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동원령 피해 요트 타고 한국행?…러시아인 20여 명 ‘입국 불허’

입력 2022.10.11 (18:10) 수정 2022.10.11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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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오전 9시쯤, 강원도 고성군 아야진에서 동쪽으로 약 13km 떨어진 해상에서 표류 중이던 6톤짜리 요트 한 대가 우리 해경 경비정에 발견됐습니다. 선박 위치와 항행로, 속력 등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선박자동식별장치'(AIS) 신호가 잡히지 않는 상태였습니다.

요트에는 2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러시아 국적 남성 5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9월 27일 오후 5시쯤 러시아 극동 항인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나 30일 속초항에 입항할 예정이었지만, 우리 출입국사무소는 이들의 입국을 불허했습니다.

지난 1일 강원도 고성군 앞바다에서 표류 중이던 러시아 요트.〈사진제공=국회 안호영 의원실〉지난 1일 강원도 고성군 앞바다에서 표류 중이던 러시아 요트.〈사진제공=국회 안호영 의원실〉

■ '입국 불허' 후 울릉항에 11일 동안 발 묶여

당국이 입국을 허가하지 않자 해경은 이들에게 사흘 치 식량과 물 100리터, 연료유 100리터를 제공했습니다. 다시 러시아로 돌아가는 데 필요한 물품인 셈입니다.

실제로 요트는 지난 5일 오전 11시 40분쯤 블라디보스토크로 출항했지만, 기상 악화로 2시간여 만에 경북 울릉도 사동항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KBS가 입수한 해경의 당시 '상황 보고서'를 보면 "경비정 P-32호 정장은 속초서 관할 이탈 시까지 안전관리 모니터링과 유관기관 정보 교환을 실시하라"는 지시가 내려진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해경은 요트가 회항한 뒤에는 상황 전파를 통해 울릉파출소장에게는 무단 상륙에 대비한 경비 강화를, 해군 함정과 포항해양수산청장에게는 각각 전탐 감시와 CCTV 감시를 요청했습니다.

경북 포항 동빈항에 정박 중인 러시아 선적 요트를 해경 관계자와 KBS 취재진이 함께 둘러보고 있다.경북 포항 동빈항에 정박 중인 러시아 선적 요트를 해경 관계자와 KBS 취재진이 함께 둘러보고 있다.

■ 러시아 요트 4척 잇따라 '입국 불허'

그런데 요트를 타고 온 러시아인에 대한 '입국 불허'는 이 건만이 아니었습니다.

현재 경북 포항시에는 3척의 요트가 추가로 들어와 있습니다. 지난 1일에 두 척, 2일에 한 척이 잇따라 우리 해역에서 발견됐습니다.

여기에는 러시아인 18명이 타고 있었는데 출입국사무소는 이 가운데 2명을 제외하고, 16명(여성 1명 포함)의 입국을 불허했습니다. 이들은 '관광 목적 출항'이라고 했지만 우리나라에 입국하려는 목적이 불분명하고, 관련 서류도 미비하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종합하면 이달 초부터 최소 요트 4척, 22명의 러시아인이 동해 뱃길을 통해 한국으로 들어오려다가 입국이 불허된 겁니다. 이들 중 2척은 CCTV가 설치돼 있고, 허가 없이는 출입이 불가능한, 국가 '가급' 보안시설인 포항신항에 정박해 있습니다. 포항지방해양수산청 관계자는 KBS에 "여태까지 러시아 요트가 이런 식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별로 없었다. 20년 동안 없던 거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러시아인이 한국을 방문하려면 비행기나 여객선을 타면 됩니다. 특히 러시아 국적자는 K-ETA(전자여행허가)만 받으면 무비자로 한국 입국이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요트를 타고 한국을 향한 걸까요.

■ "동원령 회피 추정"…'K-ETA 심사' 강화

러시아 요트들의 잇따른 출현은 지난달 21일 러시아 정부가 발표한 '예비군 동원령'과 관련이 있을 거라는 추측이 나옵니다.

독일 DPA통신은 지난 9일 "러시아가 예비군 동원령을 내린 지 3주가 다 되어가는데, 징집 목표 인원에 육박하는 러시아 남성 약 30만 명이 주변국으로 탈출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습니다.

러시아 정부가 군 경력이 있는 사람들을 징집하겠다고 밝힌 뒤 젊은 남성들을 중심으로 도피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러시아 정부는 최근 징집을 거부하거나, 군 배치 뒤 탈영을 하는 경우에는 최대 10년형을 선고받을 수 있도록 형법을 강화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도 최근 러시아 국적자들에 대한 'K-ETA'(전자여행허가) 승인을 강화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국내 입국 절차 등을 대행해주는 업체 관계자는 KBS와의 통화에서 "K-ETA는 외국인들이 한국에 여행 올 때 사전 여행 허가제라서 미리 신청하면 99% 승인이 나는데, 지금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동원령을 내리고 나서 중단이 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K-ETA를 신청만 하고 당연히 승인될 거로 생각하고 온 모양인데 그 허가가 안 나왔다고 한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법무부 출입국 담당 관계자는 "K-ETA는 정상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라면서도 "그분들(러시아인)이 동원령을 피해서 왔는지는 우리도 확인할 수 없지만 최근 국제 정세가 급변하고 있어 국경관리 당국으로선 입국 목적이 확실한 사람 위주로 입국 허가를 할 수밖에 없다"라고 밝혔습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입국 목적이 불분명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만 K-ETA 승인을 하지 않는데, 이번에 요트로 한국 입국을 시도한 러시아인 20여 명은 불허 사유에 해당했다"고 덧붙였습니다.

경북 포항 신항에 정박 중인 러시아 선적 요트.  탑승객 대부분은 젊은 남성들로 동원령을 피해 온 것으로 추정된다.경북 포항 신항에 정박 중인 러시아 선적 요트. 탑승객 대부분은 젊은 남성들로 동원령을 피해 온 것으로 추정된다.

■ 한국, 요트 장거리 항해 '중간 기착지' 되나

이들이 '예비군 동원령'을 피해 '탈(脫) 러시아'를 했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다만 앞으로 유사 사례가 더 늘어날 수 있고, 우리 당국 입장에선 이들에 대해 무제한 입국 허가를 내주기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국회 농해수위 소속 안호영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사례를 보면 러시아 탈출이 급증할 경우 한국이 사실상 '중간 기착지'가 될 가능성이 큰 만큼 외교와 인권 문제 등을 고려한 구체적인 대응 매뉴얼 등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습니다.

한편 국내에 있던 러시아 선적 요트 4척 가운데 울릉도에 머물던 1척은 오늘(11일) 오후 1시 반쯤 블라디보스토크를 향해, 포항에 머물던 1척은 오후 5시쯤 출항했습니다.

해경 관계자는 "나머지 2척도 수리와 보급 등을 거쳐 출항 조치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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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0-11 18:10:27
    • 수정2022-10-11 18:19:47
    취재K

지난 1일 오전 9시쯤, 강원도 고성군 아야진에서 동쪽으로 약 13km 떨어진 해상에서 표류 중이던 6톤짜리 요트 한 대가 우리 해경 경비정에 발견됐습니다. 선박 위치와 항행로, 속력 등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선박자동식별장치'(AIS) 신호가 잡히지 않는 상태였습니다.

요트에는 2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러시아 국적 남성 5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9월 27일 오후 5시쯤 러시아 극동 항인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나 30일 속초항에 입항할 예정이었지만, 우리 출입국사무소는 이들의 입국을 불허했습니다.

지난 1일 강원도 고성군 앞바다에서 표류 중이던 러시아 요트.〈사진제공=국회 안호영 의원실〉
■ '입국 불허' 후 울릉항에 11일 동안 발 묶여

당국이 입국을 허가하지 않자 해경은 이들에게 사흘 치 식량과 물 100리터, 연료유 100리터를 제공했습니다. 다시 러시아로 돌아가는 데 필요한 물품인 셈입니다.

실제로 요트는 지난 5일 오전 11시 40분쯤 블라디보스토크로 출항했지만, 기상 악화로 2시간여 만에 경북 울릉도 사동항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KBS가 입수한 해경의 당시 '상황 보고서'를 보면 "경비정 P-32호 정장은 속초서 관할 이탈 시까지 안전관리 모니터링과 유관기관 정보 교환을 실시하라"는 지시가 내려진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해경은 요트가 회항한 뒤에는 상황 전파를 통해 울릉파출소장에게는 무단 상륙에 대비한 경비 강화를, 해군 함정과 포항해양수산청장에게는 각각 전탐 감시와 CCTV 감시를 요청했습니다.

경북 포항 동빈항에 정박 중인 러시아 선적 요트를 해경 관계자와 KBS 취재진이 함께 둘러보고 있다.
■ 러시아 요트 4척 잇따라 '입국 불허'

그런데 요트를 타고 온 러시아인에 대한 '입국 불허'는 이 건만이 아니었습니다.

현재 경북 포항시에는 3척의 요트가 추가로 들어와 있습니다. 지난 1일에 두 척, 2일에 한 척이 잇따라 우리 해역에서 발견됐습니다.

여기에는 러시아인 18명이 타고 있었는데 출입국사무소는 이 가운데 2명을 제외하고, 16명(여성 1명 포함)의 입국을 불허했습니다. 이들은 '관광 목적 출항'이라고 했지만 우리나라에 입국하려는 목적이 불분명하고, 관련 서류도 미비하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종합하면 이달 초부터 최소 요트 4척, 22명의 러시아인이 동해 뱃길을 통해 한국으로 들어오려다가 입국이 불허된 겁니다. 이들 중 2척은 CCTV가 설치돼 있고, 허가 없이는 출입이 불가능한, 국가 '가급' 보안시설인 포항신항에 정박해 있습니다. 포항지방해양수산청 관계자는 KBS에 "여태까지 러시아 요트가 이런 식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별로 없었다. 20년 동안 없던 거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러시아인이 한국을 방문하려면 비행기나 여객선을 타면 됩니다. 특히 러시아 국적자는 K-ETA(전자여행허가)만 받으면 무비자로 한국 입국이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요트를 타고 한국을 향한 걸까요.

■ "동원령 회피 추정"…'K-ETA 심사' 강화

러시아 요트들의 잇따른 출현은 지난달 21일 러시아 정부가 발표한 '예비군 동원령'과 관련이 있을 거라는 추측이 나옵니다.

독일 DPA통신은 지난 9일 "러시아가 예비군 동원령을 내린 지 3주가 다 되어가는데, 징집 목표 인원에 육박하는 러시아 남성 약 30만 명이 주변국으로 탈출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습니다.

러시아 정부가 군 경력이 있는 사람들을 징집하겠다고 밝힌 뒤 젊은 남성들을 중심으로 도피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러시아 정부는 최근 징집을 거부하거나, 군 배치 뒤 탈영을 하는 경우에는 최대 10년형을 선고받을 수 있도록 형법을 강화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도 최근 러시아 국적자들에 대한 'K-ETA'(전자여행허가) 승인을 강화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국내 입국 절차 등을 대행해주는 업체 관계자는 KBS와의 통화에서 "K-ETA는 외국인들이 한국에 여행 올 때 사전 여행 허가제라서 미리 신청하면 99% 승인이 나는데, 지금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동원령을 내리고 나서 중단이 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K-ETA를 신청만 하고 당연히 승인될 거로 생각하고 온 모양인데 그 허가가 안 나왔다고 한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법무부 출입국 담당 관계자는 "K-ETA는 정상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라면서도 "그분들(러시아인)이 동원령을 피해서 왔는지는 우리도 확인할 수 없지만 최근 국제 정세가 급변하고 있어 국경관리 당국으로선 입국 목적이 확실한 사람 위주로 입국 허가를 할 수밖에 없다"라고 밝혔습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입국 목적이 불분명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만 K-ETA 승인을 하지 않는데, 이번에 요트로 한국 입국을 시도한 러시아인 20여 명은 불허 사유에 해당했다"고 덧붙였습니다.

경북 포항 신항에 정박 중인 러시아 선적 요트.  탑승객 대부분은 젊은 남성들로 동원령을 피해 온 것으로 추정된다.
■ 한국, 요트 장거리 항해 '중간 기착지' 되나

이들이 '예비군 동원령'을 피해 '탈(脫) 러시아'를 했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다만 앞으로 유사 사례가 더 늘어날 수 있고, 우리 당국 입장에선 이들에 대해 무제한 입국 허가를 내주기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국회 농해수위 소속 안호영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사례를 보면 러시아 탈출이 급증할 경우 한국이 사실상 '중간 기착지'가 될 가능성이 큰 만큼 외교와 인권 문제 등을 고려한 구체적인 대응 매뉴얼 등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습니다.

한편 국내에 있던 러시아 선적 요트 4척 가운데 울릉도에 머물던 1척은 오늘(11일) 오후 1시 반쯤 블라디보스토크를 향해, 포항에 머물던 1척은 오후 5시쯤 출항했습니다.

해경 관계자는 "나머지 2척도 수리와 보급 등을 거쳐 출항 조치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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