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사육사 공격 호랑이 ‘로스토프’ 너의 운명은?

입력 2013.11.27 (16:43) 수정 2013.11.28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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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봄이었습니다. 봄날을 함께 즐길 여자친구가 없는 복학생들끼리 서울대공원을 찾았습니다. 이런저런 동물을 구경하던 중 동물원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감지했습니다. 사람들이 웅성웅성하며 모여 있고, 그들의 시선은 한 곳에 쏠려 있었습니다. 50미터쯤 앞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어린이가 물소한테 공격받고 있었던 겁니다. 차라리 보지 않았으면 좋았을 뻔했던 장면이었습니다.

그 사고가 일어난 지 10년 만에 다시 서울대공원에서 끔찍한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이제는 관람객이 아닌 기자로서 더 깊숙이 사고의 전후 상황을 들여다보게 됐으니, 동물원과의 인연이라면 인연이라고 해야 할까요.



많은 언론에서 지적하듯이 갖가지 의문과 아쉬움이 여전히 꼬리를 뭅니다. 호랑이 우리 확장 공사가 진행 중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호랑이를 좁은 여우 우리에 넣는 게 적절한 일일까. 20년 넘게 곤충 전문가로 일해온 사람을 갑자기 맹수를 다루도록 시키는 게 적절한 인사 조치일까. 2인 1조로 움직여야 한다는 원칙이 왜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것일까. 부상자를 속히 구출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호랑이가 버젓이 옆에 앉아 있는데 마취총 하나 없이, 변변한 안전장비도 없이 동료 직원들이 맨손으로 구조에 나선 것은 또 다른 위험을 자초하는 건 아니었을까.

이런 아쉬움도 아쉬움이지만, 다른 차원의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문제의 그 호랑이, 그러니까 2011년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선물했다는, 이름이 ‘로스토프’인 그 녀석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것일까 하는 궁금증 말이죠. 불행 중 다행인지 녀석은 경찰과 소방대원이 출동하자 제 발로 우리 안으로 들어갔고, 긴박했던 상황은 총 한 발 쏘지 않고 종료될 수 있었습니다. 이번 사고가 있기 일주일 전, 제주도의 한 동물원에서도 반달곰이 사육사를 공격해 숨지게 했는데, 그 때는 제압이 여의치 않아서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실탄을 쏴 곰을 사살했지요.

어떤 경우에 총을 쏘고, 어떤 경우에 총을 쏘지 말아야 하는가? 이에 관한 어떤 규정이나 지침이 서울대공원에는 없습니다. 내부 지침을 보면 인명 피해가 우려되는 급박한 상황에선 총을 쏴서 동물을 죽일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이번 경우처럼 상황이 종료된 이후 문제를 일으켰던 동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무런 지침이 없는 것이죠. 현장에서 그때그때 알아서 판단하라는 얘기입니다.



서울대공원은 이번 사고의 파장이나 시민들의 여론 등을 고려해 일단 ‘고민해보겠다’는 입장입니다. 외국의 사례를 참조하겠다고도 했고요. 외국의 동물원에서 사고를 일으킨 맹수가 이후 통제가 잘 되지 않아서 안락사 처리된 경우도 간혹 있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서울대공원 관계자는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문제를 일으킨 호랑이를 그렇게 죽이는 일이 부담스러운 것 또한 사실입니다. 서울대공원장은 사고 이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로스토프의 안락사를 반대한다고 조심스럽게 말한 바 있습니다. 서울대공원 관계자는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로스토프를 안락사시킬 경우 비난 여론이 아주 높아질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비판 말이죠.

전문가들도 비슷한 지적을 많이들 합니다. 한번 사고를 일으켰던 맹수가 야성을 더 키우게 된다는 얘기는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는데다 철창 안에서 생활해야 하기 때문에 추가 피해 우려가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거지요. 또 앞으로의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서울대공원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동물원 안전시설을 확충하고 사육사 안전교육을 강화하고 동물이 스트레스를 덜 받도록 환경을 개선하고, 이런 것들을 우선적으로 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이런 분위기를 종합해보면, 아무래도 로스토프가 안락사를 당할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로스토프가 안락사를 면한다 해도 이른 시일 안에 시민들을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서울대공원의 호랑이 관람이 중단됐기 때문입니다. 내년 초까지 호랑이 우리 확장 공사가 진행되는데 그 공사가 마무리돼야 관람객들이 호랑이를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호랑이 우리가 새 단장을 하더라도 로스토프가 모습을 드러낼지는 그때 가봐야 알 것 같습니다. 로스토프의 안락사를 반대하는 동물학자들 중에서도 사람을 해친 호랑이를 봐야 하는 시민들의 불편함을 감안해서 로스토프만큼은 전시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관람객 앞에 나설 수 없는 동물이라면 동물원 입장에서는 애물단지일 수 밖에 없을 텐데요, 로스토프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녀석은 이런 시끌벅적한 바깥 상황을 알고나 있으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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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사육사 공격 호랑이 ‘로스토프’ 너의 운명은?
    • 입력 2013-11-27 16:43:32
    • 수정2013-11-28 16:51:34
    취재후·사건후
2003년 봄이었습니다. 봄날을 함께 즐길 여자친구가 없는 복학생들끼리 서울대공원을 찾았습니다. 이런저런 동물을 구경하던 중 동물원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감지했습니다. 사람들이 웅성웅성하며 모여 있고, 그들의 시선은 한 곳에 쏠려 있었습니다. 50미터쯤 앞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어린이가 물소한테 공격받고 있었던 겁니다. 차라리 보지 않았으면 좋았을 뻔했던 장면이었습니다.

그 사고가 일어난 지 10년 만에 다시 서울대공원에서 끔찍한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이제는 관람객이 아닌 기자로서 더 깊숙이 사고의 전후 상황을 들여다보게 됐으니, 동물원과의 인연이라면 인연이라고 해야 할까요.



많은 언론에서 지적하듯이 갖가지 의문과 아쉬움이 여전히 꼬리를 뭅니다. 호랑이 우리 확장 공사가 진행 중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호랑이를 좁은 여우 우리에 넣는 게 적절한 일일까. 20년 넘게 곤충 전문가로 일해온 사람을 갑자기 맹수를 다루도록 시키는 게 적절한 인사 조치일까. 2인 1조로 움직여야 한다는 원칙이 왜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것일까. 부상자를 속히 구출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호랑이가 버젓이 옆에 앉아 있는데 마취총 하나 없이, 변변한 안전장비도 없이 동료 직원들이 맨손으로 구조에 나선 것은 또 다른 위험을 자초하는 건 아니었을까.

이런 아쉬움도 아쉬움이지만, 다른 차원의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문제의 그 호랑이, 그러니까 2011년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선물했다는, 이름이 ‘로스토프’인 그 녀석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것일까 하는 궁금증 말이죠. 불행 중 다행인지 녀석은 경찰과 소방대원이 출동하자 제 발로 우리 안으로 들어갔고, 긴박했던 상황은 총 한 발 쏘지 않고 종료될 수 있었습니다. 이번 사고가 있기 일주일 전, 제주도의 한 동물원에서도 반달곰이 사육사를 공격해 숨지게 했는데, 그 때는 제압이 여의치 않아서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실탄을 쏴 곰을 사살했지요.

어떤 경우에 총을 쏘고, 어떤 경우에 총을 쏘지 말아야 하는가? 이에 관한 어떤 규정이나 지침이 서울대공원에는 없습니다. 내부 지침을 보면 인명 피해가 우려되는 급박한 상황에선 총을 쏴서 동물을 죽일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이번 경우처럼 상황이 종료된 이후 문제를 일으켰던 동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무런 지침이 없는 것이죠. 현장에서 그때그때 알아서 판단하라는 얘기입니다.



서울대공원은 이번 사고의 파장이나 시민들의 여론 등을 고려해 일단 ‘고민해보겠다’는 입장입니다. 외국의 사례를 참조하겠다고도 했고요. 외국의 동물원에서 사고를 일으킨 맹수가 이후 통제가 잘 되지 않아서 안락사 처리된 경우도 간혹 있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서울대공원 관계자는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문제를 일으킨 호랑이를 그렇게 죽이는 일이 부담스러운 것 또한 사실입니다. 서울대공원장은 사고 이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로스토프의 안락사를 반대한다고 조심스럽게 말한 바 있습니다. 서울대공원 관계자는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로스토프를 안락사시킬 경우 비난 여론이 아주 높아질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비판 말이죠.

전문가들도 비슷한 지적을 많이들 합니다. 한번 사고를 일으켰던 맹수가 야성을 더 키우게 된다는 얘기는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는데다 철창 안에서 생활해야 하기 때문에 추가 피해 우려가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거지요. 또 앞으로의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서울대공원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동물원 안전시설을 확충하고 사육사 안전교육을 강화하고 동물이 스트레스를 덜 받도록 환경을 개선하고, 이런 것들을 우선적으로 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이런 분위기를 종합해보면, 아무래도 로스토프가 안락사를 당할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로스토프가 안락사를 면한다 해도 이른 시일 안에 시민들을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서울대공원의 호랑이 관람이 중단됐기 때문입니다. 내년 초까지 호랑이 우리 확장 공사가 진행되는데 그 공사가 마무리돼야 관람객들이 호랑이를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호랑이 우리가 새 단장을 하더라도 로스토프가 모습을 드러낼지는 그때 가봐야 알 것 같습니다. 로스토프의 안락사를 반대하는 동물학자들 중에서도 사람을 해친 호랑이를 봐야 하는 시민들의 불편함을 감안해서 로스토프만큼은 전시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관람객 앞에 나설 수 없는 동물이라면 동물원 입장에서는 애물단지일 수 밖에 없을 텐데요, 로스토프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녀석은 이런 시끌벅적한 바깥 상황을 알고나 있으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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