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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 방랑객 카렌족

<앵커 멘트>

미얀마 국경과 인접한 태국의 깊은 산중에는 카렌족이라는 소수민족 수만 명이 살고 있는데요, 숲속 생활에 익숙한 이들이 최근 숲 밖으로 쫓겨나고 있어 안타까움을 사고 있습니다.

예, 카렌족이 숲에 살면서 국립공원인 숲을 망가뜨리기 때문에 강제이주시킬 수밖에 없다는 게 태국정부의 입장인데, 문명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카렌족에겐 숲 밖에서의 삶이 고통의 연속입니다.

방콕 한재호 특파원이 카렌족의 현실을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태국과 미얀마 접경 첩첩 산중 골짜기를 따라 이어진 황토길을 3시간 여 달리자 원시 마을 하나가 나타납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 쌓여 온종일 정적이 감도는 소수민족 카렌족의 보금자립니다. 이 곳에 올해 104살의 코-이 할아버지가 살고 있습니다. 할아버지의 고향은 마을에서 사흘을 걸어야 갈 수 있는 깊은 숲 속. 나고 자란 정든 땅을 떠나 막내딸 집으로 거처를 옮긴 사연이 그늘진 얼굴 속에 깊게 뱅어있습니다.

숲속에 불행이 닥친 건 지난해중반. 국립공원 관리원들이 마을에 들어와 집을 불태우고 가축을 잡아갔습니다. 집이 불타면서 양식이며 살림살이가 모두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남은 거라곤 입고 있던 옷 뿐. 할아버지는 헬기에 실려 마을을 떠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인터뷰>코-이(카렌족 최고령자/104살): "내가 헬리콥터에 탔을 땐 집이 불타고 있었고 곧 모든 게 사라졌어요."

숲속에는 불에 탄 집터들이 아직 여기저기 남아 있습니다. 몇 대에 걸쳐 농사를 지으며 소박하게 살아온 삶의 터전이었지만 이젠 돌아갈 수 없는 땅입니다. 숲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어린 아이들과 함께 며칠을 걸어 간신히 숲 밖으로 나왔습니다. 친척집을 전전해야 하는
타향살이, 몸까지 아플 땐 옛 집 생각이 더 간절해진다고 합니다.

<인터뷰>노-에(코이 할아버지 손자): "숲 속은 오염되지 않은 곳이라 병원이나 의사가 없어도 몸이 곧 괜찮아져요."

태국 국립공원측은 카렌족이 미얀마에서 건너와 살며 화전을 일구는 바람에 숲이 망가지고 있다며 강력한 조치가 불가피했다고 설명합니다. 또 카렌 해방군과 연계된 마약상들과 일부 주민들이 마약을 밀거래 한 혐의가 포착돼 이를 차단할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카렌 사람들은 이를 부인합니다. 조상 대대로 숲을 숭배하며,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온 자신들이 생활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 행위라는 겁니다.

<인터뷰>프르(카렌족 청년): “숲 속은 원시생활 그대로예요. 가령 소금 같은 게 필요하면 고추를 갖고 읍내로 나가 바꿔서 들어가곤 했습니다.“

태국 산림법은 국립공원 내 거주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이는 태국 전역에서 태국 정부와
카렌 주민들 간에 갈등을 부르는 불씹니다. 현재 태국/미얀마 접경 숲 속에 살고 있는 카렌족 수 만 명이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이 갈등을 풀기 위해 태국헌법은 산림보호구역을 선포한 80년 대 중반 이전부터 숲에 살아온 사람들의 거주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단속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카렌 주민들은 태국인권위원회와 변호사협회에 거주민을 숲 밖을 내 보낼 당시 법위반 행위가 있었는 지 조사해 달라며 청원을 제출해 놓고 있습니다.

카렌족들이 이곳에 마을을 형성하기 시작한 건 지난 80년 대 중반 이후. 국립공원 내 거주를 불허한 산림법에 따라 숲 밖으로 나온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모여 들었습니다. 개울을 사이에 두고 2개 마을에 천 여명이 살아갑니다. 태국정부가 마련해 준 마을이지만, 땅이 척박하고 돌이 많은 데다 농사 지을 땅도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늘 먹을 게 달리고 일상은 변함이 없습니다.

<인터뷰>라다(카렌족 마을 주민): "여기선 매일 아이들 밥을 지어 먹이고 학교 보내고, 바느질하는 게 일입니다."

카렌족이라고 해서 태국 시민권이 없는 건 아닙니다. 태국정부는 마을 사람 대부분에게 시민권을 주었습니다. 그렇다고 시민권이 생활을 보장해 주지는 않습니다.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도회지로 진출할 수 있는 기반이 약하고 경제력도 없습니다.

<인터뷰>파타마(카렌족 주민): "도회지에 가서 살려 해도 돈이 없고 직장도 잡기 힘드니까 차라리 여기서 사는 게 훨씬 낫습니다."

여자들은 마을의 유일한 부업거리인 카렌족 전통 옷감을 짜서 생활비에 보탭니다. 이렇게라도 해야 자녀들을 굶기지 않고 하루 세끼 밥을 먹이고 초등학교라도 보낼 수 있습니다. 남자들은 대부분 읍내에 나가 날품을 팝니다. 집에서 쓸 물건이나 식량을 사려면 고된 노동일이든, 심부름이든 닥치는대로 해야 합니다.

<인터뷰>몽콘(카렌족 청년): "여기선 모든 게 부족해요. 쌀도 사야 되고 필요한 건 뭐든 지 사와야 됩니다."

이런 처지를 알고 도움의 손길을 보내오는 사람 들은 다름아닌 타지의 카렌족들입니다. 얼마전엔 9백킬로미터 떨어진 치앙마이의 카렌족들이 추수한 벼를 싣고 왔습니다. 트럭 20여 대에 48톤의 볏가마를 싣고 열 일곱 시간을 달려왔습니다. 자신들도 넉넉치 않지만 동병 상련의 마음에서 같은 부족을 돕기로 한 겁니다.

<인터뷰>쎄와(치앙마이 거주 카렌족): "마을 사람들이 두 세 달은 먹을 겁니다. 당분간 먹을 식량이라도 있으면 위안이 되겠죠."

오랜만에 마을에 활기에 넘칩니다. 주민들은 새해 명절을 맞은 듯 전통 의상을 차려 입고 마을 공터에 모여 듭니다. 집집마다 나눠 받은 벼를 오토바이로 실어 나르는 행렬이 한나절 내내 계속됐습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벼를 풀어 디딜방아를 찧는 모습도 보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살던 땅, 숲 속을 떠난 마당이니 허전한 마음들은 가눌 길 없어합니다.

<인터뷰>코-이(카렌족 최고령자): "숲으로 다시 들어가서 살고 싶습니다..이곳 생활에 적응이 안됩니다."

선대가 물려준 전통과 언어, 생활 풍습을 이어가며 순박하게 살아온 카렌족 사람들, 수백년 간 숲 속을 떠돌면서도 고유한 정체성을 간직해온 이들이 이젠 숲이라는 터전을 잃고 고난의 문명 앞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입력시간 2012.02.19 (10:43)   한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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