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중국 방문했다 욕 먹는 독일 총리…웃음 짓는 중국
입력 2022.11.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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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에서 시 주석 만난 숄츠 독일 총리 (출처 : 연합뉴스)
비행기를 무려 23시간 타고 중국에 왔지만 11시간만 머물렀습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의 첫 중국 방문이었지만 체류 시간은 비행시간 절반에도 못 미쳤습니다.
안 가자니 잃을 것이 많고, 가자니 부담이 된 숄츠 총리의 난감한 상황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일정입니다.
■ 무박 1일이라도 중국 가야 했던 이유
숄츠 총리는 중국에 머무는 11시간 동안 시진핑 중국 주석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정상회담을 했습니다. 곧 이어 내년 퇴임을 앞둔 리커창 총리도 만났습니다.
여러 이야기가 오갔지만 독일이 가장 중시했던 것은 '경제 협력'입니다. 독일의 경제 상황이 최근 안 좋기 때문인데요.
유럽 최대 경제 대국인 독일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에너지 가격 급등 등으로 경제 성장이 더디어졌고, 내년 전망은 더 어둡습니다. 지난달 국제통화기금, IMF가 내놓은 세계경제전망보고서에 따르면 독일 경제는 내년에 -0.3% 성장을 할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역성장입니다.
시진핑 주석과 회담하고 있는 숄츠 독일 총리 (출처 : 연합뉴스)
그런데 중국은 지난 6년 동안 독일의 최대 교역국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독일과 중국의 경제적 연관성이 적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기업별로 살펴보면 이 같은 연관성은 더욱 뚜렷해집니다. 독일 최대 자동차 기업 폴크스바겐은 연간 매출의 40% 정도를 중국에서 올립니다. 독일 입장에서는 중국은 '버릴 수 없는 큰 시장'입니다.
그래서 폴크스바겐, 지멘스, 아디다스, 도이체방크 등 독일을 대표하는 기업의 최고경영자 12명이 숄츠 총리를 따라 중국에 왔습니다.
■중국이 안긴 '통 큰 선물'은?
결과는 어땠을까요?
숄츠 총리는 "성과가 많았다"고 스스로 평가했습니다. 중국이 독일에 안긴 '선물'이 그만큼 많았기 때문입니다.
화이자 백신 (출처: 연합=EPA)
먼저 중국은 독일 바이오엔테크의 백신을 처음으로 수입하기로 했습니다. 독일 바이오테크가 미국 화이자와 함께 개발한 이 백신은 중국 내 외국인들에게만 접종을 허용될 예정이지만 어찌 됐든 중국에서 처음으로 허용되는 외국산 백신입니다.
중국은 2020년 1월 코로나19 감염증이 유행한 이후 지금까지 자체 개발한 백신만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외국산 mRNA(메신저 리보핵산) 백신을 3년 내내 수입 차단하면서 '방역 자립'을 강조해 왔습니다.
하지만 중국이 개발해 자국민에 접종한 시노팜과 시노백 백신은 불활성화 백신으로, mRNA 백신보다 효과가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때문에 중국이 아직도 엄격한 '제로 코로나' 정책을 고수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많았는데요.
독일로서는 실리를 챙기고, 중국으로서는 서서히 '제로 코로나'를 해제하기 위한 첫 단추로 활용할 수 있는 선택입니다.
중국이 구매한 에어버스 여객기 A340 (출처: 바이두)
여기에 중국은 숄츠 독일 총리의 방문에 맞춰 우리 돈 약 24조 원이 넘는 규모의 '선물'도 안겼습니다. 유럽 항공기 제작사 에어버스의 여객기 140대를 구매했습니다.
중국의 민항기 구매를 주관하는 중국항공기재그룹(中國航空器材集團公司·CASC)은 공식 SNS 계정에 이번 계약이 숄츠 총리의 방중 기간 이뤄졌다는 점을 강조하며 구매가 성사됐다는 사실을 발표했습니다. 유럽에 독일의 위상을 치켜세워주는 동시에 유럽에 호의를 보내는 전략입니다.
■"시 주석 독재 체제 명분 준다" 쏟아진 비난
발표되거나 알려진 중국의 선물이 이 정도이고, 함께 방중한 독일 기업인들이 어떤 선물 보따리를 챙겼는지는 서서히 알려질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렇게 눈에 보이는 성과를 냈지만, 독일 내부와 유럽은 날 선 비난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지난달 23일 막을 내린 중국 제20차 당 대회에서 시진핑 주석은 사실상 집권 3기를 확정 지었다. (출처: 연합뉴스)
먼저 이번 방문이 시진핑 중국 주석의 권위를 강화 시켜 줄 것이라는 우려입니다.
숄츠 독일 총리의 이번 방중은 코로나19 감염증 대유행 이후 G7 정상의 첫 중국 방문이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집권 3기를 연지 12일 만의 방문이었습니다.
영국 BBC는 숄츠 총리의 중국 방문이 유럽의 다른 나라들로부터 우려를 불러 일으켰다고 보도했습니다. 대부분 유럽 국가들이 중국의 홍콩과 신장위구르자치구의 인권 탄압 등을 반대하는 데다가, 이번 집권 3기를 통해 사실상 1인 체제 기반을 닦은 시진핑 주석에게 독일 총리의 방문이 기회와 힘을 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독일 언론 도이체벨레(DW) 역시 숄츠 총리의 방중을 "독일 정부의 전략에 어긋나는 동시에 EU의 통합을 위태롭게 했다"며 부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독일이 EU 핵심 국가이자 유럽 최대 경제 국가인 만큼, 이번 방문이 향후 EU의 대중국 전략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격화되는 미·중 갈등 속에서 유럽과 연대하려는 미국도 우려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유럽 전체에 충격이 조금 있습니다. 이번 방문은 유럽을 분열시키려는 중국 이익에 부합합니다. 미국 정부도 우려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지금이 우리 모두(유럽)가 협력해야 할 순간이라고 느끼고 있거든요." - 보니 글레이저, 미국 독일 마셜 펀드 아시아 프로그램 책임자 (워싱턴포스트 3일 자 기사) |
미국은 대놓고 중국과 '디커플링(decoupling·탈중국화)'을 하라고 전 세계에 외치고 있는데, 독일이 대중국 견제 노선을 균열시키는 '약한 고리'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겁니다.
■중국으로서는 '기회'…미국·유럽 갈라치기 성공할까?
시진핑 주석과 만난 숄츠 독일 총리 (출처 : 연합뉴스)
방중 전부터 비난받았고 갔다 와서도 욕을 먹고 있는 숄츠 독일 총리와 달리, 시진핑 중국 주석은 '시기 적절하게' 전 세계를 향해 '중국을 버리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딩춘 상하이 푸단대 유럽문제연구소장은 최근 경제매체인 제일재경(第一财经)과의 인터뷰에서 "숄츠 총리의 중국 방문은 중국과 독일의 경제·무역협력이 지속적이고 강화됐다는 신호"라면서 EU 내에서 독일의 영향력을 감안할 때 EU의 다른 국가들도 따를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숄츠 총리의 방문 자체로 중국과 거리 두기를 요구하는 유럽과 미국에 그건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강력한 신호'를 보낸 것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숄츠 총리의 이번 방중은 이달 15~16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직전에 이뤄졌습니다. 시 주석과 바이든 대통령의 첫 대면 회담 가능성이 나오고 있고, 동시에 유럽과 미국 그리고 다른 동맹국들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맞서 똘똘 뭉쳤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 하는 상황입니다.
이 시점에 중국이 만든 '작은 균열'이 유럽과 미국의 갈라치기를 가져올까요? 앞으로 중국을 방문하게 될 유럽 정상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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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파원 리포트] 중국 방문했다 욕 먹는 독일 총리…웃음 짓는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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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2-11-08 06:00:12
비행기를 무려 23시간 타고 중국에 왔지만 11시간만 머물렀습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의 첫 중국 방문이었지만 체류 시간은 비행시간 절반에도 못 미쳤습니다.
안 가자니 잃을 것이 많고, 가자니 부담이 된 숄츠 총리의 난감한 상황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일정입니다.
■ 무박 1일이라도 중국 가야 했던 이유
숄츠 총리는 중국에 머무는 11시간 동안 시진핑 중국 주석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정상회담을 했습니다. 곧 이어 내년 퇴임을 앞둔 리커창 총리도 만났습니다.
여러 이야기가 오갔지만 독일이 가장 중시했던 것은 '경제 협력'입니다. 독일의 경제 상황이 최근 안 좋기 때문인데요.
유럽 최대 경제 대국인 독일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에너지 가격 급등 등으로 경제 성장이 더디어졌고, 내년 전망은 더 어둡습니다. 지난달 국제통화기금, IMF가 내놓은 세계경제전망보고서에 따르면 독일 경제는 내년에 -0.3% 성장을 할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역성장입니다.
그런데 중국은 지난 6년 동안 독일의 최대 교역국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독일과 중국의 경제적 연관성이 적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기업별로 살펴보면 이 같은 연관성은 더욱 뚜렷해집니다. 독일 최대 자동차 기업 폴크스바겐은 연간 매출의 40% 정도를 중국에서 올립니다. 독일 입장에서는 중국은 '버릴 수 없는 큰 시장'입니다.
그래서 폴크스바겐, 지멘스, 아디다스, 도이체방크 등 독일을 대표하는 기업의 최고경영자 12명이 숄츠 총리를 따라 중국에 왔습니다.
■중국이 안긴 '통 큰 선물'은?
결과는 어땠을까요?
숄츠 총리는 "성과가 많았다"고 스스로 평가했습니다. 중국이 독일에 안긴 '선물'이 그만큼 많았기 때문입니다.
먼저 중국은 독일 바이오엔테크의 백신을 처음으로 수입하기로 했습니다. 독일 바이오테크가 미국 화이자와 함께 개발한 이 백신은 중국 내 외국인들에게만 접종을 허용될 예정이지만 어찌 됐든 중국에서 처음으로 허용되는 외국산 백신입니다.
중국은 2020년 1월 코로나19 감염증이 유행한 이후 지금까지 자체 개발한 백신만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외국산 mRNA(메신저 리보핵산) 백신을 3년 내내 수입 차단하면서 '방역 자립'을 강조해 왔습니다.
하지만 중국이 개발해 자국민에 접종한 시노팜과 시노백 백신은 불활성화 백신으로, mRNA 백신보다 효과가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때문에 중국이 아직도 엄격한 '제로 코로나' 정책을 고수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많았는데요.
독일로서는 실리를 챙기고, 중국으로서는 서서히 '제로 코로나'를 해제하기 위한 첫 단추로 활용할 수 있는 선택입니다.
여기에 중국은 숄츠 독일 총리의 방문에 맞춰 우리 돈 약 24조 원이 넘는 규모의 '선물'도 안겼습니다. 유럽 항공기 제작사 에어버스의 여객기 140대를 구매했습니다.
중국의 민항기 구매를 주관하는 중국항공기재그룹(中國航空器材集團公司·CASC)은 공식 SNS 계정에 이번 계약이 숄츠 총리의 방중 기간 이뤄졌다는 점을 강조하며 구매가 성사됐다는 사실을 발표했습니다. 유럽에 독일의 위상을 치켜세워주는 동시에 유럽에 호의를 보내는 전략입니다.
■"시 주석 독재 체제 명분 준다" 쏟아진 비난
발표되거나 알려진 중국의 선물이 이 정도이고, 함께 방중한 독일 기업인들이 어떤 선물 보따리를 챙겼는지는 서서히 알려질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렇게 눈에 보이는 성과를 냈지만, 독일 내부와 유럽은 날 선 비난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먼저 이번 방문이 시진핑 중국 주석의 권위를 강화 시켜 줄 것이라는 우려입니다.
숄츠 독일 총리의 이번 방중은 코로나19 감염증 대유행 이후 G7 정상의 첫 중국 방문이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집권 3기를 연지 12일 만의 방문이었습니다.
영국 BBC는 숄츠 총리의 중국 방문이 유럽의 다른 나라들로부터 우려를 불러 일으켰다고 보도했습니다. 대부분 유럽 국가들이 중국의 홍콩과 신장위구르자치구의 인권 탄압 등을 반대하는 데다가, 이번 집권 3기를 통해 사실상 1인 체제 기반을 닦은 시진핑 주석에게 독일 총리의 방문이 기회와 힘을 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독일 언론 도이체벨레(DW) 역시 숄츠 총리의 방중을 "독일 정부의 전략에 어긋나는 동시에 EU의 통합을 위태롭게 했다"며 부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독일이 EU 핵심 국가이자 유럽 최대 경제 국가인 만큼, 이번 방문이 향후 EU의 대중국 전략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격화되는 미·중 갈등 속에서 유럽과 연대하려는 미국도 우려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유럽 전체에 충격이 조금 있습니다. 이번 방문은 유럽을 분열시키려는 중국 이익에 부합합니다. 미국 정부도 우려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지금이 우리 모두(유럽)가 협력해야 할 순간이라고 느끼고 있거든요." - 보니 글레이저, 미국 독일 마셜 펀드 아시아 프로그램 책임자 (워싱턴포스트 3일 자 기사) |
미국은 대놓고 중국과 '디커플링(decoupling·탈중국화)'을 하라고 전 세계에 외치고 있는데, 독일이 대중국 견제 노선을 균열시키는 '약한 고리'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겁니다.
■중국으로서는 '기회'…미국·유럽 갈라치기 성공할까?
방중 전부터 비난받았고 갔다 와서도 욕을 먹고 있는 숄츠 독일 총리와 달리, 시진핑 중국 주석은 '시기 적절하게' 전 세계를 향해 '중국을 버리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딩춘 상하이 푸단대 유럽문제연구소장은 최근 경제매체인 제일재경(第一财经)과의 인터뷰에서 "숄츠 총리의 중국 방문은 중국과 독일의 경제·무역협력이 지속적이고 강화됐다는 신호"라면서 EU 내에서 독일의 영향력을 감안할 때 EU의 다른 국가들도 따를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숄츠 총리의 방문 자체로 중국과 거리 두기를 요구하는 유럽과 미국에 그건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강력한 신호'를 보낸 것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숄츠 총리의 이번 방중은 이달 15~16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직전에 이뤄졌습니다. 시 주석과 바이든 대통령의 첫 대면 회담 가능성이 나오고 있고, 동시에 유럽과 미국 그리고 다른 동맹국들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맞서 똘똘 뭉쳤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 하는 상황입니다.
이 시점에 중국이 만든 '작은 균열'이 유럽과 미국의 갈라치기를 가져올까요? 앞으로 중국을 방문하게 될 유럽 정상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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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랑 기자 herb@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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