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동반 자살’ 속여 여자친구 살해

입력 2011.07.05 (09:00)

<앵커 멘트>

사의찬미로 유명한 윤심덕과 극작가 김우진이 대한해협에 함께 몸을 던진지가 벌써 80년이 넘었는데요.

그 이야기가 아직도 회자되고 있잖습니까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일텐데요.

그런 심리를 이용한 듯한 사건이 있었다죠?

<리포트>

네, 동반자살을 하자고 여자친구를 꼬드긴뒤 살인을 저지른 용의자가 체포됐습니다.

정수영 기자, 이 남자, 대체 왜 이런 일을 저지른 건가요?

결국 돈 문제였습니다.

여자친구를 살해하면 자신이 저지른 횡령 범죄를 덮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인데요.

두 사람은 직장 상사와 부하 여직원 사이로 처음 만났습니다.

교제 끝에 결혼까지 약속했습니다.

열네 살 나이 차이에 이혼 전력이 있다는 점 때문에 여자친구 집안 반대가 심했습니다.

비관 끝에 동반자살을 하기로 약속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어띠된 일인지 남자만 멀쩡히 살아 나왔습니다.

이모든 일은 남자가 꾸민 음모였습니다.

지난 5월 25일 오전, 34살 김모 씨에게 날벼락 같은 전화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여동생 26살 김모 씨가 연탄가스에 질식해 쓰러져 있다는 여동생 남자친구 연락이었습니다.

<인터뷰> 김태곤(팀장/관악 경찰서 형사2팀) : "(남자가) 피해자의 오빠한테 전화를 해서 ‘여동생이 어디어디 방에서 가스를 마시고 정신을 잃었다."

황급히 동생 집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매캐한 연탄가스 냄새가 코를 찔렀고 여동생은 이미 싸늘한 주검이 된 지 오래였습니다.

출동한 경찰은 최초 신고자인 남자친구 40살 김모 씨 행적이 수상쩍다는 사실을 눈치챘습니다.

<인터뷰> 오대성(형사/관악경찰서 형사 2팀) : "주변 사람들, 그리고 가족들. 부모님 집에 방문해서 소재를 파악해 보니까 전혀 소재가 파악이 안돼요. 계속 잠적을 해서 찾지를 못했습니다."

남자친구 김 씨는 잠적 13일 만에 경찰에 붙잡혔고 사망 경위에 대한 수사는 그제서야 본격화됐습니다.

숨진 20대 여성 김 씨와 40대 남자친구 김 씨가 처음 만난 것은 지난 2009년이었습니다.

남자친구 김 씨와 여직원 김 씨는 한 상가 분양 대행사 직장 상사와 부하 직원 사이였습니다.

<녹취> 전 직장 동료 : "(남자는) 활달한 성격이었어요. 회사 직원과 대인관계는 원만했죠."

14살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서로 교제를 시작했고 결혼까지 약속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여직원 김 씨 부모와 형제는 극구 반대했습니다.

남자친구 김 씨가 한 차례 이혼한 전력이 있는데다 중학생 자녀까지 두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김태곤(팀장/관악 경찰서 형사2팀) : "집에서는 반대가 굉장히 심했죠. 이혼남에 다가 중학생도 있고 학교 다니는 학생도 있고 ‘뭐가 좋아서 그런 남자에게 시집을 가느냐’라는 집안의 반대가 굉장히 심했던 것입니다."

결혼이 무산되기에 이르자 두 사람은 극도로 불화와 좌절을 겪었고 남자친구는 여직원 김 씨에게 동반 자살할 것을 권유하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뷰> 김태곤(팀장/관악 경찰서 형사2팀) : "남자는‘그래 그러면 우리 결혼도 못할 바에 우리 같이 죽자’그렇게 제의를 했습니다."

급기야 지난 5월 24일 밤 10시 쯤 두 사람은 만취 상태로 여자친구 김 씨 집에서 동반 자살을 감행했습니다.

<인터뷰> 김태곤(팀장/관악 경찰서 형사2팀) : "번개탄을 사서 집에서 피워 놓고 여자는 침대 위에서 자고 남자는 방바닥에서 잤다고 했습니다."

30제곱미터 남짓의 비좁은 자취방은 삽시간에 연탄가스로 차올랐습니다.

이튿날 여성은 숨진 채 발견됐지만 남자친구 김 씨는 멀쩡히 살아나와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인터뷰> 김태곤(팀장/관악 경찰서 형사 2팀) : "범인의 진술은 ‘밤 10시부터 아침 9시까지 (11시간 동안) 같이 가스를 마셨다. 일어나보니까 피해자가 사망했다’,‘합의 하에 같이 자살하려고 했지만 나만 살아서 나왔다."

경찰은 사건 당시 상황을 그대로 재연해 실험했고 남자친구 진술의 허점이 드러났습니다.

11시간은커녕 연탄을 피운 뒤 30분이면 방 안 일산화탄소 농도는 치사량에 도달했기 때문입니다.

<녹취> 오대성(형사/관악경찰서 형사 2팀) : "(여자는) 혈중 일산화탄소 포화량이 63%가 나왔어요. 40%이상만 되면 무조건 사망이고, 20%만 돼도 사람이 정상적인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남자는) 혈중 일산화탄소가 없는 거죠. 병원에 안 갔는데 (일산화탄소 중독일리 없습니다.)"

움직일 수 없는 과학적 물증 앞에 피의자 김 씨는 결국 자신이 여자친구를 살해하기 위해 이같은 일을 꾸몄다고 자백했습니다.

<인터뷰> 오대성(형사/관악경찰서 형사 2팀) : "사실은 (남자는) 죽을 마음이 없었는데, 주변 사정도 이렇고 경제적으로 힘들고 자기는 결혼하고 싶은데 결혼 약속을 반대하고 그래가지고 순간적으로 떼어내고 싶었다고 얘기했습니다."

사건 당일 남자는 번개탄에 불을 피운 뒤 화장실을 간다는 핑계로 자리를 피했고 여자친구가 잠이 들자 그대로 현장을 빠져나갔습니다.

범행 5시간 후인 새벽 3시 쯤에는 사건 현장에 돌아와 여자친구가 사망했는지를 확인하는 치밀함까지 보였습니다.

<인터뷰> 김태곤(팀장/관악 경찰서 형사 2팀) : "(새벽에) 다시 그 집을 방문합니다. 죽은 걸 확인하기 위해서 그 방에 들어와서 피해자를 흔들어보고 피해자가 사망한 걸 확인하고 다시 그 집을 나갑니다."

경찰 조사결과 남자친구 김 씨가 여자친구를 살해한 진짜 이유도 드러났습니다.

김 씨는 2천만 원이 넘는 분양 고객 돈을 몰래 빼돌렸고 이 사실을 눈치 챈 고객 항의가 잇따르고 있었습니다.

<녹취> 전 직장 동료 : "나 팔아가지고 고객들한테 돈을 요구했다는 소문도 있었고, 고객이 날 찾아왔었고, 그래서 나는 ‘그런 사항이 없었다.’라고 고객들한테 얘기해줬었죠. 그런데 이번 사건 터지고 보니까 나도 어안이 벙벙했었어요. 사실은."

빼돌린 돈을 입출금하기 위해 여자친구 계좌를 이용했기 때문에 여자친구를 살해하면 더 이상 자신이 저지른 횡령에 대해 책임지지 않아도 좋을 것이라는 계산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인터뷰> 오대성(형사/관악경찰서 형사 2팀) : "여자랑 같이 상가 분양 일을 하면서 돈을 이 여자 통장으로 받고 자기도 받고, 그러니까 생각을 잘못한 거죠. 여자가 죽으면 그 돈(여자 통장으로 들어온 돈)에 대해서 책임은 지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한거죠."

경찰은 김 씨에 대해 살인 혐의로 구속 영장을 신청하고 숨진 여성이 동반 자살에 동의하지 않았는데도 몰래 번개탄을 피워 살해했을 가능성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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