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장 뚫린 유가…경제 ‘신음’

입력 2008.05.06 (11:07)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기름값이 마침내 6일 배럴당 120달러(서부 텍사스산 원유 기준)를 넘어 세계 경제에 '충격과 공포'를 안겨주고 있다.
이미 연초부터 소비자물가와 수입물가 등 물가 전반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했던 원유 가격은 이제 무역수지에 이어 경제성장률까지 갉어먹고 있다. 물가 압박을 몸으로 견뎌야하는 서민들의 신음은 커지고 있다.
정부는 유가 급등 부담을 덜기 위해 여러가지 에너지 절감 방안을 강구하고 있지만 실효성 있는 대책이 마땅치 않아 고민하고 있다.

◇ 올들어서만 배럴당 20달러 이상 올라
우리나라 주도입 원유의 기준가격이 되는 중동산 두바이유 가격이 배럴당 60달러를 넘었던 2005년만 해도 유가 급등은 중국 등 신흥 개도국의 급성장과 산업화에 나선 중동 산유국의 소비 확대, 그 이전 수년간의 저유가로 인한 원유 추가 탐사와 생산시설 확충투자의 미비 등 구조적 문제로 치부됐다.
그러나 2007년부터는 미국의 경기둔화 등으로 달러화 약세가 가속함에 따라 금융시장을 이탈한 자금이 원유시장에 몰려들면서 '투기적 요인'이 시장을 교란시키는 모습을 보였다.
두바이유 가격은 지난해 말만 해도 배럴당 89.30달러였지만 이달 5일에는 109.77달러까지 21.47달러나 치솟았다. 투기적 요인에 의해 시장이 움직이다보니 수급에 기초한 전문가들의 유가 전망은 무의미해졌다.
원유 수입국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국제 에너지기구(IEA)는 지난달 보고서에서 올해 석유 수요가 전월 전망치보다 하루 30만 배럴 줄어든 8천720만 배럴이 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낮아진 수요전망에도 같은 기간 중동산 두바이유 가격은 배럴당 110달러선에 근접했고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선물은 배럴당 120달러벽을 뚫었다.
한국석유공사는 두바이유 기준으로 수급상의 요인에 따른 원유 가격은 배럴당 80달러선인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나머지 30달러 정도는 투기자금의 준동에 의한 것으로 봐야한다는 분석이다.
미국 케임브리지 에너지연구소(CERA)는 지난 3월말 전망에서 올해 중동산 두바이유 가격이 특별히 예상을 넘어서는 충격이 없는 상황(기준유가)에서도 연평균 배럴당 89.93달러가 될 것으로 내다봤고 고유가 상황에서는 연평균 105.25달러가 될 것으로 점쳤다.
정부와 국내 연구기관 전문가들의 모임인 국제유가 전문가협의회도 지난달 회동에서 당초 배럴당 74∼79달러선이 되리라던 기존 전망(두바이유 기준)을 버리고 95달러선은 될 것이라는 수정 전망을 제시했다.

◇ 경제 전반에 충격..물가 압박
올해 들어 주요 경제지표들을 들여다보면 유가 충격이 가중되는 모습이다. 소비자물가는 1월 3.9%를 기록한 데 이어 4% 가까이에서 움직이다 4월에는 드디어 4.1%로 3년8개월만에 4%선을 넘어섰다.
소비자물가 상승의 품목별 기여도 분석내용을 보면 경유(0.36%), 휘발유(0.36%), 금반지(0.28%), 도시가스(0.25%), 등유(0.17%), 전세(0.15%), 사립대 납입금( 0.12%), 자동차용 LPG(0.11%)으로 유가 충격이 그대로 소비자물가에 전가되고 있다.
소비자물가의 전조라고 할 수 있는 수입물가의 충격은 더 심각하다. 3월 수입물가 상승률(원화기준)은 작년 동기대비 무려 28.0%에 달해 9년9개월만에 최고치였다.
무역수지 역시 수출이 두 자릿수 증가율을 거듭하고 있음에도 원유 수입액이 40∼50%씩 늘어나면서 올해들어 4월까지 넉 달 내리 적자를 기록, 누적적자가 60억 달러에 육박했다.
산업연구원(KIET)은 최근 내놓은 '최근 무역수지 적자의 배경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유가가 10% 오르면 지난해 무역액을 기준으로 최대 80억 달러의 무역수지 악화가 발생한다고 진단했다.
지난해 연평균 원유 도입단가가 배럴당 69.15달러였으나 올해 들어서는 90달러대에 달하면서 무역수지에 대한 부담을 키우고 있다.
경제의 종합 성적표인 성장률 전망치도 물가와 무역수지와 같은 개별지표 악화의 영향으로 속속 하향 조정되고 있다.
정부가 올해 '6% 성장'을 달성하겠다며 내세운 전제중 국제유가는 배럴당 80달러대였으나 5일 현재 배럴당 94.87달러를 나타내고 있다.
이에따라 삼성경제연구소는 당초 5.0%였던 전망치를 4.7%로 내려잡은 데 이어 LG경제연구원은 4.9%였던 전망치를 4.6%로, 금융연구원은 4.8%였던 전망치를 4.5%로 각각 낮췄다.

◇ "묘안이 없다"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유가 충격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이렇다할 해결책이 없다는 점이 정부의 고민이다.
어차피 전체 원유의 절반 가량을 쓰는 산업분야에서는 특별한 대책을 내놓기가 어렵다. 결국 가정.상업용 등 여타 분야에서 해법을 찾아야 하지만 기본적으로 '캠페인' 이상의 성격을 갖기 힘든데다 과도한 에너지 사용억제가 가뜩이나 하향곡선을 그리는 국내경제를 주름지게 하거나 다른 정책목적과 충돌해서는 안된다는 전제도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지난달 25일 한승수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가에너지절약추진위원회에서 내놓은 방안중 오는 2011년까지 가정까지 냉난방 온도를 제한하기로 했던 방안에서 후퇴한 것이나 연비 1등급 차량에 대한 고속도로 통행료.주차료 50% 감면책을 포기한 것이 어려움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전기.가스료를 올려 수요를 줄이는 정책도 물가안정을 위해 상반기 공공요금 동결을 선언한 정부방침과 맞지 않다.
유가충격을 줄이기 위해 지난 3월 휘발유와 경유 유류세의 10% 인하가 단행됐지만 국제 석유제품가격이 폭등하면서 유류가격은 이미 지난달 세금 인하효과를 모두 잠식한 뒤 사상 최고치 행진을 벌이고 있다.
유가 충격을 줄이기 위해서는 신재생 에너지나 원자력 발전의 비중확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그 성과를 보려면 장기간이 소요되고 원유 자주개발률을 높이는 것도 '안정적 수급'에는 도움이 되지만 '값싼 석유'를 확보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정부 당국자는 "기본적으로 에너지 대책은 어느 나라에서나 단기간내 해결될 만한 성격의 정책이 아니다"라며 "어렵고 시간이 걸리지만 에너지 절감에 대한 국민의식을 높여야하며 지금까지 추진해왔던 것들을 차근차근 밀고 나가면서 경제와 사회의 '체질개선'을 해나가는 것이 해법"이라고 말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