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너뷰] 3·8을 다시 기억하다…민주의거의 적은 ‘무지’

입력 2022.03.08 (19:25) 수정 2022.03.08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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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보신 것처럼 4·19혁명의 도화선이 됐다는 평가와 함께 2018년 국가기념일로 지정됐지만, 여전히 지역민들에게조차 낯설기만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3·8민주의거의 가장 큰 적은 '무지'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62년 전, 17살의 나이로 민주화를 외쳤던 김용재 회장을 7시팀이 '이너뷰'를 통해 만나봤습니다.

[리포트]

3·8민주의거가 있던 1960년 이후 군사정부가 들어서면서 한 30여 년 3·8은 묻혀있었죠.

3·8민주의거의 가장 큰 적은 모른다는 거였습니다.

저는 3·8민주의거에 직접 참여를 했고 현재 3·8민주의거기념사업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용재입니다.

1960년 3월 15일이 대한민국 제4대 정·부통령 선거일이었습니다.

여당에 입후보자가 이승만 현직 대통령이었는데 이승만이 당시 85세였습니다.

3대를 거쳐서 대통령을 했으니까 12년을 했죠.

학교에는 사복형사들이 상주했고 선생님들은 가정방문 명목으로 선거운동을 해야 했고 학생들의 모든 행동은 제한됐고 부정선거를 자행하는 이런 것들이 눈에 드러나는 그런 시대였습니다.

그때는 지금과는 시대 상황이 좀 다르죠 고등학생들이 어리다고, 어린 학생들이 뭘 하느냐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고등학생들이 나설 수밖에 없었던 그런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무섭지는 않았는데 두려움은 있었죠.

데모하면 우선 대학 진학을 못 한다, 취직을 못 한다 속된 말로 목 잘린다, 직업을 못 갖게 된다 이렇게 엄포를 놓고 하니까 시민 호응은 보이지 않게 컸지요.

학생들에게 식수를 제공한다든지 음료수를 제공한다든지 경찰한테 쫓길 적에 숨겨준다든지 뒤에서 응원하고 후원하는 일을 열심히 했습니다, 시민들도….

22년간 민주화 운동을 해오고 있는데 3·8민주의거의 가장 큰 적은 모른다는 거였습니다.

시민도 학생도 학교 선생님들이 실제 참여세대보다 한참 후배들인데 선생님들이 모르니까 학생들이 알 수가 없죠.

옛날 우리 학교 다닐 때 제가 직접 치를 시험 문제에 이런 것이 있었어요.

민주주의 국가에서 나라의 주인은 누구냐?

주어진 예가 대통령이다, 국무총리다, 국민이다, 농민이다 이렇게 됐는데 국민이라고 하는 정답보다도 대통령이라고 하는 오답이 더 많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국민을 통한 국민의 존엄성이 제대로 지켜지는 그러한 나라가 민주주의 국가라고 저는 생각을 하고 국가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해야 할 민주주의 운동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1960년 3월 8일 민주의 목숨을 위해 자유의 광명을 찾아 파도처럼, 대전의 학생의거.

정의의 깃발로 올린 역사의 불꽃 진실로 뜨거웠다.

시대의 검은 장막을 뚫고 저 눈부신 하늘 향해 증언의 얼굴로 탑이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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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너뷰] 3·8을 다시 기억하다…민주의거의 적은 ‘무지’
    • 입력 2022-03-08 19:24:59
    • 수정2022-03-08 21:07:06
    뉴스7(대전)
[앵커]

보신 것처럼 4·19혁명의 도화선이 됐다는 평가와 함께 2018년 국가기념일로 지정됐지만, 여전히 지역민들에게조차 낯설기만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3·8민주의거의 가장 큰 적은 '무지'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62년 전, 17살의 나이로 민주화를 외쳤던 김용재 회장을 7시팀이 '이너뷰'를 통해 만나봤습니다.

[리포트]

3·8민주의거가 있던 1960년 이후 군사정부가 들어서면서 한 30여 년 3·8은 묻혀있었죠.

3·8민주의거의 가장 큰 적은 모른다는 거였습니다.

저는 3·8민주의거에 직접 참여를 했고 현재 3·8민주의거기념사업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용재입니다.

1960년 3월 15일이 대한민국 제4대 정·부통령 선거일이었습니다.

여당에 입후보자가 이승만 현직 대통령이었는데 이승만이 당시 85세였습니다.

3대를 거쳐서 대통령을 했으니까 12년을 했죠.

학교에는 사복형사들이 상주했고 선생님들은 가정방문 명목으로 선거운동을 해야 했고 학생들의 모든 행동은 제한됐고 부정선거를 자행하는 이런 것들이 눈에 드러나는 그런 시대였습니다.

그때는 지금과는 시대 상황이 좀 다르죠 고등학생들이 어리다고, 어린 학생들이 뭘 하느냐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고등학생들이 나설 수밖에 없었던 그런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무섭지는 않았는데 두려움은 있었죠.

데모하면 우선 대학 진학을 못 한다, 취직을 못 한다 속된 말로 목 잘린다, 직업을 못 갖게 된다 이렇게 엄포를 놓고 하니까 시민 호응은 보이지 않게 컸지요.

학생들에게 식수를 제공한다든지 음료수를 제공한다든지 경찰한테 쫓길 적에 숨겨준다든지 뒤에서 응원하고 후원하는 일을 열심히 했습니다, 시민들도….

22년간 민주화 운동을 해오고 있는데 3·8민주의거의 가장 큰 적은 모른다는 거였습니다.

시민도 학생도 학교 선생님들이 실제 참여세대보다 한참 후배들인데 선생님들이 모르니까 학생들이 알 수가 없죠.

옛날 우리 학교 다닐 때 제가 직접 치를 시험 문제에 이런 것이 있었어요.

민주주의 국가에서 나라의 주인은 누구냐?

주어진 예가 대통령이다, 국무총리다, 국민이다, 농민이다 이렇게 됐는데 국민이라고 하는 정답보다도 대통령이라고 하는 오답이 더 많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국민을 통한 국민의 존엄성이 제대로 지켜지는 그러한 나라가 민주주의 국가라고 저는 생각을 하고 국가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해야 할 민주주의 운동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1960년 3월 8일 민주의 목숨을 위해 자유의 광명을 찾아 파도처럼, 대전의 학생의거.

정의의 깃발로 올린 역사의 불꽃 진실로 뜨거웠다.

시대의 검은 장막을 뚫고 저 눈부신 하늘 향해 증언의 얼굴로 탑이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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