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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의 이방인

일터의 이방인

당신은 정규직입니까?

매일 출근하는 직장에서도 이방인처럼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평범한 삶’이 꿈인 이들은 일터에서조차 이방인처럼 언제나 떠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고용불안에 4대 보험조차 보장이 되지 않는 비정규직 문제. 해법은 있을까?

당신은 정규직입니까?

매일 출근하는 직장에서도 이방인처럼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평범한 삶’이 꿈인 이들은 일터에서조차
이방인처럼 언제나 떠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고용불안에 4대 보험조차 보장이 되지 않는 비정규직 문제.

해법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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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섭씨
김민섭씨

Chapter 01.‘교수님’에서
‘패스트푸드 알바생’으로

지방대학교 시간강사를 그만둔 김민섭씨

  지방대학교 시간강사를 그만둔 김민섭씨

01. CHAPTER
01

얘들아
나는 교수님이 아니야

추위가 맹위를 떨치던 지난 2월 연세대 원주캠퍼스. 여기저기서 학사모를 쓰고 졸업가운을 입은 대학생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꽃다발을 들고 카메라 앞에서 활짝 웃는 졸업생들을 먼발치에서 씁쓸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한 남자가 있었다. 이 학교에서 시간강사로 일하던 김민섭씨(34)다.

연세대 원주캠퍼스 연세대 원주캠퍼스

김씨는 “처음 가르쳤던 학생이 휴학을 하지 않았다면 오늘 졸업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국문학과 현대소설을 전공해 박사 과정을 수료한 뒤 같은 학교에서 시간강사로 글쓰기를 가르쳤다. 강의를 수강하던 학생들은 김씨를 ‘교수님’이라고 불렀다. 김씨는 그럴 때마다 “얘들아 나는 교수님이 아니야”라고 이야기를 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김씨는 4년간 시간강사로 교양 강의를 했지만, 김씨가 강사료로 손에 쥐는 돈은 한 달 평균 100만 원에도 못 미쳤다.

김씨는 결혼하고도 혼인신고를 하지 못했다. 김씨뿐만 아니라 가정을 꾸린 대학원생 선후배들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서로에 대한 사랑이나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다. 혼인신고를 하는 순간 독립된 건강보험 납부자가 되기 때문이었다. 대학에서 강의하고 연구하는 것으로는 4대 보험 보장이 안 됐다. 특히 건강 보험이 보장되지 않아 여전히 아버지의 피부양자로 남아있었다. 하지만 2014년 8월에 아이가 태어난 후, 김씨는 더 이상 혼인신고를 미룰 수 없었다.

아내와 아이를 산부인과에 두고 터덜터덜 길을 걷던 김씨의 눈에 ‘4대 보험 보장’이라는 문구가 들어왔다. 무턱대고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간 김씨는 맥도널드의 물류 하차 아르바이트생이 됐다. 김씨는 그때부터 이른바 ‘투잡족’이 돼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로 일하며 시간강사를 병행했다.

김씨는 지난해 5월 생계를 위한 대리운전을 시작했고 결국 12월에는 시간강사를 그만뒀다. 김씨는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와 대리 기사 경험을 책으로 펴냈다. 지금은 박사 논문을 써서 학위를 얻는 길을 포기했다. 박사 학위를 받아봤자 교수가 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고 시간강사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는 현실적 판단을 내렸다. 김씨는 현재 대리 기사로 일하면서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비정규직인 시간강사의 제도 문제점을 강연 등으로 알리고 있다.

김씨는 “부끄러운 이야기가 있다”며 입을 뗐다. 김씨가 패스트푸드점으로 출근해 라커룸을 열어보니 선물이 들어있었다. 추석이어서 지급되는 명절 선물이었다. 하지만 대학에서 행정노동이나 강의 노동을 하며 무엇을 받아본 일이 없던 김씨는 점장에게 “저한테 왜 이렇게 잘해줍니까?”라고 물었다. 점장에게 돌아온 답은 간단했다. “저희는 그냥 법을 지키는 거예요.” 점장의 말을 들은 김씨는 “세상의 상식, 당연한 세상의 법이 대학 안으로 못 들어온다는 걸 알았다”며 “대학을 세상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공간이라고 믿었었는데, 오히려 햄버거를 만드는 공간이 지식을 만드는 공간보다 더욱 상식을 지키고 있구나, 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비율

비정규직 비율 2016년 8월 기준 전체 근로자의 32.8%를 차지 - 10명 중 3명은 비정규직
비정규직 비율

10명 중 3명은 비정규직

김민섭씨와 같은 비정규직은 얼마나 될까?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8월 기준 전체 근로자의 32.8%를 차지했다. 비정규직이 본격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부터다. IMF의 고용 유연화 요구를 정부가 받아들이면서 파견법(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등을 제정한 것이 계기였다. 하지만 외환위기가 회복되고 OECD에 가입할 정도로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음에도 IMF 때 증가한 비정규직은 그대로 고착됐다. 불안정한 일자리는 곧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영숙씨
이영숙씨 김진성씨

Chapter 02.‘보호받는 파견직’은
없다

6개월마다 회사명이 바뀌는 이영숙씨
근무 보름만에 실명한 김진성씨

  6개월마다 회사명이 바뀌는 이영숙씨

  근무한지 보름만에 실명한 김진성씨

02. CHAPTER
02

태어날 때 부터 쟤네들은
정규직이었던 것 같고,
나는 원래 파견직을
해야 되는 사람이구나

태어날 때 부터 쟤네들은 정규직이었던 것 같고,
나는 원래 파견직을 해야 되는 사람이구나...

매일 아침, 안산역은 파견 업체 소속 버스들로 북적인다. 번호도 없고 행선지도 적혀있지 않은 버스들이 줄지어있다. 안산의 와동, 시화 등 거점지역을 거쳐 안산역에 한 번 서고 공단으로 직행하는 버스다. 분주히 출근길에 오르는 2만 6천여 명의 파견 노동자들은 버스에 실려 주변 공단의 소규모 공장들에 흩뿌려진다.

이영숙씨
이영숙씨 일터
이영숙씨 일터
이영숙씨 일터
이영숙씨 일터
이영숙씨 일터
이영숙씨 일터

지난 3월 만난 이영숙씨(32·여)는 두 달전 정규직으로 취업했다. 이씨는 “정규직이 되려고 눈높이를 많이 낮췄다”며 “4인 사업장의 소규모 회사라 그나마 정규직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전까지 이씨는 다른 노동자와 함께 안산역에서 파견 버스를 탔다. 이씨는 한 대기업 반도체 하청업체에서 해외 수출만 납품하는 일을 했다. 이씨는 “15일 동안 하루도 안 쉬고 12시간씩 일을 했다”며 “9시 출근에 밤 9시 퇴근이었는데, 11시까지 야근을 안한다고 상사가 화를 내서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일하지만, 그 사이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었다. 정직원과 파견직은 함께 밥을 먹지 않았다. 정직원은 휴식시간에 자신의 의자나 테이블에 앉아 쉬었지만, 파견직은 공장 안에서 박스를 놓고 쉬거나 서있었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김혜진 활동가는 “3일이 되기 전에는 아무도 말을 시키지 않는다”며 “3일을 버틸지 알 수도 없고, 3일이 지나도 제조업의 파견 허용 기간이 6개월이라 금세 사람이 교체된다”고 말했다.

파견업체는
‘꼼수’로 법을 어기며
‘사람 장사’를 했다.

이영숙씨는 “6개월 정도 근무한 회사에서 회사 이름을 바꿨다고 해 근로계약서를 다시 쓴 적이 있다”고 말했다. 같은 회사, 같은 부장님 아래서 같은 일을 했지만 회사이름만 바뀌었다. 이씨가 다녔던 회사 중에는 9개의 파견 업체를 끼고 조업을 하는 곳도 있었다. 회사는 6개월마다 파견업체끼리 사원을 돌려 근무시켰다. 근로자는 자신이 속한 회사가 어디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6개월마다 파견회사를 돌려가며 일을 시키는 이유는 ‘퇴직금’이었다. 근무한 지 1년이 지나면 퇴직금을 지급해야 하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회사 이름을 바꾸며 법망을 빠져나갔다.

일하다가 막 식은땀이
나는 거예요.
자고 일어나니까
눈이 안 보이게 된 거죠.

일하다가 막 식은땀이 나는 거예요.
자고 일어나니까 눈이 안 보이게 된 거죠.

2015년, 김진성씨(가명·29)는 공장에서 야간으로 일을 하면 200만 원을 넘게 벌 수 있다는 친구의 말에 덥석 일을 시작했다. 삼성전자 휴대전화 부품 제조공장에서 일을 시작한 지 보름째, 눈이 불편했던 김씨는 안과를 찾았다. 김씨는 근무한 지 12일째, 감기 기운이 있는 것 처럼 식은땀이 나기 시작하더니 형광등 빛이 퍼져 보였다. 야간에 조퇴를 해 집에서 잠을 청했던 김씨가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뜨니 눈이 보이지 않았다. 병원에서 접수증을 뽑아 한참을 들여다보던 김씨는 옆에 서 있던 안내원에게 숫자를 읽어달라고 부탁했다. 다른 환자의 도움을 받아 들어간 안과 검사실에서 김씨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았다. 김씨의 오른쪽 눈은 대부분 까맣게 보이고, 왼쪽은 주변만 조금 보이는 상태였다. 시력을 거의 잃은 것이다.

김씨는 휴대전화 부품을 만들었다. 기계에 큰 쇳덩이를 넣고 수치를 입력하면 부품의 모양대로 깎여 나왔다. 쇳덩이가 깎이는 동안 옆에서는 계속해서 메탄올이 분사됐다. 보호복이나 안전장갑 없이 목장갑 하나만 낀 채 일한 김씨의 온몸은 늘 메탄올에 젖어 있었다. 세 곳의 공장에서 파견직 근로자로 일하던 7명이 메탄올에 중독돼 시력을 잃었다. 이 중 6명이 김씨와 같은 20대였다.

제조 기계의 정식 매뉴얼에는 ‘에탄올 사용’이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한국 공장은 메탄올을 사용했다. 메탄올이 에탄올보다 3분의 1정도 더 싸다는 이유였다.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이상윤씨는 “메탄올은 100년 전부터 위험하다는 게 잘 알려져 있다. 메탄올을 잘못 쓰면 실명 할 수 있다는 걸 누구나 알 정도로 고전적인 화학물질이다”라고 말했다. 이씨는 “제3세계의 열악하다는 나라에서 조차도 메탄올 중독으로 인한 실명 사례가 보고된 바가 없다”며 한국의 비인권적인 노동 환경을 지적했다.

파견직 자체가 불법은 아니다. 관련법은 정직원의 출산, 질병 등으로 결원이 생겼을 때 최장 6개월까지만 파견 사원을 쓸 수 있다고 규정했다. 최소한의 범위에서만 파견 사원을 사용하라 는 의미에서였다. 하지만 파견직 노동자가 일하는 현장에서, 법은 쉽게 무너졌다. 비정규직을 2년 이상 쓰면 정규직으로 고용하라는 법 때문에 2년짜리 계약직들이 급증한 것처럼, 법의 선의(善意)는 현실에서 순식간에 무력화됐다.

노조 가입으로 해고당한 김선영씨
노조 가입으로 해고당한 김선영씨

Chapter 03.되찾으려는 비정규직
지키려는 정규직

노조 가입으로 해고당한 김선영씨

  노조 가입으로 해고당한 김선영씨

03. CHAPTER
03

대리점 직원들은
차를 못 팔면 해고되고...
실적 압박이 강해
자기 급여로 서비스하며
경쟁을 하게 되는 거죠.

대리점 직원들 같은 경우는 차를 못 팔면 해고되고...
실적 압박이 강해 자기 급여로
고객에게 서비스하며 출혈 경쟁을 하게 되는 거죠.

이른 아침, 김선영씨(55)는 잘 다려진 흰 셔츠와 넥타이를 꺼내 거울 앞에서 단정한 옷차림을 확인했다. 김씨는 거울 앞에서 몇 차례나 넥타이를 고쳐 매고 머리 손질을 한 후에야 집 밖을 나섰다. 15년간 자동차 영업사원으로 근무했던 김씨는 습관처럼 깔끔한 옷차림을 고집했다.

정규직 사원으로 현대 기아차에 채용됐던 김씨 정규직 사원으로 현대 기아차에 채용됐던 김씨

정규직 사원으로 현대 기아차에 채용됐던 김씨는 IMF 이후 큰 변화를 겪었다. 1999년, 회사 구조조정으로 대리점 비정규직 사원으로 전락한 것이다. 같은 회사에서 나오는 차를 같은 값을 받고 파는 일을 해왔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현대차 직영점의 정직원 판매사원과 대리점 판매사원의 처우는 너무도 달랐다. 비정규직 사원은 4대 보험도 가입할 수 없었다. 기본급이 없어 차를 팔지 못하면 월급도 전혀 받지 못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영업사원들은 실적을 올리기 위해 사비로 블랙박스나 선팅 등의 추가 서비스를 ‘울며 겨자 먹기’로 제공했다.

대리점 영업사원들은 근로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2015년에 노조를 설립했다. 하지만 그 대가는 참혹했다. 해고 통보를 받은 것이다. 김씨의 설득으로 노조에 가입한 대리점 영업사원들도 한 순간에 실업자가 됐다. 동료들이 모조리 직장을 잃자 김씨의 부담은 커져만 갔다. 김씨는 “동료들이 저한테 말은 안 했지만 원망 섞인 표정을 느낄 수 있어서 정말 마음이 아팠다”며 씁쓸하게 말했다.

해고 통보 직후, 사번이 살아있을 때까지만 근무하겠다며 사무실 항의하러 간 김씨에게 돌아온 것은 욕설과 폭력뿐이었다. 대리점 관계자는 사무실에 찾아온 김씨의 어깨와 머리를 주먹으로 때리며 그를 밖으로 내쫓았다. 반말과 욕설을 뒤섞으며 김씨에게 “넌 그냥 해고야!”라며 윽박질렀다.

현행법은 해고를 위한 요건을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법률상에는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와 해고를 피하기 위한 노력이 있어야 하며 공정한 해고의 기준을 정해야 한다고 명시돼있다.

하지만 이러한 규정은
사실상 정규직에게만
적용된다.

작은 비닐 텐트 안에는 천막시위를 하는 김씨와 동료 회의실 앞에서 노조 가입 승인을 요구하는 시위 대리점 영업사원들의 노조 가입을 둘러싼 대립

하지만 이러한 규정은
사실상 정규직에게만
적용된다.

작은 비닐 텐트 안에는 천막시위를 하는 김씨와 동료
회의실 앞에서 노조 가입 승인을 요구하는 시위 대리점 영업사원들의 노조 가입을 둘러싼 대립

직장을 잃은 후, 김씨는 작년부터 민주노총 전국금속노조 회의실 앞에서 대리점 영업사원의 금속노조 가입 승인을 요구하는 시위를 시작했다. 지난 3월, 몸을 구겨 넣어야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비닐 텐트 안에는 천막시위를 하는 김씨와 동료들이 있었다. 김씨는 깔고 앉은 종이 박스를 타고 올라오는 바닥의 냉기와, 비닐 벽을 뚫고 들어오는 찬바람을 막기 위해 몸 을 한껏 웅크려 앉았다. 그는 수개월째 노조 가입 승인을 위한 투쟁을 이어 가고 있었다.

대리점 영업사원들의 금속노조 가입을 막은 것은 정규직 영업사원들이었다. 대리점 사원들이 같은 노조원이 되면 회사가 이를 핑계 삼아 직영점을 줄이고, 결국 정규직 직원들의 고용도 불안해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대리점 사원의 노조 가입을 둘러싼 대립은 9개월이 넘도록 지속됐다.

육과 일을 병행하는 스기야마 요리코씨
육과 일을 병행하는 스기야마 요리코씨

Chapter 04.일본의 실험은
성공할까

양육과 일을 병행하는 스기야마 요리코씨

  양육과 일을 병행하는 준사원 스기야마 요리코씨

지난 2008년 일본 도쿄 아키하바라에서는 ‘묻지마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범인은 대기업 하청업체들을 떠돌며 파견 사원으로 일하던 20대 남성이었다. 그는 트럭을 몰고 돌진해 보행자들을 들이받고 차에서 내린 뒤 사람들에게 마구잡이로 흉기를 휘둘렀다. 그는 그렇게 7명의 목숨을 빼앗았다. 범행을 저지르기 전, 그가 인터넷에 수차례 남겼던 글 속에는 파견 사원으로 살아가며 겪어야 하는 불안과 분노가 두드러지게 드러났다.

불안정한 일자리의 급증은 일본에서도 큰 골칫거리였다. ‘아키하바라 묻지마 살인사건’은 일본 사회에 파견근로 등 불안정한 일자리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다. 노동시장의 양극화가 사회문제로 떠오르자 일본 정부가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는 해법을 내놓았다. 고용 형태와 관계없이 비슷한 일을 한다면, 비슷한 수준의 대우를 해줘야 한다는 내용이 정책의 핵심이다.

비정규직이라고 해도
정규직과의 차별이나
해고
에 대한 불안 등으로
고통받지 않는다.

양육과 일을 병행하는 스기야마 요리코씨 양육과 일을 병행하는 스기야마 요리코씨

지난 3월, 일본 시즈오카시에 있는 로킨금고 은행에 방문했다. 은행 창구마다 직원들이 고객 응대에 분주했다. 젊은 직원들 사이에서 머리를 질끈 묶고 일에 열중하는 한 중년 여성이 눈 에 띄었다. 그녀는 찾아오는 고객에게 “안녕하세요, 고객님”이라며 밝은 미소로 반갑게 맞이 했다. 은행 안을 돌아다니며 도움이 필요한 곳이면 순발력 있게 일을 도왔다. 그녀는 아이들을 어느 정도 키운 뒤 은행에서 일자리를 구한 스기야마 요리코씨다. 일본의 로킨금고에서 시간제 근로자로 일을 시작했던 스기야마씨는 얼마 전 준사원이 됐다. 스기야마씨는 “수입적인 부분에서도 그렇고, 일에 대한 목표를 세울 수 있다는 것도 무기고용의 장점이다”라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일본의 로킨금고 은행에서 일하는 직원의 30%는 비정규직이다. 하지만 비정규직이라고 해도 정규직과의 차별이나 해고에 대한 불안 등으로 고통받지 않는다. 3년 동안 비정규직으로 일하면 자동으로 무기계약직인 준사원이 돼 해고 걱정 없이 일할 수 있다. 준사원은 본인이 원한다면 별도의 절차를 거쳐 정규직 사원으로도 채용될 수 있다. 비정규직으로 입사해 정규직의 절반 수준이었던 임금도 고용 형태가 올라갈 때마다 자동으로 인상된다.

비정규직의 고용안정과 임금 인상을 지속해서 제안해왔던 쪽은 다름 아닌 정규직 노동조합이었다. 로킨금고 노조연합회의장 후카미 마사히로씨는 “당시 정규직 노동조합에서는 왜 조합원도 아닌 사람의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하느냐는 의견이 많았다”며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바람직한 동료 관계를 만들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파견업체 정규직이 된 함재홍씨
파견업체 정규직이 된 함재홍씨

Chapter 05.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한 계단씩 올라서다

파견업체 정규직이 된 함재홍씨

  파견업체 정규직이 된 인터넷 설치기사 함재홍씨

05. CHAPTER
05

이제 4대 보험과 같은
안전고리가 있으니까
마음이 편한 거예요.

이제 4대 보험과 같은
안전고리가 있으니까
마음이 편한 거예요.

지난 2월, 한 주택가 골목에 주차한 인터넷 설치기사 함재홍씨(41)는 트렁크에서 양손 가득 짐을 챙겨 나와 고객의 집을 방문했다. 인터넷을 설치하기 위해 난간을 타고 지붕 위에서 선을 연결했다. 별도의 안전장치 없이 능숙하게 전봇대에 올라 전신주에 케이블을 설치하는 모습은 보는 사람의 손에 땀을 쥐게 했다. 함씨는 일을 시작할 때 고소공포증이 있었지만, 이제는 인터넷 설치기사 13년 차 베테랑이다.

별도의 안전장치 없이 능숙하게 전봇대에 올라 전신주에 케이블을 설치하는 모습 별도의 안전장치 없이 능숙하게 전봇대에 올라 전신주에 케이블을 설치하는 모습

과거 함씨는 개인 사업자, 이른바 도급 신분이었다. 기본급 없이 성과급으로만 월급을 받는 구조였다. 성과를 올리기 위해 무리한 작업도 피하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사고를 당했다. 2013년, 함씨가 사고를 당한 날도 평소와 같이 전봇대에 올라가 인터넷 선을 설치했다. 사고는 순식간이었다. 전봇대에 올라가다 떨어진 함씨는 하반신에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응급실에 실려 간 함씨의 발 한쪽은 금이 갔고 한쪽은 인대가 늘어나 코끼리 발처럼 두꺼워졌다.

함씨가 다쳤을 때 회사는 산업재해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함씨가 회사에 전화하면 전화를 피했다. 함씨는 “양발 다 거동이 불가능한 상태였지만, 답답한 마음에 후배 등에 업혀 회사까지 갔었다”며 “산재 처리가 되는 한 달이 10년으로 느껴질 정도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정규직 이라면 이렇게 안 할 텐데’라는 마음에 서러웠다”고 말했다.

하지만 요즘 함씨의 마음은 한결 편해졌다. 노동조합을 만들어 교섭을 벌인 끝에 통신사 본사는 아니지만, 협력업체의 정규직으로나마 한 단계 올라섰기 때문이다. 함씨는 “급여가 어느 정도 보장돼있는 상태에서 일하다 보니 일도 열심히 하게 되고, 마음도 편하다”며 “가장 좋은 점은 4대 보험이라는 안전고리가 있어 다쳐도 보상받을 길이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함씨는 “누가 직장이 어디냐고 물을 때 1초의 망설임 없이 내가 사랑하는 회사의 이름을 말할 수 있는 직장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용안정이 함씨에게 미친 영향은 컸다. 몸이 다칠까 봐 일을 그만두길 바라던 아내의 걱정도 줄었고, 빠른 시간 안에 많은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실적 압박에서도 벗어났다. 함씨는 정규직으로 전환되며 4대 보험을 보장받고, 가족과 함께 따뜻한 저녁밥을 먹을 수 있게 됐다.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지키는 한 계단이 함씨에겐 큰 행복이 됐다.

Outro

우리나라 전체 근로자의 32.8%는 비정규직이다. 전 국민의 3명 중 1명은 비정규직이라는 말이다. 시간강사는 박사학위가 있어도 거리로 내몰렸고, 파견직은 일회용품처럼 손쉽게 쓰다 버려졌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서로 물어뜯고 밥그릇 싸움을 했다. 매일 출근하는 직장에서 이들은 영원한 이방인일 수 밖에 없다.

1997년 외환위기(IMF) 이후 생긴 비정규직은 경제가 회복되고 나서도 여전히 방치되고 있다. 한국비정규직노동센터 이남신 소장은 “이제는 1997년 이후 20여 년 동안 만들어진 잘못된 노동시장 구조를 바꿔야 할 시기가 왔다”고 말했다. 일자리 문제를 타개하기 위한 새로운 대안이 모색되고 본격적으로 실현될 때가 왔다는 것이다.

새 정부의 1호 공약인 '일자리 문제'. 최근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정규직 전환 계획 발표를 시작으로, '노동존중 사회' 실현을 위한 본격적인 움직임에 나섰다. 일자리로 인한 사회 양극화 현상을 해소하기 위한 새 정부의 첫걸음. 소박한 미래를 꿈꾸는 이들에게 한 계단씩 올라설 수 있는 사회적 발판 마련이 이제 시작된 셈이다. 하지만 새 정부가 우선 과제로 내세운 공공부문 비정규직 줄이기는 수십조원에 이르는 재원 조달 계획이 불분명하다. 특히 민간 부문으로의 확대는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비정규직 근로자의 범위나 전환 방식에 대해서도 아직 구체적인 안이 나오지 않았는데도 사용자측에서 벌써부터 난색을 표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일터의 이방인'을 줄이고 '더불어 잘사는 사회'를 만드는 데 성공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아직 많다.

일터의 이방인

  • 기 획
    |민필규, 김대영
  • 취 재
    |최광호, 김민정(인턴),
    김유정(인턴)
  • 취 재
    |최광호, 김민정(인턴), 김유정(인턴)
  • 영 상
    |한윤남
  • P M
    |이재설
  • 촬 영
    |송상엽
  • 디자인
    |권세라
  • 개 발
    |배현선
  • 기   획
    |민필규, 김대영
  • 취   재
    |최광호, 김민정(인턴), 김유정(인턴)
  • 영   상
    |한윤남
  • 개   발
    |배현선
  • P   M
    |이재설
  • 촬   영
    |송상엽
  • 디 자 인
    |권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