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사건’이 남긴 것

입력 2006.05.15 (13:31)

<앵커 멘트>

온 국민을 충격에 휩싸이게 했던 황우석 박사팀의 줄기세포 조작사건이 검찰 수사 결과 발표로 일단락됐습니다.

이번 사건으로 생명공학 연구가 큰 타격을 받은 것은 물론 국민적 영웅에서 한순간에 희대의 사기꾼으로 폄하된 황 박사를 두고 한때 국론이 분열되는 양상까지 보였습니다.

황우석 사건이 우리에게 남긴 교훈은 무엇인지 또, 줄기세포 연구를 지속시키기 위한 과제는 무엇인지 살펴봤습니다.

<리포트>

<녹취> 이인규(서울중앙지검 3차장 검사): “소위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 11개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검찰 발표로 온 국민과 전세계를 충격에 휩싸이게 했던 황우석 박사 사건이 일단락 됐습니다.

<녹취> 이인규(서울중앙지검 3차장 검사): “황우석 교수는 2004년 사이언스 논문을 작성함에 있어 박종혁, 김선종 연구원 등 에게 지시해 면역염색사진, DNA 지문, 테라토마 사진, 각인유전자 검사 등 데이터를 조작해 허위 게재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정확히 1년 전 .. 황우석 박사는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는 연구 성과를 발표합니다.

2004년 세계최초로 체세포 복제 배아줄기세포를 배양한 데 이어 환자 맞춤형 배아줄기세포를 배양하는 데 성공했다는 겁니다.

<인터뷰> 황우석 박사: “환자의 세포로부터 11개의 줄기세포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외신들은 황우석 박사가 이뤄낸 성공을 전세계에 긴급 타전했고... 황 박사는 국민들에게 자랑스러움을 안겨준 영웅으로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6개월 뒤. 국민들은 충격에 이어 혼란에 빠졌습니다. 난자를 사고 팔았다. 논문이 조작됐다. 그리고 줄기세포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인터뷰> 노성일(미즈메디병원 이사장): “지금 2번과 3번의 셀라인이 복제된 배아줄기세포도 아직도 존재하는지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최소한 두 개가 있거나 아니면 전혀 없거나의 상황으로 돌변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녹취> 황우석 박사: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가 수립되었다는 사실은 아직 이 과정을 참여했던 연구원 6명이 공동참여 확인을 통해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를 수립했다는 사실은 6명 모두 단 1%의 의구심도 갖지 않고 확신한다.”

결국 지리한 진실 공방은 검찰 수사까지 이르렀고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황 박사 지지자들은 믿을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녹취> 안덕진(아이 러브 황우석): “이러려고 몇 개월을 끌었나? 검찰의 발표에 분노한다.”

줄기세포가 애초부터 없고 황 박사가 주도적으로 논문을 조작한 사실이 밝혀졌는데도 이들은 왜 믿음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인터뷰> 최훈석(성균관대 심리학과 교수): “사람들이 자신이 지니고 있는 태도나 신념이 옳지 못하다. 이런걸 보여주는 증거가 있을지라도 여전히 자신의 신념을 유지하고 싶은 동기를 강하게 지니고 있습니다.”

황우석이라는 존재 자체가 애국심을 등에 업고 제왕을 넘어서 신성시됐다는 겁니다. 황 박사가 스스럼 없이 논문 조작을 지시했고. 김선종 연구원이 줄기세포를 배양한 것이 아니라 섞어 넣었는데도 누구 하나 황 박사에게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습니다.

지도 교수가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제왕적이고 폐쇄적인 연구실 문화가 논문 조작이라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을 부른 겁니다.

<인터뷰> 이인규(서울중앙지검 3차장 검사): “강성근, 권대기, 김선종 연구원 등은 논문에 사용할 데이터 조작행위가 연구윤리에 위배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황교수의 지시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과학자들의 자율성이 억압된 것으로 진지한 개선노력이 필요합니다.”

끊임없이 성과에 집착하는 우리 과학계의 단면도 또 다른 원인이었습니다.

<녹취> KBS 9시 뉴스(2004년 2월 12일): “난치병 치료의 열쇠로 불리는 배아줄기세포를 사람의 난자에서 만들어내는 데 세계 최초로 성공한 것입니다.”

<녹취> KBS 9시 뉴스(2005년 5월 20일): “황우석 교수가 세계를 또 한번 놀라게 하는 연구성과를 발표했습니다.”

과학에는 자고 일어나면 결과가 나오는 획기적인 도약이 일어나지 않고 한 단계 한 단계 사소한 성과물들이 쌓여야만 한다는 것을 간과했던 겁니다.

<인터뷰> 오일환(가톨릭의대세포치료센터소장): “과학자도 그래서는 안 되지만, 무엇보다 우리사회나 국가가 그런 형태의 과학 발전, 속전속결주의로 과학을 바라보는 자세를 고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충격 속에 빠져있을 순 없습니다.

<인터뷰> 손봉호(동덕여대 총장): “이것이 계기가 돼 우리사회가 진실해진다면 그 이익은 엄청납니다. 사실은 우리가 진실하지 못했기 때문에 즉, 충분히 정직하지 못하기 때문에 엄청난 손해를 보고 있거든요 이번 사건을 우리가 전화위복의 계기로 만들어야 합니다.”

지난 4월 말 사이언스지엔 '황 교수가 남긴 성과를 발판으로'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황 교수 사건의 충격 이후, 전 세계에선 줄기세포 연구진들이 황 교수팀이 실패한 맞춤형 줄기세포를 시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과 유럽 연구진은 물론 중국까지 가세해 적어도 7군데의 연구진들이 체세포 복제 줄기세포를 만들기 위한 연구에 여념이 없습니다. 특히 미국은 연방정부에서 공식으론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해 제약을 가하고 있긴 하지만, 내부적으론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정형민(차병원 줄기세포연구소장): “약 5억 8천만불 정도 됩니다. 각 주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엄청난 자금을 투자해 연구를 진행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고 있고 중국도 상하이에 있는 연구 그룹을 통해 정식으로 연구를 진행하겠다고 결정을 본 상태고 우리가 가장 앞서 나간다던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미국과 유럽 각국에서 박차를 가하며 달려나가는 상황입니다. 줄기세포 강국의 꿈이 뒤로 밀릴 수 있습니다.

<인터뷰> 김동욱(연세의대 생리학 교수): “이 분야는 국제적으로 태동기에 있기 때문에 전략을 잘 짜서 나가면 선점을 할 수 있고, 국민적 자긍심을 고취할 수 있는 분야다. 현대의학으로는 한계에 부딪힌 부분을 커버할 수 있는 재생의학, 새로운 개념의 재생의학을 제시할 수 있다.”

난치병 환자와 그 가족들의 마음은 간절합니다.

<인터뷰> 이춘재(환자 보호자): “그 사람의 죄는 밉지만 다른 분들과 줄기세포 연구 계속 했으면...”

다행스런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소리 없이 불을 밝히는 이들이 있단 겁니다. 지금도 새벽을 열어가며 묵묵히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젊은 과학도들.. 이들은 내부의 수치심을 감수하며 황우석 박사의 논문 조작을 밝혀내는 데 힘을 보태왔습니다.

<인터뷰> 정명희(전 서울대조사위원장): “우리나라 과학에 또 다른 능력을 보여준 물론 허위라고 하는 치부가 드러나긴 했지만 다른 일면에는 우리가 이런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줬고 우리 스스로 자정 능력을 보여줬다는 것은 자부할만하죠.”

이들은 사건 파문에도 흔들리지 않고 지금껏 실험실에 나와 연구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월화수목금금금’의 헌신적인 노력이 계속되고 있는 겁니다. 이 같은 끊임없는 노력과 지금껏 쌓아온 기술력이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정부도 때늦지 않게 연구 토대 구축의 필요성을 밝히고 나섰습니다. ‘줄기세포연구 종합추진계획안’을 이달 중에 확정해 지원에 나서겠다고 밝혔습니다.

<인터뷰> 박영일(과기부 차관): “정부는 줄기세포 연구의 빠른 상용화를 고대하던 난치병 환자와 가족들, 물심양면의 후원을 아끼지 않았던 국민의 신뢰를 기반으로 생명공학이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자리매김하도록 지원을 강화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정부의 방침이 선언으로만 머무르지 않도록 실질적인 연구지원 방안이 절실합니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황우석이라는 인물을 통해 줄기세포라는 거대한 욕망을 키워왔습니다. 그 욕망이 허위였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너무나 혹독한 대가를 치뤄야 했습니다.

하지만, 줄기세포 강국을 지키기 위해선 상처를 딛고 과학자들이 다시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모두가 성원을 보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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