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오죽하면…” 카센터 사장님이 귤밭에 간 사연은?

입력 2022.01.24 (07:00) 수정 2022.01.2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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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우 카센터 대표. 최근에 일감이 줄면서 제주도 귤밭에서 일하고 있다.정태우 카센터 대표. 최근에 일감이 줄면서 제주도 귤밭에서 일하고 있다.

■ "오죽하면 밭에 나와 귤 따겠어요?"

정태우 씨는 웃고 있었지만 눈빛에는 슬픔과 절망 등 많은 감정이 담겨있었습니다.

정태우 씨는 자동차 정비소 사장님입니다. 제주 서귀포시에서 20년 넘게 정비소를 운영한 자동차 수리 베테랑입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정비소보다 귤밭에 나와 있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일감이 뚝 끊겼기 때문입니다. 더이상 손님이 찾지 않는 정비소 일만으로는 생계 유지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정비소 일감이 뚝 끊긴 이유, 정 씨는 전기차가 늘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승용차는 물론 1톤 화물차까지 전기차로 바뀌면서 시외의 소규모 정비소를 찾는 손님들이 크게 줄었다고 했습니다.

정태우 / 자동차 정비소 사장(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전기차가 많이 보급된 걸 피부로 느껴요. 우리 카센터에 타이어 바람이나 담아달라고 오는 (전기)차들이 대부분이에요. 전기차 나오고 나서 일이 팍 줄었어요, 아예!"
"폐업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주변 카센터도 폐업하고…. (저도) '이거 폐업을 해야 하나? 그냥 가지고 가야 하나?' 생각이 많이 들죠."

■ '탄소중립 시대'의 명과 암

이번에는 시내로 나가봤습니다. 서귀포 시내의 한 정비소에는 그나마 수리 차량 몇 대가 보였습니다. 하지만 사정은 이곳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5~6년 전과 비교하면 고객이 40%가량 줄었다는 게 정비소 직원의 말이었습니다.

정비소 직원인 김경만 씨는 직접 수리하는 차를 보여주면서 전기차 증가로 카센터 일이 줄어든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원대오 제주 지역 카센터 조합(자동차전문정비 사업조합) 이사장도 "일감과 손님은 빠르게 줄어들고 있지만 뾰족한 해결책은 없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원 이사장은 그러면서 "조합에서 제주도에 업종 전환 교육 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이뤄진 게 없다"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연관 기사] 탄소중립의 명과 암…‘정의로운 전환’ 어떻게? (KBS 뉴스9 2022.1.18)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375694

■ 속도 내는 '탄소 중립'…피해 대책은?

유독 제주도 자동차 정비소들이 힘든 까닭은 무엇일까요? 제주도 내 차량 수는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402,416대, 이 중 25,381대가 전기차입니다. 비율로 보면 6.3%로, 차량 17대 중 1대가 전기차입니다. 전기차 보급 비율은 전국 1위입니다.

사실 제주도는 미래 우리가 살게 될 '탄소중립 시대'의 축소판입니다. 제주도는 2030년부터는 신규 내연기관차 등록을 받지 않기로 했습니다. '탄소배출 없는 섬'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탄소감축 정책에 어느 지자체보다 앞서 시작한 셈입니다.

제주도에 운행 중인 전기차 모습. 제주도 전기차 비율은 6.3%로 전국 1위이다.제주도에 운행 중인 전기차 모습. 제주도 전기차 비율은 6.3%로 전국 1위이다.

하지만 피해 업종에 대한 지원은 선도적인 정책만큼 빠르지 않습니다. 일단 전기차 보급 등 탄소감축으로 인한 피해업종 지원에 대해서는 법적 근거도 제도도 갖춰져 있지 않습니다.

제주도청은 "뚜렷한 게(지원)이 있으려면 법과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제주도가 선도적으로 (전기차)를 보급하고 있는데 육지는 (전기차 보급률이) 1%도 안 된다. 중앙부처와 협의하고 있는데 아직 초기라 어려움이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 "앉아서 손님 기다리는 게 일"…'탄소 감축' 영향받는 사람 48만 명

탄소 중립으로 가는 길, 피해는 제주도뿐만이 아닙니다. 경기도 파주에서 LPG 충전소를 운영하고 있는 김두년 대표는 요즘 고민이 깊다고 했습니다. 손님이 줄면서 적자에 적자가 더해지고 있는 상황 때문입니다.

LPG 충전소의 경영난 역시 최근 늘어나는 전기차와 수소차 같은 친환경차들의 급증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전기차와 수소차 충전소로 업종을 바꾸기도 쉽지 않습니다.

김두년 LPG 충전소 대표.김두년 LPG 충전소 대표.

김두년 / 경기 파주지역 LPG 충전소 대표
"지금은 앉아서 손님 기다리는 게 일입니다. 전기차와 수소차 들어오면서 대략 30% 정도 매출이 급감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시던 손님들이 안 보이시거나 나중에 보면 전기차로 갈아타신 분들이 주위에 많습니다."
"LPG 충전소나 주유소가 폐업이나 전업을 하는 데 지원을 받는 건 없어요. 이 부지를 이용해서 카페라든가 프랜차이즈 업종 등을 생각하고 있어요."

탄소감축으로 얼마나 많은 일자리가 사라질지에 대한 자료나 연구는 부족한 상태입니다. 관련 논의가 최근에서야 시작됐고 전기차와 재생에너지와 같은 분야의 새로운 일자리 창출 등 고려할 사안이 많기 때문입니다.

대신 탄소감축으로 인해 영향을 받을 분야와 일자리 규모 자료는 있습니다. 지난해 7월 정부에서 만든 '산업구조 변화에 대응한 공정한 노동전환 지원 방안'이라는 보고서입니다.

이 보고서를 보면, 탄소감축 영향으로 영향을 받은 일자리는 자동차와 석탄 화력발전 등 6개 분야 약 48만 명에 달한다고 분석했습니다.

제주에서, 또 경기도 파주에서 만난 업체 대표들과 직원들이 바로 이 48만 명에 속합니다. 문제는 빠른 변화 속에 피해는 시작됐는데 이들에 대한 대책은 더디다는 것입니다.

탄소를 많이 배출하던 '기후악당국'에서 2050년까지 '탄소 중립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분명 과감하고 속도감 있는 '탄소 감축'이 진행돼야 합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일자리가 사라지거나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생긴다면 '사회적 갈등'은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정의로운 전환'이 절실하고 시급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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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오죽하면…” 카센터 사장님이 귤밭에 간 사연은?
    • 입력 2022-01-24 07:00:36
    • 수정2022-01-24 07:00:48
    취재후·사건후
정태우 카센터 대표. 최근에 일감이 줄면서 제주도 귤밭에서 일하고 있다.
■ "오죽하면 밭에 나와 귤 따겠어요?"

정태우 씨는 웃고 있었지만 눈빛에는 슬픔과 절망 등 많은 감정이 담겨있었습니다.

정태우 씨는 자동차 정비소 사장님입니다. 제주 서귀포시에서 20년 넘게 정비소를 운영한 자동차 수리 베테랑입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정비소보다 귤밭에 나와 있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일감이 뚝 끊겼기 때문입니다. 더이상 손님이 찾지 않는 정비소 일만으로는 생계 유지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정비소 일감이 뚝 끊긴 이유, 정 씨는 전기차가 늘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승용차는 물론 1톤 화물차까지 전기차로 바뀌면서 시외의 소규모 정비소를 찾는 손님들이 크게 줄었다고 했습니다.

정태우 / 자동차 정비소 사장(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전기차가 많이 보급된 걸 피부로 느껴요. 우리 카센터에 타이어 바람이나 담아달라고 오는 (전기)차들이 대부분이에요. 전기차 나오고 나서 일이 팍 줄었어요, 아예!"
"폐업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주변 카센터도 폐업하고…. (저도) '이거 폐업을 해야 하나? 그냥 가지고 가야 하나?' 생각이 많이 들죠."

■ '탄소중립 시대'의 명과 암

이번에는 시내로 나가봤습니다. 서귀포 시내의 한 정비소에는 그나마 수리 차량 몇 대가 보였습니다. 하지만 사정은 이곳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5~6년 전과 비교하면 고객이 40%가량 줄었다는 게 정비소 직원의 말이었습니다.

정비소 직원인 김경만 씨는 직접 수리하는 차를 보여주면서 전기차 증가로 카센터 일이 줄어든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원대오 제주 지역 카센터 조합(자동차전문정비 사업조합) 이사장도 "일감과 손님은 빠르게 줄어들고 있지만 뾰족한 해결책은 없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원 이사장은 그러면서 "조합에서 제주도에 업종 전환 교육 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이뤄진 게 없다"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연관 기사] 탄소중립의 명과 암…‘정의로운 전환’ 어떻게? (KBS 뉴스9 2022.1.18)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375694

■ 속도 내는 '탄소 중립'…피해 대책은?

유독 제주도 자동차 정비소들이 힘든 까닭은 무엇일까요? 제주도 내 차량 수는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402,416대, 이 중 25,381대가 전기차입니다. 비율로 보면 6.3%로, 차량 17대 중 1대가 전기차입니다. 전기차 보급 비율은 전국 1위입니다.

사실 제주도는 미래 우리가 살게 될 '탄소중립 시대'의 축소판입니다. 제주도는 2030년부터는 신규 내연기관차 등록을 받지 않기로 했습니다. '탄소배출 없는 섬'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탄소감축 정책에 어느 지자체보다 앞서 시작한 셈입니다.

제주도에 운행 중인 전기차 모습. 제주도 전기차 비율은 6.3%로 전국 1위이다.
하지만 피해 업종에 대한 지원은 선도적인 정책만큼 빠르지 않습니다. 일단 전기차 보급 등 탄소감축으로 인한 피해업종 지원에 대해서는 법적 근거도 제도도 갖춰져 있지 않습니다.

제주도청은 "뚜렷한 게(지원)이 있으려면 법과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제주도가 선도적으로 (전기차)를 보급하고 있는데 육지는 (전기차 보급률이) 1%도 안 된다. 중앙부처와 협의하고 있는데 아직 초기라 어려움이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 "앉아서 손님 기다리는 게 일"…'탄소 감축' 영향받는 사람 48만 명

탄소 중립으로 가는 길, 피해는 제주도뿐만이 아닙니다. 경기도 파주에서 LPG 충전소를 운영하고 있는 김두년 대표는 요즘 고민이 깊다고 했습니다. 손님이 줄면서 적자에 적자가 더해지고 있는 상황 때문입니다.

LPG 충전소의 경영난 역시 최근 늘어나는 전기차와 수소차 같은 친환경차들의 급증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전기차와 수소차 충전소로 업종을 바꾸기도 쉽지 않습니다.

김두년 LPG 충전소 대표.
김두년 / 경기 파주지역 LPG 충전소 대표
"지금은 앉아서 손님 기다리는 게 일입니다. 전기차와 수소차 들어오면서 대략 30% 정도 매출이 급감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시던 손님들이 안 보이시거나 나중에 보면 전기차로 갈아타신 분들이 주위에 많습니다."
"LPG 충전소나 주유소가 폐업이나 전업을 하는 데 지원을 받는 건 없어요. 이 부지를 이용해서 카페라든가 프랜차이즈 업종 등을 생각하고 있어요."

탄소감축으로 얼마나 많은 일자리가 사라질지에 대한 자료나 연구는 부족한 상태입니다. 관련 논의가 최근에서야 시작됐고 전기차와 재생에너지와 같은 분야의 새로운 일자리 창출 등 고려할 사안이 많기 때문입니다.

대신 탄소감축으로 인해 영향을 받을 분야와 일자리 규모 자료는 있습니다. 지난해 7월 정부에서 만든 '산업구조 변화에 대응한 공정한 노동전환 지원 방안'이라는 보고서입니다.

이 보고서를 보면, 탄소감축 영향으로 영향을 받은 일자리는 자동차와 석탄 화력발전 등 6개 분야 약 48만 명에 달한다고 분석했습니다.

제주에서, 또 경기도 파주에서 만난 업체 대표들과 직원들이 바로 이 48만 명에 속합니다. 문제는 빠른 변화 속에 피해는 시작됐는데 이들에 대한 대책은 더디다는 것입니다.

탄소를 많이 배출하던 '기후악당국'에서 2050년까지 '탄소 중립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분명 과감하고 속도감 있는 '탄소 감축'이 진행돼야 합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일자리가 사라지거나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생긴다면 '사회적 갈등'은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정의로운 전환'이 절실하고 시급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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