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당연한 일 했다”…우리 주변 평범한 영웅들

입력 2016.12.27 (08:34) 수정 2016.12.27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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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멘트>

올 한해 정치는 혼란했지만 그래도 희망을 놓지 않았던 건 바로 우리 주변의 이웃들 덕분입니다.

아이가 숨이 넘어가는 긴박한 상황에서 침착한 대처로 아이를 살리고, 길에 쓰러진 생면부지의 사람에겐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걸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건물에 불이 나자 집집마다 초인종을 눌러 이웃들을 대피시킨 뒤 정작 자신을 숨지고만 20대 청년도 있었습니다.

의인으로 또 영웅으로 기억되는 우리 주변의 이웃들은 "당연한 일을 했다”는 담담한 말로 다시 한 번 감동을 줬습니다.

오늘은 올 한 해를 빚낸 평범한 영웅들을 만나봤습니다.

<리포트>

지난 17일 아침, 파출소 앞에서 승용차 한 대가 요란하게 경적을 울렸습니다.

뭔가 일이 생겼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아챈 김기환 경위와 임창수 순경, 이들은 곧바로 달려갔는데요.

<인터뷰> 김기환(대구 달성경찰서 화남파출소/경위) :“유아 시트에서 유아가 입에 약간 침을 흘리면서 눈동자에 힘이 없고 의식이 없는 상태로 있었습니다.”

주부 류성민 씨가 15개월 된 딸아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가던 중 아기가 갑자기 의식을 잃은 겁니다.

<녹취> 류성민(아기 엄마) : “아이가 고열이 나서 병원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냥 팍 몸이 쳐지면서 탁 쓰러지는 거예요. 이렇게 정신을 잃고. 그러고는 숨을 안 쉬고 막 손, 발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었어요.”

두 경찰관은 경찰차에 아이와 엄마를 태우고는 곧바로 인근 병원 응급실로 향했습니다.

<인터뷰> 임창수(대구 달성경찰서 화남파출소/순경) : “애가 숨도 안 쉬고 거품을 물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 어떡해야 할까, 119를 부를까 고민을 했지만 골든타임을 확보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빨리 이송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 사이, 김 경위는 평소 알고 있던 심폐소생술로 응급처치하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뷰> 김기환(대구 달성경찰서 화남파출소/경위) : “한 손으로는 흉부를 압박하면서 척추 쪽에 충격을 좀 줬습니다. 애가 빨리 의식을 찾게 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임 순경은 서둘러 경찰차를 몰아 응급실로 향했는데요.

다행히 아기는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호흡을 되찾았고 의식도 회복했습니다.

<인터뷰> 김기환(대구 달성경찰서 화남파출소/경위) : “제가 순찰차에서 내려서 응급실 침대에 아기를 눕히는데 울음을 터트리니까 ‘아, 의식을 찾았구나.’ 이런 생각이 드니까 매우 기뻤습니다.”

지난 성탄절, 대구 경찰청 SNS에 관련 영상이 올라오면서 누리꾼들은 뜨거운 반응을 보였습니다.

아직 세상이 따뜻하다는 답글로 두 영웅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김기환(대구 달성경찰서 화남파출소/경위) : “모든 국민도 다른 아기가 그랬으면, 누구라도 그런 상황에 부닥치면 저같이 했을 거로 생각합니다.”

경찰도 선뜻 나서기 어려웠던 일을 직접 해낸 시민 영웅들도 있습니다.

지난 10월, 중랑구의 한 식당 앞, 길을 가던 한 남성이 앞으로 고꾸라지면서 쓰러집니다.

쓰러진 모습 그대로 미동조차 하지 않는 남성.

58살의 유학신 씨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의식을 잃은 겁니다.

잠시 후, 한 여성이 다가와선 유 씨의 몸을 뒤집고는 심폐소생술을 하기 시작합니다.

여성이 119구급대에 구조 요청을 하는 동안, 이번엔 길을 지나던 중년 남성이 심폐소생술을 합니다.

<인터뷰> 최근영 (심폐소생술 의인) : “어떤 아주머니가 “사람 살려!” 하는 소리가 나더라고요. 그래서 나도 모르게 뛰어갔죠. 뛰어가니까 사람이 쓰러져 있더라고요.”

최 씨의 지인까지 합세해 두 사람은 119구급대가 오는 동안 번갈아 심폐소생술을 했습니다.

전문가 못지않은 안정적인 자세로 심폐소생술을 해낸 최근영 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었던 건 길에서 사망한 사촌 형 생각이 났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최근영 (심폐소생술 의인) :“사촌 형님이 공원에 쓰러졌는데 누가 술 먹고 자는 줄 알고 신고를 안 한 거예요. 신고만 했어도 살아났을 텐데. 그 생각이 문득 난 거예요. 그래서 내가 이걸 해서라도 이 분을 무조건 살려야겠다. 그런 생각만 가지고 했어요.”

골든타임 안에 심폐소생술을 받은 덕분에 유학신 씨는 금세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지난 주말 산에서 최근영 씨를 다시 만났습니다.

산악회 대장인 최 씨는 산에 오르기 전 회원들에게 꼭 체조를 시키는데요.

<인터뷰> 최근영 (심폐소생술 의인) : “산에 올라가기 전에 몸을 이렇게 풀어줘야 해요. 아무래도 낙상 사고도 날 수 있고 하니까요.”

주변인들은 그날 일이 평소 최 씨의 성품에서 나왔다고 입을 모읍니다.

<인터뷰> 안해순 (산악회 회원) : “솔선수범으로 나서고. 특히 그런 일에 모범적인 것 같아요. 남이 다쳤거나 안 된 일, 어려운 일을 많이 도와주세요.”

최 씨는 위급한 순간에 머뭇거리지 않고 용기를 내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최근영 (심폐소생술 의인) : “조금만 관심을 두고 신경 쓰면 어떤 그런 일이 닥쳤을 때 소중한 생명도 구할 수 있고, 주변에 내가 도움을 줘야 할 것 같은 판단이 들고 생각이 들면 그냥 과감하게 도움의 손길을 좀 내밀었으면 좋겠어요.”

이번 한 해 많은 사람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 한 의인은 안타깝게도 직접 인터뷰 하지 못했습니다.

지난 9월, 자신이 살던 빌라에 불이 나자 초인종을 눌러 이웃들을 대피시키고 정작 자신은 숨지고만 ‘초인종 의인’ 안치범 씨입니다.

<녹취>인근 주민(음성변조) : “어떤 남자가 나와서 불났어요. 불났어요. 그러고 여기다 대고 소리 지르는 걸 들어서 잠에서 깼어요.”

성우가 되겠다는 꿈을 간직했던 안 씨.

<녹취> 故 안치범 씨 생전 육성 : “이곳은 어디일까요? 그 곳은 과연 어디일까요? 그곳은 가장 먼저 미래를 살고 있는, 대한민국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생명을 구하는 뜻깊은 일에 쓰였습니다.

정부는 안 씨를 의사자로 공식 지정하고 한국 성우협회도 안 씨를 명예 회원으로 인증했는데요.

안 씨의 어머니는 아들이 안타깝고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자랑스러운 아들의 모습을 가슴에 묻었습니다.

<녹취>정혜경(故 안치범 씨 어머니) : “‘또 그런 일이 일어나도 또 그랬겠다. 우리 아들은 그래도 그랬을 거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잘했다 그랬어요. “잘했다. 치범아. 사랑한다. 엄마 아빠보다 나은 아들이라서 자랑스럽다.” 그렇게 얘기해줬어요.”

삭막한 현실 속에서 아직 살만한 세상이라는 믿음을 지켜준 평범한 영웅들.

의인들의 용기는 올 한해 우리에게 희망으로 기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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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따라잡기] “당연한 일 했다”…우리 주변 평범한 영웅들
    • 입력 2016-12-27 08:35:37
    • 수정2016-12-27 09: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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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멘트>

올 한해 정치는 혼란했지만 그래도 희망을 놓지 않았던 건 바로 우리 주변의 이웃들 덕분입니다.

아이가 숨이 넘어가는 긴박한 상황에서 침착한 대처로 아이를 살리고, 길에 쓰러진 생면부지의 사람에겐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걸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건물에 불이 나자 집집마다 초인종을 눌러 이웃들을 대피시킨 뒤 정작 자신을 숨지고만 20대 청년도 있었습니다.

의인으로 또 영웅으로 기억되는 우리 주변의 이웃들은 "당연한 일을 했다”는 담담한 말로 다시 한 번 감동을 줬습니다.

오늘은 올 한 해를 빚낸 평범한 영웅들을 만나봤습니다.

<리포트>

지난 17일 아침, 파출소 앞에서 승용차 한 대가 요란하게 경적을 울렸습니다.

뭔가 일이 생겼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아챈 김기환 경위와 임창수 순경, 이들은 곧바로 달려갔는데요.

<인터뷰> 김기환(대구 달성경찰서 화남파출소/경위) :“유아 시트에서 유아가 입에 약간 침을 흘리면서 눈동자에 힘이 없고 의식이 없는 상태로 있었습니다.”

주부 류성민 씨가 15개월 된 딸아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가던 중 아기가 갑자기 의식을 잃은 겁니다.

<녹취> 류성민(아기 엄마) : “아이가 고열이 나서 병원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냥 팍 몸이 쳐지면서 탁 쓰러지는 거예요. 이렇게 정신을 잃고. 그러고는 숨을 안 쉬고 막 손, 발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었어요.”

두 경찰관은 경찰차에 아이와 엄마를 태우고는 곧바로 인근 병원 응급실로 향했습니다.

<인터뷰> 임창수(대구 달성경찰서 화남파출소/순경) : “애가 숨도 안 쉬고 거품을 물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 어떡해야 할까, 119를 부를까 고민을 했지만 골든타임을 확보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빨리 이송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 사이, 김 경위는 평소 알고 있던 심폐소생술로 응급처치하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뷰> 김기환(대구 달성경찰서 화남파출소/경위) : “한 손으로는 흉부를 압박하면서 척추 쪽에 충격을 좀 줬습니다. 애가 빨리 의식을 찾게 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임 순경은 서둘러 경찰차를 몰아 응급실로 향했는데요.

다행히 아기는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호흡을 되찾았고 의식도 회복했습니다.

<인터뷰> 김기환(대구 달성경찰서 화남파출소/경위) : “제가 순찰차에서 내려서 응급실 침대에 아기를 눕히는데 울음을 터트리니까 ‘아, 의식을 찾았구나.’ 이런 생각이 드니까 매우 기뻤습니다.”

지난 성탄절, 대구 경찰청 SNS에 관련 영상이 올라오면서 누리꾼들은 뜨거운 반응을 보였습니다.

아직 세상이 따뜻하다는 답글로 두 영웅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김기환(대구 달성경찰서 화남파출소/경위) : “모든 국민도 다른 아기가 그랬으면, 누구라도 그런 상황에 부닥치면 저같이 했을 거로 생각합니다.”

경찰도 선뜻 나서기 어려웠던 일을 직접 해낸 시민 영웅들도 있습니다.

지난 10월, 중랑구의 한 식당 앞, 길을 가던 한 남성이 앞으로 고꾸라지면서 쓰러집니다.

쓰러진 모습 그대로 미동조차 하지 않는 남성.

58살의 유학신 씨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의식을 잃은 겁니다.

잠시 후, 한 여성이 다가와선 유 씨의 몸을 뒤집고는 심폐소생술을 하기 시작합니다.

여성이 119구급대에 구조 요청을 하는 동안, 이번엔 길을 지나던 중년 남성이 심폐소생술을 합니다.

<인터뷰> 최근영 (심폐소생술 의인) : “어떤 아주머니가 “사람 살려!” 하는 소리가 나더라고요. 그래서 나도 모르게 뛰어갔죠. 뛰어가니까 사람이 쓰러져 있더라고요.”

최 씨의 지인까지 합세해 두 사람은 119구급대가 오는 동안 번갈아 심폐소생술을 했습니다.

전문가 못지않은 안정적인 자세로 심폐소생술을 해낸 최근영 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었던 건 길에서 사망한 사촌 형 생각이 났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최근영 (심폐소생술 의인) :“사촌 형님이 공원에 쓰러졌는데 누가 술 먹고 자는 줄 알고 신고를 안 한 거예요. 신고만 했어도 살아났을 텐데. 그 생각이 문득 난 거예요. 그래서 내가 이걸 해서라도 이 분을 무조건 살려야겠다. 그런 생각만 가지고 했어요.”

골든타임 안에 심폐소생술을 받은 덕분에 유학신 씨는 금세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지난 주말 산에서 최근영 씨를 다시 만났습니다.

산악회 대장인 최 씨는 산에 오르기 전 회원들에게 꼭 체조를 시키는데요.

<인터뷰> 최근영 (심폐소생술 의인) : “산에 올라가기 전에 몸을 이렇게 풀어줘야 해요. 아무래도 낙상 사고도 날 수 있고 하니까요.”

주변인들은 그날 일이 평소 최 씨의 성품에서 나왔다고 입을 모읍니다.

<인터뷰> 안해순 (산악회 회원) : “솔선수범으로 나서고. 특히 그런 일에 모범적인 것 같아요. 남이 다쳤거나 안 된 일, 어려운 일을 많이 도와주세요.”

최 씨는 위급한 순간에 머뭇거리지 않고 용기를 내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최근영 (심폐소생술 의인) : “조금만 관심을 두고 신경 쓰면 어떤 그런 일이 닥쳤을 때 소중한 생명도 구할 수 있고, 주변에 내가 도움을 줘야 할 것 같은 판단이 들고 생각이 들면 그냥 과감하게 도움의 손길을 좀 내밀었으면 좋겠어요.”

이번 한 해 많은 사람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 한 의인은 안타깝게도 직접 인터뷰 하지 못했습니다.

지난 9월, 자신이 살던 빌라에 불이 나자 초인종을 눌러 이웃들을 대피시키고 정작 자신은 숨지고만 ‘초인종 의인’ 안치범 씨입니다.

<녹취>인근 주민(음성변조) : “어떤 남자가 나와서 불났어요. 불났어요. 그러고 여기다 대고 소리 지르는 걸 들어서 잠에서 깼어요.”

성우가 되겠다는 꿈을 간직했던 안 씨.

<녹취> 故 안치범 씨 생전 육성 : “이곳은 어디일까요? 그 곳은 과연 어디일까요? 그곳은 가장 먼저 미래를 살고 있는, 대한민국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생명을 구하는 뜻깊은 일에 쓰였습니다.

정부는 안 씨를 의사자로 공식 지정하고 한국 성우협회도 안 씨를 명예 회원으로 인증했는데요.

안 씨의 어머니는 아들이 안타깝고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자랑스러운 아들의 모습을 가슴에 묻었습니다.

<녹취>정혜경(故 안치범 씨 어머니) : “‘또 그런 일이 일어나도 또 그랬겠다. 우리 아들은 그래도 그랬을 거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잘했다 그랬어요. “잘했다. 치범아. 사랑한다. 엄마 아빠보다 나은 아들이라서 자랑스럽다.” 그렇게 얘기해줬어요.”

삭막한 현실 속에서 아직 살만한 세상이라는 믿음을 지켜준 평범한 영웅들.

의인들의 용기는 올 한해 우리에게 희망으로 기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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