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고성(古城) 팝니다’…사상 최대 800개 매물

입력 2015.02.16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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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물로 쏟아진 고성(古城)

최근 나온 프랑스의 부동산 시장 지표 중에 눈길을 끄는 항목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16세기나 17세기에 지어진 고성의 주인들이 잇따라 성을 팔려고 내놨다는 겁니다. 프랑스 전역에서 8백여 개 성이 부동산 시장에 매물로 나왔는데, 이렇게 한꺼번에 고성들이 매물이 쏟아진 건 이례적인 일로 사상 최대라고 했습니다. 프랑스에선 아파트나 상가 말고도 고성들도 사고파는 시장이 있더군요.



■ 부의 상징…전시에는 병원, 감옥으로도

옛날 프랑스 왕족이나 귀족들이 성을 지어 대대로 가문의 소유로 내려오는 고성이 있는가 하면, 프랑스 혁명(1789년) 이후 주인이 바뀐 성들도 많습니다. 또 현대에 와선 비싼 값에 거래되며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습니다. 또 고성을 투자의 대상으로 한두 채씩 사모아 여러 채 보유한 부자들도 나왔습니다. 전시에는 군 시설로 쓰이기도 했는데요, 취재진이 찾은 한 고성은 1차대전 때는 군 병원으로, 2차대전 때는 군 감옥으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고성들 가운데 프랑스 중앙과 지방정부에서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인정한 성이 만 천3백여 개에 이릅니다. 한때는 부의 상징이기도 했던, 다양한 내력을 가진 고성들을 왜 팔려고 내놓는 걸까요?

■ 오랜 경제난에 꿈과 현실의 차이는 더 벌어지고…

보통 규모 고성의 경우 가족들이 거주하는 방에만 난방을 최소한으로 한다고 해도 1년에 만 2천 유로, 우리 돈 천5백만 원이 넘게 듭니다. 여기에 각종 관리비를 더한 유지비는 일반 주택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많이 듭니다. 그래도 경기가 좋을 때는 버틸만하던 비용도 경제난이 오래되면서 유지비가 부담으로 다가오면서 성을 팔기로 한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현지에서 만난 한 부동산 중개인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처음에는 성에서 산다는 꿈을 이뤘다고 생각하다가도 엄청난 유지비 때문에 현실의 삶이 꿈과 같지 않은 걸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다시 팔려고 내놓게 됩니다."



성을 물려받게 될 자녀 세대들이 더이상 고성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도 있습니다. 이들 가문이 상속을 포기하고 매각을 결정하면서 최근 들어 대를 이어 내려오던 고성들이 부동산 시장에 잇따라 매물로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에 대가족 문화가 사라지면서 이런 경향들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보통 3대 10명에서 20명 정도가 살기에 적당하게 지어진 고성들이 현대의 3.4인 가족이 살기에는 너무 넓다는 겁니다. 프랑스 지방의 고성을 찾아가 보면 노부부만 성을 지키고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 주인도 맘대로 못해

그래도 성에 사는데 어느 정도 불편은 감수할 수 있다고 마음 먹었다가도 막상 수리할 일이 생기면 또 한 번 좌절하고 만다는데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성의 경우에는 주인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수리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보수공사를 하려면 당국에 4가지 종류의 신청서를 접수해야 하고 허가가 나기까지는 최대 6개월이 걸립니다. 보수공사가 곧 문화재 복원개념이기 때문에 자격증이 있는 전문가가 참여해야 하니까 공사비도 천정부지로 치솟게 됩니다. 개인이 부담하기에 너무 큰 금액이라 공공기관의 지원이나 사기업의 지원이 가능하도록 길을 열어놨지만, 이 경우 고성을 일반에 1년에 한 달 이상 개방해야 합니다. 양도세 같은 각종 세금을 공제받으려면 이 또한 1년에 두 달까지 개방하도록 했습니다. 고성의 개방 정도와 각종 혜택을 연계해 놓은 제도입니다.



■ 제값에 팔릴 수나 있을까?

고성은 규모가 작은 경우 백만 유로 정도에 시장에 나와 있고 중간급 이상은 4백만 유로, 우리 돈 50억 원이 넘습니다. 보다 규모가 큰 화려한 성은 수백억 원을 호가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고성 자체의 가격이 워낙 높다 보니 쉽게 거래가 이뤄지지도 않습니다. 보통 시장에 내놓은 지 2, 3년은 돼야 겨우 팔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취재진이 찾은 고성 호텔(성을 호텔로 개조)의 경우 문을 닫은 지 3년이 넘도록 아직 새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경제위기로 부동산 시장 자체가 얼어붙었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몇몇 고성 전문 부동산회사에서는 가격을 더 내려야 그나마 거래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주장합니다.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각종 낡은 시설들을 고치는 비용까지 감안하면 선뜻 큰돈을 지불할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겠죠. 과거 프랑스의 풍요로움을 상징하던 고성이 이제는 애물단지가 될 처지에 놓이게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도 부동산 회사마다 고성의 가격을 물어보고 방문하고 싶다는 고객들의 문의가 꾸준하다고 합니다. 4, 5백 년 전 고성들이 프랑스인들에게 주는 매력이 예전 같지는 않더라도 그래도 아직까진 '나도 한 번쯤은 살아봤으면'하는 꿈과 같은 존재라는 얘기겠죠.

인터뷰에 응한 한 16세기 고성 주인의 얘기가 많은 여운이 남습니다.
"고성을 유지하는 데는 많은 돈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의 모든 수입을 이곳에 쏟아 부었습니다. 물론 그동안 성을 관리해 온 것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경제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너무 힘이 듭니다……. 저보다 좀 더 여유 있는 사람이 이 성을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바로가기 [특파원 eye] “성(城) 사세요” 매물로 쏟아진 고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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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고성(古城) 팝니다’…사상 최대 800개 매물
    • 입력 2015-02-16 10:03:21
    취재후·사건후
■ 매물로 쏟아진 고성(古城) 최근 나온 프랑스의 부동산 시장 지표 중에 눈길을 끄는 항목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16세기나 17세기에 지어진 고성의 주인들이 잇따라 성을 팔려고 내놨다는 겁니다. 프랑스 전역에서 8백여 개 성이 부동산 시장에 매물로 나왔는데, 이렇게 한꺼번에 고성들이 매물이 쏟아진 건 이례적인 일로 사상 최대라고 했습니다. 프랑스에선 아파트나 상가 말고도 고성들도 사고파는 시장이 있더군요. ■ 부의 상징…전시에는 병원, 감옥으로도 옛날 프랑스 왕족이나 귀족들이 성을 지어 대대로 가문의 소유로 내려오는 고성이 있는가 하면, 프랑스 혁명(1789년) 이후 주인이 바뀐 성들도 많습니다. 또 현대에 와선 비싼 값에 거래되며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습니다. 또 고성을 투자의 대상으로 한두 채씩 사모아 여러 채 보유한 부자들도 나왔습니다. 전시에는 군 시설로 쓰이기도 했는데요, 취재진이 찾은 한 고성은 1차대전 때는 군 병원으로, 2차대전 때는 군 감옥으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고성들 가운데 프랑스 중앙과 지방정부에서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인정한 성이 만 천3백여 개에 이릅니다. 한때는 부의 상징이기도 했던, 다양한 내력을 가진 고성들을 왜 팔려고 내놓는 걸까요? ■ 오랜 경제난에 꿈과 현실의 차이는 더 벌어지고… 보통 규모 고성의 경우 가족들이 거주하는 방에만 난방을 최소한으로 한다고 해도 1년에 만 2천 유로, 우리 돈 천5백만 원이 넘게 듭니다. 여기에 각종 관리비를 더한 유지비는 일반 주택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많이 듭니다. 그래도 경기가 좋을 때는 버틸만하던 비용도 경제난이 오래되면서 유지비가 부담으로 다가오면서 성을 팔기로 한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현지에서 만난 한 부동산 중개인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처음에는 성에서 산다는 꿈을 이뤘다고 생각하다가도 엄청난 유지비 때문에 현실의 삶이 꿈과 같지 않은 걸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다시 팔려고 내놓게 됩니다." 성을 물려받게 될 자녀 세대들이 더이상 고성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도 있습니다. 이들 가문이 상속을 포기하고 매각을 결정하면서 최근 들어 대를 이어 내려오던 고성들이 부동산 시장에 잇따라 매물로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에 대가족 문화가 사라지면서 이런 경향들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보통 3대 10명에서 20명 정도가 살기에 적당하게 지어진 고성들이 현대의 3.4인 가족이 살기에는 너무 넓다는 겁니다. 프랑스 지방의 고성을 찾아가 보면 노부부만 성을 지키고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 주인도 맘대로 못해 그래도 성에 사는데 어느 정도 불편은 감수할 수 있다고 마음 먹었다가도 막상 수리할 일이 생기면 또 한 번 좌절하고 만다는데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성의 경우에는 주인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수리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보수공사를 하려면 당국에 4가지 종류의 신청서를 접수해야 하고 허가가 나기까지는 최대 6개월이 걸립니다. 보수공사가 곧 문화재 복원개념이기 때문에 자격증이 있는 전문가가 참여해야 하니까 공사비도 천정부지로 치솟게 됩니다. 개인이 부담하기에 너무 큰 금액이라 공공기관의 지원이나 사기업의 지원이 가능하도록 길을 열어놨지만, 이 경우 고성을 일반에 1년에 한 달 이상 개방해야 합니다. 양도세 같은 각종 세금을 공제받으려면 이 또한 1년에 두 달까지 개방하도록 했습니다. 고성의 개방 정도와 각종 혜택을 연계해 놓은 제도입니다. ■ 제값에 팔릴 수나 있을까? 고성은 규모가 작은 경우 백만 유로 정도에 시장에 나와 있고 중간급 이상은 4백만 유로, 우리 돈 50억 원이 넘습니다. 보다 규모가 큰 화려한 성은 수백억 원을 호가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고성 자체의 가격이 워낙 높다 보니 쉽게 거래가 이뤄지지도 않습니다. 보통 시장에 내놓은 지 2, 3년은 돼야 겨우 팔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취재진이 찾은 고성 호텔(성을 호텔로 개조)의 경우 문을 닫은 지 3년이 넘도록 아직 새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경제위기로 부동산 시장 자체가 얼어붙었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몇몇 고성 전문 부동산회사에서는 가격을 더 내려야 그나마 거래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주장합니다.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각종 낡은 시설들을 고치는 비용까지 감안하면 선뜻 큰돈을 지불할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겠죠. 과거 프랑스의 풍요로움을 상징하던 고성이 이제는 애물단지가 될 처지에 놓이게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도 부동산 회사마다 고성의 가격을 물어보고 방문하고 싶다는 고객들의 문의가 꾸준하다고 합니다. 4, 5백 년 전 고성들이 프랑스인들에게 주는 매력이 예전 같지는 않더라도 그래도 아직까진 '나도 한 번쯤은 살아봤으면'하는 꿈과 같은 존재라는 얘기겠죠. 인터뷰에 응한 한 16세기 고성 주인의 얘기가 많은 여운이 남습니다. "고성을 유지하는 데는 많은 돈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의 모든 수입을 이곳에 쏟아 부었습니다. 물론 그동안 성을 관리해 온 것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경제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너무 힘이 듭니다……. 저보다 좀 더 여유 있는 사람이 이 성을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바로가기 [특파원 eye] “성(城) 사세요” 매물로 쏟아진 고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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