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우크라이나 사태, ‘부다페스트 각서’ 휴지 조각?…북한·이란 비핵화는

입력 2022.02.23 (09:01) 수정 2022.02.23 (09:42)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평화유지군 파병' 명령으로 우크라이나 사태가 일촉즉발의 위기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그리고 위기의 한가운데 있는 우크라이나의 첫 번째 요구는 유엔 안보리 긴급회의 소집이었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안보리 소집을 요청하는 근거로 '부다페스트 양해각서 6조'를 제시했다.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는 1994년 러시아와 미국, 영국이 서명한 것으로 회의가 열린 헝가리 부다페스트 이름을 따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라고 불리고 있지만, 공식적인 문서명은 [1994. 12. 1, United Nations General Assembly Security Council A/49/765] 으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명의의 국제조약과 같은 문서이다.

부다페스트 양해각서 일부부다페스트 양해각서 일부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는 우크라이나가 당시 가지고 있던 모든 핵무기를 러시아로 이전하는 대신 우크라이나의 영토와 정치적 독립을 보장하는 약속을 담고 있다.

그러나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한 데 이어 이번에 돈바스 지역으로 러시아군 파병을 공식 명령하면서 양해각서는 이미 휴지 조각이 된 게 아니냐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또 당시 서방 측 대표로 문서에 서명한 미국과 영국이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는지에 따라 국제사회의 평화 질서가 크게 흔들릴 수 있는 민감한 부분이다.

구소련 핵기술의 심장이었던 우크라이나, 1991년 구소련이 해체되면서 우크라이나는 핵폭탄 약 5,000발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170기 이상을 보유한 세계 3위의 핵보유국이었다. 그러나 신생독립국으로서 주권과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모든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신 러시아와 미국, 영국이 함께 서명한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를 체결한 것이다.

양해각서에 적시된 6개 조항은 대략 다음과 같다.

러시아 연방, 영국, 미국은

1. 우크라이나의 독립과 주권 및 현재 우크라이나의 국경선(영토의 완전성)을 존중하기로 한다.

2. 우크라이나의 영토 보전 또는 정치적 독립성에 대한 위협 또는 무력 사용을 삼가고 자위권 또는 유엔 헌장에 따른 기타 사유에 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경우에도 우크라이나에 대하여 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

3. 우크라이나 주권에 내재 되어있는 우크라이나의 권한 행사를 자국의 이익에 종속시키거나, 그 어떠한 형태라도 자국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한 경제적 강압을 삼가할 것.

4. 우크라이나가 무력 사용에 의한 피해자가 되거나 핵무기가 사용되는 무력행위의 위협을 받았을 경우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의 지체 없는 조치를 취할 것.

5. 핵보유국이나 핵보유국과 함께하는 조직이나 연합이 자국에 공격을 감행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우크라이나에 대해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겠다.

6. 네 나라는 위에 언급한 약속에 의문이 생길 경우 협의를 진행한다.

우크라이나가 안보리 소집을 요구한 근거인 양해각서 6조는 결국 양해각서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며, 러시아의 위협에 대응해 서방국가들의 지원을 당당하게 요구하는 이유도 이 문서에 참여한 미국과 영국의 약속이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자신들이 양해각서를 위반하지 않은 것처럼 궤변을 늘어놓겠지만, 이는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기 힘들 것이다.

이제 남은 관심은 미국과 영국 등 서방이 얼마나 적극적인 행동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위협에 대응할 것인가이다. 그리고 현재 거론되고 있는 수준의 경제제재 역시 국제사회가 수긍할 만한 수준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1994년 ‘부다페스트 양해각서’ 당시 서명자, 왼쪽부터 젤렌코 우크라이나 외교장관,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 헤네이 유엔주재 영국대사,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1994년 ‘부다페스트 양해각서’ 당시 서명자, 왼쪽부터 젤렌코 우크라이나 외교장관,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 헤네이 유엔주재 영국대사,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할 때부터 부다페스트 양해각서의 효력에 의문이 제기된 바 있다.

이번 러시아의 돈바스 지역 파병은 결국 강대국들이 약소국의 핵무기 보유를 인정하지 않기 위해 과거에 한 안전보장 약속이, 세월이 흐르고 국제관계에서의 이해관계가 달라질 경우 지켜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지난 2018년 우크라이나의 국가안보국방위원장인 알렉산드르 투르치노프는 "핵무장 포기는 우리의 역사적 실수였다"고 말했다.

그는 현대 세계에서 약자의 견해는 존중되지 않는다며 "우크라이나는 주권과 영토의 안전성을 대가로 세계 3대 핵전력을 넘겼지만, 핵무기를 건네 받은 러시아는 우리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으며, 각서로 보증한 다른 국가들은 단지 우려를 표시하고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 회의유엔 안전보장 이사회 회의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가 어떻게 진행될지 아직은 불분명하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가 자발적으로 핵무기를 포기해 국제사회의 환영을 받았던 과거의 일이 결국 주권을 지키는 데 손해가 됐다는 결론이 난다면 국제사회는 동요할 것이다.

현재 이란과 진행 중인 핵 협상이나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한국과 국제사회의 제재와 설득 명분이 약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새로운 국제 냉전 시대로의 회귀를 알리는 신호탄이 될지 아직은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핵무기 없는 평화체제 구축을 역설해온 미국 등 서방국가가 말싸움에 그치지 않고 얼마나 실질적인 국제 공조를 이끌어 낼지 눈여겨볼 일이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특파원 리포트] 우크라이나 사태, ‘부다페스트 각서’ 휴지 조각?…북한·이란 비핵화는
    • 입력 2022-02-23 09:01:31
    • 수정2022-02-23 09:42:14
    특파원 리포트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평화유지군 파병' 명령으로 우크라이나 사태가 일촉즉발의 위기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그리고 위기의 한가운데 있는 우크라이나의 첫 번째 요구는 유엔 안보리 긴급회의 소집이었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안보리 소집을 요청하는 근거로 '부다페스트 양해각서 6조'를 제시했다.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는 1994년 러시아와 미국, 영국이 서명한 것으로 회의가 열린 헝가리 부다페스트 이름을 따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라고 불리고 있지만, 공식적인 문서명은 [1994. 12. 1, United Nations General Assembly Security Council A/49/765] 으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명의의 국제조약과 같은 문서이다.

부다페스트 양해각서 일부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는 우크라이나가 당시 가지고 있던 모든 핵무기를 러시아로 이전하는 대신 우크라이나의 영토와 정치적 독립을 보장하는 약속을 담고 있다.

그러나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한 데 이어 이번에 돈바스 지역으로 러시아군 파병을 공식 명령하면서 양해각서는 이미 휴지 조각이 된 게 아니냐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또 당시 서방 측 대표로 문서에 서명한 미국과 영국이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는지에 따라 국제사회의 평화 질서가 크게 흔들릴 수 있는 민감한 부분이다.

구소련 핵기술의 심장이었던 우크라이나, 1991년 구소련이 해체되면서 우크라이나는 핵폭탄 약 5,000발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170기 이상을 보유한 세계 3위의 핵보유국이었다. 그러나 신생독립국으로서 주권과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모든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신 러시아와 미국, 영국이 함께 서명한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를 체결한 것이다.

양해각서에 적시된 6개 조항은 대략 다음과 같다.

러시아 연방, 영국, 미국은

1. 우크라이나의 독립과 주권 및 현재 우크라이나의 국경선(영토의 완전성)을 존중하기로 한다.

2. 우크라이나의 영토 보전 또는 정치적 독립성에 대한 위협 또는 무력 사용을 삼가고 자위권 또는 유엔 헌장에 따른 기타 사유에 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경우에도 우크라이나에 대하여 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

3. 우크라이나 주권에 내재 되어있는 우크라이나의 권한 행사를 자국의 이익에 종속시키거나, 그 어떠한 형태라도 자국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한 경제적 강압을 삼가할 것.

4. 우크라이나가 무력 사용에 의한 피해자가 되거나 핵무기가 사용되는 무력행위의 위협을 받았을 경우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의 지체 없는 조치를 취할 것.

5. 핵보유국이나 핵보유국과 함께하는 조직이나 연합이 자국에 공격을 감행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우크라이나에 대해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겠다.

6. 네 나라는 위에 언급한 약속에 의문이 생길 경우 협의를 진행한다.

우크라이나가 안보리 소집을 요구한 근거인 양해각서 6조는 결국 양해각서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며, 러시아의 위협에 대응해 서방국가들의 지원을 당당하게 요구하는 이유도 이 문서에 참여한 미국과 영국의 약속이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자신들이 양해각서를 위반하지 않은 것처럼 궤변을 늘어놓겠지만, 이는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기 힘들 것이다.

이제 남은 관심은 미국과 영국 등 서방이 얼마나 적극적인 행동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위협에 대응할 것인가이다. 그리고 현재 거론되고 있는 수준의 경제제재 역시 국제사회가 수긍할 만한 수준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1994년 ‘부다페스트 양해각서’ 당시 서명자, 왼쪽부터 젤렌코 우크라이나 외교장관,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 헤네이 유엔주재 영국대사,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할 때부터 부다페스트 양해각서의 효력에 의문이 제기된 바 있다.

이번 러시아의 돈바스 지역 파병은 결국 강대국들이 약소국의 핵무기 보유를 인정하지 않기 위해 과거에 한 안전보장 약속이, 세월이 흐르고 국제관계에서의 이해관계가 달라질 경우 지켜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지난 2018년 우크라이나의 국가안보국방위원장인 알렉산드르 투르치노프는 "핵무장 포기는 우리의 역사적 실수였다"고 말했다.

그는 현대 세계에서 약자의 견해는 존중되지 않는다며 "우크라이나는 주권과 영토의 안전성을 대가로 세계 3대 핵전력을 넘겼지만, 핵무기를 건네 받은 러시아는 우리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으며, 각서로 보증한 다른 국가들은 단지 우려를 표시하고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 회의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가 어떻게 진행될지 아직은 불분명하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가 자발적으로 핵무기를 포기해 국제사회의 환영을 받았던 과거의 일이 결국 주권을 지키는 데 손해가 됐다는 결론이 난다면 국제사회는 동요할 것이다.

현재 이란과 진행 중인 핵 협상이나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한국과 국제사회의 제재와 설득 명분이 약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새로운 국제 냉전 시대로의 회귀를 알리는 신호탄이 될지 아직은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핵무기 없는 평화체제 구축을 역설해온 미국 등 서방국가가 말싸움에 그치지 않고 얼마나 실질적인 국제 공조를 이끌어 낼지 눈여겨볼 일이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