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트리올 주역 조혜정 “메달 따고 웃자”

입력 2012.08.09 (16:09)

"우리 때와 상황이 정말 비슷합니다. 이번 경기에서 이긴다면 한국 여자 배구 역사상 가장 높은 자리에 서는 것이고, 만약 진다 해도 3~4위전에서 이겨 줄 것이라 믿습니다."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서 구기종목 사상 첫 메달을 한국에 선사한 여자 배구의 주역 조혜정(59) 대한배구협회 이사는 9일 여자 배구팀의 올림픽 준결승 경기를 앞두고 후배들에게 칭찬과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한동안 침체기를 맞았던 여자 배구는 8년 만에 출전한 이번 대회에서 강호를 압도하는 조직력을 뽐내며 준결승까지 진출했다.

세계 랭킹 6위 세르비아와 세계 2위 브라질 등을 격파해 3위로 조별 예선리그를 마쳤고, 8강에서는 세계 4위인 이탈리아를 상대로 2004년 아테네올림픽 예선 이후 8년 만에 승리를 거뒀다.

준결승에서는 세계 정상의 강호 미국과 맞선다.

조 이사는 "이렇게 잘할 줄 몰랐다"고 웃으며 "우리는 준결승에서 당대 1위인 일본에 져서 헝가리하고 3~4위전을 치러 메달을 따냈는데 그때 생각이 많이 난다"고 회상했다.

당시 세계 배구계는 공산권의 손안에 있었다.

한국 여자 배구는 신장에서도 다른 국가들에 비해 열세였고, 공산권과 교류가 없어 판정에서도 불이익을 많이 받는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이를 이겨내고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조 이사는 "처음 갔을 때는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생각했는데 잘하니까 욕심이 나더라"며 웃었다.

조 이사는 "지금도 욕심이 많이 난다"며 "우리 선수들이 미국을 이긴다면 우리 기록을 깨는 순간이 오는 것이고 혹시 지더라도 3~4위 전에서 일본을 만나 이긴다면 우리가 동메달을 딴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다"고 말했다.

여자 배구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데는 세계적인 공격수 '김연경 효과'가 컸다.

국제배구연맹(FIVB)가 붙여준 '배구 영웅'이라는 칭호에 걸맞게 김연경은 모든 경기에서 팀 득점의 절반 가까이 책임지며 팀의 구심점으로 우뚝 섰다.

조 이사는 "김연경이라는 걸출한 선수가 조직력을 극대화 시킨 것 같다"며 "선수들이 연경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또 "그 자신감이 팀 조직력을 탄탄하게 만들고 선수들에게서 능력 이상의 것을 이끌어 낸다"며 "세계적인 선수 한 명이 많은 선수를 달라지게 만드는구나, 새삼 느꼈다"고 말했다.

조 이사는 김형실 대표팀 감독의 선수 기용에 대해서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조 이사는 "경기를 연경이 혼자가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다크호스가 필요하다"며 "김희진이 지금까지 그 역할을 잘해왔는데 이탈리아에서는 상대의 예측을 깨고 황연주를 기용해 플레이 전체를 뒤흔들어 놓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탈리아전에서 주전 세터 김사니 대신 이숙자를 투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고 덧붙였다.

김연경 등 다른 선수들도 자랑스럽지만 조 이사가 꼽은 '수훈 선수'는 레프트 한송이다.

조 이사는 "한송이는 서브리시브가 약해서 전 세계가 자신을 서브 타깃으로 삼을 것을 알고 있었다"며 "이에 대한 공포심은 말로 표현할 수 없고, 서브리시브에서 실수가 일어났을 때 빗발칠 인터넷 악플도 무시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송이는 그런 모든 것을 이겨내고 좋은 플레이를 펼쳤고 이는 귀감이 될만하다"며 "상대를 이기는 것만큼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몬트리올올림픽 때 일본과의 준결승에서 조 이사는 첫 세트를 내준 뒤 벤치로 물러나야 했다. 3~4위전을 대비하기 위해서다.

조 이사는 "아직도 그때 그 경기를 포기한 것이 미련이 많이 남는다"며 "이번에는 그런 미련이 없게 우리 선수들이 미국과의 경기에도 혼신을 다하고, 3~4위전을 치르게 된다해도 죽을 만큼 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몬트리올 때 쿠바를 이기고 4강에 올라가자 동료들이 울더군요. 그때 '메달을 딴 다음에 울자, 그때까지만 참자'고 얘기했었습니다. 우리 선수들도 이전 경기는 다 잊어버리고, 다가올 경기들에 최선을 다해 메달을 딴 뒤 함께 울고 웃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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