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음 민원’ 낸 공사 현장에서 50대 가장 추락해 사망

입력 2021.12.15 (15:56) 수정 2021.12.15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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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모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제주시 모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

제주에서 아파트 공사 소음으로 고통을 호소하던 50대 택시 기사가 바로 그 공사 현장에서 추락해 숨을 거뒀다. 유족은 숨진 택시 기사가 1년간 공사 소음으로 정신적 고통을 겪었고 수 차례 민원을 제기해 오던 중에 발생한 사고라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 유족 측, "1년 동안 '공사장 소음' 고통 호소하다 사고로 숨져"

제주시 연동 모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 인근에 살던 박 씨는 지난 1년 동안 가족들에게 소음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해 왔다고 한다.

지난 10일 점심 무렵 박 씨는 공사 현장에 갔다가 7~8m 공사 현장 아래로 떨어지는 사고로 끝내 숨졌다. 경찰 조사결과에 따르면 박 씨는 사고 직전 공사 현장에 설치된 이동식 펜스를 넘어 안으로 들어갔다.

박 씨는 20년가량 택시 운전을 해 왔다. 박 씨의 아내는 "밤에 택시 운전을 하고 잠을 자야 하는데 아침부터 공사가 시작돼 계속해서 불면증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박 씨의 집과 신축 공사 현장은 걸어서 1분도 안되는 거리였다.

추락 사망 사고가 발생한 제주시 모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추락 사망 사고가 발생한 제주시 모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

박 씨는 점심을 먹고 오후에 출근해 새벽 2~3시까지 택시를 몰았다. 주간보다 야간 수입이 더 좋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 말부터 공사가 진행되면서 잠을 자지 못했고, 결국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유족은 평소 박 씨가 "퇴근 후 막걸리를 마시고 잠을 자곤 했다"며 "하지만 공사가 시작된 뒤 잠을 자지 못해 낮에도 술을 마셨고, 운전하지 않는 날이 늘어갔다"고 말했다.

박 씨는 제주시에 수차례 민원을 제기했지만, 소음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112, 119에도 수차례 민원 전화를 넣었고, 공사 현장에 가서 직접 민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지난 6월 박 씨가 사는 건물 계단에 나타난 균열지난 6월 박 씨가 사는 건물 계단에 나타난 균열

지난 6월에는 박 씨가 살던 4층짜리 건물 계단에 균열이 생기기도 했다. 문제를 제기하자 건설사 측이 보수 작업을 해줬지만, 근본적인 소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박 씨의 아내는 "어느 날 남편이 '정신병자가 될 것 같다'고 말한 적 있다. 그럴 때마다 진정을 시켰는데 결국 일이 벌어졌다"고 울먹였다.

박 씨는 올해 초 공사를 중단하라고 소리치며 철거 업체 포크레인에 돌을 던졌다가 재판에 넘겨져 90만 원의 벌금을 물기도 했다. 유족이 항의하자 현재 건설사 측이 벌금에 준하는 돈을 주기도 했고, 술에 취해 민원을 제기할 때마다 건설사 관계자가 박 씨를 몇 차례 집에 데려다주기도 했지만, 상태는 점점 악화했다.

박 씨의 아내는 "나도 마트 일을 하다 보니 낮잠을 자고 싶을 때 소음 때문에 잠을 청하지 못한 적이 있어 화를 낸 적이 있었다"며 "초기에는 오히려 남편이 나를 말렸다"고 말했다. 유족은 민원을 제기해도 들어주는 곳이 없었던 점을 힘들어했다고 덧붙였다.

추락 사망 사고가 발생한 제주시 모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추락 사망 사고가 발생한 제주시 모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

유족과 건설업체 측에 따르면, 박 씨는 사건 당일 건설업체 안전 담당자와 인근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이후 이날 점심쯤 한차례 공사 현장에 찾아가 민원을 제기했고, 이후 20여 분 뒤 재차 현장을 찾아가 이동식 펜스를 넘어 안으로 들어가 추락했다. 사고는 직원들이 제지하는 와중에 순식간에 벌어졌다.


■ 사고 당시 안전 펜스 제대로 설치됐다면…

인근 주민들은 사고 당시 펜스가 고정되지 않은 채 흩어져 있었고, 누구나 열고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허술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사장에 일반인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안전장치가 제대로 돼 있었다면 사고가 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사고 발생 20여분 전 공사 현장 모습.사고 발생 20여분 전 공사 현장 모습.

업체가 제주시에 제출한 안전관리계획서를 보면, 공사 현장의 가설 울타리의 높이는 '보통 사람의 신장에 따라 1.8m 이상으로 한다. 그러나 시가지에서는 3m 이상의 강제 담장으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명시돼 있다.

사고 당시 설치된 펜스는 1.5m가량으로, 성인 남성이 뛰어넘을 수 있는 높이였다. 업체 측은 사고가 발생한데 대해 유감을 표하며 안전 관리상에 문제는 없었다고 밝혔다.

업체 측은 가설 울타리를 해체해 복공판(차량이 지나다니는 발판)을 설치하고, 출입문으로 사용하기 위한 작업 중에 사고가 발생했다며 가설 울타리 기준과는 상관이 없다고 밝혔다.

또 이 과정에서 점심시간이 되자 1.5m 상당의 이동식 펜스를 설치하고 사람이 식별할 수 있는 접근금지 표시를 했다고 밝혔다. 추락 지점 부근에도 안전 로프를 설치해 임시조치를 했다고도 덧붙였다.

업체 측은 평소 숨진 박 씨가 수차례 술에 취해 공사 현장과 사무실을 방문할 때마다 직원들이 적극적으로 응대했지만, 사건이 발생해 안타깝다는 입장을 전했다.

또 박 씨의 집에 발생한 타일 균열 문제는 건물 시공의 문제로 파악됐지만, 민원 요청에 따라 보수를 해준 것이라고 밝혔다.

건설사가 제주시에 제출한 안전관리계획서에 적힌 ‘가설 울타리 안전시공 계획’건설사가 제주시에 제출한 안전관리계획서에 적힌 ‘가설 울타리 안전시공 계획’

사고 당일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과 고용노동부 근로지도개선센터가 현장 조사에 나섰다. 하지만 숨진 박 씨가 공사 현장 근로자가 아니어서 조사를 중단했다.

관리 감독 권한이 있는 제주시 주택과는 박 씨가 스스로 현장에 들어간 사안이기 때문에 별도의 조치를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제주시 환경지도과는 사고가 발생한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에 올해 81차례 방문했고, 8차례 소음을 측정한 결과 모두 기준치 이하로 나왔다고 밝혔다.

제주시 환경지도과 관계자는 "당시 현장에선 터파기 작업을 하며 파낸 암반을 잘게 깨 덤프 트럭에 싣는 작업을 했다"며 "덤프트럭과 출입문 사이가 좁아 트럭이 완전히 안으로 들어가기 어려워 방음 펜스가 열려있었고, 소음이 밖으로 새 나가는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소음을 줄이기 위해 트럭이 완전히 안으로 들어오도록 복공판 설치를 요청했는데, 소음이 전보다 줄지 않을까 하던 찰나에 사고가 발생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제주서부경찰서는 공사 관계자 등을 상대로 업무상 과실 여부가 있는지 등을 살펴보고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해 공사장과 층간소음 등 제주도에 접수된 소음 민원 건수는 1,845건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공사 중지나 사용금지 처분 등이 내려진 곳은 0건, 개선명령이 내려진 곳은 21건으로 나타났다.

공사장 소음에 대한 조정이나 구제 등을 받으려면 피해자가 제주도 환경분쟁조정위원회를 통해 민원을 제기하거나 소송을 진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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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2-15 15:56:24
    • 수정2021-12-15 16:4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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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모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
제주에서 아파트 공사 소음으로 고통을 호소하던 50대 택시 기사가 바로 그 공사 현장에서 추락해 숨을 거뒀다. 유족은 숨진 택시 기사가 1년간 공사 소음으로 정신적 고통을 겪었고 수 차례 민원을 제기해 오던 중에 발생한 사고라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 유족 측, "1년 동안 '공사장 소음' 고통 호소하다 사고로 숨져"

제주시 연동 모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 인근에 살던 박 씨는 지난 1년 동안 가족들에게 소음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해 왔다고 한다.

지난 10일 점심 무렵 박 씨는 공사 현장에 갔다가 7~8m 공사 현장 아래로 떨어지는 사고로 끝내 숨졌다. 경찰 조사결과에 따르면 박 씨는 사고 직전 공사 현장에 설치된 이동식 펜스를 넘어 안으로 들어갔다.

박 씨는 20년가량 택시 운전을 해 왔다. 박 씨의 아내는 "밤에 택시 운전을 하고 잠을 자야 하는데 아침부터 공사가 시작돼 계속해서 불면증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박 씨의 집과 신축 공사 현장은 걸어서 1분도 안되는 거리였다.

추락 사망 사고가 발생한 제주시 모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
박 씨는 점심을 먹고 오후에 출근해 새벽 2~3시까지 택시를 몰았다. 주간보다 야간 수입이 더 좋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 말부터 공사가 진행되면서 잠을 자지 못했고, 결국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유족은 평소 박 씨가 "퇴근 후 막걸리를 마시고 잠을 자곤 했다"며 "하지만 공사가 시작된 뒤 잠을 자지 못해 낮에도 술을 마셨고, 운전하지 않는 날이 늘어갔다"고 말했다.

박 씨는 제주시에 수차례 민원을 제기했지만, 소음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112, 119에도 수차례 민원 전화를 넣었고, 공사 현장에 가서 직접 민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지난 6월 박 씨가 사는 건물 계단에 나타난 균열
지난 6월에는 박 씨가 살던 4층짜리 건물 계단에 균열이 생기기도 했다. 문제를 제기하자 건설사 측이 보수 작업을 해줬지만, 근본적인 소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박 씨의 아내는 "어느 날 남편이 '정신병자가 될 것 같다'고 말한 적 있다. 그럴 때마다 진정을 시켰는데 결국 일이 벌어졌다"고 울먹였다.

박 씨는 올해 초 공사를 중단하라고 소리치며 철거 업체 포크레인에 돌을 던졌다가 재판에 넘겨져 90만 원의 벌금을 물기도 했다. 유족이 항의하자 현재 건설사 측이 벌금에 준하는 돈을 주기도 했고, 술에 취해 민원을 제기할 때마다 건설사 관계자가 박 씨를 몇 차례 집에 데려다주기도 했지만, 상태는 점점 악화했다.

박 씨의 아내는 "나도 마트 일을 하다 보니 낮잠을 자고 싶을 때 소음 때문에 잠을 청하지 못한 적이 있어 화를 낸 적이 있었다"며 "초기에는 오히려 남편이 나를 말렸다"고 말했다. 유족은 민원을 제기해도 들어주는 곳이 없었던 점을 힘들어했다고 덧붙였다.

추락 사망 사고가 발생한 제주시 모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
유족과 건설업체 측에 따르면, 박 씨는 사건 당일 건설업체 안전 담당자와 인근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이후 이날 점심쯤 한차례 공사 현장에 찾아가 민원을 제기했고, 이후 20여 분 뒤 재차 현장을 찾아가 이동식 펜스를 넘어 안으로 들어가 추락했다. 사고는 직원들이 제지하는 와중에 순식간에 벌어졌다.


■ 사고 당시 안전 펜스 제대로 설치됐다면…

인근 주민들은 사고 당시 펜스가 고정되지 않은 채 흩어져 있었고, 누구나 열고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허술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사장에 일반인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안전장치가 제대로 돼 있었다면 사고가 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사고 발생 20여분 전 공사 현장 모습.
업체가 제주시에 제출한 안전관리계획서를 보면, 공사 현장의 가설 울타리의 높이는 '보통 사람의 신장에 따라 1.8m 이상으로 한다. 그러나 시가지에서는 3m 이상의 강제 담장으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명시돼 있다.

사고 당시 설치된 펜스는 1.5m가량으로, 성인 남성이 뛰어넘을 수 있는 높이였다. 업체 측은 사고가 발생한데 대해 유감을 표하며 안전 관리상에 문제는 없었다고 밝혔다.

업체 측은 가설 울타리를 해체해 복공판(차량이 지나다니는 발판)을 설치하고, 출입문으로 사용하기 위한 작업 중에 사고가 발생했다며 가설 울타리 기준과는 상관이 없다고 밝혔다.

또 이 과정에서 점심시간이 되자 1.5m 상당의 이동식 펜스를 설치하고 사람이 식별할 수 있는 접근금지 표시를 했다고 밝혔다. 추락 지점 부근에도 안전 로프를 설치해 임시조치를 했다고도 덧붙였다.

업체 측은 평소 숨진 박 씨가 수차례 술에 취해 공사 현장과 사무실을 방문할 때마다 직원들이 적극적으로 응대했지만, 사건이 발생해 안타깝다는 입장을 전했다.

또 박 씨의 집에 발생한 타일 균열 문제는 건물 시공의 문제로 파악됐지만, 민원 요청에 따라 보수를 해준 것이라고 밝혔다.

건설사가 제주시에 제출한 안전관리계획서에 적힌 ‘가설 울타리 안전시공 계획’
사고 당일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과 고용노동부 근로지도개선센터가 현장 조사에 나섰다. 하지만 숨진 박 씨가 공사 현장 근로자가 아니어서 조사를 중단했다.

관리 감독 권한이 있는 제주시 주택과는 박 씨가 스스로 현장에 들어간 사안이기 때문에 별도의 조치를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제주시 환경지도과는 사고가 발생한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에 올해 81차례 방문했고, 8차례 소음을 측정한 결과 모두 기준치 이하로 나왔다고 밝혔다.

제주시 환경지도과 관계자는 "당시 현장에선 터파기 작업을 하며 파낸 암반을 잘게 깨 덤프 트럭에 싣는 작업을 했다"며 "덤프트럭과 출입문 사이가 좁아 트럭이 완전히 안으로 들어가기 어려워 방음 펜스가 열려있었고, 소음이 밖으로 새 나가는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소음을 줄이기 위해 트럭이 완전히 안으로 들어오도록 복공판 설치를 요청했는데, 소음이 전보다 줄지 않을까 하던 찰나에 사고가 발생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제주서부경찰서는 공사 관계자 등을 상대로 업무상 과실 여부가 있는지 등을 살펴보고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해 공사장과 층간소음 등 제주도에 접수된 소음 민원 건수는 1,845건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공사 중지나 사용금지 처분 등이 내려진 곳은 0건, 개선명령이 내려진 곳은 21건으로 나타났다.

공사장 소음에 대한 조정이나 구제 등을 받으려면 피해자가 제주도 환경분쟁조정위원회를 통해 민원을 제기하거나 소송을 진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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