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법정서 불리한 진술했다고 보복 살인?

입력 2012.12.10 (08:36)

수정 2012.12.10 (11:08)

<앵커 멘트>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여성을 출소 후에 찾아가 살해한 혐의로 공개수배됐던 용의자 성모씨가 그제 체포됐습니다.

빨리 붙잡힌 게 그나마 다행인데요.

이 사건, 미리 막을 수 있지 않았었나 하는 생각에 안타까움이 더 큽니다.

네, 이 성씨는 이미 두 차례나 살인을 저질러 수감생활을 했었고요.

또 이번에 살해된 여성이 위협을 느끼고 신변보호를 요청했는데도 경찰이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습니다.

김기흥 기자, 경찰 대처도 그렇고, 법원 판결도 그렇고, 여러 가지 논란이 많죠?

<기자 멘트>

경찰도 있고 법도 있고 그리고 법에 따라 재판도 열었는데...

20년 동안 3명이나 숨졌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바로 심신미약이 양형에 있어 전가의 보도처럼 광범위하게 참작됐기 때문인데요.

아들을 죽인 사람이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을 상대로 또 살인을 저질렀지만 심신미약이라는 이유로 징역 4년을 받은 게 전부였습니다.

그런 사람이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했다는 이유로 법정에 섰던 또 다른 장애인을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 살해했는데요.

사건의 내막을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대전 서구의 주택 앞.

전동 휠체어를 탄 여성이 안으로 들어가자 한 남성이 택시에서 내립니다.

그리고 여자를 따라 들어갑니다.

10여 분 뒤 다시 모습을 드러낸 그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택시를 타고 사라집니다.

이 남성은 재판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했다는 이유로 지체장애 여성 38살 A씨를 흉기로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61살 성 모씨입니다.

<녹취> 이웃주민(음성변조) : "요양보호사가 와서 문을 열고 들어가서 그렇게 생겼으니까 (시신을 발견하고) 여기로 껑충 뛰어들어왔지. 그래서 얼른 신고해서 (시신이) 발견된 거야."

그녀가 본 것은 흉기에 찔려 쓰러져있는 장애 여성의 싸늘한 시신이었습니다.

성씨는 지난 2002년, 자신이 보호하던 무의탁 장애인을 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로 2005년 항소심에서 징역 4년, 그리고 피해여성 A를 폭행 혐의로 1년 6개월을 선고받아 모두 5년 6개월 동안 복역했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모두 A씨가 수사기관에서 중요한 진술을 했는데요.

<녹취> 대전서부경찰서 관계자(음성변조) : "피해자 때문에 자기가 교도소에서 살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성씨는 결정적 증언을 한 A씨에게 앙심을 품었고, 출소 후 우연히 A씨와 마주친 그는 범행을 치밀하게 계획했다고 합니다.

<인터뷰> 맹병렬(대전서부경찰서 수사과장) : "해자의 주거지를 답사, 범행 도구 준비 등 사전에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하였으며."

성씨의 협박이 계속되자 신변의 위협을 느낀 A씨는 경찰에 신고했지만 성씨는 경찰의 눈을 피해 범행준비를 계속해왔습니다.

<녹취> 대전서부경찰서 관계자(음성변조) : "병원을 전전한 거지. 그 사람이 병원 돌아가는 것을 좀 알아. 열흘, 일주일 있으면 자기 (신분이) 노출이 안 돼요."

철저하게 자신의 행적을 숨기며 범행에 성공한 성씨는 범행 후 모습을 감췄고, 수사에 난항을 겪던 경찰은 지난 7일 그를 공개수배 했습니다.

주민의 제보로 성씨가 체포된 곳은 충북 옥천군의 한 버스 승강장인데요.

그렇다면 그는 왜 충북 옥천을 선택했을까요?

<인터뷰> 맹병렬(대전서부경찰서 수사과장) : "경험이 있던 지역. 자기가 잘 아는 지역으로 도피한 것으로 보이고요. 도피한 이후에는 계속 충북 옥천 지역에 머물렀던 것으로 그렇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

충북 옥천은 그가 20여 년 전 무의탁 어린이 보호소를 운영하며 자녀와 함께 거주했던 동네였습니다.

A씨를 살해 후 성씨가 찾은 곳은 연고가 있던 이 지역의 기도원이었는데요.

<녹취> 기도원 관계자(음성변조) : "바로 온 거야. 거기 택시를 대기 시켜놓고 바로 죽이고 그 택시를 타고 온 거야. "

그는 20여 년 전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녹취> 기도원 관계자(음성변조) : "그렇지. 20년 전에도 있었지. 아들 (살해 사건)."

성씨는 이곳 충북 옥천에서 무의탁 어린이집을 운영하던 중 자신의 아들을 공기총으로 살해했습니다.

아들을 불량배로 오인했다고 주장하며 혐의를 부인했지만 경찰 조사결과 술에 취해 아들에게 공기총을 발사한 것으로 밝혀져 살인혐의로 기소됐습니다.

<녹취> 대전서부경찰서 관계자(음성변조) : "아들 거기서 공기총으로 쏴서 죽였는데. 그래서 가족 뿔뿔이 흩어지고"

하지만 그는 치료감호처분을 받고 곧 사회에 복귀했습니다.

그리고 1997년 대전 서구의 한 아파트에서 무허가 장애인시설 원장으로 근무하며 알코올성 치매 질환자인 장애인 남성과 A씨를 돌봤습니다.

2002년 돌보던 장애인을 마구 때려 살해했습니다.

그런데 역시 감형받았습니다.

<녹취> 대전서부경찰서 관계자(음성변조) : "치료감호 때문에 감형을 당한 거 같아. 항소 항고까지 했어. 그 사람이. 그 과정에서 감형된 거야. "

성씨는 항소심에서 알코올의존 증후군과 기질적 인격 장애 등이 참작돼 징역 4년을 받았는데요.

<인터뷰> 이수정(범죄심리학 교수) : "심신 미약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르면 형사 책임을 조각을 해주는 게 일반적인 관행이고요. 첫 번째 살인 사건은 아마도 초범이었기 때문에 관대한 처분을 내린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되는데요. 두 번째 살인 사건은 재범을 의심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는데도 (감정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고) 보입니다."

시민 단체들은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과 경찰의 안일한 대처가 세 번째 참극을 불렀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성씨는 A씨의 진술로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며 범행을 정당화하고 있는데요.

<녹취> 피의자(음성변조) : "죽은 상해치사 사건에 있어서도 분명히 법정에서 위증했습니다. 그것은 변호사들도 다 알고"

<인터뷰> 이수정(범죄심리학 교수) : "앞뒤로 다 짜 맞춰서 결국 그 증인을 살해했고 그런 형태의 고의적 행위는 사실 일반적으로 정신 장애인들이 하기 어려운 행위입니다. 이 피의자 같은 경우에는 아마도 형사 사법 제도의 허점을 아주 잘 알고 있는 것이라 생각이 들고요."

성씨가 진짜 정신장애환자인지 아니면 정신장애를 가장한 행위를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가 또다시 감형의 혜택을 받아 사회에 나오면 보복을 당할까봐 이 사건에 관계된 이들은 공포에 떨고 있었습니다.

<녹취> 이웃주민(음성변조) : "이 사람 어디 가서 저 짓 또 할지도 모르잖아요. 저런 사람들은 우리네 파리 잡는 것보다 쉬운 거야. "

<녹취> 기도원 관계자(음성변조) : "난 풀어준다면 못 살 것 같은데. 해코지하고. 내가 신고했다고 생각할 거 아니야."

10년을 주기로 세 번에 걸쳐 일어난 살해사건.

사법 제도의 허점이 또 다른 범죄를 양산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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