 2030년 696명~1776명의 공급 과잉 현상이 예상됐다. 한의원들은 중국산 한약제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신 등이 커지면서 경영에 어려움을 겪는 곳이 많다. 치과의사도 2030년에는 1810명~2968명의 공급 과잉 현상이 예상됐다.

간호사의 경우 기준 별로 전망이 달랐다. 2012년 생산성 기준(현재 간호사 1명당 하루에 돌보는 환자수)를 적용하면 공급과잉이 예상됐다. 반면 그보다 엄격한 법적 기준을 적용하면 2030년에는 16만4754~18만3829명의 공급 부족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전망됐다.

반면 의사의 경우 인력난이 점쳐졌다. 즉 의사 인력은 2024년부터 공급 부족 현상이 발생해 2030년에는 4267명~9960명의 의사가 부족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보사연은 2012년 한국의 의사 1인당 환자수는 50.3명으로 우리나라와 유사한 의료체계를 지닌 일본(31명)보다도 높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평균(13.3명)보다는 매우 높은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보사연은 “우리나라의 의사 인력공급을 증가시켜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결론지었다.

◆ 쏟아지고 있는 의대 신설 요구

의료계는 이번 보사연의 발표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이번 연구가 정부산하기관의 연구라는 데 주목하고 있다. 최근 각 지역에서 의대를 신설해야 달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20년 가까이 굳게 닫아놨던 의대 신설이라는 ‘빗장문’을 열기 위한 사전 포석이 아니냐는 시각이다.

익명을 요구한 의사협회 관계자는 “정부 산하기관의 연구 결과가 발표되고, 의대신설 요구 목소리가 커지는 최근 상황이 의대가 무더기 허가되던 90년대 후반과 여러 가지 흡사해 주의깊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이후 지역구 의원과 지방자치단체들을 중심으로 의대를 유치하겠다며 발벗고 나선 경우가 적지 않다.

가장 적극적인 곳은 전라남도다.

지난해 7월 재보궐선거에서 이른바 ‘왕의 남자’로 불리는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이 순천대에 의대를 신설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당선됐다. 새누리당 의원으로는 1988년 이후 광주 전남지역에서 첫 당선이었다. 이정현 의원으로서는 이 공약이 현실화되지 않을 경우 내년 4월 총선 때 상대 후보의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목포에서는 야당 중진인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이 목포대 의대 유치에 앞장서고 있다.

경상북도의 경우 지난 3월 안동대학교에 의과대학 설립을 촉구하는 결의안까지 채택했다. 충청남도, 인천 광역시, 창원시 등 지자체들도 최근 의대 신설을 요구하는 주장을 활발히 하고 있다. 심지어 서울 시의회는 서울시립대에 의대를 신설해달라고 결의문까지 채택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있는 점은 의대 신설에 변수가 될 수 있다. 의대 신설 공약은 지역주민들에게 가장 잘 먹히는 공약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최고 인기 전공인 의과대학이 생기면 대학의 위상부터 확 달라지고, 해당 지역의 평판도 덩달아 올라간다”고 말했다.

◆ 의대 인허가 남발할 경우 부작용 우려

정치권의 의대 신설 요구가 이어지고 있지만 의대 신설이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의대신설은 지난 18년간 이뤄지지 않았다. 지금의 41개 의대체제가 만들어진 것은 김영삼 정부 시절이었다.

1980년대 31개이던 의과대학은 김영삼 대통령 시절 지역균형발전 명목으로 무더기 인가를 받으며 급증했다. 강원의대, 대구가톨릭의대, 건양의대, 관동의대, 서남 의대가 신설됐다. YS 임기 마지막해인 97년 가천의대, 성균관의대, 을지의대, 포천중문의대, 제주의대를 끝으로 의대 신설은 중단됐다.

짧은 기간 동안 무려 10개의 의대가 신설되면서 적지 않은 부작용이 생겼다. 일부 의대는 준비부족에 따른 부실 교육으로 비판을 받았다.

예를 들어 관동의대의 경우 의대 설립 부대기준인 부속병원을 10년간 짓지 못해 정원이 매년 10%씩 감축되는 제재를 받다가 지금은 인천 카톨릭 학원으로 편입되며 정상화 됐다. 전북 남원에 있는 서남의대는 부속병원인 남광병원 부실로 수련병원 자격을 박탈당했고, 의대 폐지를 놓고 서남학원과 교육부간 소송전까지 벌어지고 있다. 지역의 의료 시장 규모를 고려하지 않고 정치적인 이유로 의대와 부속병원을 만들면서 일부 의대에서 문제가 생겼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정부는 최근까지도 의대 신설과 관련해 불가 기류가 강했다. 그러면서도 중장기 인력수급 추계를 통해 현재 의료 인력이 적정한 지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겠다고 밝혀왔다. 그런 상황에서 의사수가 부족할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온 것이다.

하지만 이번 연구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의사수가 적정한지를 놓고 벌어지고 있는 논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서울대 간호학과 김진현 교수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 1000명당 의사수는 1.9명(한의사 포함)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3.1명에 비해 적다. 시민단체들은 의대를 신설해 의사수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의료계는 이를 반박한다.

좁은 국토에 의사수를 대입한 밀도 측면에서 우리나라는 OECD 전체 2위 수준이라는 것. 동일면적내 의사 밀집도가 높아 환자들이 쉽게 의사를 접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달에 140여 곳의 동네 의원이 경영난으로 문을 닫는 현실에서 의사수를 늘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의사 출신인 새누리당 박인숙 의원은"지금 6~7개 지역에서 의대를 만들겠다고 나오는데, 의대 신설은 공장 유치와는 성격이 다르다. 급조해서 의대가 만들어지면 문제가 생긴다”면서 “지역에 의사가 더 필요하다면 전국에 산재해 있는 41개 의대와 12개 한의대를 대상으로 효과적으로 정리하고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의사수 공급에는 반대하지 않겠지만, 의대 신설은 또 다른 문제를 낳을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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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15-05-08 12:05:11
    사회
오는 2030년까지 의사 숫자가 최고 1만명 부족할 것이라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의 연구 결과에 대해 의료계와 교육계가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다른 연구에 비해 큰 폭의 의사수 부족을 예상한 데다, 무엇보다 이번 연구가 국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는 정부 연구기관에 의해 이뤄졌다는 점에서 의료계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최근 5~6개 지역을 중심으로 의대 신설 요구가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부가 18년간 중단됐던 의대 신설을 재개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8일 의료계에 따르면 보사연은 ‘2013년 보건의료인력 수급 중장기 추계결과’를 최근 발표했다. '보건의료인력 수급 중장기 추계’는 보건의료인력 수급 정책 추진을 위한 통계 자료 확보를 목적으로 5년 주기로 실시된다. 이번 연구에서는 의료 직군별로 수급 전망이 엇갈렸다. 우선 한의사와 치과의사는 공급 과잉이 예측됐다. 한의사 인력은 2030년 696명~1776명의 공급 과잉 현상이 예상됐다. 한의원들은 중국산 한약제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신 등이 커지면서 경영에 어려움을 겪는 곳이 많다. 치과의사도 2030년에는 1810명~2968명의 공급 과잉 현상이 예상됐다. 간호사의 경우 기준 별로 전망이 달랐다. 2012년 생산성 기준(현재 간호사 1명당 하루에 돌보는 환자수)를 적용하면 공급과잉이 예상됐다. 반면 그보다 엄격한 법적 기준을 적용하면 2030년에는 16만4754~18만3829명의 공급 부족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전망됐다. 반면 의사의 경우 인력난이 점쳐졌다. 즉 의사 인력은 2024년부터 공급 부족 현상이 발생해 2030년에는 4267명~9960명의 의사가 부족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보사연은 2012년 한국의 의사 1인당 환자수는 50.3명으로 우리나라와 유사한 의료체계를 지닌 일본(31명)보다도 높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평균(13.3명)보다는 매우 높은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보사연은 “우리나라의 의사 인력공급을 증가시켜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결론지었다. ◆ 쏟아지고 있는 의대 신설 요구 의료계는 이번 보사연의 발표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이번 연구가 정부산하기관의 연구라는 데 주목하고 있다. 최근 각 지역에서 의대를 신설해야 달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20년 가까이 굳게 닫아놨던 의대 신설이라는 ‘빗장문’을 열기 위한 사전 포석이 아니냐는 시각이다. 익명을 요구한 의사협회 관계자는 “정부 산하기관의 연구 결과가 발표되고, 의대신설 요구 목소리가 커지는 최근 상황이 의대가 무더기 허가되던 90년대 후반과 여러 가지 흡사해 주의깊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이후 지역구 의원과 지방자치단체들을 중심으로 의대를 유치하겠다며 발벗고 나선 경우가 적지 않다. 가장 적극적인 곳은 전라남도다. 지난해 7월 재보궐선거에서 이른바 ‘왕의 남자’로 불리는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이 순천대에 의대를 신설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당선됐다. 새누리당 의원으로는 1988년 이후 광주 전남지역에서 첫 당선이었다. 이정현 의원으로서는 이 공약이 현실화되지 않을 경우 내년 4월 총선 때 상대 후보의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목포에서는 야당 중진인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이 목포대 의대 유치에 앞장서고 있다. 경상북도의 경우 지난 3월 안동대학교에 의과대학 설립을 촉구하는 결의안까지 채택했다. 충청남도, 인천 광역시, 창원시 등 지자체들도 최근 의대 신설을 요구하는 주장을 활발히 하고 있다. 심지어 서울 시의회는 서울시립대에 의대를 신설해달라고 결의문까지 채택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있는 점은 의대 신설에 변수가 될 수 있다. 의대 신설 공약은 지역주민들에게 가장 잘 먹히는 공약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최고 인기 전공인 의과대학이 생기면 대학의 위상부터 확 달라지고, 해당 지역의 평판도 덩달아 올라간다”고 말했다. ◆ 의대 인허가 남발할 경우 부작용 우려 정치권의 의대 신설 요구가 이어지고 있지만 의대 신설이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의대신설은 지난 18년간 이뤄지지 않았다. 지금의 41개 의대체제가 만들어진 것은 김영삼 정부 시절이었다. 1980년대 31개이던 의과대학은 김영삼 대통령 시절 지역균형발전 명목으로 무더기 인가를 받으며 급증했다. 강원의대, 대구가톨릭의대, 건양의대, 관동의대, 서남 의대가 신설됐다. YS 임기 마지막해인 97년 가천의대, 성균관의대, 을지의대, 포천중문의대, 제주의대를 끝으로 의대 신설은 중단됐다. 짧은 기간 동안 무려 10개의 의대가 신설되면서 적지 않은 부작용이 생겼다. 일부 의대는 준비부족에 따른 부실 교육으로 비판을 받았다. 예를 들어 관동의대의 경우 의대 설립 부대기준인 부속병원을 10년간 짓지 못해 정원이 매년 10%씩 감축되는 제재를 받다가 지금은 인천 카톨릭 학원으로 편입되며 정상화 됐다. 전북 남원에 있는 서남의대는 부속병원인 남광병원 부실로 수련병원 자격을 박탈당했고, 의대 폐지를 놓고 서남학원과 교육부간 소송전까지 벌어지고 있다. 지역의 의료 시장 규모를 고려하지 않고 정치적인 이유로 의대와 부속병원을 만들면서 일부 의대에서 문제가 생겼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정부는 최근까지도 의대 신설과 관련해 불가 기류가 강했다. 그러면서도 중장기 인력수급 추계를 통해 현재 의료 인력이 적정한 지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겠다고 밝혀왔다. 그런 상황에서 의사수가 부족할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온 것이다. 하지만 이번 연구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의사수가 적정한지를 놓고 벌어지고 있는 논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서울대 간호학과 김진현 교수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 1000명당 의사수는 1.9명(한의사 포함)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3.1명에 비해 적다. 시민단체들은 의대를 신설해 의사수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의료계는 이를 반박한다. 좁은 국토에 의사수를 대입한 밀도 측면에서 우리나라는 OECD 전체 2위 수준이라는 것. 동일면적내 의사 밀집도가 높아 환자들이 쉽게 의사를 접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달에 140여 곳의 동네 의원이 경영난으로 문을 닫는 현실에서 의사수를 늘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의사 출신인 새누리당 박인숙 의원은"지금 6~7개 지역에서 의대를 만들겠다고 나오는데, 의대 신설은 공장 유치와는 성격이 다르다. 급조해서 의대가 만들어지면 문제가 생긴다”면서 “지역에 의사가 더 필요하다면 전국에 산재해 있는 41개 의대와 12개 한의대를 대상으로 효과적으로 정리하고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의사수 공급에는 반대하지 않겠지만, 의대 신설은 또 다른 문제를 낳을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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