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아르메니아의 특별한 ‘한국 사랑’

입력 2016.11.01 (14:58) 수정 2016.11.01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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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남부,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의 산악지역을 카프카스, 영어로는 코카서스라고 부른다. 이곳에 인구 3백만 명의 작은 나라 아르메니아가 위치해 있다. 지난 10월 28일 아르메니아 수도 예레반에 있는 국립언어대학에서 '한국의 날' 행사가 열렸다. 이 대학에서 한국어 강의가 시작된 지 꼭 10년째를 맞아 열린 행사다.

예레반 국립언어대학 전경예레반 국립언어대학 전경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이 한국어 말하기 대회, 한국 전통문화 공연, 아르메니아 전통춤 공연 등을 통해 저마다 갈고닦은 기량들을 마음껏 뽐냈다. 300석 규모의 대강당에서 행사가 치러졌는데, 자리가 부족해 수십 명의 학생이 2시간 동안 서서 공연을 보는 등 대성황을 이뤘다.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이 준비한 K-pop 공연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이 준비한 K-pop 공연

아르메니아 전통의상을 입고 나온 청소년합창단이 우리 아리랑을 구성지게 부르는 장면,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학생들이 날렵한 솜씨로 부채춤을 추는 장면, 태권도 시범 공연을 나온 청소년들이 태권도복을 입고 아르메니아 전통춤을 추는 장면 등이 인상적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수 뺨치는 현란한 율동으로 K-pop 음악을 소개한 학생들이 관객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아르메니아에서도 k-pop의 뜨거운 인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아르메니아의 '한국 사랑'


아르메니아는 옛 소련 연방구성 국가 중에서 가장 작은 나라로, 남카프카스 지역에 위치해 있다. 인구는 3백만 명 정도인데, 국외에 거주하는 인구가 6백만 명 정도이다.

국토의 90% 이상이 해발 1,000m 이상의 고원지대이며, 좋은 포도와 물, 오크(떡갈나무) 삼박자가 맞아, 명품 코냑으로 유명하다. 러시아, 터키, 조지아, 아제르바이잔 등에 둘러싸여 있어, 외세의 침략과 분쟁에 오래 시달렸다.

특히 1915년 1차대전 당시 오스만튀르크 제국(현 터키)의 아르메니아인 150만 명 대학살 사건으로, 지금도 터키와 외교 마찰을 빚고 있다.

문화센터 건물과 내부의 한국 문화 센터문화센터 건물과 내부의 한국 문화 센터

수도 예레반에 있는 국립언어대학에 2006년 한국어 객원교수가 파견되면서 한국어 강의가 시작됐다.

2012년 객원교수로 파견돼 5년째 강의 중인 박희수 교수는 “2014년에는 아시아 최초로 중국어와 함께 한국어 전공과목이 개설됐다. 일본어는 아직 전공과목이 아니다. 현재 한국어과 학생 6명, 한국어 부전공 학생 51명 등 65명이 한국어를 배우고 있고, 한국문화센터에 일반인 등 회원이 240명 정도다. 한국문화센터가 입주해 있는 건물은 당시 중국 정부가 지어준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 3년 전부터는 '43 고등학교'에서도 고등학생을 비롯해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모든 사람에게 한국말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아르메니아에는 한국 공관이 상주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한국 문화 열기가 대단해 한국문화 팔로워가 2천 명이 넘는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2006년에 Erkir Media라는 현지 방송국이 '주몽', '바람의 나라', '해신' 등 사극 드라마를 방영하기 시작했는데, 한국 문화에 심취한 시청자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 때문이었다고 한다.

2015년부터는 A TV가 '상속자들', '그녀는 예뻤다' 등 현재 한국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를 방영하고 있다. 한국어를 배우는 상당수의 학생이 한국 문화를 맨 처음 접한 것이 이 드라마였다고 한다.


한국어를 배우는 아르메니아 학생들에게 왜 한국을 좋아하느냐고 물었더니, 한국과 아르메니아는 비슷한 점이 많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역사이다. 두 나라는 공히 오랜 역사에서 무수한 외침을 받았지만 모두 물리치고 독립국으로 번영했다는 점에서 깊은 동질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또 문화에서도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 참석한 슈잔 나자리얀은 "특히 악기 중에 같은 것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피리가 아르메니아 악기 '두둑'하고 비슷합니다. 가야금하고 '카논', 해금과 '카만챠', 또 장구는 아르메니아 '드홀'하고 같은데 아르메니아 사람들이 '드홀'을 막대기 없이 그냥 손으로 칩니다. 또 아르메니아와 한국 춤 중에도 비슷한 것이 있습니다. 한국 전통춤은 오래전에 샤머니즘적인 의식에서 유래했습니다. 아르메니아 탈춤은 발레의 일부입니다."라고 했다.

너무나 먼 '한국'


그런데 한국에 다녀온 적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뜻밖에 한국을 방문해본 학생들이 없었다. 이상하다 싶어 나름 원인을 분석해보니 비자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한국과 아르메니아는 아직 비자면제협정을 체결하지 않아 상호 방문 시 비자가 필요하다. 한국인의 경우 아르메니아를 방문하면 이른바 '도착 비자'를 받을 수 있다. 예레반 공항에서 5~10분이면 신속하게 도착 비자를 받을 수 있고, 비용도 3천 드람(6달러 정도)으로 저렴한 편이다.

그런데 아르메니아에는 한국 공관이 없고, 주러시아 한국 대사관이 영사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한국을 방문하려는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3시간 비행기를 타고 모스크바에 가서, 하루 정도 걸려 비자를 받고 다시 9시간 비행기를 타야 한국에 도착할 수 있다. 쉽지 않은 여정인 것이다.

우리 대사관에 문의해보니 한국은 아직 도착 비자를 허용하는 나라가 별로 없다고 한다. 이번 기회에 아르메니아의 특별한 '한국 사랑'을 고려해 '도착 비자'를 허용해주는 것은 어떨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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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아르메니아의 특별한 ‘한국 사랑’
    • 입력 2016-11-01 14:58:00
    • 수정2016-11-01 14:59:06
    취재후·사건후
러시아 남부,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의 산악지역을 카프카스, 영어로는 코카서스라고 부른다. 이곳에 인구 3백만 명의 작은 나라 아르메니아가 위치해 있다. 지난 10월 28일 아르메니아 수도 예레반에 있는 국립언어대학에서 '한국의 날' 행사가 열렸다. 이 대학에서 한국어 강의가 시작된 지 꼭 10년째를 맞아 열린 행사다.

예레반 국립언어대학 전경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이 한국어 말하기 대회, 한국 전통문화 공연, 아르메니아 전통춤 공연 등을 통해 저마다 갈고닦은 기량들을 마음껏 뽐냈다. 300석 규모의 대강당에서 행사가 치러졌는데, 자리가 부족해 수십 명의 학생이 2시간 동안 서서 공연을 보는 등 대성황을 이뤘다.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이 준비한 K-pop 공연
아르메니아 전통의상을 입고 나온 청소년합창단이 우리 아리랑을 구성지게 부르는 장면,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학생들이 날렵한 솜씨로 부채춤을 추는 장면, 태권도 시범 공연을 나온 청소년들이 태권도복을 입고 아르메니아 전통춤을 추는 장면 등이 인상적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수 뺨치는 현란한 율동으로 K-pop 음악을 소개한 학생들이 관객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아르메니아에서도 k-pop의 뜨거운 인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아르메니아의 '한국 사랑'


아르메니아는 옛 소련 연방구성 국가 중에서 가장 작은 나라로, 남카프카스 지역에 위치해 있다. 인구는 3백만 명 정도인데, 국외에 거주하는 인구가 6백만 명 정도이다.

국토의 90% 이상이 해발 1,000m 이상의 고원지대이며, 좋은 포도와 물, 오크(떡갈나무) 삼박자가 맞아, 명품 코냑으로 유명하다. 러시아, 터키, 조지아, 아제르바이잔 등에 둘러싸여 있어, 외세의 침략과 분쟁에 오래 시달렸다.

특히 1915년 1차대전 당시 오스만튀르크 제국(현 터키)의 아르메니아인 150만 명 대학살 사건으로, 지금도 터키와 외교 마찰을 빚고 있다.

문화센터 건물과 내부의 한국 문화 센터
수도 예레반에 있는 국립언어대학에 2006년 한국어 객원교수가 파견되면서 한국어 강의가 시작됐다.

2012년 객원교수로 파견돼 5년째 강의 중인 박희수 교수는 “2014년에는 아시아 최초로 중국어와 함께 한국어 전공과목이 개설됐다. 일본어는 아직 전공과목이 아니다. 현재 한국어과 학생 6명, 한국어 부전공 학생 51명 등 65명이 한국어를 배우고 있고, 한국문화센터에 일반인 등 회원이 240명 정도다. 한국문화센터가 입주해 있는 건물은 당시 중국 정부가 지어준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 3년 전부터는 '43 고등학교'에서도 고등학생을 비롯해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모든 사람에게 한국말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아르메니아에는 한국 공관이 상주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한국 문화 열기가 대단해 한국문화 팔로워가 2천 명이 넘는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2006년에 Erkir Media라는 현지 방송국이 '주몽', '바람의 나라', '해신' 등 사극 드라마를 방영하기 시작했는데, 한국 문화에 심취한 시청자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 때문이었다고 한다.

2015년부터는 A TV가 '상속자들', '그녀는 예뻤다' 등 현재 한국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를 방영하고 있다. 한국어를 배우는 상당수의 학생이 한국 문화를 맨 처음 접한 것이 이 드라마였다고 한다.


한국어를 배우는 아르메니아 학생들에게 왜 한국을 좋아하느냐고 물었더니, 한국과 아르메니아는 비슷한 점이 많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역사이다. 두 나라는 공히 오랜 역사에서 무수한 외침을 받았지만 모두 물리치고 독립국으로 번영했다는 점에서 깊은 동질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또 문화에서도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 참석한 슈잔 나자리얀은 "특히 악기 중에 같은 것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피리가 아르메니아 악기 '두둑'하고 비슷합니다. 가야금하고 '카논', 해금과 '카만챠', 또 장구는 아르메니아 '드홀'하고 같은데 아르메니아 사람들이 '드홀'을 막대기 없이 그냥 손으로 칩니다. 또 아르메니아와 한국 춤 중에도 비슷한 것이 있습니다. 한국 전통춤은 오래전에 샤머니즘적인 의식에서 유래했습니다. 아르메니아 탈춤은 발레의 일부입니다."라고 했다.

너무나 먼 '한국'


그런데 한국에 다녀온 적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뜻밖에 한국을 방문해본 학생들이 없었다. 이상하다 싶어 나름 원인을 분석해보니 비자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한국과 아르메니아는 아직 비자면제협정을 체결하지 않아 상호 방문 시 비자가 필요하다. 한국인의 경우 아르메니아를 방문하면 이른바 '도착 비자'를 받을 수 있다. 예레반 공항에서 5~10분이면 신속하게 도착 비자를 받을 수 있고, 비용도 3천 드람(6달러 정도)으로 저렴한 편이다.

그런데 아르메니아에는 한국 공관이 없고, 주러시아 한국 대사관이 영사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한국을 방문하려는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3시간 비행기를 타고 모스크바에 가서, 하루 정도 걸려 비자를 받고 다시 9시간 비행기를 타야 한국에 도착할 수 있다. 쉽지 않은 여정인 것이다.

우리 대사관에 문의해보니 한국은 아직 도착 비자를 허용하는 나라가 별로 없다고 한다. 이번 기회에 아르메니아의 특별한 '한국 사랑'을 고려해 '도착 비자'를 허용해주는 것은 어떨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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