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아침, 서울 성북구 종암동의 '야쿠르트 아줌마' 이영애 씨는 82살 최 모 할아버지의 반지하 집에 들렀다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항상 문을 빼꼼히 열고 유산균 음료를 받아가셨는데, 그날은 문이 닫힌 채 아무런 기척이 없는 데다 집 안에서 낮은 신음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위급한 상황임을 직감한 이 씨는 문을 열고 들어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최 씨 할아버지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곧바로 119에 신고했고, 최 씨 할아버지는 병원으로 옮겨져 현재 회복 중입니다. 이 씨는 "평소 당뇨를 앓고 계셨는데, 혼자 사시다 보니 도움 청할 곳이 없었던 것 같다"라면서 "위험한 고비를 넘겨 다행"이라고 말했습니다.
서울 성북구 종암동에서 14년째 ‘야쿠르트 아줌마’로 활동하는 이영애 씨. [사진제공 hy]
■ 소외계층 돌봄 역할에 톡톡
통계청에 따르면 홀로 사는 65세 이상 노인은 182만 4천 명(2021년 인구주택총조사)입니다. 1년 만에 9.9%(16만 4천 명) 늘었고, 해마다 두 자릿수 가까운 증가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빠르게 늘어나는 홀몸 노인들을 정부와 지자체 인력만으로 돌보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전국적으로 1만 1,000명 규모의 '야쿠르트 아줌마'도 힘을 보탭니다. 전국 131개 기초자치단체와 협력해 독거노인의 건강 이상을 발견하면 담당 사회복지사에 즉각 연락하고, 고독사도 예방합니다. 현재 3만 명이 넘는 홀몸 노인들의 건강을 '야쿠르트 아줌마'들이 주기적으로 확인하고 있습니다.
홀로 사는 노인들의 건강을 돌보는 프레시 매니저. [사진제공 hy]
2020년부터는 추석이나 설 명절 등에 고향 방문이 어려운 고객들의 부모님에게 대신 안부를 전하기도 합니다. 제품을 부모님께 전달하고 안부를 담은 문자메시지를 발송하는데, 올해 7월까지 누적 신청자가 2,900명에 달합니다.
■ 매일 18.5㎞ 달린다
우리에겐 '야쿠르트 아줌마'로 익숙하지만 2019년부턴 '프레시 매니저'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이름을 바꾼 그해에 '코로나19'가 터졌습니다. 방문 판매가 큰 타격을 입을 것이란 우려가 있었지만, 소비자들은 익숙함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올해 4월 18일부터 30일까지, 2주가 채 되지 않는 기간에 이들의 대면 결제 건수 약 60만 건, 거래액은 83억 원 수준이었습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8.9% 늘어난 수치입니다.
1만 천 명의 매니저들은 하루 평균 18.5㎞를 이동하고, 455개 제품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하루 이동 거리를 모두 합치면 20만 3천㎞. 서울과 부산을 253번 왕복할 수 있는 거리입니다.
■ 야쿠르트 아저씨는 시기상조
매니저는 개인사업자입니다. 제품 판매액의 25%가량을 회사(한국야쿠르트, hy)에서 수수료 명목으로 받습니다. 2020년 기준으로 월평균 수입(세전)은 203만 원이었습니다. 상위 10%는 월평균 337만 원을 벌었고, 가장 많이 벌었던 매니저는 600만 원까지 수입을 올렸습니다.
1970년대 후반 ‘야쿠르트 아줌마’의 복장. [사진제공 hy]
그래서 영업점과 계약을 맺고 근무 시간을 개인 사정에 맞게 정할 수 있습니다. 매일 2~3시간만 일하면서 자기계발·취미 생활을 동시에 하기도 합니다. 개인 능력에 따라 수입이 좌우되다 보니, 2030 여성들도 많이 뛰어드는 추세입니다. 5년 전, 신규 20~30대 매니저는 22명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179명으로 늘었습니다.
당초 기혼 여성만 가능했지만, 최근엔 미혼 여성도 채용하고 있습니다. "남자인데 일하고 싶다"는 요구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여성만 매니저가 될 수 있는 건 남녀차별이란 의견도 있습니다.
서울 성동구에서 일하고 있는 31살 이소율 매니저. [사진제공 hy]
하지만 회사 측은 원칙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회사 관계자는 "여성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 경제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의도로 매니저를 도입한 것"이라면서 "방문 판매 역사의 산증인이자 상징성이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로켓배송과 코로나19의 시대, 대면 유통채널이 예전 같진 않지만 '야쿠르트 아줌마'의 전동카트는 오늘도 느릿느릿 골목을 누비고 있습니다.
(인포그래픽: 권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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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몸 노인 살린 야쿠르트 아줌마…하루 18.5㎞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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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2-09-03 09:00:06
지난달 29일 아침, 서울 성북구 종암동의 '야쿠르트 아줌마' 이영애 씨는 82살 최 모 할아버지의 반지하 집에 들렀다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항상 문을 빼꼼히 열고 유산균 음료를 받아가셨는데, 그날은 문이 닫힌 채 아무런 기척이 없는 데다 집 안에서 낮은 신음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위급한 상황임을 직감한 이 씨는 문을 열고 들어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최 씨 할아버지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곧바로 119에 신고했고, 최 씨 할아버지는 병원으로 옮겨져 현재 회복 중입니다. 이 씨는 "평소 당뇨를 앓고 계셨는데, 혼자 사시다 보니 도움 청할 곳이 없었던 것 같다"라면서 "위험한 고비를 넘겨 다행"이라고 말했습니다.
■ 소외계층 돌봄 역할에 톡톡
통계청에 따르면 홀로 사는 65세 이상 노인은 182만 4천 명(2021년 인구주택총조사)입니다. 1년 만에 9.9%(16만 4천 명) 늘었고, 해마다 두 자릿수 가까운 증가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빠르게 늘어나는 홀몸 노인들을 정부와 지자체 인력만으로 돌보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전국적으로 1만 1,000명 규모의 '야쿠르트 아줌마'도 힘을 보탭니다. 전국 131개 기초자치단체와 협력해 독거노인의 건강 이상을 발견하면 담당 사회복지사에 즉각 연락하고, 고독사도 예방합니다. 현재 3만 명이 넘는 홀몸 노인들의 건강을 '야쿠르트 아줌마'들이 주기적으로 확인하고 있습니다.
2020년부터는 추석이나 설 명절 등에 고향 방문이 어려운 고객들의 부모님에게 대신 안부를 전하기도 합니다. 제품을 부모님께 전달하고 안부를 담은 문자메시지를 발송하는데, 올해 7월까지 누적 신청자가 2,900명에 달합니다.
■ 매일 18.5㎞ 달린다
우리에겐 '야쿠르트 아줌마'로 익숙하지만 2019년부턴 '프레시 매니저'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이름을 바꾼 그해에 '코로나19'가 터졌습니다. 방문 판매가 큰 타격을 입을 것이란 우려가 있었지만, 소비자들은 익숙함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올해 4월 18일부터 30일까지, 2주가 채 되지 않는 기간에 이들의 대면 결제 건수 약 60만 건, 거래액은 83억 원 수준이었습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8.9% 늘어난 수치입니다.
1만 천 명의 매니저들은 하루 평균 18.5㎞를 이동하고, 455개 제품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하루 이동 거리를 모두 합치면 20만 3천㎞. 서울과 부산을 253번 왕복할 수 있는 거리입니다.
■ 야쿠르트 아저씨는 시기상조
매니저는 개인사업자입니다. 제품 판매액의 25%가량을 회사(한국야쿠르트, hy)에서 수수료 명목으로 받습니다. 2020년 기준으로 월평균 수입(세전)은 203만 원이었습니다. 상위 10%는 월평균 337만 원을 벌었고, 가장 많이 벌었던 매니저는 600만 원까지 수입을 올렸습니다.
그래서 영업점과 계약을 맺고 근무 시간을 개인 사정에 맞게 정할 수 있습니다. 매일 2~3시간만 일하면서 자기계발·취미 생활을 동시에 하기도 합니다. 개인 능력에 따라 수입이 좌우되다 보니, 2030 여성들도 많이 뛰어드는 추세입니다. 5년 전, 신규 20~30대 매니저는 22명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179명으로 늘었습니다.
당초 기혼 여성만 가능했지만, 최근엔 미혼 여성도 채용하고 있습니다. "남자인데 일하고 싶다"는 요구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여성만 매니저가 될 수 있는 건 남녀차별이란 의견도 있습니다.
하지만 회사 측은 원칙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회사 관계자는 "여성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 경제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의도로 매니저를 도입한 것"이라면서 "방문 판매 역사의 산증인이자 상징성이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로켓배송과 코로나19의 시대, 대면 유통채널이 예전 같진 않지만 '야쿠르트 아줌마'의 전동카트는 오늘도 느릿느릿 골목을 누비고 있습니다.
(인포그래픽: 권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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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혁진 기자 analogu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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