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먹튀’ 외국계기업, 근로자는 ‘발동동’

입력 2016.08.02 (09:04) 수정 2016.08.02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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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설비 폐지를 밝힌 '한국산연'의 외부 모습생산설비 폐지를 밝힌 '한국산연'의 외부 모습

1974년 일본 산켄이 100% 출자해 설립한 '한국산연', 우리나라 최초의 외국인 전용 공단인 창원시 마산자유무역지대에 입주한 외국계 기업이다. 기자가 찾은 한국산연 공장은 입구부터 을씨년스러웠다. 회사 측의 휴업 조치로 공장을 지키는 사람은 회사 측 관리자와 경비원, 그리고 정리해고에 반대하는 근로자와 이들이 내건 현수막뿐이었다.

생산설비 폐지에 반대하고 있는 ‘한국산연’ 근로자들생산설비 폐지에 반대하고 있는 ‘한국산연’ 근로자들

LED 생산업체인 한국산연의 근로자는 1백 명 남짓이다. 그중에서 생산직 근로자는 69명. 대부분 한국산연에서 10년 넘게 젊음을 바친 사람들이다. 그런데 지난 2월 사측이 일방적으로 생산설비 폐지를 밝히면서 이들에게 희망퇴직을 요구했다. 회사가 주는 위로금을 받고 퇴사한 근로자가 30여 명. 이제는 35명만 남았다.

한국산연은 남은 근로자에게 급여 61% 삭감을 통보했다. 61% 줄어든 급여를 수용하면 회사에 다니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근로자들은 사실상 회사를 그만두라는 말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한국산연이 생산설비 폐지, 근로자 구조조정에 나서면서 밝힌 이유는 '경영악화'다. 그런데 실제 경영상태가 어떤지를 확인할 길이 없다. 더구나 사측의 생산설비 외주화 계획이 담긴 문서까지 공개되면서, 근로자들은 생산을 외주로 돌리고, 장사만 하겠다는 속셈이 들통이 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산연’ 근로자들의 일본 선전전 당시 모습‘한국산연’ 근로자들의 일본 선전전 당시 모습

남은 근로자들은 생활고에 회사를 떠난 동료들이 다른 기업에 비정규직으로 취업했거나, 아니면 일용직 근로자로, 어떤 이는 아직도 구직활동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괴로움에 술을 마시며 세월을 보내는 동료도 적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회사를 포기하지 않은 35명의 근로자는 매일같이 출근 도장을 찍는다. 월요일과 화요일은 길거리 선전전으로, 수요일은 부산 일본영사관 앞에서 항의 집회를 이어가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마산수출자유지역에 있는 노키아마산수출자유지역에 있는 노키아

우리나라 최초의 '외국인 전용 공단'인 마산수출 자유지역에서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진행된 건 이번뿐이 아니다.

마산수출자유지역은 1980년대 중반, 고용자 수가 3만 6,000명을 웃돌았지만 2000년대 이후 노키아티엠씨, 한국씨티즌정밀 등 외국인 투자기업(이하 외투 기업)들이 하나둘 빠져나가면서 현재는 6,000명 안팎으로 고용 근로자가 줄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산연의 경우처럼 근로자에게 일방 통보만 하고 구조조정을 하거나, 폐업을 결정해 멀쩡한 직장인이 하루아침에 거리의 실업자로 전락하는 경우가 수없이 반복됐다.

1970년대 마산수출자유지역 모습 1970년대 마산수출자유지역 모습

우리나라는 외국 자본과 선진 기술을 도입하기 위해 '외자도입촉진법'(1960년)과 '외국인투자 촉진법'(1998년)을 제정해 조세 혜택 등 각종 유인책을 외투 기업에 제공하고 있다. 법인세·소득세(5년 100%, 2년 50%) 7년 감면, 지방세 12년 감면, 행정절차 간소화, 임대료 감면 등 한국에 투자한다는 이유만으로 우리 기업 입장에선 꿈 같은 각종 지원을 받고 있는 셈이다.

반면 외투 기업이 국내에서 철수하거나 사업 구조조정으로 정리해고 등을 할 때는 우리 기업에 적용되는 규제를 받지 않는다. 이러다 보니 폐업 신고조차 하지 않고 철수해버리는 기업도 수두룩하다.

국내 외국인투자 촉진법에는 외투 기업에 대해 시정명령을 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지만, 그 사유가 국가 안보 등 매우 제한적이어서 대규모 구조조정에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창원시청창원시청

한국산연 사태가 장기화하자 경남 창원시가 기초자치단체로써는 처음으로 이른바 '먹튀' 외투 기업을 제재해달라며 정부와 국회에 건의했다.

창원시는 건의서에서 외투 기업이 철수할 때는 투기나 자본유출, 구조조정에 대한 특별근로감독과 세무조사를 제도화하고, 무분별한 구조조정이나 폐업은 제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타당하지 않은 구조조정이나 자본 철수에 대해서는 지원금 환수도 주문했다. 또 외국인 투자 규모, 기간과 더불어 국내 노동자 '고용보장심사제도'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이런 규제는 선진국에서는 이미 시행되고 있다. 프랑스 플로랑주법은 외투 기업 철수 시, 1,000명 이상 노동자가 근무하는 사업장은 사업주가 직접 인수자를 찾도록 하고 있다. 또 사업주가 공장 폐쇄를 하려면 노동자 측과 관계 당국에 폐업의 정당성을 설명하고, 인수자를 찾고자 노력하고 있음을 입증해야 한다. 이런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형사 책임'까지 질 수 있다.

일본은 '외환 외국 무역법'에 따라 '국민경제의 악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하는 경우' 외투 기업이 사전심사를 받도록 하고 있다. 재무부와 산업부는 심사를 거쳐 필요하다면 해당 투자를 변경하거나 중지할 것을 권고할 수 있다.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투 기업은 1만 5천여 곳에 이른다. 해가 갈수록 업종이나 국적도 다양화하고 국내 산업과 연관성도 높아졌고, 고용 창출 효과도 매년 늘고 있다.

하지만 단물만 실컷 빼먹다 뒤도 돌아보지 않는 이른바 '먹튀' 외국계 기업도 여전히 존재한다. 대한민국 세금을 지원받고도 고용과 사회보장 같은 기본적인 경영 책임을 무시하는 외국계 기업에 대해서는 적어도 우리 기업에 적용하는 수준의 규제가 동일하게 적용돼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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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8-02 09:04:16
    • 수정2016-08-02 09:07:53
    취재후·사건후
생산설비 폐지를 밝힌 '한국산연'의 외부 모습 1974년 일본 산켄이 100% 출자해 설립한 '한국산연', 우리나라 최초의 외국인 전용 공단인 창원시 마산자유무역지대에 입주한 외국계 기업이다. 기자가 찾은 한국산연 공장은 입구부터 을씨년스러웠다. 회사 측의 휴업 조치로 공장을 지키는 사람은 회사 측 관리자와 경비원, 그리고 정리해고에 반대하는 근로자와 이들이 내건 현수막뿐이었다. 생산설비 폐지에 반대하고 있는 ‘한국산연’ 근로자들 LED 생산업체인 한국산연의 근로자는 1백 명 남짓이다. 그중에서 생산직 근로자는 69명. 대부분 한국산연에서 10년 넘게 젊음을 바친 사람들이다. 그런데 지난 2월 사측이 일방적으로 생산설비 폐지를 밝히면서 이들에게 희망퇴직을 요구했다. 회사가 주는 위로금을 받고 퇴사한 근로자가 30여 명. 이제는 35명만 남았다. 한국산연은 남은 근로자에게 급여 61% 삭감을 통보했다. 61% 줄어든 급여를 수용하면 회사에 다니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근로자들은 사실상 회사를 그만두라는 말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한국산연이 생산설비 폐지, 근로자 구조조정에 나서면서 밝힌 이유는 '경영악화'다. 그런데 실제 경영상태가 어떤지를 확인할 길이 없다. 더구나 사측의 생산설비 외주화 계획이 담긴 문서까지 공개되면서, 근로자들은 생산을 외주로 돌리고, 장사만 하겠다는 속셈이 들통이 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산연’ 근로자들의 일본 선전전 당시 모습 남은 근로자들은 생활고에 회사를 떠난 동료들이 다른 기업에 비정규직으로 취업했거나, 아니면 일용직 근로자로, 어떤 이는 아직도 구직활동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괴로움에 술을 마시며 세월을 보내는 동료도 적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회사를 포기하지 않은 35명의 근로자는 매일같이 출근 도장을 찍는다. 월요일과 화요일은 길거리 선전전으로, 수요일은 부산 일본영사관 앞에서 항의 집회를 이어가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마산수출자유지역에 있는 노키아 우리나라 최초의 '외국인 전용 공단'인 마산수출 자유지역에서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진행된 건 이번뿐이 아니다. 마산수출자유지역은 1980년대 중반, 고용자 수가 3만 6,000명을 웃돌았지만 2000년대 이후 노키아티엠씨, 한국씨티즌정밀 등 외국인 투자기업(이하 외투 기업)들이 하나둘 빠져나가면서 현재는 6,000명 안팎으로 고용 근로자가 줄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산연의 경우처럼 근로자에게 일방 통보만 하고 구조조정을 하거나, 폐업을 결정해 멀쩡한 직장인이 하루아침에 거리의 실업자로 전락하는 경우가 수없이 반복됐다. 1970년대 마산수출자유지역 모습 우리나라는 외국 자본과 선진 기술을 도입하기 위해 '외자도입촉진법'(1960년)과 '외국인투자 촉진법'(1998년)을 제정해 조세 혜택 등 각종 유인책을 외투 기업에 제공하고 있다. 법인세·소득세(5년 100%, 2년 50%) 7년 감면, 지방세 12년 감면, 행정절차 간소화, 임대료 감면 등 한국에 투자한다는 이유만으로 우리 기업 입장에선 꿈 같은 각종 지원을 받고 있는 셈이다. 반면 외투 기업이 국내에서 철수하거나 사업 구조조정으로 정리해고 등을 할 때는 우리 기업에 적용되는 규제를 받지 않는다. 이러다 보니 폐업 신고조차 하지 않고 철수해버리는 기업도 수두룩하다. 국내 외국인투자 촉진법에는 외투 기업에 대해 시정명령을 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지만, 그 사유가 국가 안보 등 매우 제한적이어서 대규모 구조조정에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창원시청 한국산연 사태가 장기화하자 경남 창원시가 기초자치단체로써는 처음으로 이른바 '먹튀' 외투 기업을 제재해달라며 정부와 국회에 건의했다. 창원시는 건의서에서 외투 기업이 철수할 때는 투기나 자본유출, 구조조정에 대한 특별근로감독과 세무조사를 제도화하고, 무분별한 구조조정이나 폐업은 제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타당하지 않은 구조조정이나 자본 철수에 대해서는 지원금 환수도 주문했다. 또 외국인 투자 규모, 기간과 더불어 국내 노동자 '고용보장심사제도'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이런 규제는 선진국에서는 이미 시행되고 있다. 프랑스 플로랑주법은 외투 기업 철수 시, 1,000명 이상 노동자가 근무하는 사업장은 사업주가 직접 인수자를 찾도록 하고 있다. 또 사업주가 공장 폐쇄를 하려면 노동자 측과 관계 당국에 폐업의 정당성을 설명하고, 인수자를 찾고자 노력하고 있음을 입증해야 한다. 이런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형사 책임'까지 질 수 있다. 일본은 '외환 외국 무역법'에 따라 '국민경제의 악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하는 경우' 외투 기업이 사전심사를 받도록 하고 있다. 재무부와 산업부는 심사를 거쳐 필요하다면 해당 투자를 변경하거나 중지할 것을 권고할 수 있다.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투 기업은 1만 5천여 곳에 이른다. 해가 갈수록 업종이나 국적도 다양화하고 국내 산업과 연관성도 높아졌고, 고용 창출 효과도 매년 늘고 있다. 하지만 단물만 실컷 빼먹다 뒤도 돌아보지 않는 이른바 '먹튀' 외국계 기업도 여전히 존재한다. 대한민국 세금을 지원받고도 고용과 사회보장 같은 기본적인 경영 책임을 무시하는 외국계 기업에 대해서는 적어도 우리 기업에 적용하는 수준의 규제가 동일하게 적용돼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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