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유국 한복판에
‘석유 금지’ 도시

세계 7위의 산유 부국 아랍에미리트(UAE)는 석유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석유 금지 도시를 개발 중이다.

아부다비 공항에서 10km 남짓 떨어진 '마스다르'. 이곳이 지난 2008년부터 조성되고 있는 UAE의 '탄소 제로' 도시다.

사막 한가운데 놓인 이 도시엔 작은 자율주행차들이 쉴 새 없이 노선을 따라 곳곳을 누비고 다닌다. 중심부에는 뜨거운 공기를 시원한 바람으로 바꾸는 거대한 윈드타워가 24시간 가동되고 있다. 건물 꼭대기마다 설치된 태양광 패널들이 이 도시 전체 전력의 10%를 충당한다.

마스다르의 목표는 탄소와 쓰레기를 전혀 배출하지 않는 것. 2030년까지 태양광·태양열만으로 92%, 폐기물 발전으로 8%의 에너지를 충당하는 등 석유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100% 신재생 에너지로만 움직이는 도시를 만든다는 게 UAE의 계획이다. 마스다르는 아랍어로 '자원(resource)'이라는 뜻이다.

‘탄소 제로’를 목표로 하는 마스다르에는 윈드타워, 태양광 지붕, 자율주행 전기차 등 신재생 에너지 기술이 집약돼 있다.

UAE는 그동안 '에너지 과소비국'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대규모 냉방 시설과 담수화 플랜트 등으로 UAE의 1인당 전력 소비량은 전체 143개국 중 11위 수준. 미국 다음으로 높다. 산업용 전력 소비가 큰 한국과 비교해도 2계단 차이다. 하지만 전기요금은 1kWh당 15원으로 누진제 1단계에서 93원 정도인 한국과 비교해 1/6 가격에 머물고 있다.

석유 고갈 시대,
발 빠른 산유국

하지만 엄청난 전력 소비량을 충당하고도 남을 만큼 석유가 뿜어져 나오는 나라에 왜 굳이 신재생 에너지 자립 도시가 필요한 걸까?

UAE는 곧 석유가 고갈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지구 전체에서 현재까지 확인된 석유 매장량은 현 수준으로 계속 사용된다는 전제하에 40년 정도밖에 버티지 못한다. 새로운 유전이 발견되더라도 고갈까지 남은 시간이 조금 길어질 뿐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이 국제에너지기구(IEA)의 관측이다.

경제 대부분을 석유에 의존하고 있는 국가들이 특히 다급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UAE는 당장 두바이에 800MW급 태양광 발전 단지를 개발하기로 했다. 이는 2013년 당시 세계 최대였던 아부다비 태양광 발전소의 8배에 달하는 규모다. 현재 세계 최대 태양광 발전소는 인도 타밀나두에 있는 발전소로 총 용량이 648MW다.

UAE가 태양광에 특히 주목한 것은 기후 때문이다. UAE의 여름 최고 기온은 50℃에 육박한다. 봄가을에도 25~35℃의 기온을 유지할 만큼 1년 내내 볕이 뜨겁다. 햇빛이 강한 만큼 냉방 전력 수요도 크다. 그래서 강렬한 태양광을 곧바로 냉방용 전력으로 전환할 수 있는 태양광 발전이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다.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시킨 대표적인 사례다.

UAE는 지난해 태양광 에너지로만 세계 일주를 마친 태양광 비행기 솔라임펄스2를 후원하기도 했다. 기름 값이 물보다 싼 세계 7위의 산유국이 미래 에너지에 대해 그 어느 나라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는 중이다.

UAE 두바이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태양광 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UAE는 태양광 비행기 솔라임펄스2를 후원하기도 했다.

자원 빈국,
절실한 만큼 더 철저하게

발전 연료 대부분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나라들은 상황이 더 다급하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2012년 기준 70%를 넘나드는 독일은 신재생 에너지 전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독일은 석탄을 제외하면 에너지 자원이 거의 없다. 특히 화석 연료 발전으로 돌아가는 제조업 비중이 그 어떤 나라보다도 높은 산업구조를 지니고 있다. 석유 고갈과 그로 인한 연료 값 인상 등에 미리부터 대비해야 국가 산업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절박한 상황이다.

독일은 2022년까지 원자력 발전소를 전면 폐쇄할 방침이며 신재생 에너지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더구나 독일은 2022년까지 원자력 발전소를 전부 없애겠다는 구상도 내놓은 상태다. 원자력 발전은 2014년을 기준으로 독일 전체 발전량의 16.6%를 차지한다. 원전이 폐기되는 만큼 추가적인 발전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하지만 독일의 대처는 발 빠르다. 벌써 20개 지역에서 기존 화석 연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100% 신재생 에너지 공급을 달성한 상황. 일찍부터 신재생 에너지 사업에 투자해온 만큼 탄소 배출량은 1990년 대비 30% 가까이 감소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경제적 효과도 크다. 신재생 에너지 사업으로 창출된 일자리가 37만 개를 넘어선 것이다. 에너지 설비를 설치하고 관리하는 인력이 추가로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신재생 에너지

그렇다면 독일과 사정이 비슷한 우리나라는 어떨까?

우리나라는 97%의 에너지를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한다. 일일 석유 수입량도 5위로, 6위인 독일보다 높다. 하지만 독일의 신재생 에너지 발전 비율은 30%대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반면 우리는 불과 1%대에 그치고 있다. OECD 평균인 23%에도 한참 못 미치는 수치다.

탄소 배출 감축에 대한 요구도 더는 외면할 수 없어 문제다.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세계 7위 수준. 2030년까지 배출전망치 대비 37%를 감축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이에 비해 독일은 2012년 교토의정서상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초과 달성하고도 2050년까지 온실가스를 1990년 대비 최대 95%까지 감축하겠다는 계획을 다시 내놨다.

우리가 신재생 에너지 사업에 더 주저할 수 없는 이유는 또 있다. 에너지 신산업이 가져올 경제적 효과가 크다는 점이다.

신재생 에너지의 효율적인 저장과 분배를 책임지는 마이크로그리드 시스템에는 다양한 기기와 시스템이 동원된다. 전력을 만드는 일뿐만 아니라 통신, 교통, 건설, 자연환경 감지 등 여러 산업 분야와의 연결이 필수다. 이 때문에 신재생 에너지 사업에서 비롯되는 내수와 일자리 창출은 국가 경제를 이끄는 신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지난해 7월 정부는 에너지 신산업에 42조 원을 투자하고 규제를 완화하는 등의 대책을 내놨다. 산업부는 이를 통해 당장 내수 16조 6천억 원, 고용 12만 4천 명 등의 경제 효과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에너지 자립,
기술 수출국으로

신재생 에너지 산업은 그 자체로도 훌륭한 수출품이다.

신재생 에너지는 환경의 변화에 따라 생산량이 유동적이기 때문에, 이를 주전력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매일 초과 생산된 에너지를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어야 한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게 바로 마이크로그리드 시스템이다.

이 때문에 마이크로그리드 시스템은 전력 공급이 불안정한 지역에서 필요성이 더 크다. 한국전력은 2015년 아프리카 모잠비크의 마하냐니라는 마을을 에너지 자립 마을로 만들었다. 덕분에 마하냐니 주민들은 식수를 정수해 마실 수 있게 되는 등 생활이 한결 나아졌다.

지난해 8월 캐나다 페니탱귀신(Penetanguishene)에서도 한전이 설치한 마이크로그리드 시스템(설비용량 7.2MW, 440가구)이 가동을 시작했다. 겨울철 정전이 빈번했던 소도시 페니탱귀신은 에너지 저장 장치가 들어오면서 비로소 비상용 전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정부와 지자체는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와 중남미 등에도 이 마이크로그리드 시스템이 적용된 신재생 에너지 자립 모델을 수출할 예정이다. 수출로 인한 경제적 효과는 무려 25조 원대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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