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유 불법 거래했지?”…조폭 협박에 벌벌 떤 부산항

입력 2024.05.02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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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유선을 찾으며 돌아다니는 조직폭력배의 모습급유선을 찾으며 돌아다니는 조직폭력배의 모습

세계 7위 부산항… 기름 넣을 때만 나타나는 조폭

우리나라 최대 항만이자 지난해 세계 물동량 7위를 기록한 부산항. 이곳에는 악명 높은 조직폭력배들이 있습니다. 떴다 하면 선주나 선원들이 모두 숨어버리는 유명한 일당입니다.

이들이 노린 건 선박에 기름을 넣어 주는 '급유선'이었습니다. 육지에선 주유소에서 기름을 수급받지만, 바다에선 '급유선'을 통해 선박 기름을 공급받습니다. 그런데 기름만 넣는다 하면 갑자기 조직원들이 나타나 호스를 밟고 사진을 찍으며 협박을 시작했습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줬죠."
"거래처에서도 안 좋아하니까…."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피해 선주는 갑갑한 마음을 털어놨습니다. 조직폭력배들은 급유 중에 갑자기 나타나 "불법 해상유 거래를 한 사실을 알고 있다"며 해경에 신고한다고 으름장을 놨습니다. 바쁠 때 나타나서 대뜸 신고하겠다니 선주들은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런 적 없다"고 돌려보내려 해도 막무가내였습니다.

해경에 신고를 당하면 선주들은 머리가 아파집니다. 해경이 출동하면 당장 급유를 중단하고 현장 조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최대 5시간까지 영업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출항이 급한 건 둘째치고 거래처와의 관계까지 끊어질 위기에 놓일 수 있어서 선주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조직폭력배들에게 현금을 줘야 했습니다.

폭력배는 선박에 따라 적게는 50만 원, 많게는 4백만 원까지 갈취했습니다. 이런 범행은 2020년 3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3년 넘게 이어졌습니다.

전체 피해자는 26명, 피해액은 3억 원이 넘습니다. 하지만 경찰에 알리면 보복으로 계속 영업을 방해하니 신고조차 못 했습니다.

고층 건물서 실시간 감시…선주들은 속수무책

이들이 머물렀던 사무실. 부산항 전경이 훤히 보인다.이들이 머물렀던 사무실. 부산항 전경이 훤히 보인다.

폭력배의 신고를 받고 해경이 출동한 경우, 조사해도 불법 해상유를 판매한 정황은 물론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누명을 쓰고 협박을 당한 겁니다.

선주들이 협박을 피할 수 없었던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폭력배의 사무실은 부산항 4·5부두가 한눈에 보이는 고층 건물에 있었습니다. 사무실에 망원경과 카메라를 놓고 수시로 부산항에 정박한 배들을 관찰한 겁니다.

그러다가 기름을 넣는 낌새가 보인다 싶으면 곧장 부산항에 대기 중인 다른 조직원에게 연락을 취했습니다. 그러고는 배를 찾아다니며 협박을 한 겁니다. 실시간으로 빠르게, 조직적으로 움직이다 보니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조직폭력배는 가로챈 돈 대부분을 생활비와 유흥비로 탕진했습니다. 일부는 이 돈으로 마약을 유통하고, 투약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조직폭력배는 선주들에게 가로챈 돈으로 마약 유통과 투약까지 한 혐의를 받는다.조직폭력배는 선주들에게 가로챈 돈으로 마약 유통과 투약까지 한 혐의를 받는다.

보안 뚫린 부산항…총책 실형 선고

그런데 폭력 조직원들이 부산항을 활보하고 다니다니 어떻게 된 일일까. 부산항과 같은 무역항은 국가보안시설로 관리되고 있어 보안이 철저해야 합니다. 하지만 조직원들은 수시로 드나들었습니다.

알고 보니 출입 당시 '급유선 직원'이라고 속여서 들어간 거였습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별도 확인이나 구체적인 신분 검사 없이 통과된 게 문제였습니다. 4부두에서 공사가 진행 중이라 보안이 취약해진 탓도 있었습니다.

부산 동부경찰서는 지난해부터 수사를 계속해 조직폭력배 총책과 일당 등 모두 21명을 붙잡아 재판에 넘겼다고 밝혔습니다. 혐의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공동공갈)과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향정) 등입니다.

2020년 11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부산항에서 해상유를 공급하는 판매업자와 선주들을 협박해 145회에 걸쳐 3억 원을 갈취했다는 게 핵심 공소 사실입니다.

총책으로 기소된 50대 남성은 지난해 11월 1심에서 징역 2년 10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습니다.

수사는 일단락됐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있습니다. 가장 안전해야 할 국가보안시설, 부산항에서 선주들이 조폭에게 돈을 갈취당하며 불안에 떨었다는 겁니다.

경찰은 부산항 보안공사 측에 보안 관리 강화를 요청했고, 현재는 신분 확인 절차가 강화된 상태라고 설명했습니다. 경찰은 비슷한 범죄를 저지르는 일당이 또 있다고 보고 추가 수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사진제공: 부산 동부경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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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상유 불법 거래했지?”…조폭 협박에 벌벌 떤 부산항
    • 입력 2024-05-02 15:4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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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유선을 찾으며 돌아다니는 조직폭력배의 모습
세계 7위 부산항… 기름 넣을 때만 나타나는 조폭

우리나라 최대 항만이자 지난해 세계 물동량 7위를 기록한 부산항. 이곳에는 악명 높은 조직폭력배들이 있습니다. 떴다 하면 선주나 선원들이 모두 숨어버리는 유명한 일당입니다.

이들이 노린 건 선박에 기름을 넣어 주는 '급유선'이었습니다. 육지에선 주유소에서 기름을 수급받지만, 바다에선 '급유선'을 통해 선박 기름을 공급받습니다. 그런데 기름만 넣는다 하면 갑자기 조직원들이 나타나 호스를 밟고 사진을 찍으며 협박을 시작했습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줬죠."
"거래처에서도 안 좋아하니까…."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피해 선주는 갑갑한 마음을 털어놨습니다. 조직폭력배들은 급유 중에 갑자기 나타나 "불법 해상유 거래를 한 사실을 알고 있다"며 해경에 신고한다고 으름장을 놨습니다. 바쁠 때 나타나서 대뜸 신고하겠다니 선주들은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런 적 없다"고 돌려보내려 해도 막무가내였습니다.

해경에 신고를 당하면 선주들은 머리가 아파집니다. 해경이 출동하면 당장 급유를 중단하고 현장 조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최대 5시간까지 영업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출항이 급한 건 둘째치고 거래처와의 관계까지 끊어질 위기에 놓일 수 있어서 선주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조직폭력배들에게 현금을 줘야 했습니다.

폭력배는 선박에 따라 적게는 50만 원, 많게는 4백만 원까지 갈취했습니다. 이런 범행은 2020년 3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3년 넘게 이어졌습니다.

전체 피해자는 26명, 피해액은 3억 원이 넘습니다. 하지만 경찰에 알리면 보복으로 계속 영업을 방해하니 신고조차 못 했습니다.

고층 건물서 실시간 감시…선주들은 속수무책

이들이 머물렀던 사무실. 부산항 전경이 훤히 보인다.
폭력배의 신고를 받고 해경이 출동한 경우, 조사해도 불법 해상유를 판매한 정황은 물론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누명을 쓰고 협박을 당한 겁니다.

선주들이 협박을 피할 수 없었던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폭력배의 사무실은 부산항 4·5부두가 한눈에 보이는 고층 건물에 있었습니다. 사무실에 망원경과 카메라를 놓고 수시로 부산항에 정박한 배들을 관찰한 겁니다.

그러다가 기름을 넣는 낌새가 보인다 싶으면 곧장 부산항에 대기 중인 다른 조직원에게 연락을 취했습니다. 그러고는 배를 찾아다니며 협박을 한 겁니다. 실시간으로 빠르게, 조직적으로 움직이다 보니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조직폭력배는 가로챈 돈 대부분을 생활비와 유흥비로 탕진했습니다. 일부는 이 돈으로 마약을 유통하고, 투약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조직폭력배는 선주들에게 가로챈 돈으로 마약 유통과 투약까지 한 혐의를 받는다.
보안 뚫린 부산항…총책 실형 선고

그런데 폭력 조직원들이 부산항을 활보하고 다니다니 어떻게 된 일일까. 부산항과 같은 무역항은 국가보안시설로 관리되고 있어 보안이 철저해야 합니다. 하지만 조직원들은 수시로 드나들었습니다.

알고 보니 출입 당시 '급유선 직원'이라고 속여서 들어간 거였습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별도 확인이나 구체적인 신분 검사 없이 통과된 게 문제였습니다. 4부두에서 공사가 진행 중이라 보안이 취약해진 탓도 있었습니다.

부산 동부경찰서는 지난해부터 수사를 계속해 조직폭력배 총책과 일당 등 모두 21명을 붙잡아 재판에 넘겼다고 밝혔습니다. 혐의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공동공갈)과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향정) 등입니다.

2020년 11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부산항에서 해상유를 공급하는 판매업자와 선주들을 협박해 145회에 걸쳐 3억 원을 갈취했다는 게 핵심 공소 사실입니다.

총책으로 기소된 50대 남성은 지난해 11월 1심에서 징역 2년 10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습니다.

수사는 일단락됐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있습니다. 가장 안전해야 할 국가보안시설, 부산항에서 선주들이 조폭에게 돈을 갈취당하며 불안에 떨었다는 겁니다.

경찰은 부산항 보안공사 측에 보안 관리 강화를 요청했고, 현재는 신분 확인 절차가 강화된 상태라고 설명했습니다. 경찰은 비슷한 범죄를 저지르는 일당이 또 있다고 보고 추가 수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사진제공: 부산 동부경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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