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포커스] 멕시코 마약 전쟁 성적표는?

입력 2009.07.12 (09:48)

<앵커 멘트>

지난 일요일 멕시코에서는 하원의원과 주지사 등을 뽑는 중간선거가 실시됐습니다.

그런데 이 선거를 국제 사회가 관심있게 지켜 본 것은 마약과의 전쟁을 벌여온 멕시코 칼데론 대통령에 대한 중간 평가 성격을 띠었기 때문인데요.

결국 여당이 아닌 야당의 승리로 확인되면서, 멕시코가 마약의 굴레에서 벗어나기가 얼마나 어려운 지를 보여줬습니다. 멕시코 마약전쟁의 경과와 전망을 김진희 기자가 심층 보도합니다.

<리포트>

지난 5일, 멕시코에서 중간선거가 실시됐습니다. 하원의원 5백명과 6개주 지사, 또, 5백여 명의 시장을 뽑는 대규모 정치이벤트였습니다.

<녹취> 펠리페 칼데론(멕시코 대통령) : “투표가 끝까지 고요하고 평화롭게 치러지기를 희망합니다”

그러나, 곳곳에서 아수라장이 연출됐습니다. 반정부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로 수십 명이 연행되고, 실신해 실려가는 사태까지 일어났습니다. 결과는 보수야당인 제도혁명당(PRI)의 승리.

제도혁명당이 하원 5백 석 가운데 233석을 얻어 1위를 차지했고, 여당인 국민행동당(PAN)은 146석을 차지했습니다. 제도혁명당과 연합을 추구하는 녹색당도 22석을 얻어, 두 당의 점유율이 과반을 넘게 된 겁니다.

<인터뷰> 곤잘레스(야당 지지자) : “현 지도부는 진실한 정치를 하지 않습니다. 계획과 발상 모두 구태의연하고, 별 정치적 노력도 않는 것 같습니다”

이번 선거의 최대 쟁점은 '경기 침체'와 아울러 '마약' 문제였습니다.

올들어 마약 관련 범죄로 숨진 사람만 2천여 명. 현 정부가 벌이고 있는 '마약과의 전쟁'이 기대에 못미쳤다는 겁니다.

<인터뷰> 로메로 : “현재 가장 중요한 건 안전 문제예요. 제발 도시가 안전했으면 좋겠어요”

2006년 12월, 1%도 안 되는 표차로 가까스로 대통령에 당선된 펠리페 칼데론.

국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얻기 위해 꺼내든 카드가 바로 '마약과의 전쟁'이었습니다.

과거 정권이 적당히 마약조직을 눈감아주며 평화를 지켜왔다면, 칼데론 대통령은 정면 돌파로 승부수를 걸었습니다.

<녹취> 칼데론(멕시코 대통령) : “멕시코 어느 주에서도 범죄단체를 구성하거나, 마약 밀매를 저지르는 것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이를 위해 칼데론 대통령은 군인 4만5천여 명을 마약 소탕전에 투입했습니다. 마약조직과 결탁한 경찰을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활약상은 빛났습니다. 멕시코 4대 마약조직인 '티후아나'의 두목을 체포했고, '태평양의 여왕'이란 별칭을 얻은 '시날리아'의 여두목도 검거했습니다.

국경도시 후아레스에서 활개치는 조직 2인자, 또, 멕시코 최대 마약조직인 '걸프' 지역조직의 지도자 등 거물급 마약사범들을 줄줄이 잡아들였습니다.

칼날은 정치권으로도 향해, 이들과 결탁한 혐의로 현직시장 10명이 무더기 체포되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나헤라(마약조직범죄수사대 대변인) : “체포된 관료들은 전략적으로, 기술적으로 마약단체를 비호해 왔습니다. 또, 단속정보를 그들에게 넘겼습니다”

또, 지금까지 70톤 가량의 마약과 6천만 달러 이상의 활동자금을 압수했습니다. 그런데도, 마약 전쟁의 중간 성적표가 나쁜 이유는 무엇일까?

오히려 치안이 악화된 탓입니다. 칼데론대통령은 취임 후 지금까지 3년동안 마약 집단과 150여 차례 충돌했습니다.

전임 대통령이 6년간 16번 충돌했던 것과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많은 수치입니다.

그러나, 그만큼 양측의 폭력도 격렬해져 '마약 전쟁' 이후 사망자 수는 오히려 전보다 늘었습니다.

지난해엔 경찰청장과 경찰 부국장이 조직원의 총에 맞아 숨지는 등 경찰 희생자도 수백 명에 달했습니다.

마약거래를 추적 보도한 기자는 피살되고, 방송국은 공격을 받았습니다. 마약 조직이 겁을 먹고 숨죽이기 보다 도리어 위협적으로 나오는 겁니다.

지난 2월엔 '경찰서장이 사임하지 않으면 48시간에 한명씩 경찰관을 살해하겠다'는 협박에 경찰서장이 스스로 물러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녹취> 레예스(후아레스 시장) : “마약조직이 명백한 살해 위협 경고를 했습니다. 경찰들의 희생을 막기 위해 경찰서장은 사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마약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마약 퇴치'에 걸림돌입니다. 멕시코 북동부 도시, 누에보 라레도. 시내 한복판에 큼지막한 구인광고가 내걸렸습니다.

'전현직 군인 특별우대. 높은 월급, 좋은 음식' 마약조직원을 모집한다는 광고입니다.

전 국민의 8%가 마약업에 연루돼 있다는 추정이 나올만큼 마약은 생계수단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인터뷰> 시민 : “우리가 바짝 정신을 차리지 않는다면, 이젠 마약조직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조차 헷갈릴 지경입니다”

이같은 멕시코의 상황은 이웃나라인 미국에도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소비되는 마약의 60%가 멕시코에서 흘러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이상 방조할 수 없음을 깨달은 미국은 대대적인 공조 방침을 밝혔습니다.

우선, 국경지역 밀수 단속에 1억8천만 달러를 투입하기로 했습니다. 미국 내 마약거래 자금 추적도 강화됩니다. 최근엔 국경지대 마약범죄만을 전담하는 '국경 차르'직도 신설했습니다.

<인터뷰> 알랜 버신(국경 차르) : “미국과 멕시코가 국경지대 협력을 구축하기로 한 만큼 분명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멕시코 조직원들이 사용하는 총기의 90%가 미국에서 수출된 것이어서, 뿌린 대로 거두고 있다는 비난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멕시코는 물론 아메리카 대륙 전체를 위험에 빠뜨린 마약범죄조직. 칼데론 대통령은 임기가 끝나는 2012년까지 마약조직을 소탕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이를 확신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중간선거에서 승리한 야당이 군 병력을 동원한 마약 전쟁에 부정적인 것도 전망을 어둡게 하는 부분입니다.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멕시코의 미래가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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