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식약처 공문 한 장에 작은 업체는 망합니다”

입력 2016.07.17 (09:05) 수정 2016.07.17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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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실한 한약 제조 업체가 불법 업체?…황당한 오명

서울 제기동 약재 거리. 곳곳에 묻어나는 한약 냄새를 쫓아가다 18년 동안 한약재를 만들어 온 한 나이 지긋한 한약 제조업체 사장을 만날 수 있었다.

사장님은 전화를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주문 전화였으면 얼마나 좋겠느냐만 얼굴엔 수심이 가득하다. 항의 전화다. 많을 땐 수십 통이 걸려올 때도 있었다고 한다. 적게는 몇 년, 많게는 10년 이상 거래해 온 사람들이다. "제품 가져가라"고, "불량품 아니냐"고, "못 믿겠다"고. 죄인처럼 부탁하고 사정하고 설명하며 겨우 반품만은 막았다. 그가 잘못한 건 없다. 사실 그는 피해자이다.

한 무허가 업체가 유통기한이 몇 년 지나거나 기준치 이상의 중금속이 함유된 불량 한약재를 팔았다. 정식 허가받은 제품처럼 속이려고 다른 업체의 상표를 본떠 붙였다. 이 한약재는 전국 180여 개 한의원과 약국에서 사갔는데, 이 무허가 업체는 하필 이 사장님이 운영하는 업체의 상표를 도용했다. 억울하지만 지금이라고 밝혀져 다행이라고 여기며 적극적으로 조사에 협조해줬다.

그런데 문제는 그 뒤에 터졌다. KBS의 관련 보도 이후 식약처가 후속 조치를 위해 불량 한약재를 모두 회수하라고 명령했는데, 피해 업체의 제품까지 포함되었다. 피해업체의 이름이 박힌 공문은 해당 업체뿐 아니라 전국 시·도 지자체와 한의사협회, 약국 협회, 병의원협회 등 관련 기관에 일제히 송달됐다.

각 협회는 회원들에게 이 공문 내용을 알렸다. 이후, 이 피해업체 사장님은 '불량 한약재'를 유통시킨 사람처럼 오해를 받기 시작했다.



# “사용기한이 변조되어 유통된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공문을 자세히 살펴봤다. 제목은 "품질 부적합 한약재 판매중단 및 회수(폐기)명령". '1. 귀사에서 제조 판매한 한약재 '농림포공영' 등 7품목이 사용기한이 변조되어 유통된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로 시작했다.

2번에서 구체적인 명령 사항이 시달됐다. '유통 중인 품질 부적합 한약재를 유통 금지하는 등 즉시 필요한 조치를 취하라'는 것이다.

이 공문만 보면 문제가 있는 한약재임이 분명하다. 한약재 10여 톤, 아무리 적게 잡아도 수천만 원어치를 다시 거둬들여야 할 판이다. 하지만 피해 업체 사장님은 불법 행위에 상표를 도용당했을 뿐, 본인은 이 업체와 무관하게 정직하게 제품을 생산해 납품해 왔다고 주장했다.

그런데도 공문 내용을 전국 100여 개 거래처에서 알게 됐으니 물건을 받겠다는 곳이 있을 리 없다. 피해 업체는 "왜 우리 제품이 불량품으로 취급받아야 하느냐?"며 식약처에 진정을 해봤지만 돌아온 건 "억울하면 이의 신청을 하라"는 답변이었다.

그래서 이의신청을 했다. 내용을 검토하려면 시일이 걸린다는 회신이 왔다. 기약 없는 기다림. 무허가 업체에게 상표를 도용당한 피해 업체는 오늘도 기다리고 있다.



# 식약처는 왜?…“선제적 안전 관리” 차원

그렇다면 식약처는 왜 피해업체의 정상 제품까지 회수 명령을 내렸을까? 식약처는 선제적 안전 관리 차원이란 입장이다. 국민들에게 불량 한약재가 공급될 수 있는 개연성이 있기 때문에 일단 이 불법 업체와 관련된 제품들을 모두 회수하고, 만약 확인 결과 적합한 제품이라고 확인이 되면 '재판매' 등 후속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이다.

피해 업체 사장님의 주장대로 제품에 아무 문제가 없다면 결국 언젠가는 다시 한약재를 납품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뢰가 생명인 업계에서 한 번 실추된 이미지를 회복할 수 있을까?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데, 피해업체 사장이 기자에게 한 말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

"조금만 신중하게 판단했다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겁니다. 정부는 공문 하나 내면 끝이겠지만.....저희 같은 작은 업체는 문 닫아야 합니다." 

[연관기사] ☞ [뉴스9] 피해 업체에 제품 회수 명령?…두 번 울린 식약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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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식약처 공문 한 장에 작은 업체는 망합니다”
    • 입력 2016-07-17 09:05:28
    • 수정2016-07-17 11:53:58
    취재후·사건후
# 성실한 한약 제조 업체가 불법 업체?…황당한 오명

서울 제기동 약재 거리. 곳곳에 묻어나는 한약 냄새를 쫓아가다 18년 동안 한약재를 만들어 온 한 나이 지긋한 한약 제조업체 사장을 만날 수 있었다.

사장님은 전화를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주문 전화였으면 얼마나 좋겠느냐만 얼굴엔 수심이 가득하다. 항의 전화다. 많을 땐 수십 통이 걸려올 때도 있었다고 한다. 적게는 몇 년, 많게는 10년 이상 거래해 온 사람들이다. "제품 가져가라"고, "불량품 아니냐"고, "못 믿겠다"고. 죄인처럼 부탁하고 사정하고 설명하며 겨우 반품만은 막았다. 그가 잘못한 건 없다. 사실 그는 피해자이다.

한 무허가 업체가 유통기한이 몇 년 지나거나 기준치 이상의 중금속이 함유된 불량 한약재를 팔았다. 정식 허가받은 제품처럼 속이려고 다른 업체의 상표를 본떠 붙였다. 이 한약재는 전국 180여 개 한의원과 약국에서 사갔는데, 이 무허가 업체는 하필 이 사장님이 운영하는 업체의 상표를 도용했다. 억울하지만 지금이라고 밝혀져 다행이라고 여기며 적극적으로 조사에 협조해줬다.

그런데 문제는 그 뒤에 터졌다. KBS의 관련 보도 이후 식약처가 후속 조치를 위해 불량 한약재를 모두 회수하라고 명령했는데, 피해 업체의 제품까지 포함되었다. 피해업체의 이름이 박힌 공문은 해당 업체뿐 아니라 전국 시·도 지자체와 한의사협회, 약국 협회, 병의원협회 등 관련 기관에 일제히 송달됐다.

각 협회는 회원들에게 이 공문 내용을 알렸다. 이후, 이 피해업체 사장님은 '불량 한약재'를 유통시킨 사람처럼 오해를 받기 시작했다.



# “사용기한이 변조되어 유통된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공문을 자세히 살펴봤다. 제목은 "품질 부적합 한약재 판매중단 및 회수(폐기)명령". '1. 귀사에서 제조 판매한 한약재 '농림포공영' 등 7품목이 사용기한이 변조되어 유통된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로 시작했다.

2번에서 구체적인 명령 사항이 시달됐다. '유통 중인 품질 부적합 한약재를 유통 금지하는 등 즉시 필요한 조치를 취하라'는 것이다.

이 공문만 보면 문제가 있는 한약재임이 분명하다. 한약재 10여 톤, 아무리 적게 잡아도 수천만 원어치를 다시 거둬들여야 할 판이다. 하지만 피해 업체 사장님은 불법 행위에 상표를 도용당했을 뿐, 본인은 이 업체와 무관하게 정직하게 제품을 생산해 납품해 왔다고 주장했다.

그런데도 공문 내용을 전국 100여 개 거래처에서 알게 됐으니 물건을 받겠다는 곳이 있을 리 없다. 피해 업체는 "왜 우리 제품이 불량품으로 취급받아야 하느냐?"며 식약처에 진정을 해봤지만 돌아온 건 "억울하면 이의 신청을 하라"는 답변이었다.

그래서 이의신청을 했다. 내용을 검토하려면 시일이 걸린다는 회신이 왔다. 기약 없는 기다림. 무허가 업체에게 상표를 도용당한 피해 업체는 오늘도 기다리고 있다.



# 식약처는 왜?…“선제적 안전 관리” 차원

그렇다면 식약처는 왜 피해업체의 정상 제품까지 회수 명령을 내렸을까? 식약처는 선제적 안전 관리 차원이란 입장이다. 국민들에게 불량 한약재가 공급될 수 있는 개연성이 있기 때문에 일단 이 불법 업체와 관련된 제품들을 모두 회수하고, 만약 확인 결과 적합한 제품이라고 확인이 되면 '재판매' 등 후속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이다.

피해 업체 사장님의 주장대로 제품에 아무 문제가 없다면 결국 언젠가는 다시 한약재를 납품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뢰가 생명인 업계에서 한 번 실추된 이미지를 회복할 수 있을까?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데, 피해업체 사장이 기자에게 한 말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

"조금만 신중하게 판단했다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겁니다. 정부는 공문 하나 내면 끝이겠지만.....저희 같은 작은 업체는 문 닫아야 합니다." 

[연관기사] ☞ [뉴스9] 피해 업체에 제품 회수 명령?…두 번 울린 식약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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