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북한] 北 우상화 성지 금수산태양궁전

입력 2017.02.25 (08:08) 수정 2017.02.2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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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앞서 김정남 암살 사건과 그의 아버지 김정일의 생일을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 소식 전해드렸는데요.

이 모든 것은 바로 독재자 김정은의 권위, 권력을 지키려는 의도와 관련이 있습니다.

김씨 일가 우상화 작업 역시 김정은 권위 세우기 작업의 일환인데요,

우상화의 가장 상징적인 건축물이 바로 금수산 태양궁전입니다.

클로즈업 북한, 이번 주는 북한 우상화의 상징, 금수산 태양궁전의 실체를 집중 분석했습니다.

<리포트>

사망한 김정일의 일흔 다섯번째 생일을 하루 앞둔 지난 15일.

육-해-공 북한군 장병들이 평양 금수산태양궁전 광장에 집결했다.

<녹취> 조선중앙TV(지난 15일) :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의 혁명승리와 불멸의 업적을 만대에 길이 빛내자! 빛내자! 빛내자! 빛내자!”

북한에선 ‘광명성절’이라 부르며 최대 명절로 치는 김정일의 생일을 자축하는 자리.

<녹취> 황병서(북한군 총정치국장) : “주체혁명위업의 최후 승리를 기어이 성취하겠다는 것을 태양민족의 최고 성지 금수산태양궁전에서 다시 한 번 굳게 맹세합니다.”

다음날 새벽 0시, 당·정·군의 고위 간부들을 이끌고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은 김정은.

<녹취> 조선중앙TV(지난 16일) : “경애하는 최고 영도자 동지께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와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의 입상이 모셔져있는 홀에 들어서셨습니다.”

김일성·김정일의 입상에 헌화하고 허리 숙여 참배한다.

김일성 부자의 시신이 안치된 영생홀을 비롯해 각종 유품과 생전 집무실까지 완벽하게 전시돼 있다.

김정은이 새해 첫날 일정을 시작하고 김일성·김정일의 생일, 북한군 창건일 등 주요 기념일마다 가장 먼저 방문하는 이곳 금수산태양궁전은 북한에서, 그리고 김정은에게 어떤 의미일까.

원래 김일성의 집무실이자 관저였던 이곳은 김일성의 65세 생일이던 1977년 ‘금수산의사당’으로 준공됐다.

1990년 제2차 남북고위급회담 때 우리 대표단이 이곳에서 김일성과 면담하는 등 주요 행사나 외부 손님들을 맞이하는 장소로도 활용됐다.

김정은의 역점사업으로 조성중인 려명거리가 한눈에 보이는 평양 최대 중심지로, 평양 순안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서며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물이기도 하다.

1994년, 김일성 사망과 함께 금수산의사당은 그의 시신을 안치하기 위한 장소로 용도가 바뀐다.

관저였던 곳을 실내 묘역으로 조성하기 위한 확장과 개조 공사는 1년 동안 불철주야 계속됐다.

<녹취> 北 기록영화 : “어버이 수령님을 영생의 모습으로 길이 모시는 세계사적 위업을 이룩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더 완벽하게 꾸리시기 위해 뜨거운 심혈을 기울이시며 정력적인 지도를 주셨습니다.”

화강암으로 외벽을 새롭게 단장하고 최고 지도자를 상징하는 장식물들이 곳곳에 배치됐다.

이름도 금수산기념궁전으로 바꿨고, 김일성의 입상을 세운 홀과 시신이 안치된 영생홀, 훈장 보관실 등도 새롭게 만들어졌다.

실내에 자동보도까지 설치하고 광장에서 본관까지 연결되는 전차도 운행을 시작했다.

특히 김정일은 아버지 김일성을 미라로 만들기 위해 레닌의 시신 보존 작업을 맡았던 러시아 기술자들을 평양으로 직접 초청했다고 한다.

이후 금수산기념궁전은 주민들과 국빈, 외신 등에 자주 공개되며 북한의 대표 건축물로 자리매김한다.

화려한 궁전 건설엔 북한 주민들의 희생이 뒤따랐다.

<인터뷰> 김일국(전 ‘노동당 39호실’ 근무/2015년 탈북) : “5, 6만에서 많게는 유동적으로는 거의 10만 명까지도 작업 동원을 한 것 같아요. 어린 아이부터 시작해서 공장기업소, 돈 있는 사람은 돈으로, 그리고 정말 자기 집의 것을 물질적으로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은 내놓고 그런 식으로... 다 인민들 착취해서 건설한 거라고 볼 수 있겠죠. ”

금수산기념궁전 공사가 한창이던 1990년대 후반은 북한이 ‘고난의 행군’으로 불리는 최악의 경제난을 맞고 있던 시기.

김정일은 식량난을 해결하는 대신 최소 수천억원으로 추산되는 비용을 쏟아부어 기념궁전을 건설한 것이다.

<인터뷰> 조한범(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96년, 98년의 경우에는 사실 실질적으로 아사자가 발생했던 시기입니다. 그러면 그 시기는 사실은 김정일이 위기를 대처하기 위해서 경제를 재건해야 되는데 그럴 여력이나 능력도 없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두 가지 방법을 사용을 합니다. 한쪽은 공포정치, 또 한쪽은 이데올로기적인 상징성의 강화입니다. 거대한 상징물들에 투자를 하면서 이데올로기적인 구심점을 만들려고 한 거죠. 그러니까 매우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인민들의 고혈을 쥐어짜서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이었고...”

<녹취> 조선중앙TV(2011년 12월) :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께서 정신·육체적 과로로 하여 열차에서 순직하시였다.”

김정일의 사망과 함께 금수산기념궁전은 또다시 대대적인 정비에 들어간다.

기념실 규모를 넓히고 김일성과 김정일이 생전에 사용했던 물품을 전시한 기념실도 새로 단장했다.

특히 김정일의 사적보존실에는 열차도 있다.

김정일이 사망했다고 북한 TV가 보도한 그 열차다.

생전에 타고 다니던 자동차와 전동차, 선박들을 모두 가져다 전시했고 집무실까지 완벽하게 재현했다.

<녹취> 北 기록영화 : “어버이장군님께서 이용하셨던 사적열차와 승용차, 전동차, 배를 금수산태양궁전에 보존하도록 하시고 그를 위한 온갖 조치를 다 취해주시었습니다.”

채색을 한 김일성과 김정일의 입상을 나란히 세우고, 광장 역시 서양식 공원으로 조성해 주민들에게 개방했다.

<인터뷰> 김일국(전 ‘노동당 39호실’ 근무/2015년 탈북) : “김정은이가 인테리어 광이에요. 건설·인테리어, 이쪽, 디자인에 꽤 나름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인테리어는 좀 화려해졌어요. 정말 금박도 좀 하고 그리고 대리석들도 다 약간 색이 들어가게 컬러풀하게 하고 유럽에서 다 묘목 하나하나 다 돈 주고 사간 거로 알고 있습니다.”

김정일의 시신 역시 영구 보존 절차에 들어갔고, 금수산태양궁전으로 명칭도 바꿔 2012년 12월 김정일 사망 1년을 맞아 재개관한다.

재개관 다음해인 2013년엔 금수산태양궁전의 보호와 관리를 법제화하기까지 했다.

<녹취> 조선중앙TV(2013년 4월)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금수산태양궁전법을 채택함에 대하여가 대의원 전원 찬성으로 채택됐습니다.”

<인터뷰> 최경희(한양대 현대한국연구소 연구위원) : “금수산태양궁전법은 북한에서는 ‘영생법전’이라고 말을 합니다. 영생법전이라는 것은 어떤 환경의 변화와 조건이 바뀌어도 이제 전혀 변하지 않고 영원히 존재한다는 내용인데요. 사실상 수령과 조국을 일치시키고, 수령과 국가를 일치시키고, 그리고 또 수령과 민족을 일치시키면서, 수령이 없으면 국가와 민족이 없다는 이런 교육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이런 우상화 작업을 통해 북한 정권이 노리는 것은 무엇일까.

<인터뷰> 김일국(전 ‘노동당 39호실’ 근무/2015년 탈북) : “우리는 흔히 김정일이, 김일성이 어디에서 일을 보고 어디서 자는지 알 수 없잖아요. 그런데 그곳이 그의 집무실이었고, 그의 집이었다고 어느 날 오픈을 해놓고 보여주니까 참 신비롭죠. 제가 북한 사람으로 살았을 때는 그냥 신비한 곳, 누구나 다 가지 못하는 곳에 내가 간다... 정말 심장이 뛰기도 했어요. 그러니까 그만큼 세뇌, 내가 세뇌됐다는 거예요.”

지도자의 시신을 영구 보존하는 것은 비단 북한만의 일은 아니다.

구 소련의 레닌을 필두로 스탈린, 마오쩌둥 등 많은 사회주의 국가들이 우상화를 목적으로 지도자의 시신을 미라화 했다.

그러나 북한처럼 2대에 걸쳐 시신을 영구 보존하고 묘지를 궁전화하기까지 한 경우는 유례를 찾기 힘들다.

<인터뷰> 조한범(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역사를 통틀어서 사회주의건 자본주의건 지도자를 우상화하는 사례는 많이 있었어요. 그러나 북한처럼 3대에 걸쳐서 정권이 세습이 되고 그리고 우상화를 넘어서 지도자를 신격화하는 유사 종교의 수준에 도달한 것은 북한이 유일합니다. 정치적 상징의 우상화에 가장 극단적인 모습을 북한이 보이고 있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지난해 36년만에 열린 제 7차 노동당 대회.

김정은의 대관식이던 이 당대회를 통해 3대 권력 세습은 어느 정도 완성된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북한이 선전하는 위대한 지도자로서의 ‘권위’는 뒤따르지 않은 상황.

이 때문에 ‘백두혈통’에서 권위를 찾아려는 김정은이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우상화에 더욱 매달리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인터뷰> 최경희(한양대 현대한국연구소 연구위원) : “정치 권위는 사실 시간과 업적이 두 가지 요소가 이제 구성되어 있는데요. 김정은 같은 경우는 시간이 빈부합니다. 그리고 그동안 시간이 짧았기 때문에 업적도 전무했습니다. 해서 두 가지 요소를 다 충족시키려면 아마도 할아버지 김일성과 김정일에 시간과 업적 위에 김정은의 권위체계를 세워야 아마도 효과적이지 않을까 이런 판단을 한 것 같습니다. 인민들이 함께 김일성과 김정일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이런 의식을 고취시키면 김정은에 대한 복종심은 더 높아지는 거죠.”

최근에도 김정일의 고향으로 선전하고 있는 삼지연 개발에 힘을 쏟는 등 곳곳에서 김씨 일가 우상화 작업이 한창이다.

<인터뷰> 조한범(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지금 금수산태양궁전 뿐만이 아니고요. 전국 각지에 김정일, 김일성을 우상화 하는 상징물들이 너무나 많아요. 심지어는 미술 작품부터 모자이크, 대규모 초상까지. 근데 이것을 보호하고 유지하는 게 비용이 막대하게 들어갑니다. 심지어 북한군의 가장 큰 임무가 전쟁이 아니고 바로 김일성, 김정일의 상징물들, 조형물들, 미술 작품들을 보호하는 일들이에요. 그렇다고 본다면 북한이 국가적인 재정을 들여서 김일성, 김정일의 상징물들을 보호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렇게 볼수 있죠. 반면에 그만큼 국가 재정으로 인해서 인민들의 고통은 커지고 있다, 이렇게 볼 수 있어요.”

짧은 후계과정을 거친 젊은 독재자 김정은에게 카리스마나 권위는 처음부터 얻기 힘든 것이다.

이 때문에 혈통의 권위에 기대기 위해 쌓아올린 금수산태양궁전.

하지만 주민들의 자발적 동의가 아닌 희생 위에 세운 우상화의 성전은 사상누각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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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로즈업 북한] 北 우상화 성지 금수산태양궁전
    • 입력 2017-02-25 08:21:43
    • 수정2017-02-25 08:3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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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앞서 김정남 암살 사건과 그의 아버지 김정일의 생일을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 소식 전해드렸는데요.

이 모든 것은 바로 독재자 김정은의 권위, 권력을 지키려는 의도와 관련이 있습니다.

김씨 일가 우상화 작업 역시 김정은 권위 세우기 작업의 일환인데요,

우상화의 가장 상징적인 건축물이 바로 금수산 태양궁전입니다.

클로즈업 북한, 이번 주는 북한 우상화의 상징, 금수산 태양궁전의 실체를 집중 분석했습니다.

<리포트>

사망한 김정일의 일흔 다섯번째 생일을 하루 앞둔 지난 15일.

육-해-공 북한군 장병들이 평양 금수산태양궁전 광장에 집결했다.

<녹취> 조선중앙TV(지난 15일) :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의 혁명승리와 불멸의 업적을 만대에 길이 빛내자! 빛내자! 빛내자! 빛내자!”

북한에선 ‘광명성절’이라 부르며 최대 명절로 치는 김정일의 생일을 자축하는 자리.

<녹취> 황병서(북한군 총정치국장) : “주체혁명위업의 최후 승리를 기어이 성취하겠다는 것을 태양민족의 최고 성지 금수산태양궁전에서 다시 한 번 굳게 맹세합니다.”

다음날 새벽 0시, 당·정·군의 고위 간부들을 이끌고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은 김정은.

<녹취> 조선중앙TV(지난 16일) : “경애하는 최고 영도자 동지께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와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의 입상이 모셔져있는 홀에 들어서셨습니다.”

김일성·김정일의 입상에 헌화하고 허리 숙여 참배한다.

김일성 부자의 시신이 안치된 영생홀을 비롯해 각종 유품과 생전 집무실까지 완벽하게 전시돼 있다.

김정은이 새해 첫날 일정을 시작하고 김일성·김정일의 생일, 북한군 창건일 등 주요 기념일마다 가장 먼저 방문하는 이곳 금수산태양궁전은 북한에서, 그리고 김정은에게 어떤 의미일까.

원래 김일성의 집무실이자 관저였던 이곳은 김일성의 65세 생일이던 1977년 ‘금수산의사당’으로 준공됐다.

1990년 제2차 남북고위급회담 때 우리 대표단이 이곳에서 김일성과 면담하는 등 주요 행사나 외부 손님들을 맞이하는 장소로도 활용됐다.

김정은의 역점사업으로 조성중인 려명거리가 한눈에 보이는 평양 최대 중심지로, 평양 순안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서며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물이기도 하다.

1994년, 김일성 사망과 함께 금수산의사당은 그의 시신을 안치하기 위한 장소로 용도가 바뀐다.

관저였던 곳을 실내 묘역으로 조성하기 위한 확장과 개조 공사는 1년 동안 불철주야 계속됐다.

<녹취> 北 기록영화 : “어버이 수령님을 영생의 모습으로 길이 모시는 세계사적 위업을 이룩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더 완벽하게 꾸리시기 위해 뜨거운 심혈을 기울이시며 정력적인 지도를 주셨습니다.”

화강암으로 외벽을 새롭게 단장하고 최고 지도자를 상징하는 장식물들이 곳곳에 배치됐다.

이름도 금수산기념궁전으로 바꿨고, 김일성의 입상을 세운 홀과 시신이 안치된 영생홀, 훈장 보관실 등도 새롭게 만들어졌다.

실내에 자동보도까지 설치하고 광장에서 본관까지 연결되는 전차도 운행을 시작했다.

특히 김정일은 아버지 김일성을 미라로 만들기 위해 레닌의 시신 보존 작업을 맡았던 러시아 기술자들을 평양으로 직접 초청했다고 한다.

이후 금수산기념궁전은 주민들과 국빈, 외신 등에 자주 공개되며 북한의 대표 건축물로 자리매김한다.

화려한 궁전 건설엔 북한 주민들의 희생이 뒤따랐다.

<인터뷰> 김일국(전 ‘노동당 39호실’ 근무/2015년 탈북) : “5, 6만에서 많게는 유동적으로는 거의 10만 명까지도 작업 동원을 한 것 같아요. 어린 아이부터 시작해서 공장기업소, 돈 있는 사람은 돈으로, 그리고 정말 자기 집의 것을 물질적으로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은 내놓고 그런 식으로... 다 인민들 착취해서 건설한 거라고 볼 수 있겠죠. ”

금수산기념궁전 공사가 한창이던 1990년대 후반은 북한이 ‘고난의 행군’으로 불리는 최악의 경제난을 맞고 있던 시기.

김정일은 식량난을 해결하는 대신 최소 수천억원으로 추산되는 비용을 쏟아부어 기념궁전을 건설한 것이다.

<인터뷰> 조한범(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96년, 98년의 경우에는 사실 실질적으로 아사자가 발생했던 시기입니다. 그러면 그 시기는 사실은 김정일이 위기를 대처하기 위해서 경제를 재건해야 되는데 그럴 여력이나 능력도 없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두 가지 방법을 사용을 합니다. 한쪽은 공포정치, 또 한쪽은 이데올로기적인 상징성의 강화입니다. 거대한 상징물들에 투자를 하면서 이데올로기적인 구심점을 만들려고 한 거죠. 그러니까 매우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인민들의 고혈을 쥐어짜서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이었고...”

<녹취> 조선중앙TV(2011년 12월) :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께서 정신·육체적 과로로 하여 열차에서 순직하시였다.”

김정일의 사망과 함께 금수산기념궁전은 또다시 대대적인 정비에 들어간다.

기념실 규모를 넓히고 김일성과 김정일이 생전에 사용했던 물품을 전시한 기념실도 새로 단장했다.

특히 김정일의 사적보존실에는 열차도 있다.

김정일이 사망했다고 북한 TV가 보도한 그 열차다.

생전에 타고 다니던 자동차와 전동차, 선박들을 모두 가져다 전시했고 집무실까지 완벽하게 재현했다.

<녹취> 北 기록영화 : “어버이장군님께서 이용하셨던 사적열차와 승용차, 전동차, 배를 금수산태양궁전에 보존하도록 하시고 그를 위한 온갖 조치를 다 취해주시었습니다.”

채색을 한 김일성과 김정일의 입상을 나란히 세우고, 광장 역시 서양식 공원으로 조성해 주민들에게 개방했다.

<인터뷰> 김일국(전 ‘노동당 39호실’ 근무/2015년 탈북) : “김정은이가 인테리어 광이에요. 건설·인테리어, 이쪽, 디자인에 꽤 나름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인테리어는 좀 화려해졌어요. 정말 금박도 좀 하고 그리고 대리석들도 다 약간 색이 들어가게 컬러풀하게 하고 유럽에서 다 묘목 하나하나 다 돈 주고 사간 거로 알고 있습니다.”

김정일의 시신 역시 영구 보존 절차에 들어갔고, 금수산태양궁전으로 명칭도 바꿔 2012년 12월 김정일 사망 1년을 맞아 재개관한다.

재개관 다음해인 2013년엔 금수산태양궁전의 보호와 관리를 법제화하기까지 했다.

<녹취> 조선중앙TV(2013년 4월)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금수산태양궁전법을 채택함에 대하여가 대의원 전원 찬성으로 채택됐습니다.”

<인터뷰> 최경희(한양대 현대한국연구소 연구위원) : “금수산태양궁전법은 북한에서는 ‘영생법전’이라고 말을 합니다. 영생법전이라는 것은 어떤 환경의 변화와 조건이 바뀌어도 이제 전혀 변하지 않고 영원히 존재한다는 내용인데요. 사실상 수령과 조국을 일치시키고, 수령과 국가를 일치시키고, 그리고 또 수령과 민족을 일치시키면서, 수령이 없으면 국가와 민족이 없다는 이런 교육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이런 우상화 작업을 통해 북한 정권이 노리는 것은 무엇일까.

<인터뷰> 김일국(전 ‘노동당 39호실’ 근무/2015년 탈북) : “우리는 흔히 김정일이, 김일성이 어디에서 일을 보고 어디서 자는지 알 수 없잖아요. 그런데 그곳이 그의 집무실이었고, 그의 집이었다고 어느 날 오픈을 해놓고 보여주니까 참 신비롭죠. 제가 북한 사람으로 살았을 때는 그냥 신비한 곳, 누구나 다 가지 못하는 곳에 내가 간다... 정말 심장이 뛰기도 했어요. 그러니까 그만큼 세뇌, 내가 세뇌됐다는 거예요.”

지도자의 시신을 영구 보존하는 것은 비단 북한만의 일은 아니다.

구 소련의 레닌을 필두로 스탈린, 마오쩌둥 등 많은 사회주의 국가들이 우상화를 목적으로 지도자의 시신을 미라화 했다.

그러나 북한처럼 2대에 걸쳐 시신을 영구 보존하고 묘지를 궁전화하기까지 한 경우는 유례를 찾기 힘들다.

<인터뷰> 조한범(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역사를 통틀어서 사회주의건 자본주의건 지도자를 우상화하는 사례는 많이 있었어요. 그러나 북한처럼 3대에 걸쳐서 정권이 세습이 되고 그리고 우상화를 넘어서 지도자를 신격화하는 유사 종교의 수준에 도달한 것은 북한이 유일합니다. 정치적 상징의 우상화에 가장 극단적인 모습을 북한이 보이고 있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지난해 36년만에 열린 제 7차 노동당 대회.

김정은의 대관식이던 이 당대회를 통해 3대 권력 세습은 어느 정도 완성된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북한이 선전하는 위대한 지도자로서의 ‘권위’는 뒤따르지 않은 상황.

이 때문에 ‘백두혈통’에서 권위를 찾아려는 김정은이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우상화에 더욱 매달리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인터뷰> 최경희(한양대 현대한국연구소 연구위원) : “정치 권위는 사실 시간과 업적이 두 가지 요소가 이제 구성되어 있는데요. 김정은 같은 경우는 시간이 빈부합니다. 그리고 그동안 시간이 짧았기 때문에 업적도 전무했습니다. 해서 두 가지 요소를 다 충족시키려면 아마도 할아버지 김일성과 김정일에 시간과 업적 위에 김정은의 권위체계를 세워야 아마도 효과적이지 않을까 이런 판단을 한 것 같습니다. 인민들이 함께 김일성과 김정일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이런 의식을 고취시키면 김정은에 대한 복종심은 더 높아지는 거죠.”

최근에도 김정일의 고향으로 선전하고 있는 삼지연 개발에 힘을 쏟는 등 곳곳에서 김씨 일가 우상화 작업이 한창이다.

<인터뷰> 조한범(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지금 금수산태양궁전 뿐만이 아니고요. 전국 각지에 김정일, 김일성을 우상화 하는 상징물들이 너무나 많아요. 심지어는 미술 작품부터 모자이크, 대규모 초상까지. 근데 이것을 보호하고 유지하는 게 비용이 막대하게 들어갑니다. 심지어 북한군의 가장 큰 임무가 전쟁이 아니고 바로 김일성, 김정일의 상징물들, 조형물들, 미술 작품들을 보호하는 일들이에요. 그렇다고 본다면 북한이 국가적인 재정을 들여서 김일성, 김정일의 상징물들을 보호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렇게 볼수 있죠. 반면에 그만큼 국가 재정으로 인해서 인민들의 고통은 커지고 있다, 이렇게 볼 수 있어요.”

짧은 후계과정을 거친 젊은 독재자 김정은에게 카리스마나 권위는 처음부터 얻기 힘든 것이다.

이 때문에 혈통의 권위에 기대기 위해 쌓아올린 금수산태양궁전.

하지만 주민들의 자발적 동의가 아닌 희생 위에 세운 우상화의 성전은 사상누각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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