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만의 귀향”…사할린 강제동원 희생자 유해 봉환

입력 2016.09.23 (06:52) 수정 2016.09.23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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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일제 강점기, 러시아 사할린으로 강제 징용돼 노역에 동원된 사람이 3만 명이 넘는데요.

해방 후에도 돌아오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이들 가운데 11명의 유해가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최진아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일제의 강제 징용이 절정에 이른 1940년대.

러시아 사할린으로 끌려간 조선인들은 탄광과 토목공사 현장에서 고된 노동에 시달렸습니다.

1945년, 조국은 해방됐지만 귀국길이 막힌 이들은 낯선 땅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죽어서도 잊지 못했던 고국, 사할린 강제동원 희생자 11명의 유해가 70여 년만에 한국땅을 밟았습니다.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아버지와 헤어졌던 아들은 어느새 백발 성성한 칠십대 노인.

사진 속 아버지를 그대로 닮았습니다.

<녹취> 백남길(사할린 희생자 고 백낙도 씨 아들) : "저는 평생 소원이 아버님 생전에 한 번 만나뵙고 그 믿음직스러운 손이라도 한 번 따뜻하게 잡아보는 것이었습니다."

일제에 의해 사할린으로 강제 동원된 조선인 노무자는 약 3만 명.

이 가운데 3천여 명의 유해가 사할린 현지에 남아있는 것으로 정부는 파악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범석(행정자치부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장) : "일제강제동원 희생자의 영령과 유족들의 아픔을 위로하기 위해서 매년 꾸준하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유골 봉환 사업을 추진하겠습니다."

지난 2013년 사할린 강제동원 피해자 유해 봉환이 시작된 후 지금까지 43명의 희생자 유해가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KBS 뉴스 최진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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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0년 만의 귀향”…사할린 강제동원 희생자 유해 봉환
    • 입력 2016-09-23 06:54:47
    • 수정2016-09-23 07:3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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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일제 강점기, 러시아 사할린으로 강제 징용돼 노역에 동원된 사람이 3만 명이 넘는데요.

해방 후에도 돌아오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이들 가운데 11명의 유해가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최진아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일제의 강제 징용이 절정에 이른 1940년대.

러시아 사할린으로 끌려간 조선인들은 탄광과 토목공사 현장에서 고된 노동에 시달렸습니다.

1945년, 조국은 해방됐지만 귀국길이 막힌 이들은 낯선 땅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죽어서도 잊지 못했던 고국, 사할린 강제동원 희생자 11명의 유해가 70여 년만에 한국땅을 밟았습니다.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아버지와 헤어졌던 아들은 어느새 백발 성성한 칠십대 노인.

사진 속 아버지를 그대로 닮았습니다.

<녹취> 백남길(사할린 희생자 고 백낙도 씨 아들) : "저는 평생 소원이 아버님 생전에 한 번 만나뵙고 그 믿음직스러운 손이라도 한 번 따뜻하게 잡아보는 것이었습니다."

일제에 의해 사할린으로 강제 동원된 조선인 노무자는 약 3만 명.

이 가운데 3천여 명의 유해가 사할린 현지에 남아있는 것으로 정부는 파악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범석(행정자치부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장) : "일제강제동원 희생자의 영령과 유족들의 아픔을 위로하기 위해서 매년 꾸준하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유골 봉환 사업을 추진하겠습니다."

지난 2013년 사할린 강제동원 피해자 유해 봉환이 시작된 후 지금까지 43명의 희생자 유해가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KBS 뉴스 최진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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