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토니아, 춤과 노래로 하나된다

입력 2009.07.12 (09:48)

<앵커 멘트>

지난 주 발트해 연안의 나라, 에스토니아에서는 특별한 축제가 열렸습니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독립한 발트3국의 하나인 에스토니아가 과거 이민족의 억압 속에서도 정체성과 전통을 지켜온 토대가 됐던 춤과 노래의 대전이 펼쳐진 것인데요.

5년마다 개최되는 이 춤과 노래 대전은 과거 자유와 독립을 향한 열망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전통문화 축제로 에스토니아 사람들을 하나로 묶고 있습니다.

김영민 순회특파원이 밀착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에서 300여 킬로미터 떨어진 작은 마을 세투.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곳에는 500여명의 소수민족 세투인들이 살고 있습니다. 춤과 노래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일주일마다 열리는 동네 모임은 작은 축제이기도 합니다.

세투 사람들은 얼마 전부터 공연 준비에 더 열을 쏟고 있습니다. 수도 탈린에서 열리는 에스토니아 노래와 춤의 대전에 참가하기 위해서 입니다.

<인터뷰> 비비카 코세르 : “에스토니아 사람들이 수도에 모여 노래를 부르는 일은 아주 특별한 행사입니다. 전 국민이 함께하는 시간이죠”

축제 하루 전날, 에스토니아는 벌써부터 축제 준비로 한창입니다. 춤의 대전이 열리는 경기장에서 진행되는 총연습, 뜨거운 햇볕 아래서도 참가자들은 그간 준비한 춤 동작을 다시 한번 확인합니다.

<인터뷰> 테아(초등학생) : “처음에는 조금 두렵기도 했는데, 지금은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에스토니아 모두가 함께 즐기는 축제이기에 거리 곳곳에서는 각 지방에서 올라온 공연단들의 전통 민속 공연도 이어집니다.

오랜만에 고향 사람을 만나 기뻐하고, 맥주 한 잔의 여유도 즐기며 사람들은 하나 된 축제를 즐깁니다.

에스토니아의 노래와 춤의 대전 축제 첫날, 사람들은 각 지역의 전통 민속공연을 즐기며 하나가 됩니다. 5년만에 찾아온 축제는 에스토니아의 전통이자 상징입니다.

1869년 시작된 '노래와 춤의 대전'은 다른 민족의 지배 아래 신음하던 발트인들이 자유와 독립을 향한 의지를 담아 시작한 비폭력 저항의 한 수단이었습니다.

에스토니아 타르투에서 시작돼 발트 3국 전역으로 확대됐고, 지금도 리투아니아, 라트비아에서도 4, 5년 주기로 축제가 열립니다.

<인터뷰> 카트린 밸랴(큐레이터) : “소련으로 독립하기 전 1988년의 탈린 노래대전은 30만명의 에스토니아 사람이 모인 축제이자 혁명이었습니다”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 운동으로 소련 전체에서 자유와 독립의 의지가 확산해가던 1989년, 발트3국의 사람들은 소련 지배의 부당함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발트 3국을 잇는 거대한 인간띠, 발트의 길을 만들었습니다.

총과 칼을 드는 대신 손에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며 자유를 외쳤고, 다음해 리투아니아를 시작으로 발트 3국 세 나라는 독립을 이뤄냈습니다.

노래 대전이 시작된 타르투 시내의 기념비는 에스토니아를 지배했던 러시아와 독일의 외압에도 에스토니아인들은 꿋꿋이 노래와 춤으로 그들의 전통을 지켜왔음을 상징합니다.

<인터뷰> 라이네 얘네스(에스토니아 문화부 장관) : “가족, 어린이, 어른 합창단 등 다양한 방식으로 축제에 참가하고, 축제를 손꼽아 기다립니다. 인생의 일부입니다”

2009년 7월. 에스토니아는 다시 한번 축제의 장으로 변했습니다. 백야의 날씨. 저녁 8시에도 대낮 같이 밝은 공연장에 9000여명의 참가자와 수만명의 관객들이 모였습니다.

'하나 되는 시간'이란 모토처럼 에스토니아 전통 민요 리듬에 맞춰 화려하고, 또 열정적인 춤사위가 이어집니다.

강대국의 억압, 일상의 구속은 사라지고 그토록 그리던 자유를 만끽하는 환희의 춤이 펼쳐집니다.

춤의 축제가 끝난 저녁, 또 다른 곳에선 내일 있을 노래 대전 참가자들이 시가 마련한 합숙소에 모였습니다. 아이들은 카드놀이에 푹 빠졌지만 어른들은 축제 복장을 챙기고, 준비에 만전을 기합니다.

<인터뷰> 마르깃(성인 참가자) : “치마 구멍이 너무 커서 꿰매고 있어요. 내일 공연 정말 너무너무 기대되요”

<인터뷰> 한나(초등생 참가자) : “내일 공연 잘 됐으면 좋겠어요. 정말 연습 많이 했거든요”

노래 축제 당일, 오후 2시부터 펼쳐지는 시내 퍼레이드.

캐나다, 독일, 러시아, 스웨덴 등8개국 해외 교민들은 물론 2만4000여명의 참가자들은 노래를 부르고, 음악을 연주하며 5킬로미터의 탈린 거리를 행진합니다.

세투에서 만난 비비카씨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감추지 못합니다.

<인터뷰> 비비카 : “너무 황홀해요. 이 축제에 참가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훌륭한 축제, 모두가 즐기는 바로 그것이죠”

2만여명의 참가자들이 순서대로 자리를 잡고, 100미터 높이 탑으로 옮겨진 성화가 불을 밝히며 축제의 시작을 알립니다.

자유와 평화, 미래를 향한 염원을 담아 한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 합창이 만들어내는 화음은 이곳이 진정 자유의 땅임을 깨닫게 합니다.

해외는 물론 각 지역 십만여명의 에스토니아 사람들이 노래대전이 열리는 이곳 노래 광장에 모였습니다.

지역과 민족, 종교를 떠나 사람들은 에스토니아 전통 민요를 다 함께 부르며 축제를 즐깁니다. 인구 120만명의 작은 나라, 하지만 에스토니아 사람들은 이 축제만큼은 세계 최고라고 자부합니다.

축제는 끝나고 이제 사람들은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이제 에스토니아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노래와 춤을 즐기며 다시 다음 축제를 기다립니다.

<인터뷰> 에드가르 사비사르(탈린 시장) : “우리는 노래로 나라를 세웠고, 노래로 주권을 되찾았습니다. 이 전통은 분명 더 심화되고 여러 가지 더 많은 노력이 부여될 것입니다”

오랜 기간 강대국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왔지만 노래와 춤으로 그들의 정체성을 지켜온 에스토니아 사람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말하는 축제를 통해 그 어떤 아픔도 극복하고, 그들만의 문화를 지켜가고 있습니다.


<앵커 멘트>

지난해 티베트의 시위 당시 들끓었던 국제 사회의 반 중국 여론이 이번에 신장 위구르의 유혈 사태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치 잠잠합니다.

금융위기 이후 부쩍 강해진 중국의 파워를 실감하면서 또한 냉엄한 국제 관계의 현실을 되새기게하는 대목입니다.

특파원 현장보고, 오늘 순서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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