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 가짜뉴스’ 쓴 기자의 해명…“확인 못 했다”

입력 2019.05.11 (08:05) 수정 2019.05.11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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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중견기업연합회장이 간담회 때 가장 강조했던 부분이 '가업상속세 87%'였다. 당시 팩트체크가 다 된 상태가 아니어서 회장 발언을 인용해 기사로 썼다."

'가업상속세 87%' 기사가 어떻게 나온 것이냐 묻는 질문에 매일경제 기자는 이렇게 답했다. 매일경제뿐 아니라 지난 3월 12일 강호갑 중견련 회장 기자간담회에 참석했던 연합뉴스, 조선비즈 등 언론사도 대부분 같은 취지의 기사를 썼다.


그(강 회장)는 "상속세로 낼 현금을 몇백억 원씩 보유한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보유 지분을 팔아서 마련한 현금으로 세금을 내는 경우가 대다수이며, 이때 주식 양도세가 22%가 되기 때문에 단순히 계산하면 상속세로 87%를 내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가업상속세 엄밀히 따지면 87% 과도한 규제로 기업가정신 위축”〉, 매일경제, 3월 13일)

강 회장은 "기업의 절대적 목표는 지속 성장"이라며 "매출이 3000억 원, 5000억 원으로 늘었다고 규제를 하면 누가 기업을 키우려고 하겠냐"고 말했다. 이어 그는 "기업이 마음껏 투자하며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며 "그래야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강호갑 중견련 회장 "가업 승계 세금 87%, 경영권 유지 못 해"〉, 조선비즈, 3월 12일)

강 회장은 또 침대보다 키가 크면 다리나 머리를 자르고, 작으면 사지를 잡아 늘여 죽인 그리스 신화의 프로크루스테스를 언급하고서 "큰 기업은 무조건 잘못이냐. 키 크면 다리를 잘라야 하느냐"고 지적했다. (〈강호갑 중견련 회장 "기업 규모에 의한 차별 멈춰달라">, 연합뉴스, 3월 12일)

중견련 회장 간담회에 참석한 기자는 대부분 경제부 소속이었다. 상속세, 주식 양도세 등 세금과 관련해 잘 알 법한 기자들이다. 국내 상속세 최고세율은 50%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강 회장에게 "어떻게 상속세가 87%나 되느냐"며 꼼꼼히 따져 물은 기자는 없었다.

"가업상속세 87%, 양립할 수 없는 세금끼리 합한 가짜뉴스"


강 회장이 주장한 "가업상속세 87%"의 근거를 살펴보자. 우선 상속세 최고세율 50%를 적용받으려면 과세표준이 30억 원 이상이어야 한다. 과세표준은 총상속액보다 적다는 점에 주의하자. 일괄 공제, 배우자 공제, 금융재산 공제 등 세금 부과 대상에서 빠지는 항목이 많다. 총상속액에서 공제할 모든 액수를 다 뺀 값이 과세표준이다.


기업가는 보통 회사 주식을 자녀에게 물려준다. 경영권 승계를 위해서다. 대주주들이 상속하는 주식에는 할증평가(이하 할증세)가 적용되는데, 15%까지 세율이 추가될 수 있다. 최고세율 50%에 최고 할증 15%를 더해 65%가 됐다. 강 회장은 상속세를 내려면 "주식 보유 지분을 팔아 마련한 현금"이 필요하다며 주식 양도세 22%까지 더했다. 65% 더하기 22%, 이제 87%가 됐다.

하지만 할증세(15%)와 양도세(22%)는 함께 낼 수 없는 종류의 세금이다. 상속 때 주식을 가진 경우라야만 할증세 15%가 적용된다. 만약 주식을 팔았다면 양도세 22%만 낸다. 같은 주식을 "지금 갖고 있지만, 이미 팔았다"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저널리즘토크쇼J'(이하 J)에 출연한 홍순탁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실행위원은 "가업상속세 87% 주장은 완전히 가짜뉴스"라고 비판했다.

"87%는 할증세와 주식양도세같이 양립할 수 없는 것들을 합산해 만든 숫자다. (그보다 적은) 상속세 65%도 모든 재산을 주식으로만 상속해야 가능하다. 한국은 상속 재산 중 약 60%가 토지, 건물 같은 부동산이다. 부동산에는 당연히 주식할증이 없다. 상속세 65%도 과대 계산된 수치인 것이다. 상속세 공제도 최대 42억 원까지 된다. 국내 상속세 실효세율은 14~15% 정도다."


강 회장 주장을 기사로 쓴 매일경제 기자는 "가업상속세가 87%라는 주장에 대해 팩트체크가 다 된 상태가 아니어서 회장의 발언 위주로만 기사를 작성했다. 주장을 검증할 시간이 있었다면 꼼꼼히 따졌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기자들이 정치인, 기업인 등의 발언을 속보로 내는 과정에서 이런 일은 실제 자주 벌어진다.

J 고정패널인 정준희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겸임교수는 이런 보도 행태를 "전형적인 따옴표 저널리즘"으로 규정했다.

"(상속세 87%가) 상식적으로 이상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수치이고, 표현상으로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이 나왔는데 그대로 기사로 옮긴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주장을 그대로 싣더라도 사실과 주장을 분리해야 했다. '꼬집었다', '강조했다', '고민이 많다고 밝혔다'로 문장이 끝나 강 회장 발언에 적극적으로 공감하는 뉘앙스다. 가짜뉴스를 만들어 유포할 의지를 가진 사람을 기성 언론이 적극적으로 도와준 경우라고 볼 수 있다."

"'기업가 정신'이라는 유전자, 한국에만 따로 있나?"


"가업 승계를 포기하고 회사를 매각하는 중견·중소기업이

늘고 있다. 최고세율 65%(경영권 상속 때 할증세율 포함)에 달하는 상속세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 수준인 상속세 폭탄은 점점 더 많은 중소기업을 M&A 시장으로 내몰고 있다. 지난 몇 년 새 농우바이오, 락앤락, 유니더스, 요진건설, 유영산업, 우리로광통신, 선보공업, 까사미아 등도 상속세 부담 탓에 경영 승계의 뜻을 접었다."

지난달 15일 한국경제가 1면에 낸 〈평생 일군 기업, 상속세 무서워 팝니다〉라는 제목의 기사 내용이다. 하지만 불과 4일 뒤 한국경제는 18면에 "요진건설은 상속세 때문에 경영 승계를 접은 게 아닌 것으로 확인돼 이를 바로잡습니다"라고 정정보도한다. 이후 락앤락, 까사미아 등도 가업 승계 포기와 상속세가 아무 연관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정준희 교수는 "요진건설은 공동 창업자 한 명이 사망해서 일부 경영권에 문제가 있을 뿐, 나머지 공동 창업자는 경영권을 유지하고 있다. 락앤락도 창업주인 회장이 2017년 사모펀드에 지분을 팔아 경영권이 넘어가게 됐다. 락앤락 창업주는 건강 문제와 기업의 향후 성장을 위해 경영에서 손을 뗀 것이라고 다른 언론과 인터뷰하기도 했다. 조금만 취재해봐도 사실을 발견할 수 있는데도 잘못 인용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J에 출연한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는 개인적 가업 승계 문제에 언론이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한다고 말한다.

"(상속세 때문에 경영권이 위협받는다는 기사가) 왜 중요한 뉴스로 다뤄지는지 모르겠다. 상속세를 내는 과정에서 지분이 줄어 자식이 지배주주 역할을 못 하게 됐다고 해도 개인적인 일이다. 아무 공적 의미가 없다. 빌 게이츠 죽으면 마이크로소프트 큰일 나나? 스티브 잡스 사망 뒤에 애플에 큰일이 났나? 아니다. 자식이 물려받지 않은 기업에 큰일이 나는 것처럼 (언론이) 부추기는 것은 과장이다. 한국인은 '기업가 정신'이라고 하는 유전자가 유전이 되는가. 창업주가 자식한테 기업을 물려주고 싶은 마음은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기업가 정신'마저 유전이 돼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으면 기업 운영이 안 된다는 식의 주장은 인정할 수 없다."

"상속·증여세는 소득세와 연계해 봐야"


국내 상속세 최고세율 50%는 일본(55%)에 이어 세계 2위다. 상속세율 인하를 주장하는 쪽이 줄곧 내세우는 근거 중 하나다. 이에 대해 홍순탁 실행위원은 "상속과 증여로 얻은 재산은 아무 노력 없이 생긴 불로소득이다. 한국은 1950년 상속세법을 만들었는데, 부의 집중을 억제하고, 경제적 기회균등을 보장하기 위해 만든 세금"이라고 반박했다.

주 전 대표도 상속·증여세가 낮은 소득세를 보완하는 역할이 있다고 본다.

"(국내에서) 상속을 할 만한 재산을 남기는 사람은 매년 23만 명 정도다. 이 중 6천여 명만 실제 상속세를 낸다. 전체의 2~3%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상속세 대상에서 빠진다. 한국이 상속세율이 높다고 하는데, 소득세가 낮다는 것은 (언론이) 이야기 안 한다. 한국은 돈을 벌었을 때 세금을 덜 내고 그 돈으로 투자를 열심히 해 경제 발전에 이바지하라는 뜻으로 소득세율을 낮게 만들어놨다. (2016년 기준) GDP에서 소득세율이 차지하는 비중이 4.6%다. OECD 평균은 8.2%다. 10% 넘는 나라들도 많다. 상속·증여세는 소득세와 함께 봐야 한다."

OECD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16년 기준 GDP 대비 소득·상속·증여세를 모두 합한 값의 비중은 한국이 4.9%다. 일본은 6.1%, 미국은 10.5%였다. 덴마크는 소득세 비중만 24.7%, 상속·증여세까지 합하면 24.9%다. 한국은 여전히 세금이 낮은 나라 축에 낀다. "언론은 많은 경우 자기들이 의도하는 것만 침소봉대해 보도한다"고 한 주진형 전 대표의 비판이 일리가 있는 이유다.

<저널리즘 토크쇼 J>는 KBS 기자들의 취재와 전문가 패널의 토크를 통해 한국 언론의 현주소를 들여다보는 신개념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이다. 12일(내일) 밤 10시 30분, KBS 1TV와 유튜브를 통해 방송되는 J 43회는 <삼성의 '회계사기', 모르거나 외면하거나>라는 주제로 토론이 이뤄진다. 정준희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겸임교수, 팟캐스트 MC 최욱,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 홍순탁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실행위원이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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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속세 가짜뉴스’ 쓴 기자의 해명…“확인 못 했다”
    • 입력 2019-05-11 08:05:12
    • 수정2019-05-11 09:13:51
    저널리즘 토크쇼 J
"한국중견기업연합회장이 간담회 때 가장 강조했던 부분이 '가업상속세 87%'였다. 당시 팩트체크가 다 된 상태가 아니어서 회장 발언을 인용해 기사로 썼다."

'가업상속세 87%' 기사가 어떻게 나온 것이냐 묻는 질문에 매일경제 기자는 이렇게 답했다. 매일경제뿐 아니라 지난 3월 12일 강호갑 중견련 회장 기자간담회에 참석했던 연합뉴스, 조선비즈 등 언론사도 대부분 같은 취지의 기사를 썼다.


그(강 회장)는 "상속세로 낼 현금을 몇백억 원씩 보유한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보유 지분을 팔아서 마련한 현금으로 세금을 내는 경우가 대다수이며, 이때 주식 양도세가 22%가 되기 때문에 단순히 계산하면 상속세로 87%를 내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가업상속세 엄밀히 따지면 87% 과도한 규제로 기업가정신 위축”〉, 매일경제, 3월 13일)

강 회장은 "기업의 절대적 목표는 지속 성장"이라며 "매출이 3000억 원, 5000억 원으로 늘었다고 규제를 하면 누가 기업을 키우려고 하겠냐"고 말했다. 이어 그는 "기업이 마음껏 투자하며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며 "그래야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강호갑 중견련 회장 "가업 승계 세금 87%, 경영권 유지 못 해"〉, 조선비즈, 3월 12일)

강 회장은 또 침대보다 키가 크면 다리나 머리를 자르고, 작으면 사지를 잡아 늘여 죽인 그리스 신화의 프로크루스테스를 언급하고서 "큰 기업은 무조건 잘못이냐. 키 크면 다리를 잘라야 하느냐"고 지적했다. (〈강호갑 중견련 회장 "기업 규모에 의한 차별 멈춰달라">, 연합뉴스, 3월 12일)

중견련 회장 간담회에 참석한 기자는 대부분 경제부 소속이었다. 상속세, 주식 양도세 등 세금과 관련해 잘 알 법한 기자들이다. 국내 상속세 최고세율은 50%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강 회장에게 "어떻게 상속세가 87%나 되느냐"며 꼼꼼히 따져 물은 기자는 없었다.

"가업상속세 87%, 양립할 수 없는 세금끼리 합한 가짜뉴스"


강 회장이 주장한 "가업상속세 87%"의 근거를 살펴보자. 우선 상속세 최고세율 50%를 적용받으려면 과세표준이 30억 원 이상이어야 한다. 과세표준은 총상속액보다 적다는 점에 주의하자. 일괄 공제, 배우자 공제, 금융재산 공제 등 세금 부과 대상에서 빠지는 항목이 많다. 총상속액에서 공제할 모든 액수를 다 뺀 값이 과세표준이다.


기업가는 보통 회사 주식을 자녀에게 물려준다. 경영권 승계를 위해서다. 대주주들이 상속하는 주식에는 할증평가(이하 할증세)가 적용되는데, 15%까지 세율이 추가될 수 있다. 최고세율 50%에 최고 할증 15%를 더해 65%가 됐다. 강 회장은 상속세를 내려면 "주식 보유 지분을 팔아 마련한 현금"이 필요하다며 주식 양도세 22%까지 더했다. 65% 더하기 22%, 이제 87%가 됐다.

하지만 할증세(15%)와 양도세(22%)는 함께 낼 수 없는 종류의 세금이다. 상속 때 주식을 가진 경우라야만 할증세 15%가 적용된다. 만약 주식을 팔았다면 양도세 22%만 낸다. 같은 주식을 "지금 갖고 있지만, 이미 팔았다"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저널리즘토크쇼J'(이하 J)에 출연한 홍순탁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실행위원은 "가업상속세 87% 주장은 완전히 가짜뉴스"라고 비판했다.

"87%는 할증세와 주식양도세같이 양립할 수 없는 것들을 합산해 만든 숫자다. (그보다 적은) 상속세 65%도 모든 재산을 주식으로만 상속해야 가능하다. 한국은 상속 재산 중 약 60%가 토지, 건물 같은 부동산이다. 부동산에는 당연히 주식할증이 없다. 상속세 65%도 과대 계산된 수치인 것이다. 상속세 공제도 최대 42억 원까지 된다. 국내 상속세 실효세율은 14~15% 정도다."


강 회장 주장을 기사로 쓴 매일경제 기자는 "가업상속세가 87%라는 주장에 대해 팩트체크가 다 된 상태가 아니어서 회장의 발언 위주로만 기사를 작성했다. 주장을 검증할 시간이 있었다면 꼼꼼히 따졌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기자들이 정치인, 기업인 등의 발언을 속보로 내는 과정에서 이런 일은 실제 자주 벌어진다.

J 고정패널인 정준희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겸임교수는 이런 보도 행태를 "전형적인 따옴표 저널리즘"으로 규정했다.

"(상속세 87%가) 상식적으로 이상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수치이고, 표현상으로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이 나왔는데 그대로 기사로 옮긴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주장을 그대로 싣더라도 사실과 주장을 분리해야 했다. '꼬집었다', '강조했다', '고민이 많다고 밝혔다'로 문장이 끝나 강 회장 발언에 적극적으로 공감하는 뉘앙스다. 가짜뉴스를 만들어 유포할 의지를 가진 사람을 기성 언론이 적극적으로 도와준 경우라고 볼 수 있다."

"'기업가 정신'이라는 유전자, 한국에만 따로 있나?"


"가업 승계를 포기하고 회사를 매각하는 중견·중소기업이

늘고 있다. 최고세율 65%(경영권 상속 때 할증세율 포함)에 달하는 상속세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 수준인 상속세 폭탄은 점점 더 많은 중소기업을 M&A 시장으로 내몰고 있다. 지난 몇 년 새 농우바이오, 락앤락, 유니더스, 요진건설, 유영산업, 우리로광통신, 선보공업, 까사미아 등도 상속세 부담 탓에 경영 승계의 뜻을 접었다."

지난달 15일 한국경제가 1면에 낸 〈평생 일군 기업, 상속세 무서워 팝니다〉라는 제목의 기사 내용이다. 하지만 불과 4일 뒤 한국경제는 18면에 "요진건설은 상속세 때문에 경영 승계를 접은 게 아닌 것으로 확인돼 이를 바로잡습니다"라고 정정보도한다. 이후 락앤락, 까사미아 등도 가업 승계 포기와 상속세가 아무 연관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정준희 교수는 "요진건설은 공동 창업자 한 명이 사망해서 일부 경영권에 문제가 있을 뿐, 나머지 공동 창업자는 경영권을 유지하고 있다. 락앤락도 창업주인 회장이 2017년 사모펀드에 지분을 팔아 경영권이 넘어가게 됐다. 락앤락 창업주는 건강 문제와 기업의 향후 성장을 위해 경영에서 손을 뗀 것이라고 다른 언론과 인터뷰하기도 했다. 조금만 취재해봐도 사실을 발견할 수 있는데도 잘못 인용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J에 출연한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는 개인적 가업 승계 문제에 언론이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한다고 말한다.

"(상속세 때문에 경영권이 위협받는다는 기사가) 왜 중요한 뉴스로 다뤄지는지 모르겠다. 상속세를 내는 과정에서 지분이 줄어 자식이 지배주주 역할을 못 하게 됐다고 해도 개인적인 일이다. 아무 공적 의미가 없다. 빌 게이츠 죽으면 마이크로소프트 큰일 나나? 스티브 잡스 사망 뒤에 애플에 큰일이 났나? 아니다. 자식이 물려받지 않은 기업에 큰일이 나는 것처럼 (언론이) 부추기는 것은 과장이다. 한국인은 '기업가 정신'이라고 하는 유전자가 유전이 되는가. 창업주가 자식한테 기업을 물려주고 싶은 마음은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기업가 정신'마저 유전이 돼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으면 기업 운영이 안 된다는 식의 주장은 인정할 수 없다."

"상속·증여세는 소득세와 연계해 봐야"


국내 상속세 최고세율 50%는 일본(55%)에 이어 세계 2위다. 상속세율 인하를 주장하는 쪽이 줄곧 내세우는 근거 중 하나다. 이에 대해 홍순탁 실행위원은 "상속과 증여로 얻은 재산은 아무 노력 없이 생긴 불로소득이다. 한국은 1950년 상속세법을 만들었는데, 부의 집중을 억제하고, 경제적 기회균등을 보장하기 위해 만든 세금"이라고 반박했다.

주 전 대표도 상속·증여세가 낮은 소득세를 보완하는 역할이 있다고 본다.

"(국내에서) 상속을 할 만한 재산을 남기는 사람은 매년 23만 명 정도다. 이 중 6천여 명만 실제 상속세를 낸다. 전체의 2~3%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상속세 대상에서 빠진다. 한국이 상속세율이 높다고 하는데, 소득세가 낮다는 것은 (언론이) 이야기 안 한다. 한국은 돈을 벌었을 때 세금을 덜 내고 그 돈으로 투자를 열심히 해 경제 발전에 이바지하라는 뜻으로 소득세율을 낮게 만들어놨다. (2016년 기준) GDP에서 소득세율이 차지하는 비중이 4.6%다. OECD 평균은 8.2%다. 10% 넘는 나라들도 많다. 상속·증여세는 소득세와 함께 봐야 한다."

OECD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16년 기준 GDP 대비 소득·상속·증여세를 모두 합한 값의 비중은 한국이 4.9%다. 일본은 6.1%, 미국은 10.5%였다. 덴마크는 소득세 비중만 24.7%, 상속·증여세까지 합하면 24.9%다. 한국은 여전히 세금이 낮은 나라 축에 낀다. "언론은 많은 경우 자기들이 의도하는 것만 침소봉대해 보도한다"고 한 주진형 전 대표의 비판이 일리가 있는 이유다.

<저널리즘 토크쇼 J>는 KBS 기자들의 취재와 전문가 패널의 토크를 통해 한국 언론의 현주소를 들여다보는 신개념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이다. 12일(내일) 밤 10시 30분, KBS 1TV와 유튜브를 통해 방송되는 J 43회는 <삼성의 '회계사기', 모르거나 외면하거나>라는 주제로 토론이 이뤄진다. 정준희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겸임교수, 팟캐스트 MC 최욱,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 홍순탁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실행위원이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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