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미얀마군부의 ‘러시아 침공 지지성명’을 읽어봤더니…

입력 2022.03.04 (14:28) 수정 2022.03.04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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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 민 툰 미얀마 군부 대변인은 VOA(미국의 소리)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첫 번째는 자신들의 주권을 공고히 하기 위한 러시아의 노력의 일환입니다. 저는 이것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두번째는 러시아가 강대국이라는 것을 세계에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틀 뒤 이번엔 미얀마 군부의 성명이 나왔다. 제목은 '역사에서 깨닫지 못한 우크라이나로부터의 교훈(Lessons from Ukraine for those who haven't learned from history)'.

미얀마 군부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우크라이나 정부와 국민탓으로 돌렸다. 미국과 나토(NATO) 동맹국들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갈등을 부추겼다고 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서방의 꼭두각시라며, 합리적이지 못한 지도자를 택한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탓했다. (미얀마 군부는 수십 여 년 동안 아웅 산 수 치 등 민주주의 진영을 미국등 외세에 볼모가 잡힌 세력이라며 민족주의를 부추겼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 위기의 원인을 '민주주의와 인권'에서 찾았다. 러시아와 미얀마에는 찾아보기 힘든 그 것.

"정치인들은 (중략)......인권이나 민주주의보다 우리 국민의 안전, 나라의 힘, 국익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Politicians...... should understand by now that the security of our own people, the power of our country, and our own national interests are more important than human rights and democracy”

이렇게 미얀마에서 인권과 민주주의는 국민의 안전과 상반된 하위 개념이 됐다.

지난 일요일 미얀마 양곤에서 청년들이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기습 시위를 벌였다 사진 이라와디지난 일요일 미얀마 양곤에서 청년들이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기습 시위를 벌였다 사진 이라와디

2.

일부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를 밝혔다. 최대 도시 양곤에서는 청년들이 기습 시위를 벌이며 러시아의 침공을 규탄했다. 카친주에서는 시민들이 우 크라이나 국기를 얼굴을 그렸고, 다른 참가자들은 '우크라이나를 구하라', '전쟁 중지'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었다.

다웨이에서 시위에 참가한 한 청년은 "푸틴이 우크라이나 침략에 성공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의 적들에게 거대한 신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얀마 군부가 무기 구매를 통해 러시아와 연대할 때, 국가폭력과 무력 침탈을 겪고 있는 두 변방 국가의 시민들은 이렇게 연대했다.

미얀마 카친주 시민들이 우크라이나 깃발 등을 들고 러시아 침공을 규탄하고 있다. 사진 이라와디미얀마 카친주 시민들이 우크라이나 깃발 등을 들고 러시아 침공을 규탄하고 있다. 사진 이라와디

3.

미얀마 군부와 러시아는 군사적 이해관계로 얽혀있다. 지난해 1월, 러시아 국방장관 '세르게이 쇼이구'가 미얀마의 수도 네피도를 찾았다. 이자리에서 러시아산 판찌르-S1 지대공 미사일 시스템, 오를란-10E 정찰 드론 등의 판매계약이 맺어졌다고 모스크바 타임즈가 보도했다. 그리고 공교롭게 일주일 뒤 미얀마에선 쿠데타가 터졌다.

쿠데타 한달이 안돼 미얀마 군부는 또 다시 1,470만 달러 상당의 러시아산 레이더 장비를 수입했다. (미얀마는 국민소득 1천달러 수준의 최빈국중 하나다). 이들 계약으로 사실상 러시아 정부의 미얀마 군부 쿠데타에 대한 추인이 이뤄졌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좌)과 모스크바를 방문한 민 아웅 흘라잉 사령관/ 지난해 6월 22일 사진 AFP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좌)과 모스크바를 방문한 민 아웅 흘라잉 사령관/ 지난해 6월 22일 사진 AFP

지난해 3월 27일, 미얀마 국군의 날에는 알렉산더 바실리예비치 러시아 국방부 차관이 직접 참석했다. 그는 보란듯이 민 아웅 흘라잉 옆자리에 앉았다.

군부가 러시아와의 우호관계를 대내외적으로 과시한 이날 미얀마 군경의 폭력으로 시위대 100여 명이 사망했다(미스 그랜드 인터내셔널에 참가한 미얀마 대표 '한 레이'가 울면서 우리 국민을 살려달라고 호소한 날도 이날이다).

지난해 6월 20일, 유엔은 '미얀마에 대한 무기 수출 중단 결의안'을 채택했다. 하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이틀 뒤 민 아웅 흘라잉 사령관이 다시 모스크바를 방문했다. 러시아 국영 무기수출업체 '소보로넥스포르트'의 대표를 만나 두나라의 '군사기술 협력'을 논의했다.

민 아웅 흘라잉 사령관은 이 방문에서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에게 "러시아의 도움으로 이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 중 하나가 되었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고 러시아 타스통신이 보도했다.

그 무기들은 지금 자국민의 시위진압이나 독립을 원하는 소수민족과의 전투에 사용된다. 미얀마 시민들과 우크라이나 시민들에게 푸틴은 이렇게 공동의 적이 됐다.


4.

미얀마 군부의 성명은 또 푸틴 대통령을 가르켜 "군사력과 경제력을 키우는 선견지명이 있는 미래의 지도자(foresight to quietly build up his country’s military and economic strength)"라고 추켜세웠다.

(군사력은 잘 모르겠지만), 러시아 경제는 푸틴 대통령의 집권이 길어질수록 점점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2013년 2,292조 달러였던 러시아의 GDP는 2020년 1,483조 달러까지 하락하며 10년 전 수준으로 추락했다.(자료 월드뱅크)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 미사일을 퍼붓는 사이, 미국과 유럽 아시아 주요국들은 러시아를 향해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경제 제재를 퍼붓고 있다. 며칠새 루블화 가치는 50% 이상 자유낙하중이다. 자국 화폐가치가 추락하면 갚아야 할 외채는 그만큼 무거워진다. 디폴트 우려가 커진다. 나라 망하기 직전이다. 수출은 막히고 물가는 치솟는다.

9.5%였던 기준금리는 20%로 인상됐다. 고통은 고스란히 러시아 국민들의 몫이다. '역사에서 깨닫지 못한 사람'은 우크라이나 국민이 아니라, '블라디미르 푸틴'이 아닐까.

3월 3일 세계3대 신용평가사는 일제히 러시아의 신용등급을 '투기 등급'으로 떨어뜨렸다. 흔히 정크등급이라고 하는데 정크(Junk)는 쓰레기라는 뜻이다.

전쟁 개시후 러시아 루블화의 가치는  50% 이상 폭락했다.  사진 네이버 캡쳐전쟁 개시후 러시아 루블화의 가치는 50% 이상 폭락했다. 사진 네이버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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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3-04 14:28:38
    • 수정2022-03-04 14:29:16
    특파원 리포트


1.

조 민 툰 미얀마 군부 대변인은 VOA(미국의 소리)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첫 번째는 자신들의 주권을 공고히 하기 위한 러시아의 노력의 일환입니다. 저는 이것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두번째는 러시아가 강대국이라는 것을 세계에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틀 뒤 이번엔 미얀마 군부의 성명이 나왔다. 제목은 '역사에서 깨닫지 못한 우크라이나로부터의 교훈(Lessons from Ukraine for those who haven't learned from history)'.

미얀마 군부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우크라이나 정부와 국민탓으로 돌렸다. 미국과 나토(NATO) 동맹국들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갈등을 부추겼다고 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서방의 꼭두각시라며, 합리적이지 못한 지도자를 택한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탓했다. (미얀마 군부는 수십 여 년 동안 아웅 산 수 치 등 민주주의 진영을 미국등 외세에 볼모가 잡힌 세력이라며 민족주의를 부추겼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 위기의 원인을 '민주주의와 인권'에서 찾았다. 러시아와 미얀마에는 찾아보기 힘든 그 것.

"정치인들은 (중략)......인권이나 민주주의보다 우리 국민의 안전, 나라의 힘, 국익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Politicians...... should understand by now that the security of our own people, the power of our country, and our own national interests are more important than human rights and democracy”

이렇게 미얀마에서 인권과 민주주의는 국민의 안전과 상반된 하위 개념이 됐다.

지난 일요일 미얀마 양곤에서 청년들이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기습 시위를 벌였다 사진 이라와디
2.

일부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를 밝혔다. 최대 도시 양곤에서는 청년들이 기습 시위를 벌이며 러시아의 침공을 규탄했다. 카친주에서는 시민들이 우 크라이나 국기를 얼굴을 그렸고, 다른 참가자들은 '우크라이나를 구하라', '전쟁 중지'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었다.

다웨이에서 시위에 참가한 한 청년은 "푸틴이 우크라이나 침략에 성공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의 적들에게 거대한 신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얀마 군부가 무기 구매를 통해 러시아와 연대할 때, 국가폭력과 무력 침탈을 겪고 있는 두 변방 국가의 시민들은 이렇게 연대했다.

미얀마 카친주 시민들이 우크라이나 깃발 등을 들고 러시아 침공을 규탄하고 있다. 사진 이라와디
3.

미얀마 군부와 러시아는 군사적 이해관계로 얽혀있다. 지난해 1월, 러시아 국방장관 '세르게이 쇼이구'가 미얀마의 수도 네피도를 찾았다. 이자리에서 러시아산 판찌르-S1 지대공 미사일 시스템, 오를란-10E 정찰 드론 등의 판매계약이 맺어졌다고 모스크바 타임즈가 보도했다. 그리고 공교롭게 일주일 뒤 미얀마에선 쿠데타가 터졌다.

쿠데타 한달이 안돼 미얀마 군부는 또 다시 1,470만 달러 상당의 러시아산 레이더 장비를 수입했다. (미얀마는 국민소득 1천달러 수준의 최빈국중 하나다). 이들 계약으로 사실상 러시아 정부의 미얀마 군부 쿠데타에 대한 추인이 이뤄졌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좌)과 모스크바를 방문한 민 아웅 흘라잉 사령관/ 지난해 6월 22일 사진 AFP
지난해 3월 27일, 미얀마 국군의 날에는 알렉산더 바실리예비치 러시아 국방부 차관이 직접 참석했다. 그는 보란듯이 민 아웅 흘라잉 옆자리에 앉았다.

군부가 러시아와의 우호관계를 대내외적으로 과시한 이날 미얀마 군경의 폭력으로 시위대 100여 명이 사망했다(미스 그랜드 인터내셔널에 참가한 미얀마 대표 '한 레이'가 울면서 우리 국민을 살려달라고 호소한 날도 이날이다).

지난해 6월 20일, 유엔은 '미얀마에 대한 무기 수출 중단 결의안'을 채택했다. 하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이틀 뒤 민 아웅 흘라잉 사령관이 다시 모스크바를 방문했다. 러시아 국영 무기수출업체 '소보로넥스포르트'의 대표를 만나 두나라의 '군사기술 협력'을 논의했다.

민 아웅 흘라잉 사령관은 이 방문에서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에게 "러시아의 도움으로 이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 중 하나가 되었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고 러시아 타스통신이 보도했다.

그 무기들은 지금 자국민의 시위진압이나 독립을 원하는 소수민족과의 전투에 사용된다. 미얀마 시민들과 우크라이나 시민들에게 푸틴은 이렇게 공동의 적이 됐다.


4.

미얀마 군부의 성명은 또 푸틴 대통령을 가르켜 "군사력과 경제력을 키우는 선견지명이 있는 미래의 지도자(foresight to quietly build up his country’s military and economic strength)"라고 추켜세웠다.

(군사력은 잘 모르겠지만), 러시아 경제는 푸틴 대통령의 집권이 길어질수록 점점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2013년 2,292조 달러였던 러시아의 GDP는 2020년 1,483조 달러까지 하락하며 10년 전 수준으로 추락했다.(자료 월드뱅크)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 미사일을 퍼붓는 사이, 미국과 유럽 아시아 주요국들은 러시아를 향해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경제 제재를 퍼붓고 있다. 며칠새 루블화 가치는 50% 이상 자유낙하중이다. 자국 화폐가치가 추락하면 갚아야 할 외채는 그만큼 무거워진다. 디폴트 우려가 커진다. 나라 망하기 직전이다. 수출은 막히고 물가는 치솟는다.

9.5%였던 기준금리는 20%로 인상됐다. 고통은 고스란히 러시아 국민들의 몫이다. '역사에서 깨닫지 못한 사람'은 우크라이나 국민이 아니라, '블라디미르 푸틴'이 아닐까.

3월 3일 세계3대 신용평가사는 일제히 러시아의 신용등급을 '투기 등급'으로 떨어뜨렸다. 흔히 정크등급이라고 하는데 정크(Junk)는 쓰레기라는 뜻이다.

전쟁 개시후 러시아 루블화의 가치는  50% 이상 폭락했다.  사진 네이버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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