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북한] 독재자의 한 해 청사진…北 신년사

입력 2017.01.14 (08:09) 수정 2017.01.14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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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앞서 <이슈앤한반도> 코너에서 보셨지만, 김정은은 올해 신년사에서 ICBM 위협 카드를 흔들며 향후 북미관계 판짜기를 시도했는데요.

이처럼 북한의 신년사는 북한의 정책 방향과 대외 전략이 담긴 독재자의 한해 청사진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상대방을 기만하고 압박하는 선전 수단이기 때문에 신중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클로즈업 북한> 이번 주에는 북한 최고지도자의 신년사를 어떻게 봐야하는지, 또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해왔는지 심층 분석했습니다.

<리포트>

지난 5일 평양, 수많은 인파가 김일성 광장을 가득 메웠다.

곳곳에 내걸린 대형 선전화와 선전문구 아래 구호를 외치는 주민들.

<녹취> "올해 신년사에서 제시하신 강령적 과업을 철저히 관철하자!"

<녹취> "관철하자! 관철하자!"

청년과 지식인, 여성 등 각계를 대표하는 참가자들이 최고지도자 김정은의 신년사를 충실히 이행하자며 결의를 다지는 대규모 군중대회다.

주석단에는 최룡해 당 중앙위 부위원장 등 핵심 간부들이 총출동했다.

<녹취> 김수길(평양시당위원회 위원장) : “경애하는 최고 영도자 동지 신년사를 무한한 격정 속에 받아 안은 수도의 일꾼들과 당원들과 근로자들은 필승의 신심과 낙관에 넘쳐 더 큰 승리를 안아오기 위한 새 행군 길에 또 다시 떨쳐나섰습니다.”

대형 현수막과 깃발, 선전 문구들을 든 참가자들의 일사불란한 행진은 해질 무렵까지 이어졌다.

이 같은 대규모 군중대회와 크고 작은 궐기모임은 수도 평양을 시작으로 북한 전역에서 며칠간 계속됐다.

해마다 1월이면 신년사 내용을 숙지하는 각종 ‘학습 모임’도 진행된다.

<녹취> 조선중앙TV(지난 10일) : "기계공업성에서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 동지의 신년사 학습열풍을 세차게 일으키고 있습니다."

각 기관과 기업, 학교 등에 모여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신년사를 옮겨 적고 필기까지 해가며 공부하는 사람들.

북한 당국은 심지어 신년사 전문 암송을 독려하고 잘 외운 사람을 모범으로 추켜세우며 선전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약 30분 분량의 신년사를 모조리 외우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인터뷰> 최수향(2014년 탈북) : “신년사가 나오면 그걸 토씨 하나도 틀리지 않게 외워야 하는데, 그러면 그 시간 내에 다 외우지 못하니까 그 자리에서 뜰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러면 내가 해야 되는 임무가 있는데, 그 과제가 계속 밀려나가는 거죠. 거의 2월, 3월까지는 신년사에 계속 매달려서 살아야 했던 것 같습니다.”

1946년, 김일성이 ‘신년을 맞으며 전국 인민들에게 고함’이라는 제목으로 연설하면서 시작된 북한의 신년사.

이는 당·정·군이 한 해 동안 추진해야 할 주요 정책이자 반드시 관철시켜야 하는 최고 권력자의 교시로 여겨져 왔다.

<인터뷰> 정성장(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 : “북한은 우리하곤 다른 집단주의 체제입니다. 신년사는 한 해의 목표를 제시하는 그런 기능도 있지만, 또한 주민을 통제하는 기능도 갖고 있다... 그래서 신년사가 발표가 되면 신년사 내용을 학습하고, 또 각기 자기 분야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 토론을 하고. 이게 일종의 연례행사화 돼 있습니다.”

실제 김일성은 1994년 사망한 바로 그 해까지 무려 50년 가까이, 거의 해마다 육성 신년사를 했을 만큼 신년사를 중요시했다.

북한의 정치, 경제, 군사 분야 뿐 아니라 대남, 대외관계를 망라하는 신년사에선 당시 북한이 처한 상황과 그에 대한 최고권력자의 생각도 엿볼 수 있다.

<녹취> KBS 뉴스9(1990년 9월 30일) : “두 나라가 수교하게 되면 한국과 소련은 구한말인 지난 1904년 한러 통상조약 폐기 이후 86년 만에 양국 관계가 정상화 되는 것입니다.”

1980년대 말 공산권의 붕괴와 1990년 10월 독일의 통일을 지켜봤던 김일성.

석 달 뒤, 그의 신년사에는 흡수통일에 대한 두려움과 한국의 북방외교에 대한 수세적인 인식이 그대로 드러난다.

<녹취> 김일성(1991년 신년사) : “최근 다른 나라의 흡수통합 방식에 현혹된 남조선 당국자들은 북방정책을 내걸고 청탁외교를 벌이면서 남의 힘을 빌어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방식을 실현해보려는 어리석은 꿈을 꾸고 있습니다.”

국민적 기대 속에 문민정부가 출범했던 1993년.

<녹취> 김영삼 대통령(취임사/1993년 2월) : “김일성 주석에게 말합니다. 우리는 진심으로 서로 협력할 자세를 갖추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그 해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 NPT 탈퇴 선언으로 한반도는 ‘1차 북핵 위기’를 맞는다.

북·미 간 신경전이 최고조에 달했던 한 해를 보낸 뒤, 김일성은 이듬에 신년사에서 한국 정부에 노골적인 비난을 쏟아낸다.

<녹취> 김일성(1994년 신년사) : “남조선 당국자들은 외세에 야합하여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는 대규모 군사연습을 빈번히 벌리고, 우리의 핵 문제를 구실로 군사적 대응이니 국제 공조식이니 하면서 북남 관계를 위험한 국면에 몰아넣고 있습니다. 남조선의 이러한 이른바 문민정권이란 허울뿐이고 실제로는 역대 군부독재정권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김일성 사망 후 육성 신년사는 20년 가까이 자취를 감췄다.

후계자 김정일은 집권 기간 내내 <노동신문>과 <조선인민군>, <청년전위> 3개 신문의 공동 사설 형식으로 신년사를 발표했다.

2000년 1차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역사적인 이벤트가 있었던 이듬해에도 ‘은둔의 지도자’김정일은 직접 나서지 않았다.

<녹취> 2001년 신년사(아나운서 대독) : “지난해에는 조국통일위업 수행에서 새로운 전환적 국면이 열린 뜻깊은 해였다. 역사적인 평양 상봉이 마련되고, 6.15 북남공동선언이 발표되어 온 삼천리강토가 통일의 열기로 들끓게 되었다.”

<인터뷰> 정성장(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 : “북한의 신년사는 사회주의 국가, 특히 소련에서 매년 했던 신년사를 모방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정일의 경우에는 주민들에게 직접 노출되는 걸 상당히 꺼려했고, 자신을 신비화함으로써 주민들하고 차별화하는 그런 전략을 추구했기 때문에 직접 방송에 나가서 신년사를 발표하거나 그런 사례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육성 신년사는 김정은이 집권하며 다시 시작됐다.

2013년 1월 1일, 19년 만에 방송을 통해 직접 신년사를 발표한 김정은.

전문가들은 이것 역시 ‘할아버지 따라하기’의 일환이라고 입을 모은다.

<인터뷰> 최수향(2014년 탈북) : “처음 딱 접했을 때 김일성이 하고 똑같다, 이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나와서 연설을 하는데 여러 가지 제스처를 보니까 김일성이 연단에 서서 연설을 할 때 그 제스처와 비슷한 겁니다. 그래가지고 아, 김일성이하고 거의 비슷하다 하는 느낌을 받으면서 어떤 큰 변화가 있지 않을까 이런 기대감도 컸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청중들 앞에서 박수를 받으며 직접 연설했던 김일성 때와는 달리, 청중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 가운데 다소 어색한 박수소리가 삽입돼 있는 김정은의 신년사.

형식은 할아버지를 따라했지만, 시선과 몸짓은 불안하고 부자연스러웠다.

그러나 빠르게 자신의 체제를 완성해 가면서 신년사를 발표하는 김정은의 모습에도 점차 익숙함과 자신감이 엿보인다는 평가다.

이를 반영하듯 내용 면에서도 선대에 대한 의존도가 확연히 줄었고, 또, 지난해부터 김정은의 성과를 언급할 때 관련 자료 화면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것도 눈에 띄는 변화다.

<녹취> 김정은(2017년 신년사) : “첫 수소탄 시험과 각이한 공격 수단들의 시험 발사, 핵탄두 폭발 시험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었으며...”

‘강성대국’, ‘경제강국’ 등 각 분야 성과에 대한 자화자찬 일색인 신년사.

그 평가는 제대로 이루어진 것이며, 실제 정책 달성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녹취> 김정은(2013년 신년사) : “경제관리방법을 끊임없이 개선하고 완성해 나가며...”

<녹취> 김정은(2015년 신년사) : “우리식 경제관리방식을 확립하기 위한 사업을 적극적으로 내밀어...”

<녹취> 김정은(2016년 신년사) :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을 전면적으로 확립하기 위한 사업을 적극 조직전개하여...”

사회주의 계획경제에 시장경제 요소를 일부 도입했던 이른바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을 줄곧 강조해 온 김정은.

그러나 올 해는 그 내용이 슬그머니 사라진 채 경제강국을 건설했다는 자화자찬만 늘어놓았을 뿐, 구체적인 평가도, 정책 제시도 없었다.

<녹취> 김정은(2017년 신년사) : “생산과 수송 전투 목표를 수행해 자립경제의 잠재력을 과시하고 사회주의경제강국건설을 힘 있게 추동하였습니다.”

<인터뷰> 조봉현(IBK경제연구소 부소장) : “2017년도 신년사에서 북한 경제 파트는 한마디로 평가한다고 하면 알맹이 없는 신년사였다, 이렇게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북한의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이 제대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실제적으로 경제 운영방식만 바꿔서 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국가가 초기에는 거기에 대한 공급을 해줘야 되는데, 초기에 북한이 그에 대한 능력 자체가 없다 보니까 구호만 거창하게 제시했지 실질적인 성과는 도출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김정은의 육성신년사에 기대를 걸었던 주민들도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인터뷰> 최수향(2014년 탈북) : “2013년 신년사에서 김정은이가 많이 강조했던 부분이 주민들의 먹는 문제를 해결해야 된다고 했었거든요. 그런데 주민들이 먹는 문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잖아요. 그러면 관심이 있다면 국방비를 좀 줄인다든가, 핵 개발에 쓰는 돈을 좀 돌린다든가... (사람들이) 신년사 때 기대와는 정 반대다 라고 표현을 하고 있죠.”

국제적인 고립 상황과 계속되는 경제난을 의식한 듯 김정은은 올해 신년사에서 유독 ‘자력자강’과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을 강조했다.

<녹취> 김정은(2017년 신년사) : “우리는 자력자강의 위력으로 5개년 전략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전민 총돌격전을 힘차게 벌려야 합니다.”

탄광 안에서 신년사를 읽으며 목표량을 채우기 위해 벽두부터 채굴에 내몰리는 광부들.

농업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없는 거름을 만들어 내느라 낙엽을 모으고 화장실의 배설물까지 긁어모은다는 주민들.

김정은의 신년사를 관철하기 위해 주민들은 또다시 노력동원에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인터뷰> 조봉현(IBK경제연구소 부소장) : “현재 북한 내에서 스스로 이러한 경제문제를 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노력 동원밖에 없습니다. 자원도 없고 재원도 없는 상태에서 결국은 주민들을 강제로 동원해가지고 경제의 어떤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서 역점을 둘 것으로 예상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작년도에 두 차례에 걸친 이러한 노력 동원을 통해서 오히려 주민들은 피로감만 증대되고 당국에 대한 불만만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2017년 올해도 또 다시 노력 동원 한다고 하면 그것이 오히려 주민들의 불만을 고조시킬 것으로 예상이 되고 있습니다.”

지난 해 신년사에서 김정은은 핵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불과 닷새 뒤 핵실험을 강행했다.

북한 신년사 분석에 대한 ‘무용론’까지 제기됐던 대목.

하지만 전문가들은 그럼에도 신년사에 대한 더욱 신중하고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인터뷰> 조봉현(IBK경제연구소 부소장) : “신년사의 그 내용을 보면 북한의 대외관계, 그다음에 대남관계, 북한 내의 경제 정책에 어떤 고민을 하고 있고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가에 대한 메시지를 우리가 읽을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북한의 신년사들을 우리가 철저하게 분석을 해가지고 북한의 도발에 대해서 철저하게 대응하고 북한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갈 수 있도록 국제사회와 협력해서 북한을 압박과 대화를 병행해나가는 이런 어떤 전략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이 됩니다.”

북한의 한 해를 여는 정책 청사진, 신년사.

선전성이 강한 그 내용만으로 북한의 정책 방향을 전망한다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다.

그러나 독재국가의 최고지도자의 주요 관심사를 육성으로 확인하고, 대응 전략을 고려하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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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로즈업북한] 독재자의 한 해 청사진…北 신년사
    • 입력 2017-01-14 08:36:01
    • 수정2017-01-14 09:10:21
    남북의 창
<앵커 멘트>

앞서 <이슈앤한반도> 코너에서 보셨지만, 김정은은 올해 신년사에서 ICBM 위협 카드를 흔들며 향후 북미관계 판짜기를 시도했는데요.

이처럼 북한의 신년사는 북한의 정책 방향과 대외 전략이 담긴 독재자의 한해 청사진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상대방을 기만하고 압박하는 선전 수단이기 때문에 신중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클로즈업 북한> 이번 주에는 북한 최고지도자의 신년사를 어떻게 봐야하는지, 또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해왔는지 심층 분석했습니다.

<리포트>

지난 5일 평양, 수많은 인파가 김일성 광장을 가득 메웠다.

곳곳에 내걸린 대형 선전화와 선전문구 아래 구호를 외치는 주민들.

<녹취> "올해 신년사에서 제시하신 강령적 과업을 철저히 관철하자!"

<녹취> "관철하자! 관철하자!"

청년과 지식인, 여성 등 각계를 대표하는 참가자들이 최고지도자 김정은의 신년사를 충실히 이행하자며 결의를 다지는 대규모 군중대회다.

주석단에는 최룡해 당 중앙위 부위원장 등 핵심 간부들이 총출동했다.

<녹취> 김수길(평양시당위원회 위원장) : “경애하는 최고 영도자 동지 신년사를 무한한 격정 속에 받아 안은 수도의 일꾼들과 당원들과 근로자들은 필승의 신심과 낙관에 넘쳐 더 큰 승리를 안아오기 위한 새 행군 길에 또 다시 떨쳐나섰습니다.”

대형 현수막과 깃발, 선전 문구들을 든 참가자들의 일사불란한 행진은 해질 무렵까지 이어졌다.

이 같은 대규모 군중대회와 크고 작은 궐기모임은 수도 평양을 시작으로 북한 전역에서 며칠간 계속됐다.

해마다 1월이면 신년사 내용을 숙지하는 각종 ‘학습 모임’도 진행된다.

<녹취> 조선중앙TV(지난 10일) : "기계공업성에서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 동지의 신년사 학습열풍을 세차게 일으키고 있습니다."

각 기관과 기업, 학교 등에 모여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신년사를 옮겨 적고 필기까지 해가며 공부하는 사람들.

북한 당국은 심지어 신년사 전문 암송을 독려하고 잘 외운 사람을 모범으로 추켜세우며 선전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약 30분 분량의 신년사를 모조리 외우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인터뷰> 최수향(2014년 탈북) : “신년사가 나오면 그걸 토씨 하나도 틀리지 않게 외워야 하는데, 그러면 그 시간 내에 다 외우지 못하니까 그 자리에서 뜰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러면 내가 해야 되는 임무가 있는데, 그 과제가 계속 밀려나가는 거죠. 거의 2월, 3월까지는 신년사에 계속 매달려서 살아야 했던 것 같습니다.”

1946년, 김일성이 ‘신년을 맞으며 전국 인민들에게 고함’이라는 제목으로 연설하면서 시작된 북한의 신년사.

이는 당·정·군이 한 해 동안 추진해야 할 주요 정책이자 반드시 관철시켜야 하는 최고 권력자의 교시로 여겨져 왔다.

<인터뷰> 정성장(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 : “북한은 우리하곤 다른 집단주의 체제입니다. 신년사는 한 해의 목표를 제시하는 그런 기능도 있지만, 또한 주민을 통제하는 기능도 갖고 있다... 그래서 신년사가 발표가 되면 신년사 내용을 학습하고, 또 각기 자기 분야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 토론을 하고. 이게 일종의 연례행사화 돼 있습니다.”

실제 김일성은 1994년 사망한 바로 그 해까지 무려 50년 가까이, 거의 해마다 육성 신년사를 했을 만큼 신년사를 중요시했다.

북한의 정치, 경제, 군사 분야 뿐 아니라 대남, 대외관계를 망라하는 신년사에선 당시 북한이 처한 상황과 그에 대한 최고권력자의 생각도 엿볼 수 있다.

<녹취> KBS 뉴스9(1990년 9월 30일) : “두 나라가 수교하게 되면 한국과 소련은 구한말인 지난 1904년 한러 통상조약 폐기 이후 86년 만에 양국 관계가 정상화 되는 것입니다.”

1980년대 말 공산권의 붕괴와 1990년 10월 독일의 통일을 지켜봤던 김일성.

석 달 뒤, 그의 신년사에는 흡수통일에 대한 두려움과 한국의 북방외교에 대한 수세적인 인식이 그대로 드러난다.

<녹취> 김일성(1991년 신년사) : “최근 다른 나라의 흡수통합 방식에 현혹된 남조선 당국자들은 북방정책을 내걸고 청탁외교를 벌이면서 남의 힘을 빌어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방식을 실현해보려는 어리석은 꿈을 꾸고 있습니다.”

국민적 기대 속에 문민정부가 출범했던 1993년.

<녹취> 김영삼 대통령(취임사/1993년 2월) : “김일성 주석에게 말합니다. 우리는 진심으로 서로 협력할 자세를 갖추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그 해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 NPT 탈퇴 선언으로 한반도는 ‘1차 북핵 위기’를 맞는다.

북·미 간 신경전이 최고조에 달했던 한 해를 보낸 뒤, 김일성은 이듬에 신년사에서 한국 정부에 노골적인 비난을 쏟아낸다.

<녹취> 김일성(1994년 신년사) : “남조선 당국자들은 외세에 야합하여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는 대규모 군사연습을 빈번히 벌리고, 우리의 핵 문제를 구실로 군사적 대응이니 국제 공조식이니 하면서 북남 관계를 위험한 국면에 몰아넣고 있습니다. 남조선의 이러한 이른바 문민정권이란 허울뿐이고 실제로는 역대 군부독재정권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김일성 사망 후 육성 신년사는 20년 가까이 자취를 감췄다.

후계자 김정일은 집권 기간 내내 <노동신문>과 <조선인민군>, <청년전위> 3개 신문의 공동 사설 형식으로 신년사를 발표했다.

2000년 1차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역사적인 이벤트가 있었던 이듬해에도 ‘은둔의 지도자’김정일은 직접 나서지 않았다.

<녹취> 2001년 신년사(아나운서 대독) : “지난해에는 조국통일위업 수행에서 새로운 전환적 국면이 열린 뜻깊은 해였다. 역사적인 평양 상봉이 마련되고, 6.15 북남공동선언이 발표되어 온 삼천리강토가 통일의 열기로 들끓게 되었다.”

<인터뷰> 정성장(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 : “북한의 신년사는 사회주의 국가, 특히 소련에서 매년 했던 신년사를 모방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정일의 경우에는 주민들에게 직접 노출되는 걸 상당히 꺼려했고, 자신을 신비화함으로써 주민들하고 차별화하는 그런 전략을 추구했기 때문에 직접 방송에 나가서 신년사를 발표하거나 그런 사례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육성 신년사는 김정은이 집권하며 다시 시작됐다.

2013년 1월 1일, 19년 만에 방송을 통해 직접 신년사를 발표한 김정은.

전문가들은 이것 역시 ‘할아버지 따라하기’의 일환이라고 입을 모은다.

<인터뷰> 최수향(2014년 탈북) : “처음 딱 접했을 때 김일성이 하고 똑같다, 이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나와서 연설을 하는데 여러 가지 제스처를 보니까 김일성이 연단에 서서 연설을 할 때 그 제스처와 비슷한 겁니다. 그래가지고 아, 김일성이하고 거의 비슷하다 하는 느낌을 받으면서 어떤 큰 변화가 있지 않을까 이런 기대감도 컸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청중들 앞에서 박수를 받으며 직접 연설했던 김일성 때와는 달리, 청중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 가운데 다소 어색한 박수소리가 삽입돼 있는 김정은의 신년사.

형식은 할아버지를 따라했지만, 시선과 몸짓은 불안하고 부자연스러웠다.

그러나 빠르게 자신의 체제를 완성해 가면서 신년사를 발표하는 김정은의 모습에도 점차 익숙함과 자신감이 엿보인다는 평가다.

이를 반영하듯 내용 면에서도 선대에 대한 의존도가 확연히 줄었고, 또, 지난해부터 김정은의 성과를 언급할 때 관련 자료 화면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것도 눈에 띄는 변화다.

<녹취> 김정은(2017년 신년사) : “첫 수소탄 시험과 각이한 공격 수단들의 시험 발사, 핵탄두 폭발 시험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었으며...”

‘강성대국’, ‘경제강국’ 등 각 분야 성과에 대한 자화자찬 일색인 신년사.

그 평가는 제대로 이루어진 것이며, 실제 정책 달성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녹취> 김정은(2013년 신년사) : “경제관리방법을 끊임없이 개선하고 완성해 나가며...”

<녹취> 김정은(2015년 신년사) : “우리식 경제관리방식을 확립하기 위한 사업을 적극적으로 내밀어...”

<녹취> 김정은(2016년 신년사) :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을 전면적으로 확립하기 위한 사업을 적극 조직전개하여...”

사회주의 계획경제에 시장경제 요소를 일부 도입했던 이른바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을 줄곧 강조해 온 김정은.

그러나 올 해는 그 내용이 슬그머니 사라진 채 경제강국을 건설했다는 자화자찬만 늘어놓았을 뿐, 구체적인 평가도, 정책 제시도 없었다.

<녹취> 김정은(2017년 신년사) : “생산과 수송 전투 목표를 수행해 자립경제의 잠재력을 과시하고 사회주의경제강국건설을 힘 있게 추동하였습니다.”

<인터뷰> 조봉현(IBK경제연구소 부소장) : “2017년도 신년사에서 북한 경제 파트는 한마디로 평가한다고 하면 알맹이 없는 신년사였다, 이렇게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북한의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이 제대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실제적으로 경제 운영방식만 바꿔서 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국가가 초기에는 거기에 대한 공급을 해줘야 되는데, 초기에 북한이 그에 대한 능력 자체가 없다 보니까 구호만 거창하게 제시했지 실질적인 성과는 도출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김정은의 육성신년사에 기대를 걸었던 주민들도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인터뷰> 최수향(2014년 탈북) : “2013년 신년사에서 김정은이가 많이 강조했던 부분이 주민들의 먹는 문제를 해결해야 된다고 했었거든요. 그런데 주민들이 먹는 문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잖아요. 그러면 관심이 있다면 국방비를 좀 줄인다든가, 핵 개발에 쓰는 돈을 좀 돌린다든가... (사람들이) 신년사 때 기대와는 정 반대다 라고 표현을 하고 있죠.”

국제적인 고립 상황과 계속되는 경제난을 의식한 듯 김정은은 올해 신년사에서 유독 ‘자력자강’과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을 강조했다.

<녹취> 김정은(2017년 신년사) : “우리는 자력자강의 위력으로 5개년 전략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전민 총돌격전을 힘차게 벌려야 합니다.”

탄광 안에서 신년사를 읽으며 목표량을 채우기 위해 벽두부터 채굴에 내몰리는 광부들.

농업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없는 거름을 만들어 내느라 낙엽을 모으고 화장실의 배설물까지 긁어모은다는 주민들.

김정은의 신년사를 관철하기 위해 주민들은 또다시 노력동원에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인터뷰> 조봉현(IBK경제연구소 부소장) : “현재 북한 내에서 스스로 이러한 경제문제를 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노력 동원밖에 없습니다. 자원도 없고 재원도 없는 상태에서 결국은 주민들을 강제로 동원해가지고 경제의 어떤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서 역점을 둘 것으로 예상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작년도에 두 차례에 걸친 이러한 노력 동원을 통해서 오히려 주민들은 피로감만 증대되고 당국에 대한 불만만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2017년 올해도 또 다시 노력 동원 한다고 하면 그것이 오히려 주민들의 불만을 고조시킬 것으로 예상이 되고 있습니다.”

지난 해 신년사에서 김정은은 핵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불과 닷새 뒤 핵실험을 강행했다.

북한 신년사 분석에 대한 ‘무용론’까지 제기됐던 대목.

하지만 전문가들은 그럼에도 신년사에 대한 더욱 신중하고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인터뷰> 조봉현(IBK경제연구소 부소장) : “신년사의 그 내용을 보면 북한의 대외관계, 그다음에 대남관계, 북한 내의 경제 정책에 어떤 고민을 하고 있고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가에 대한 메시지를 우리가 읽을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북한의 신년사들을 우리가 철저하게 분석을 해가지고 북한의 도발에 대해서 철저하게 대응하고 북한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갈 수 있도록 국제사회와 협력해서 북한을 압박과 대화를 병행해나가는 이런 어떤 전략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이 됩니다.”

북한의 한 해를 여는 정책 청사진, 신년사.

선전성이 강한 그 내용만으로 북한의 정책 방향을 전망한다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다.

그러나 독재국가의 최고지도자의 주요 관심사를 육성으로 확인하고, 대응 전략을 고려하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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