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죽음을 부른 ‘대학 음주 문화’

입력 2010.05.17 (08:51)

수정 2010.05.17 (10:04)

<앵커 멘트>



한 여대생의 사망 소식이 파문을 부르고 있습니다.



선배들이 강제로 술을 마시게 해 그 다음날 숨진 여대생입니다.



도대체 술을 얼마나 먹인 거냐, 왜 그렇게 술을 강제로 먹이느냐, 비난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민우 기자, ’사발식’이라고 불리던 음주 문화가 아직도 대학에서 벌어지고 있나요?



<리포트>



아직도 그렇습니다.



후배들 군기를 잡기 위해서였습니다.



인사를 잘 안한다, 선배들 이름을 모른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요즘 군대도 그렇게 심하지 않습니다.



평소 주량이 소주 반병인데, 두병 이상을 마셨다고 합니다.



그것도 단 20분만에요.



그러니 견딜 수 있겠습니까?



물론 아직까지 술이 사망의 직접 원인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강압적인 술 문화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지 답답합니다.



한 여대생의 개인 홈페이지, 보름동안 수많은 글들이 올라왔습니다.



명복을 비는 글이 천 7백 개가 넘습니다.



홈페이지의 주인은 21살의 금인경 씨. 대학 신입생 대면식에 다녀온 다음 날, 고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인터뷰> 금 모씨(금인경 씨 언니/음성변조) : "인경이가 죽은 게 가장 억울하고요... 대학 간지 두 달 밖에 안됐는데, 이게 뭔가 싶고... 솔직히 어린 애 데리고 그런 일을 했다는 게, 상상이 안 되고요."



인경 씨는 숨진 전날 신입생 대면식에서 강제로 많은 술을 마셨습니다.



지난달 29일, 신입생이던 인경 씨는 한 통의 문자를 받았습니다. 한 학년 선배들의 호출이었습니다.



<인터뷰> 금모씨(금인경 씨 언니) : "1학년 애들이 인사를 안 하고 군기가 빠져있다, 중간고사 끝났으니까 한 번 군기를 잡겠다 해서 모인 것 같아요."



특히 인경 씨는 자리가 마련되기 전부터 선배들의 표적이 되어있었습니다.



<인터뷰> 금모씨(금인경 씨 언니) : "동생이 재수해서 09학번 애들과 나이가 같아요.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인사를 해야 되는데, 인사를 잘 안했나 봐요. 또 노는 무리가 있는데, 1학년 중 제일 활발히 놀았나 봐요. 그러니까 2학년들이 ’쟤네 왜 이렇게 주도적으로 노냐, 자기들끼리만..."



선배들의 이름을 못 외웠다는 이유만으로 억지로 술이 권해졌고, 평소 주량인 소주 반병을 훨씬 넘었습니다.



거절할 수도 없었습니다.



<인터뷰> 금모씨(금인경 씨 언니) : "그 때 어떤 남자애가 (술 먹다) 울었는데, 누가 우냐고 했대요. 울면 안 되는 분위기 속에 있었고... (인경이가) 구토를 하려고 화장실에 갔는데, (선배들이) 연기 하지 말라고 하고, 동생을 친구들이 챙겨주려고 하니까 다 나가라고..."



20분 남짓한 시간 동안 인경이가 마신 술은 큰 종이컵으로 8잔. 소주 2병이 넘는 양이었습니다.



단시간에 마신 많은 술로,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비틀거리며 자취방으로 돌아가던 것이 인경 씨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인터뷰> 금모씨(금인경 씨 언니) : "(다음 날) 수업을 안 들어오니까, 수업 끝나고 (자취방을) 찾아갔는데... 20분 동안 문을 두드려도 애가 안 나오니까, 열쇠 수리공을 불러서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이미..."



그토록 원하던 대학에 들어간 지, 두 달 밖에 안됐는데... 가족들에겐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습니다.



상상도 못한 딸의 장례장식에 학교 선배들이 집단으로 찾아왔습니다.



<녹취> 금인경 양 유가족 : "누가 미치지 않고서야 이렇게 먹일 수가 있어! 우리 인경이 연기돼서 모두 날아갔어!"



<인터뷰> 금모씨(금인경 씨 언니) : "2학년들 뿐 아니라 3, 4학년들까지 100명 정도 (장례식장에) 다 와서 고개 숙이고 있었어요. 검은색 옷 입고..."



인경 씨에게 억지로 술을 먹였던 선배들이 장례식장에 사죄를 온 것입니다.



그런데 스스로 찾아온 게 아닌 것 같았습니다.



<인터뷰> 금모씨(금인경 씨 언니) : "(장례식장에서) 무릎 꿇고 그런 것도 교수님이 다 시키시고... 인경이 친구들이 그러더라고요. 친구가 죽으니까 화가 나잖아요.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도 (선배들이) 와서 인사 안하냐고, 뭘 째려보냐고... 걔네들은 그 상황에서 심각성을 몰랐던 거죠."



가족들은 억울한 사연을 인터넷에 호소했고, 사고 소식을 알게 된 네티즌들은 학교의 홈페이지에 지탄의 말을 쏟았습니다.



가해 학생들의 잘못을 꾸짖는 목소리가 커지자, 경찰은 처벌의 가능성까지 열어둔 상태였는데요.



<인터뷰> 김영석(괴산경찰서 강력2팀/형사) : "(처벌을 위해) 사망 원인을 명확히 규명을 하기 위해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감정 부검을 의뢰한 상태입니다."



대학생들의 강압적인 음주로 생긴 사고는 인경 씨만의 일이 아닙니다.



작년 3월에도 신입생 환영회를 다녀온 남학생이 추락사한 일도 있었는데요.



대한보건협회 통계에 따르면, 2008년 3명, 2009년 2명 등 대학 내 음주 사망사고는 매년 되풀이 되고 있었습니다.



<인터뷰> 박모씨 : "신입생 환영회 때, 억지로 사발에다가 오물을 넣어서 강제로 먹는다거나... 먹기 싫어도 억지로 먹었어요. (안 먹는다고 말하면) 구타하고, 괴롭힘이 있죠. 따로 나오라고 해서 몇 대씩 맞고 그랬어요."



<인터뷰> 조모씨 : "(술을 먹으라고) 강요하면 먹어야죠. 이 사회가 인맥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학기 초반부터 찍히기는 싫으니까..."



강제로 술을 먹이는 것도 문제지만, 음주 사고가 나도 그동안 가해 학생에게 특별한 처벌이 없었다는 점도 문젭니다.



<인터뷰> 한모씨 : "술은 적당히 먹어야 하는데, 많이 먹으면 솔직히 독약이나 마찬가지잖아요. 강제로 먹는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문화인 것 같아요."



<인터뷰> 김모씨 : "솔직히 (가해 학생들) 처벌 받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술로 사고가 생기면) 저는 살인이라고 생각해요."



어쩌면 잘못된 음주 문화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한 사회적 분위기 탓이 더 큰지도 모릅니다.



<인터뷰> 제갈정(인제대학원대학교/연구교수) : "본인이 얼마만큼 마시는 게 적정한지도 잘 모르고 마시면서 사고들이 생기는데요. 벌어지는 사고에 대해서 묵인하는 학교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교가 좀 더 적극적으로 음주 문제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해야 하고..."



경찰은 인경 씨의 사망 원인이 과음으로 밝혀지면, 술을 강요한 학생들을 과실치사 혐의로 처벌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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