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와인 육성” 중국…‘호주 압박’까지 1석2조 노림수?

입력 2021.08.1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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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에서 열린 와인 박람회에서 참관인이 와인을 시음하고 있다. (CCTV 캡쳐)베이징에서 열린 와인 박람회에서 참관인이 와인을 시음하고 있다. (CCTV 캡쳐)

중국 중북부의 닝샤후이족자치구는 북쪽으로는 네이멍구자치구, 동서로는 산시, 깐수성에 둘러싸인 내륙 지방입니다. 한때 번영했다 몽골군의 말발굽에 사라진 옛 서하왕국의 땅이기도 합니다.

이슬람을 믿는 후이족의 땅 정도로 알려지던 이곳에 10여 년 전부터 와인 양조장이 우후죽순 들어서고 있습니다. 장유 와인 같은 기존 업체를 비롯해 신흥 와이너리가 잇달아 둥지를 틀고 있습니다. 벌써 200곳을 넘어섰습니다.

■ 중국 "닝샤 허란산 일대를 '제 2의 보르도'로 육성"

와인 시설이 밀집한 지역은 닝샤 북부지역 허란산맥 동쪽 기슭 일대입니다. 황허 강줄기가 지나가고 비교적 건조한 기후를 유지합니다. 와인 생산을 위한 포도 재배에 적합한 자연 환경입니다. 재배 품종도 허란산 와인 박물관에 전시된 것만 20종이 넘습니다.

닝샤후이족자치구 허란산 동쪽 기슭에는 와인 생산을 위한 포도밭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닝샤후이족자치구 허란산 동쪽 기슭에는 와인 생산을 위한 포도밭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준가르 정벌에 나섰던 청나라 강희제가 진군 도중 이곳 포도맛을 봤다는 기록이 있기는 하지만 포도밭이 대규모로 조성되고 기업형 양조장이 들어선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 와인 생산량도 급격히 늘면서 중국의 대표 와인 생산지인 산둥성 옌타이를 이미 넘어섰습니다.

이 같은 허란산 일대 포도 산지를 중국 정부가 '제 2의 보르도'로 육성하겠다고 6월 8일 공식 발표했습니다. 베이징 국제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는 닝샤 지방정부는 물론 중국 농업부 고위 간부까지 참석했습니다.

중국 농업부와 닝샤 지방정부 관계자들이 6월 8일 베이징에서 허란산 일대를 국가 차원의 와인 산업 기지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CCTV 캡쳐)중국 농업부와 닝샤 지방정부 관계자들이 6월 8일 베이징에서 허란산 일대를 국가 차원의 와인 산업 기지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CCTV 캡쳐)

허란산 둥루(동쪽 기슭) '닝샤 국가 포도주 산업 개방 발전 종합 시험구'는 2025년까지 한해 3억 병, 2035년까지 한해 6억 병의 와인을 생산할 계획입니다. 2020년 5억 2천만 병 와인을 생산한 프랑스 보르도를 뛰어넘겠다는 구상입니다.

닝샤 지방정부 관계자는 구이저우가 마오타이 산지로 유명하듯 닝샤도 '와인 황금지대'로 부상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시진핑 주석도 닝샤 와인 양조장 방문해 힘실어

위안스(源石)이라는 이름의 닝샤 와인 양조장을 현장 취재했습니다. 2020년 시진핑 주석이 방문했던 곳입니다. 프랑스 성곽 등을 본따 만든 다른 양조장과 달리 중국 전통 양식으로 지은 건물이 돋보였습니다.

이 같은 외양이 중화 민족, 중국 특색을 강조하는 시 주석의 방문지 결정에 영향을 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닝샤 와인 양조장들은 여름철 햇볕을 충분히 받고 자란 포도를 매년 10월 초 수확해 와인으로 만든다.닝샤 와인 양조장들은 여름철 햇볕을 충분히 받고 자란 포도를 매년 10월 초 수확해 와인으로 만든다.

양조장 해설사 구페이위안씨는 수확한 포도를 즙으로 짜낸 뒤 대형 탱크에 30~40일가량 보관하고 다시 오크통에 1년 이상 저장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엄청난 규모의 와인 시설과 포도밭, 해외 기술 교류 현황을 보면서 중국 사업가들의 자본력을 다시 한번 실감했습니다.

양조장 관리자 양닝씨는 와인의 성패는 포도 재배가 7할, 숙성 저장이 3할을 차지한다면서 포도 재배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양조장에 딸린 포도밭에서는 인근 대학 연구진이 포도의 생육 상태 등을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닝샤 위안스 와인 양조장의 와인 저장 시설을 다른 양조장 관계자들이 견학하고 있다.닝샤 위안스 와인 양조장의 와인 저장 시설을 다른 양조장 관계자들이 견학하고 있다.

양조장에는 그동안 국제대회에서 수상한 와인들이 전시돼 있었습니다. 닝샤 와인이 이미 국제적으로 어느 정도 인정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양조장들은 대형 시음장도 갖추고 있다.양조장들은 대형 시음장도 갖추고 있다.

시음장에는 일반 관광객은 물론 견학차 방문한 관리들이 와인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이들을 대형버스가 잇달아 태워 나르고 있었습니다.

와인 산업은 단순히 와인의 생산과 유통과 관련한 일자리만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관광 산업에도 크게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닝샤후이족자치구는 칭하이, 구이저우 등과 함께 중국에서 경제적으로 낙후된 지역으로 꼽히는 곳입니다 .

■ 와인 산업 발전은 물론 관광객 유치 등으로 낙후 지역 개발도 노려

실제 베이징에서 열렸던 기자회견에서 중국 농업부의 수이펑페이 국제협력국장은 허란산 와인 시범기지가 "농업 대외 개방의 새로운 고지를 건설하고, 일대일로의 농업 합작을 촉진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닝샤의 와인 산업을 일대일로 전략과 연계시켜 지역 경제를 뒷받침하겠다는 중국 정부의 정책적 고려를 읽을 수 있습니다.

중국의 와인 소비량은 2020년 기준 세계 6위, 생산량은 10위 수준입니다. 14억 인구를 고려하면 아직은 미진해 보입니다. 그만큼 성장 가능성도 있지만 걸림돌이 있습니다.

흔히 배갈, 고량주라고 부르는 백주에 대한 중국인들의 수요가 워낙 크기 때문입니다. 중국 TV를 봐도 백주 광고와 백주 판매 홈쇼핑 프로그램이 상당히 많습니다.

허란산 와인 박물관에 전시된 닝샤 와인들.허란산 와인 박물관에 전시된 닝샤 와인들.

이에 대해 허란산 와인박물관 책임자인 리잉씨는 "중국인들의 생활 수준이 높아질수록 와인 수요는 더욱 많아지고 다양함을 추구하게 될 것"이라며 중국 와인 산업의 발전을 낙관적으로 전망했습니다.

■ 중국 와인굴기 구상, 호주 와인에 대한 반덤핑 관세 부과 직후 발표

그런데 이 같은 중국 와인굴기 구상은 그 발표 시점 때문에 외신들로부터 다른 측면에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발표 불과 석 달 전인 올해 3월 중국이 호주산 와인에 대해 최대 218.4% 고율의 반덤핑 관세를 매겼기 때문입니다.

호주 와인을 사실상 중국 시장에서 퇴출시키는 조치로 해석됐습니다.

호주는 중국의 가장 큰 와인 수입국입니다. 중국 와인 생산업자는 중국 정부의 조치가 분명 국내 와인업자들에게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조심스레 답했습니다. 중국 글로벌타임스는 2015년 이후 5년 동안 호주 와인의 중국 내 평균 가격이 13% 이상 떨어졌고 그만큼 중국 시장 점유율을 넓혔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대해 호주 측은 중국은 전 세계에서 호주산 와인이 가장 비싸게 팔리는 나라라며 덤핑 의혹을 부인했습니다.

중국과 호주의 무역 분쟁은 와인에 그치지 않습니다. 보리와 석탄, 랍스터 등 호주의 수출품들이 줄줄이 중국 정부에 의해 무역 규제 대상에 올랐습니다.

■ 외교 안보·코로나19 등 둘러싸고 중국과 호주 갈등 고조...무역 갈등으로 비화

이 같은 무역 전쟁의 이면에는 지난 몇 해 동안 깊이 파인 두 나라의 외교적 갈등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호주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가담하고, 자국의 5G 이동통신 사업에 중국의 대표 IT 기업 화웨이의 참가를 배제시키면서 본격화됐습니다.

호주가 코로나19의 중국기원론 조사를 지지하면서 중국의 불만은 폭발 양상을 보였습니다.

사드 보복을 연상시키는 중국의 대 호주 무역 정책에 대해 본보기식 조치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호주는 수출량 가운데 40% 이상을 중국에 의존합니다. 그만큼 중국의 무역 보복에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호주로서는 중국에 굴복하거나 아니면 무언가 전면적 변화를 모색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입니다.

호주와의 갈등과 관련해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에서 이득을 얻는 나라가 이념으로 선을 긋고 근거 없는 비난으로 중국에 먹칠하는 행위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 중국에 수출 40% 이상 의존하던 호주, 수출 다변화 적극 모색

호주는 중국의 와인 반덤핑 관세 부과에 대해 WTO 제소로 정면 대응했습니다. 더불어 미국과 동남아 등 와인 시장 개척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중국 시장을 잃은 호주산 보리는 사우디아라비아를 대체 시장으로 찾았습니다. 석탄은 동남아에서 수출 기회를 찾고 있습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오른쪽)와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가 6월 영국 런던에서 만나 영국-호주 FTA 체결을 발표했다. 존슨 총리는 이 자리에서 호주에 대한 중국의 태도를 지적하기도 했다. (사진=연합뉴스)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오른쪽)와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가 6월 영국 런던에서 만나 영국-호주 FTA 체결을 발표했다. 존슨 총리는 이 자리에서 호주에 대한 중국의 태도를 지적하기도 했다. (사진=연합뉴스)

6월에는 호주 총리가 영국을 직접 방문해 양국의 FTA 체결을 발표했습니다. 댄 테한 통상관광투자장관도 7월 한국과 미국, 일본 등지를 바쁘게 돌며 전략적 경제 협력 강화를 모색했습니다. 이 같은 무역 다변화 과정에서 희토류를 비롯한 전략 광물도 지렛대로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습니다.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오른쪽)과 댄 테한 호주 통상관광투자장관이 7월 19일 서울에서 만나 디지털 통상 규범, 핵심 광물 공급망 안정화 등을 논의했다. (사진=산업통상자원부)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오른쪽)과 댄 테한 호주 통상관광투자장관이 7월 19일 서울에서 만나 디지털 통상 규범, 핵심 광물 공급망 안정화 등을 논의했다. (사진=산업통상자원부)

한때 중국과 경제적 밀월을 즐기던 호주가 전면적인 정책 수정을 선택한 것입니다. 호주는 8월 들어서는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미군의 인도 태평양 해상 합동 훈련에 동참하는 등 전략적으로 분명한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중국이 닝샤후이족자치구에서 추진하고 있는 와인굴기의 현장은 드넓은 포도밭의 아름다운 풍경, 붉은 와인의 향기가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와인 산업 육성과 맞물린 무역 갈등 때문에 대국굴기 중국의 공세적 이미지가 이면에 어른거리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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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와인 육성” 중국…‘호주 압박’까지 1석2조 노림수?
    • 입력 2021-08-15 08:00:10
    특파원 리포트
베이징에서 열린 와인 박람회에서 참관인이 와인을 시음하고 있다. (CCTV 캡쳐)
중국 중북부의 닝샤후이족자치구는 북쪽으로는 네이멍구자치구, 동서로는 산시, 깐수성에 둘러싸인 내륙 지방입니다. 한때 번영했다 몽골군의 말발굽에 사라진 옛 서하왕국의 땅이기도 합니다.

이슬람을 믿는 후이족의 땅 정도로 알려지던 이곳에 10여 년 전부터 와인 양조장이 우후죽순 들어서고 있습니다. 장유 와인 같은 기존 업체를 비롯해 신흥 와이너리가 잇달아 둥지를 틀고 있습니다. 벌써 200곳을 넘어섰습니다.

■ 중국 "닝샤 허란산 일대를 '제 2의 보르도'로 육성"

와인 시설이 밀집한 지역은 닝샤 북부지역 허란산맥 동쪽 기슭 일대입니다. 황허 강줄기가 지나가고 비교적 건조한 기후를 유지합니다. 와인 생산을 위한 포도 재배에 적합한 자연 환경입니다. 재배 품종도 허란산 와인 박물관에 전시된 것만 20종이 넘습니다.

닝샤후이족자치구 허란산 동쪽 기슭에는 와인 생산을 위한 포도밭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준가르 정벌에 나섰던 청나라 강희제가 진군 도중 이곳 포도맛을 봤다는 기록이 있기는 하지만 포도밭이 대규모로 조성되고 기업형 양조장이 들어선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 와인 생산량도 급격히 늘면서 중국의 대표 와인 생산지인 산둥성 옌타이를 이미 넘어섰습니다.

이 같은 허란산 일대 포도 산지를 중국 정부가 '제 2의 보르도'로 육성하겠다고 6월 8일 공식 발표했습니다. 베이징 국제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는 닝샤 지방정부는 물론 중국 농업부 고위 간부까지 참석했습니다.

중국 농업부와 닝샤 지방정부 관계자들이 6월 8일 베이징에서 허란산 일대를 국가 차원의 와인 산업 기지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CCTV 캡쳐)
허란산 둥루(동쪽 기슭) '닝샤 국가 포도주 산업 개방 발전 종합 시험구'는 2025년까지 한해 3억 병, 2035년까지 한해 6억 병의 와인을 생산할 계획입니다. 2020년 5억 2천만 병 와인을 생산한 프랑스 보르도를 뛰어넘겠다는 구상입니다.

닝샤 지방정부 관계자는 구이저우가 마오타이 산지로 유명하듯 닝샤도 '와인 황금지대'로 부상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시진핑 주석도 닝샤 와인 양조장 방문해 힘실어

위안스(源石)이라는 이름의 닝샤 와인 양조장을 현장 취재했습니다. 2020년 시진핑 주석이 방문했던 곳입니다. 프랑스 성곽 등을 본따 만든 다른 양조장과 달리 중국 전통 양식으로 지은 건물이 돋보였습니다.

이 같은 외양이 중화 민족, 중국 특색을 강조하는 시 주석의 방문지 결정에 영향을 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닝샤 와인 양조장들은 여름철 햇볕을 충분히 받고 자란 포도를 매년 10월 초 수확해 와인으로 만든다.
양조장 해설사 구페이위안씨는 수확한 포도를 즙으로 짜낸 뒤 대형 탱크에 30~40일가량 보관하고 다시 오크통에 1년 이상 저장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엄청난 규모의 와인 시설과 포도밭, 해외 기술 교류 현황을 보면서 중국 사업가들의 자본력을 다시 한번 실감했습니다.

양조장 관리자 양닝씨는 와인의 성패는 포도 재배가 7할, 숙성 저장이 3할을 차지한다면서 포도 재배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양조장에 딸린 포도밭에서는 인근 대학 연구진이 포도의 생육 상태 등을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닝샤 위안스 와인 양조장의 와인 저장 시설을 다른 양조장 관계자들이 견학하고 있다.
양조장에는 그동안 국제대회에서 수상한 와인들이 전시돼 있었습니다. 닝샤 와인이 이미 국제적으로 어느 정도 인정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양조장들은 대형 시음장도 갖추고 있다.
시음장에는 일반 관광객은 물론 견학차 방문한 관리들이 와인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이들을 대형버스가 잇달아 태워 나르고 있었습니다.

와인 산업은 단순히 와인의 생산과 유통과 관련한 일자리만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관광 산업에도 크게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닝샤후이족자치구는 칭하이, 구이저우 등과 함께 중국에서 경제적으로 낙후된 지역으로 꼽히는 곳입니다 .

■ 와인 산업 발전은 물론 관광객 유치 등으로 낙후 지역 개발도 노려

실제 베이징에서 열렸던 기자회견에서 중국 농업부의 수이펑페이 국제협력국장은 허란산 와인 시범기지가 "농업 대외 개방의 새로운 고지를 건설하고, 일대일로의 농업 합작을 촉진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닝샤의 와인 산업을 일대일로 전략과 연계시켜 지역 경제를 뒷받침하겠다는 중국 정부의 정책적 고려를 읽을 수 있습니다.

중국의 와인 소비량은 2020년 기준 세계 6위, 생산량은 10위 수준입니다. 14억 인구를 고려하면 아직은 미진해 보입니다. 그만큼 성장 가능성도 있지만 걸림돌이 있습니다.

흔히 배갈, 고량주라고 부르는 백주에 대한 중국인들의 수요가 워낙 크기 때문입니다. 중국 TV를 봐도 백주 광고와 백주 판매 홈쇼핑 프로그램이 상당히 많습니다.

허란산 와인 박물관에 전시된 닝샤 와인들.
이에 대해 허란산 와인박물관 책임자인 리잉씨는 "중국인들의 생활 수준이 높아질수록 와인 수요는 더욱 많아지고 다양함을 추구하게 될 것"이라며 중국 와인 산업의 발전을 낙관적으로 전망했습니다.

■ 중국 와인굴기 구상, 호주 와인에 대한 반덤핑 관세 부과 직후 발표

그런데 이 같은 중국 와인굴기 구상은 그 발표 시점 때문에 외신들로부터 다른 측면에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발표 불과 석 달 전인 올해 3월 중국이 호주산 와인에 대해 최대 218.4% 고율의 반덤핑 관세를 매겼기 때문입니다.

호주 와인을 사실상 중국 시장에서 퇴출시키는 조치로 해석됐습니다.

호주는 중국의 가장 큰 와인 수입국입니다. 중국 와인 생산업자는 중국 정부의 조치가 분명 국내 와인업자들에게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조심스레 답했습니다. 중국 글로벌타임스는 2015년 이후 5년 동안 호주 와인의 중국 내 평균 가격이 13% 이상 떨어졌고 그만큼 중국 시장 점유율을 넓혔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대해 호주 측은 중국은 전 세계에서 호주산 와인이 가장 비싸게 팔리는 나라라며 덤핑 의혹을 부인했습니다.

중국과 호주의 무역 분쟁은 와인에 그치지 않습니다. 보리와 석탄, 랍스터 등 호주의 수출품들이 줄줄이 중국 정부에 의해 무역 규제 대상에 올랐습니다.

■ 외교 안보·코로나19 등 둘러싸고 중국과 호주 갈등 고조...무역 갈등으로 비화

이 같은 무역 전쟁의 이면에는 지난 몇 해 동안 깊이 파인 두 나라의 외교적 갈등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호주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가담하고, 자국의 5G 이동통신 사업에 중국의 대표 IT 기업 화웨이의 참가를 배제시키면서 본격화됐습니다.

호주가 코로나19의 중국기원론 조사를 지지하면서 중국의 불만은 폭발 양상을 보였습니다.

사드 보복을 연상시키는 중국의 대 호주 무역 정책에 대해 본보기식 조치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호주는 수출량 가운데 40% 이상을 중국에 의존합니다. 그만큼 중국의 무역 보복에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호주로서는 중국에 굴복하거나 아니면 무언가 전면적 변화를 모색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입니다.

호주와의 갈등과 관련해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에서 이득을 얻는 나라가 이념으로 선을 긋고 근거 없는 비난으로 중국에 먹칠하는 행위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 중국에 수출 40% 이상 의존하던 호주, 수출 다변화 적극 모색

호주는 중국의 와인 반덤핑 관세 부과에 대해 WTO 제소로 정면 대응했습니다. 더불어 미국과 동남아 등 와인 시장 개척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중국 시장을 잃은 호주산 보리는 사우디아라비아를 대체 시장으로 찾았습니다. 석탄은 동남아에서 수출 기회를 찾고 있습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오른쪽)와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가 6월 영국 런던에서 만나 영국-호주 FTA 체결을 발표했다. 존슨 총리는 이 자리에서 호주에 대한 중국의 태도를 지적하기도 했다. (사진=연합뉴스)
6월에는 호주 총리가 영국을 직접 방문해 양국의 FTA 체결을 발표했습니다. 댄 테한 통상관광투자장관도 7월 한국과 미국, 일본 등지를 바쁘게 돌며 전략적 경제 협력 강화를 모색했습니다. 이 같은 무역 다변화 과정에서 희토류를 비롯한 전략 광물도 지렛대로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습니다.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오른쪽)과 댄 테한 호주 통상관광투자장관이 7월 19일 서울에서 만나 디지털 통상 규범, 핵심 광물 공급망 안정화 등을 논의했다. (사진=산업통상자원부)
한때 중국과 경제적 밀월을 즐기던 호주가 전면적인 정책 수정을 선택한 것입니다. 호주는 8월 들어서는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미군의 인도 태평양 해상 합동 훈련에 동참하는 등 전략적으로 분명한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중국이 닝샤후이족자치구에서 추진하고 있는 와인굴기의 현장은 드넓은 포도밭의 아름다운 풍경, 붉은 와인의 향기가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와인 산업 육성과 맞물린 무역 갈등 때문에 대국굴기 중국의 공세적 이미지가 이면에 어른거리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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