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예단으로 10억 가져와”

입력 2011.02.15 (08:57)

수정 2011.02.15 (10:38)

<앵커 멘트>

이제 곧 봄과 함께 결혼 시즌이 찾아올텐데요.

요즘 전세난에 예비부부들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라죠?

네, 그런데 집만 구하면 그만인 줄 알았는데 또 하나 남은 게 있죠?

바로 예단입니다.

정수영 기자, 예단 비용이 10억원 가까이 되는 경우도 있다고요?

<리포트>

네, 그렇습니다.

가슴 설레고 행복해야 할 경사가 결혼이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예비 신랑 부모가 이른바 예단 명목으로 거액을 요구하면 신부는 속앓이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일부 부유층 사이에서는 10억 원을 받기도 합니다.

이렇게 큰 돈을 마련하느라 허리가 휘는 신부 부모가 감정 상하지 않을 리 없습니다.

예단 때문에 파경에 이르는 부부가 끊이지 않는 이유입니다.

소문난 재력가 집안의 딸 서른 한 살 이 모씨는 지난 2009년 가을 비슷한 재력을 지닌 집안의 아들 서른두 살 김 모 씨와 결혼했습니다.

신부 이 씨 부모는 신랑 김 씨 부모에게 예단 명목으로 현금과 침구류 등을 합쳐 10억 원 어치를 건넸습니다.

예단을 받은 김 씨 부모는 신부 부모에게 2억 원을 돌려줬습니다.

거액의 예단을 주고받으며 결혼에 이르렀지만 부부 사이는 원만하지 못했습니다.

거액의 현금과 선물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았고 종교 문제까지 겹치면서 다섯 달 만에 파경을 맞았습니다.

신부 이 씨는 본전 생각에 예단 금액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냈고 결국 8억 원을 도로 손에 쥐었지만 정신적 고통은 지우지 못했습니다.

<녹취> 김윤정(서울가정법원 공보관 판사) : “예물이나 예단의 경우에는 혼인관계가 성립하지 않으면 반환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이 사건 같은 경우 단기간에 파탄되었기 때문에 (혼인이) 성립하지 않은 경우와 같다고 판단하여 예물과 예단을 반환하도록 한 사안입니다.”

예단은 결혼 한두 달을 앞두고 신부가 시어른과 시댁 친인척들에게 인사를 드린다는 취지로 건네는 현금과 현물입니다.

일부 부유층 사이에서는 예단을 구실로 거액의 현금은 물론이고 고가의 사치품까지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부유층 고객이 주로 찾는다는 서울 강남의 한 백화점입니다.

시어머니 선물로 주로 팔리는 고가 핸드백은 최하 수백만 원을 호가하고 찻잔 세트는 천만 원짜리를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녹취> 백화점 직원(음성변조) : “0000를 예단으로 많이 하시는데 400만 원 대는 지극히 그냥 필요하신 정도 하시는 거고요 저쪽은 천 만 원대...”

또 다른 단골 예단 선물인 침구 매장입니다. 이탈리아산 수입품임을 내세우는 이불 세트 가격이 최하가 5백만 원입니다.

<녹취> 백화점 직원(음성변조) : “0000로 그릇을 하셨으면 저희 이불 많이 하시고 이태리 직수입이고 지금 가격대가 많이 내려간 상태고...”

가격 때문에 망설이는 듯한 기색을 보이자 직원은 다른 고객이 구입한 이불 세트 영수증을 보란 듯이 꺼내 듭니다.

<녹취> 백화점 직원(음성변조) : “최근에 예약 하나 해놓고 가신 분이 있는데 다 하신 게 1,779만원... 이분은 세트로 다 (하셨어요) (이런 분들은 예단비가 정말 억 대 되겠어요) 분위기라는 게 있잖아요. 그게 개인 사정보다 아무래도 저쪽 사정을 맞춰야 하니까.“

선물 자체는 물론 포장에 쓰는 재료까지 고가의 사치품 일색이다 보니 예단에 포함된 선물비용만도 1억 원을 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녹취> 결혼중개업체 관계자(음성변조) : “예단 포장하는 비용부터 해서 그런 재질부터 해서 그게 나무가 어디 명인이 만든 오동나무에 그것도 몇 천만 원 하거든요. 그런 것부터 시작해서 예물하실 때 넣는 케이스... 화장대라고 하죠. 그런 것부터 해서 이불 같은 경우에도 엄청나게 들어가는 거죠.”

결혼을 준비하면서 분에 넘치는 예단 비용을 마련하는 바람에 결혼 뒤 부부 관계가 악화되는 경우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30대 초반 직장 여성 강모 씨는 오랜 연애 끝에 연인과 결혼하기로 마음먹고 양가 집안 상견례까지 마쳤지만 결혼 준비가 순탄치 못했습니다.

신랑 부모가 예단으로 현금 5억 원을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녹취> 결혼중개업체 관계자(음성변조) : “고가 같은 경우에는 세트 이런 부분에선 아무래도 질이 다른 거죠. 이불 같은 경우도 몇 천만 원 들어가는 부분이 있으니까요. 현물 같은 경우는 집에 따라서 들어가는 부분이고.”

강 씨는 형편이 넉넉지 못해 예단 5억 원을 마련하는 데 곤란을 겪었고 뒤늦게 신랑 부모가 예단을 3억 원으로 낮춰 잡았지만 돈 구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가까스로 예단 비용은 마련했지만 거액의 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신부 부모는 신랑 부모에 대해 불쾌감을 삭이지 못했고 끝내 파혼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녹취> 결혼중개업체 관계자(음성변조) : “(신랑 측은) 예단비용으로 5억을 바랐는데 3억까지 밑으로 내렸는데 (그래서) 3억 준비하긴 했었는데 (신부 측은) 기분이 안 좋은 거죠. 신부가 꼭 이렇게 결혼해야 되겠나 해서 파혼하고”

파혼은 면했더라도 예단을 둘러싼 잡음 때문에 결혼 이후까지 갈등이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인터뷰> 이이레(서울 길음동) : “여자가 벌써 아이를 가졌는데도 불구하고요. 다 지우고 그냥 결혼을 안 시키겠다는 식으로. (결혼) 진행이 거의 다 됐는데 얼마를 채우라는 식으로. 그리고 식을 올린 뒤에까지 계속 그 돈을 채우라고 요구하는 변호사 아들을 둔 시어머니 얘기를 들었어요.”

예단이 결혼 뒤 양쪽 집안에 분쟁을 일으키는 일이 끊이지 않자 아예 예단을 안 받거나 신랑 부모측이 받은 예단 70%를 돌려주는 등 새로운 결혼 문화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유효정(서울 미아동) : “예전처럼 그런(예단) 거 해오는 것보다는 그냥 편하게 너희가 집이나 그런 데 돈을 쓰라는 쪽으로 편하게 말씀하신 거 같아요.”

<인터뷰> 주진하(부산 금성동) : “그만큼 능력이 되니까 해주고 싶은지는 몰라도 예물에 대해서는 그거는 사치라고 보죠. 그거 말고도 좋은 데에 쓸 일도 많은데.”

납득할 만한 기준도 없고 뚜렷한 근거도 없는 예단 풍습이 예비 신랑 신부는 물론 결혼한 부부들에게까지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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