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1. 주연급 탤런트 A의 매니지먼트사는 최근 고민에 빠졌다. 수개월 만에 출연 협상을 벌이고 있는 작품의 제작사가 A의 회당 출연료로 500만 원을 제시했기 때문.
A의 자존심을 떠나, 이 작품이 지방 로케이션 촬영이 많은 점을 고려하면 매니지먼트사로는 손해를 감수해야하는 상황이다. 기름값과 코디네이터ㆍ로드 매니저의 인건비를 떼어주고 나면 매니지먼트사 몫의 돈에서는 남는 것은 커녕 오히려 손해가 나게 생겼다.
A의 매니저는 "불황이라 어떻게든 작품을 하는 것이 중요한데 하자니 손해가 나서 고민"이라면서 "그러나 제작사도 제작비가 쪼들리니 협상의 여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A가 아니면 그보다 낮은 급의 연기자를 기용하겠다는 입장이다"고 전했다.
사례2. 지난해 한 드라마로 상을 받은 인기 작가 B. 그가 제작사에 제출한 기획안이 별로 검토도 되지 못하고 무기한 '보류' 상태가 됐다. 이유는 스케일이 큰 드라마이기 때문.
B는 스타 캐스팅 능력이 있는 작가지만 그가 이번에 낸 기획안은 해외 로케이션이 많은 용병 이야기. 제작사는 "아무리 기획안이 좋고 대본이 잘 나온다고 해도 그 많은 돈을 어디서 구해오냐"면서 난색을 표한 뒤 "제발 다른 소재로 기획안을 내달라"고 작가에게 부탁했다.
연예계가 "불황도 이런 불황이 없다"며 입을 모으고 있다. 방송가든 영화계든 어디를 돌아다녀도 '극심한 불황' 이야기뿐이다.
불황 속에서는 일반적으로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더 심화된다고 하지만 스타에서부터 조ㆍ단역까지 들어갈 작품이 없어 아우성이다. 제작사는 제작사대로 제작비를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물밑 출연료 인하 협상 가속
지난해 박신양이 SBS TV '쩐의 전쟁'의 추가 4회 출연 계약을 하면서 회당 1억7천50만 원을 받기로 했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많은 이들이 놀랐다. 박신양의 케이스가 예외적이기는 했지만 불황이라고 해도 여전히 몇몇 스타급 연기자의 출연료가 상상 이상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불황이 지속되면서 연예계도 점점 불황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어 조만간 스타들도 출연료를 낮춰야하는 상황이 올 전망이다.
이미 중년 연기자들과 조연급에서는 출연료 인하 협상이 물밑에서 진행 중이다.
한 방송사 간부는 "요즘 중견 연기자들로부터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내 출연료는 알려진 것보다 낮다'는 요지의 전화가 많이 걸려온다"고 밝혔다.
영화계 불황으로 연기자들이 너도나도 드라마로 몰려들어 공급 과잉 현상이 빚어지면서 생기는 현상.
이 간부는 "제작 편수가 줄어들다보니 중견 연기자들부터 출연료를 낮춰서라도 어디라도 출연해야하는 상황이 됐다. 이는 조, 단역들도 마찬가지"라며 "그러다보니 대외적으로는 얼마라고 해놓고 실제로는 그보다 낮은 가격에 사인을 하는 배우들이 많아졌다"고 밝혔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배우들이 높은 출연료를 숨기기 위해 이면 계약을 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
◇스타도 출연할 작품이 없다
최근 김아중, 류승범이 캐스팅된 영화 '29년'의 제작이 무기한 연기됐다. 소재의 민감성 탓도 있지만 주된 이유는 투자가 안되서다. '미녀는 괴로워' 이후 영화계, 드라마계가 김아중을 잡기 위해 혈투를 벌였지만 그가 2년 만에 선택한 영화가 투자를 못 받아 제작을 못하게됐다는 것은 연예계 불황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김아중 측은 "일주일 전 영화가 연기됐다는 통보를 받았다"면서 "이제부터 다른 작품을 찾아보는데 마땅히 할 작품이 없어 고민"이라고 밝혔다.
과거에도 스타들은 "출연할 작품이 없다"는 말을 종종 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취향에 맞는 작품이 없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요즘 스타들은 말 그대로 작품이 없어 출연을 못하고 있다. 이제는 취향에 앞서 자신의 위상에 맞는 작품을 만나는 게 쉽지 않기 때문. 제작이 들어가는 작품 자체가 현저히 줄어든 탓이다. 게다가 스타에게도 출연료를 낮춰달라는 협상이 들어오고 있는 상황이라 자존심을 꺾어야하는 경우도 생겨 이래저래 고민이 된다.
태원엔터테인먼트의 정태원 대표는 "요사이 배우들로부터 제발 영화 좀 제작해달라는 전화가 자주 온다. 다들 출연작이 없어 고민인 모양"이라며 "불황이 심각하다"고 전했다.
한 배우 매니저는 "몇몇 스타는 그래도 자존심 세우며 몇 년 쉬어도 되는 여유가 있지만, 그 외 연기자들은 대부분 일을 해야 하는 상황 아니겠는가"라며 "남몰래 끙끙 앓고 있는 배우들이 많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