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사 장기기증’ 5살 아기천사 소율이…못다한 이야기

입력 2021.11.0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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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가장 감동을 준 뉴스, 불의의 사고로 뇌사에 빠진 5세 여아가 아픈 어린이들에게 심장과 신장을 남기고 떠났다는 소식이었습니다. 2016년생 소율이가 어쩌다 키즈카페에서 물에 빠져 뇌사상태가 된 것인지 안타까움을 표하는 기사 댓글들이 많았습니다. 소율아빠 전기섭 씨에게 연락해 봤습니다.

"키즈카페 목욕시설에서 아이를 제대로 보지 않은 잘못이죠." 예상 외의 답변이었습니다.

키즈카페 구조상 놀이를 하고 난 뒤 별도의 목욕시설을 이용할 수 있었는데, 엄마가 머리를 감는 사이 아이가 욕탕 물에 빠져 사고를 당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 남 탓보다 내 탓이 익숙한 소율아빠

키즈카페를 상대로 관리 부주의 등으로 소송을 하지 않았냐 재차 물었습니다.

"소송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2019년 키즈카페 사고 뒤 딸은 뇌사상태가 됐고, 일 년 전 희귀성 폐암으로 투병 중이던 부인도 돌봐야 했기에 너무 벅찼습니다. 아이를 제대로 안 본 제 잘못이죠."

몇 분 안 되는 통화였지만, 소율 아빠 전기섭씨는 '남 탓보다 내 탓'이 익숙한 사람이구나 느껴졌습니다.

사고 전 소율이와 소율아빠 전기섭 씨의 모습.사고 전 소율이와 소율아빠 전기섭 씨의 모습.

"사고 뒤 모든 일상이 깨져버렸어요. 딸과 아내 두 명의 중환자를 집에서 돌봐야 했어요." 유명인들도 자주 오는 일식당 요리사 팀장이었던 전씨는 일을 관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딸과 아내 둘 다 더 이상의 치료가 어렵다는 병원의 판단으로 집에서 돌봄을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시설에 보내는 게 낫지 않냐 주변에서도 그랬지만, 보낼 수가 없었어요. 딸은 금방이라도 눈을 뜰 것 같았고, 딸의 사고가 본인 잘못이라며 치료까지 거부하던 아내는 집에서 죽고 싶다고 했거든요."

그래도 생계를 이어가야 했던 전 씨에게 손을 내밀어 준건 이웃들이었습니다. "알고 지내던 식당 사장님이 시간제로 일을 할 수 있게 도와주셨어요. 대형마트 푸드코트에서 하루 몇 시간씩만 파트타임으로 음식을 만들었어요."

시간은 벌었지만, 월급은 반 토막이 났습니다. 딸과 아내 두 중환자를 집에서 돌보려면 최소 한 달 2백만 원의 돈이 들어갔습니다. 매월 10만 원 상당의 환자 침대 대여비와 생리식염수, 인공호흡기 등 가정 돌봄에 필요한 비용으로 늘 빠듯한 살림이었습니다.

■ 아빠, 뇌사 딸과 암투병 아내를 집에서 돌보다

"그래도 병원비는 견딜만했어요. 딸 어린이보험 민간회사에 들어놨던 것이 있었고, 서울대병원에서 저소득층 어린이 환자를 대상으로 지원하는 후원에 선정돼 1년에 1천만 원을 받았어요. 아내도 중증 희소 암을 인정을 받아 건강보험이 적용됐고요."

가장 큰 문제는 '돌봄'이었습니다. "주민센터를 가도 구청에 가도 내 담당이 아니란 말만 들었던 것 같아요."

딸 얘기에 중간중간 울음이 섞인 목소리로 인터뷰를 이어가던 전씨가 목소리를 가다듬었습니다.

"아파보고 겪어봐야 알겠더라고요. 살기 좋아져서 복지가 많아졌다고 뉴스에서 봤는데, 가 보면 당장 도움받을 수 있는 게 없었어요."

3년간 뇌사상태 딸을 집에서 돌본 전기섭씨.3년간 뇌사상태 딸을 집에서 돌본 전기섭씨.

전 씨는 소율이에게 해당되는 아기 돌봄서비스를 2019년 뇌사 이후 신청했습니다. 하지만 소율이가 세상을 떠나는 2021년 10월 28일까지 돌봄선생님 지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전씨가 살고 있는 지역에 중증아동 환자를 돌볼 인력이 없고 대기인원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아내 병세가 악화 되면서는 혼자 감당이 힘들었어요. 일은 해야 먹고 사니까 일을 안 할 수도 없고요. 그래서 한 달 정도 민간요양보호사를 쓰기도 했는데요. 비용이 너무 비싸 힘들었어요. 8시간에 10만 원."

남 탓보다 내 탓이 익숙한 전 씨도 '힘들 때 도움이 안 됐던 복지정책'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아 보였습니다.

"병원에서 소율이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니까, 이제 현대의학으로 해 볼 것은 다 해봤다. 아기가 견디기에 너무 많은 약물을 쓰고 있다 하니까 이제 그만 보내줘야 하는구나 했습니다."

10월 28일 소율이의 장기 적출 수술장 앞, 이제 정말 딸과 이별해야 하는 그 4시간의 수술을 어떻게 견뎠을지 감히 가늠조차 안 됐습니다.

"처음에는 어떻게 살아갈까 막막해서 아무것도 못 했어요. 그러다 생각을 고쳐먹었어요. 소율이 육신은 죽지만 심장은 뛴다. 그것으로 버텼고 지금도 버티고 있습니다."


■ "우리 딸 심장이 잘 뛰는지 알아야 허무하지 않죠. 그게 마지막 삶의 이유입니다."

인터뷰를 마치려는데 전씨가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 아이 심장이 잘 뛰는지 확인하지 못하면 허무하잖아요. 그런데 지금 법이 확인할 수가 없다네요. 서신 교환은 할 수 있게 해 준다고는 했는데, 꼭 될 수 있게 도와주세요."

드라마 같은 현실이었습니다. 얼마전에 인기리에 종영된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에서 심장을 기증받은 아이 엄마가 유가족에게 편지와 선물을 전하고자 의사를 찾아갔지만 법 때문에 안 된다는 그 장면 말입니다.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현재 장기기증자와 수혜자의 교류는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제31조 비밀유지' 조항에 따라 금지되고 있습니다. 장기거래를 두고 경제적 뒷거래가 형성될 것을 우려해 만들어진 조항입니다. 1990년대 장기 불법거래가 횡행하던 시절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만들어진 규제입니다.


■ '유가족-이식인 서신 교환 금지' 시대에 뒤떨어져

성숙해진 시민의식에 맞게 '장기기증 비밀유지 조항'은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해당 조항 개선을 위해 노력해 온 김동엽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 사무처장은 “기증인 유가족과 이식인의 직접적 서신 교류를 하자는 것이 아니고, 본부와 같은 기관의 중재 하에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서로에게 부담되지 않는 수준에서 소식만 전하자는 건데 법 개정이 안 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학계의 견해도 비슷합니다. 이타주의와 사회복지의 관계에 대해 다년간 연구해 온 강철희 연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기증자는 내 가족이 타인의 삶에 들어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확인할 권리가 있다" 며 "기관 등 중간 매개자를 통해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우리보다 장기기증문화가 활성화된 미국과 영국 등에서는 장기기증 유가족과 수혜자 간의 기관을 통한 서신 교환이 법적으로 허용됩니다. 중간 기관 중재를 통해 장기기증 뒷거래 등 부작용을 줄이고 있는 겁니다.

김 사무처장은 "2016년 미국 유학 중 사고로 현지에서 장기기증을 한 고 김유나 양 유가족이 미국인 수혜자를 만나 서로의 안위를 확인하며 위로가 됐던 일을 우리 사회가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2020년 고 김유나 양의 심장을 이식받은 미국인 킴벌리 씨와 유가족의 만남.2020년 고 김유나 양의 심장을 이식받은 미국인 킴벌리 씨와 유가족의 만남.

"소율이는 이제 양지바른 곳에서 편히 쉬고 있어요.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고요."

소율아빠 전기섭씨의 삶에 대한 희망이 읽혔습니다. 고 김유나 양의 유가족이 김 양의 심장을 이식받은 미국인 킴벌리 씨를 만나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던 것처럼, 전 씨도 그런 날이 올 수 있기를 희망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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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뇌사 장기기증’ 5살 아기천사 소율이…못다한 이야기
    • 입력 2021-11-04 07:00:26
    취재K

며칠 전 가장 감동을 준 뉴스, 불의의 사고로 뇌사에 빠진 5세 여아가 아픈 어린이들에게 심장과 신장을 남기고 떠났다는 소식이었습니다. 2016년생 소율이가 어쩌다 키즈카페에서 물에 빠져 뇌사상태가 된 것인지 안타까움을 표하는 기사 댓글들이 많았습니다. 소율아빠 전기섭 씨에게 연락해 봤습니다.

"키즈카페 목욕시설에서 아이를 제대로 보지 않은 잘못이죠." 예상 외의 답변이었습니다.

키즈카페 구조상 놀이를 하고 난 뒤 별도의 목욕시설을 이용할 수 있었는데, 엄마가 머리를 감는 사이 아이가 욕탕 물에 빠져 사고를 당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 남 탓보다 내 탓이 익숙한 소율아빠

키즈카페를 상대로 관리 부주의 등으로 소송을 하지 않았냐 재차 물었습니다.

"소송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2019년 키즈카페 사고 뒤 딸은 뇌사상태가 됐고, 일 년 전 희귀성 폐암으로 투병 중이던 부인도 돌봐야 했기에 너무 벅찼습니다. 아이를 제대로 안 본 제 잘못이죠."

몇 분 안 되는 통화였지만, 소율 아빠 전기섭씨는 '남 탓보다 내 탓'이 익숙한 사람이구나 느껴졌습니다.

사고 전 소율이와 소율아빠 전기섭 씨의 모습.
"사고 뒤 모든 일상이 깨져버렸어요. 딸과 아내 두 명의 중환자를 집에서 돌봐야 했어요." 유명인들도 자주 오는 일식당 요리사 팀장이었던 전씨는 일을 관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딸과 아내 둘 다 더 이상의 치료가 어렵다는 병원의 판단으로 집에서 돌봄을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시설에 보내는 게 낫지 않냐 주변에서도 그랬지만, 보낼 수가 없었어요. 딸은 금방이라도 눈을 뜰 것 같았고, 딸의 사고가 본인 잘못이라며 치료까지 거부하던 아내는 집에서 죽고 싶다고 했거든요."

그래도 생계를 이어가야 했던 전 씨에게 손을 내밀어 준건 이웃들이었습니다. "알고 지내던 식당 사장님이 시간제로 일을 할 수 있게 도와주셨어요. 대형마트 푸드코트에서 하루 몇 시간씩만 파트타임으로 음식을 만들었어요."

시간은 벌었지만, 월급은 반 토막이 났습니다. 딸과 아내 두 중환자를 집에서 돌보려면 최소 한 달 2백만 원의 돈이 들어갔습니다. 매월 10만 원 상당의 환자 침대 대여비와 생리식염수, 인공호흡기 등 가정 돌봄에 필요한 비용으로 늘 빠듯한 살림이었습니다.

■ 아빠, 뇌사 딸과 암투병 아내를 집에서 돌보다

"그래도 병원비는 견딜만했어요. 딸 어린이보험 민간회사에 들어놨던 것이 있었고, 서울대병원에서 저소득층 어린이 환자를 대상으로 지원하는 후원에 선정돼 1년에 1천만 원을 받았어요. 아내도 중증 희소 암을 인정을 받아 건강보험이 적용됐고요."

가장 큰 문제는 '돌봄'이었습니다. "주민센터를 가도 구청에 가도 내 담당이 아니란 말만 들었던 것 같아요."

딸 얘기에 중간중간 울음이 섞인 목소리로 인터뷰를 이어가던 전씨가 목소리를 가다듬었습니다.

"아파보고 겪어봐야 알겠더라고요. 살기 좋아져서 복지가 많아졌다고 뉴스에서 봤는데, 가 보면 당장 도움받을 수 있는 게 없었어요."

3년간 뇌사상태 딸을 집에서 돌본 전기섭씨.
전 씨는 소율이에게 해당되는 아기 돌봄서비스를 2019년 뇌사 이후 신청했습니다. 하지만 소율이가 세상을 떠나는 2021년 10월 28일까지 돌봄선생님 지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전씨가 살고 있는 지역에 중증아동 환자를 돌볼 인력이 없고 대기인원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아내 병세가 악화 되면서는 혼자 감당이 힘들었어요. 일은 해야 먹고 사니까 일을 안 할 수도 없고요. 그래서 한 달 정도 민간요양보호사를 쓰기도 했는데요. 비용이 너무 비싸 힘들었어요. 8시간에 10만 원."

남 탓보다 내 탓이 익숙한 전 씨도 '힘들 때 도움이 안 됐던 복지정책'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아 보였습니다.

"병원에서 소율이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니까, 이제 현대의학으로 해 볼 것은 다 해봤다. 아기가 견디기에 너무 많은 약물을 쓰고 있다 하니까 이제 그만 보내줘야 하는구나 했습니다."

10월 28일 소율이의 장기 적출 수술장 앞, 이제 정말 딸과 이별해야 하는 그 4시간의 수술을 어떻게 견뎠을지 감히 가늠조차 안 됐습니다.

"처음에는 어떻게 살아갈까 막막해서 아무것도 못 했어요. 그러다 생각을 고쳐먹었어요. 소율이 육신은 죽지만 심장은 뛴다. 그것으로 버텼고 지금도 버티고 있습니다."


■ "우리 딸 심장이 잘 뛰는지 알아야 허무하지 않죠. 그게 마지막 삶의 이유입니다."

인터뷰를 마치려는데 전씨가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 아이 심장이 잘 뛰는지 확인하지 못하면 허무하잖아요. 그런데 지금 법이 확인할 수가 없다네요. 서신 교환은 할 수 있게 해 준다고는 했는데, 꼭 될 수 있게 도와주세요."

드라마 같은 현실이었습니다. 얼마전에 인기리에 종영된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에서 심장을 기증받은 아이 엄마가 유가족에게 편지와 선물을 전하고자 의사를 찾아갔지만 법 때문에 안 된다는 그 장면 말입니다.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현재 장기기증자와 수혜자의 교류는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제31조 비밀유지' 조항에 따라 금지되고 있습니다. 장기거래를 두고 경제적 뒷거래가 형성될 것을 우려해 만들어진 조항입니다. 1990년대 장기 불법거래가 횡행하던 시절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만들어진 규제입니다.


■ '유가족-이식인 서신 교환 금지' 시대에 뒤떨어져

성숙해진 시민의식에 맞게 '장기기증 비밀유지 조항'은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해당 조항 개선을 위해 노력해 온 김동엽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 사무처장은 “기증인 유가족과 이식인의 직접적 서신 교류를 하자는 것이 아니고, 본부와 같은 기관의 중재 하에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서로에게 부담되지 않는 수준에서 소식만 전하자는 건데 법 개정이 안 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학계의 견해도 비슷합니다. 이타주의와 사회복지의 관계에 대해 다년간 연구해 온 강철희 연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기증자는 내 가족이 타인의 삶에 들어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확인할 권리가 있다" 며 "기관 등 중간 매개자를 통해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우리보다 장기기증문화가 활성화된 미국과 영국 등에서는 장기기증 유가족과 수혜자 간의 기관을 통한 서신 교환이 법적으로 허용됩니다. 중간 기관 중재를 통해 장기기증 뒷거래 등 부작용을 줄이고 있는 겁니다.

김 사무처장은 "2016년 미국 유학 중 사고로 현지에서 장기기증을 한 고 김유나 양 유가족이 미국인 수혜자를 만나 서로의 안위를 확인하며 위로가 됐던 일을 우리 사회가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2020년 고 김유나 양의 심장을 이식받은 미국인 킴벌리 씨와 유가족의 만남.
"소율이는 이제 양지바른 곳에서 편히 쉬고 있어요.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고요."

소율아빠 전기섭씨의 삶에 대한 희망이 읽혔습니다. 고 김유나 양의 유가족이 김 양의 심장을 이식받은 미국인 킴벌리 씨를 만나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던 것처럼, 전 씨도 그런 날이 올 수 있기를 희망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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