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표창’ 박기옥 선생 뒤바뀐 얼굴…보훈처의 황당 실수

입력 2019.08.16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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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서 시작해 전국적으로 194개 학교에서 학생 5만 4천여 명이 참여한 항일독립운동. 1929년부터 이듬해까지 진행된 이 운동은 3·1운동 이후 최대의 대일민족항쟁으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이 민족적 항쟁에 불을 붙인 건 나주역에서 일어난 유명한 사건입니다. 1929년 10월 전라도 나주와 광주를 오가는 통학 열차가 나주역에 도착한 뒤에 일본인 학생들이 당시 광주여자보통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었던 박기옥, 이광춘 등의 머리를 잡아당기며 희롱했고 이에 조선인 학생들이 맞서면서 싸움이 붙은 겁니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의 도화선과도 같은 이 사건의 주인공인 故 박기옥 선생은 지난 90년 간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다가, 이번 74주년 광복절 계기 정부 포상에서 드디어 대통령 표창을 받았습니다. 당시 사건 외에도 박 선생이 학내에서 시험을 거부하는 '백지 운동' 등에 참여했다 퇴학당한 학적부 기록, 그리고 재판 기록 등이 추가로 발굴됐기 때문입니다.

어제(15일) 열린 74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는 故 박기옥 선생의 딸 서정이 씨.어제(15일) 열린 74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는 故 박기옥 선생의 딸 서정이 씨.

정부는 이번 광복절을 계기로 故 박기옥 선생을 포함해 모두 178명의 독립유공자를 포상했는데,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워낙 잘 알려진 데다 중요한 사건이다 보니 박기옥 선생을 대표 인물 중 한 명으로 내세웠습니다. 故 박기옥 선생의 딸인 서정이 씨는 74주년 광복절 경축식에 참여해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표창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렇다 보니 국내 거의 모든 언론사가 광복절을 전후로 박기옥 선생을 언급한 기사를 내놓았습니다. 물론, 보훈처에서 제공한 박기옥 선생의 학생 시절 사진도 함께 실었습니다.

국가보훈처 공식 보도자료와 이를 인용한 언론 보도. 사진 속 인물 가운데 왼쪽 인물을 故 박기옥 선생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국가보훈처 공식 보도자료와 이를 인용한 언론 보도. 사진 속 인물 가운데 왼쪽 인물을 故 박기옥 선생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 후, 전화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故 박기옥 선생의 외손자 박훈 씨였습니다. 박훈 씨는 언론 보도를 보고 "사진 속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에 계신 분이 저희 할머님"이라면서, "설명이 잘못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보훈처는 사진 왼쪽이 박기옥 선생, 오른쪽이 이광춘 선생이라고 소개했는데, 뒤바뀐 설명이라는 겁니다. 故 이광춘 선생 역시 나주역 현장에 있었고, 이후 백지동맹에 참여해 건국포장을 받은 독립유공자입니다.

취재진은 광복절에 앞서 14일 故 박기옥 선생의 딸 서정이 씨를 직접 만났는데, 확실히 사진에서 오른쪽에 있는 인물과 외모가 매우 닮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또, 반대로 故 이광춘 선생의 다른 사진을 찾아봤더니, 이 선생의 얼굴은 한눈에 봐도 왼쪽 인물과 유사합니다. 보훈처 설명과는 정확히 반대입니다.

故 이광춘 선생의 사진. 보훈처가 제공한 사진 속 인물들 가운데 왼쪽 인물과 닮았습니다.故 이광춘 선생의 사진. 보훈처가 제공한 사진 속 인물들 가운데 왼쪽 인물과 닮았습니다.

어떻게 된 걸까. 보훈처에 문의해봤습니다. 보훈처는 "확인해보니 사진의 좌, 우 설명이 바뀐 게 맞다"고 인정했습니다. 좌측은 故 이광춘 선생, 우측은 故 박기옥 선생이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해당 사진을 한국학중앙연구원으로부터 받았는데, 보훈처 보도자료 외에도 과거 잘못 설명한 사례가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며 경위를 확인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90년 만에 드디어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은 기쁜 날, 정부의 실수로 故 박기옥 선생의 얼굴이 잘못 알려진 셈입니다. 신문, 방송을 막론하고 잘못 보도된 기사들이 기록으로 남았기 때문에 앞으로 기사를 접할 후손들이 사진 속 두 인물 중 누가 박기옥 선생인지 헷갈릴 우려도 큽니다. 사진을 보고 다시 한 번 바로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사진 속 왼쪽 인물은 故 이광춘 선생이고, 오른쪽 인물은 故 박기옥 선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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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복절 표창’ 박기옥 선생 뒤바뀐 얼굴…보훈처의 황당 실수
    • 입력 2019-08-16 16:44:24
    취재K
광주에서 시작해 전국적으로 194개 학교에서 학생 5만 4천여 명이 참여한 항일독립운동. 1929년부터 이듬해까지 진행된 이 운동은 3·1운동 이후 최대의 대일민족항쟁으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이 민족적 항쟁에 불을 붙인 건 나주역에서 일어난 유명한 사건입니다. 1929년 10월 전라도 나주와 광주를 오가는 통학 열차가 나주역에 도착한 뒤에 일본인 학생들이 당시 광주여자보통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었던 박기옥, 이광춘 등의 머리를 잡아당기며 희롱했고 이에 조선인 학생들이 맞서면서 싸움이 붙은 겁니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의 도화선과도 같은 이 사건의 주인공인 故 박기옥 선생은 지난 90년 간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다가, 이번 74주년 광복절 계기 정부 포상에서 드디어 대통령 표창을 받았습니다. 당시 사건 외에도 박 선생이 학내에서 시험을 거부하는 '백지 운동' 등에 참여했다 퇴학당한 학적부 기록, 그리고 재판 기록 등이 추가로 발굴됐기 때문입니다.

어제(15일) 열린 74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는 故 박기옥 선생의 딸 서정이 씨.
정부는 이번 광복절을 계기로 故 박기옥 선생을 포함해 모두 178명의 독립유공자를 포상했는데,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워낙 잘 알려진 데다 중요한 사건이다 보니 박기옥 선생을 대표 인물 중 한 명으로 내세웠습니다. 故 박기옥 선생의 딸인 서정이 씨는 74주년 광복절 경축식에 참여해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표창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렇다 보니 국내 거의 모든 언론사가 광복절을 전후로 박기옥 선생을 언급한 기사를 내놓았습니다. 물론, 보훈처에서 제공한 박기옥 선생의 학생 시절 사진도 함께 실었습니다.

국가보훈처 공식 보도자료와 이를 인용한 언론 보도. 사진 속 인물 가운데 왼쪽 인물을 故 박기옥 선생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 후, 전화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故 박기옥 선생의 외손자 박훈 씨였습니다. 박훈 씨는 언론 보도를 보고 "사진 속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에 계신 분이 저희 할머님"이라면서, "설명이 잘못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보훈처는 사진 왼쪽이 박기옥 선생, 오른쪽이 이광춘 선생이라고 소개했는데, 뒤바뀐 설명이라는 겁니다. 故 이광춘 선생 역시 나주역 현장에 있었고, 이후 백지동맹에 참여해 건국포장을 받은 독립유공자입니다.

취재진은 광복절에 앞서 14일 故 박기옥 선생의 딸 서정이 씨를 직접 만났는데, 확실히 사진에서 오른쪽에 있는 인물과 외모가 매우 닮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또, 반대로 故 이광춘 선생의 다른 사진을 찾아봤더니, 이 선생의 얼굴은 한눈에 봐도 왼쪽 인물과 유사합니다. 보훈처 설명과는 정확히 반대입니다.

故 이광춘 선생의 사진. 보훈처가 제공한 사진 속 인물들 가운데 왼쪽 인물과 닮았습니다.
어떻게 된 걸까. 보훈처에 문의해봤습니다. 보훈처는 "확인해보니 사진의 좌, 우 설명이 바뀐 게 맞다"고 인정했습니다. 좌측은 故 이광춘 선생, 우측은 故 박기옥 선생이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해당 사진을 한국학중앙연구원으로부터 받았는데, 보훈처 보도자료 외에도 과거 잘못 설명한 사례가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며 경위를 확인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90년 만에 드디어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은 기쁜 날, 정부의 실수로 故 박기옥 선생의 얼굴이 잘못 알려진 셈입니다. 신문, 방송을 막론하고 잘못 보도된 기사들이 기록으로 남았기 때문에 앞으로 기사를 접할 후손들이 사진 속 두 인물 중 누가 박기옥 선생인지 헷갈릴 우려도 큽니다. 사진을 보고 다시 한 번 바로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사진 속 왼쪽 인물은 故 이광춘 선생이고, 오른쪽 인물은 故 박기옥 선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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