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북한] ‘유희장 정치’의 빛과 그림자

입력 2013.08.24 (08:07)

수정 2013.08.24 (09:48)

<앵커 멘트>

북한 내부를 심층 분석하는 클로즈업 북한입니다.

김정은 제 1위원장은 집권이후 줄곧 주민들과의 접촉면을 늘리고 위락.휴양 시설을 현대화하는데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먹고사는게 급한데 위락시설이 웬말이냐는 비판도 있지만 당장의 성과도 적지 않습니다.

클로즈업 북한에서 짚어봤습니다.

<리포트>

<녹취> 조선중앙TV(지난 18일) : "너나없이 즐겁게 해수욕을 하니까 모든 아픔도 다 사라지고 또 모든 사람들하고 이렇게 행복한 모습이니까 더 젊어지는 것 같습니다 "

<녹취> 조선중앙TV(지난 18일) : "제일 마음에 드는 오락이 이 판스키(스키보드)입니다 처음 탈 때는 파악이 안 돼 계속 지고 넘어지고 그랬는데, 앞으로 진짜 여기서 잘해서 마식령에서 다시 만납시다."

놀이동산이나 물놀이장을 찾아 여가생활을 즐기는 북한 주민들.

최근 북한 티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북한방송은 온 나라 방방곡곡에서 주민들이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며 북한의 위락시설을 소개하고 있다.

<녹취> 조선중앙TV(지난 18일) : "각계 층 근로자들과 청소년 학생들의 얼굴마다에는 고마운 우리 당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넘쳐 있었습니다. "

지난 13일, 노동신문은 새로 개장한 능라인민유원지의 전자오락관을 소개하는 기사에 신문 한 면을 할애했다.

그리고 7, 8월 피서철에는 초만원을 이룬 전국의 수영장과 해수욕장의 풍경을 소개했다.

<녹취> 조선중앙티비(지난 18일) : "우리 당의 은정 속에 꾸려진 각지의 해수욕장들에서는 요즘 수많은 근로자들과 청소년 학생들로 초만원을… "

주민들의 소식을 전하면서 북한 매체들은 한결같은 결론을 내놨다.

인민을 사랑하는 김정은 제 1위원장의 참 모습이 잘 드러났다는 것이다 .

<녹취> 조선중앙TV(지난 18일) : "오늘의 이 행복을 마련해준 당의 은정에 고마운 마음을 금치 못하며 인민 대중 중심의 우리의 사회주의제도를 더욱 빛내어갈 결의로 가슴 끓이고 있습니다 "

여가를 즐기는 행복한 표정과 이게 모두 최고지도자 덕분이라며 고마워하는 북한 주민들의 모습.

김정은 체제에 들어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과거에도 주민들을 위한 위락 시설들이 있었지만 평양을 제외하고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고, 그나마 특권계층이 주로 사용 했을 뿐 일반주민들이 특별한 계기가 없이 위락시설을 찾는 건 쉽지 않았다.

<녹취> 박성진(2006년 탈북/평양출신) : "일요일에 휴일마저도 사회노동이라든가 이런 것들로 해서 한달에 두 번 정도나 쉴까말까 해요. 한국처럼 교통이 그렇게 편한 편도 아니기 때문에 마음껏 찾아갈 수 있는 그런 문화 자체들도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봤을 때 평양시에 있는 사람들이 그런 유희장을 한번도 못 가봤다는 사람들도 있더라고요. "

북한의 이런 변화는 김정은의 통치 방식과 일맥상통한다.

그는 집권 초기 사회주의 문명국을 건설할 것임을 천명했다.

그리고 인민 문화생활 향상에 주력할 것임을 줄곧 강조해왔다.

<녹취> 김정은(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지난 1월) : "전체 인민이 높은 문화 지식과 건강한 체력 고상한 도덕 품성을 지니고 가장 문명한 조건과 환경에서 사회주의 문화생활을 마음껏 누리며..."

가시적 효과를 내기 위해 놀이동산 승마장 스키장 등 주민 편의와 오락을 위한 시설을 짓도록 지시했다.

위락시설 건설 현장도 직접 찾았다.

능라인민유원지 같은 경우엔 개장 전, 세 차례나 방문했다.

직접 도안을 그려 공사 관계자에게 보여주는 등 아주 적극적인 모습이었다

<녹취> 조선중앙TV(지난해 6월) :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께서는 물놀이장을 비롯한 유원지의 설계와 시공 유희기구와 봉사시설 배치 등 모든 면에서 최상의 수준에서 건설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

아버지 김정일 위원장이 집권 초기 선군정치를 내세우며 주로 군부대를 방문하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행보였다.

<인터뷰> 김용현(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 "김정은 제1위원장의 유희장 정치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결국 김정은 제1위원장이 주민들과 아주 친근하게, 청소년들과 친근하게 접근하는 지도자다. 그걸 통해서 김정은 체제가 내부적으로 안정되어 있다는 것을 외부에 과시하는 그런 용도로 활용하는... "

북한은 1977년 평양 외곽에 18만 제곱킬로미터 부지에 대성산 유희장을 설립한 이후 주민들을 위한 위락시설을 만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잇따라 만경대, 모란봉 구역에 유희장이 들어섰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경제난으로 지어놓은 위락시설들을 관리하는 일이 어려워졌다.

<녹취> 박성진(2006년 탈북/평양출신) : "고난의 행군 하면서 평양도 98년 이후부터는 전기 공급이 끊겼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유희장에 가서도 어떤 기구들은 수리라고 해서 서있는 것들도 있고 그리고 기계가 고장이 나게 되면 그 외에 다른 부품들이 빨리 공급이 안되잖아요 북한에서 생산할 수 없는 부품이기 때문에 그런 거로 인해서 좀 고장 나서 서있는 것들도 많고..."

이런 상황에서 김정은은 경제난을 극복하기보다 유희를 위한 위락시설 건설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이 쌀밥에 고깃국을 내걸고 아버지 김정일 위원장이 강성대국건설을 강조했다면 김정은은 주민들에게 삶을 즐기게 해주겠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 식의 유희장 정치에 대해선 비판적인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지난 4월 발표된 영국 정부의 2012년 보고서에선 북한이 효율적인 식량 생산과 공급체계가 막혀있는 상황에서 막대한 자원을 평양의 유희장 개보수 등 오락시설을 확대하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밝힌바 있다.

식량난이라는 최대 과제를 해결하지 못한 상황에서 위락시설을 짓는데 주력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이냐는 지적이었다.

<인터뷰> 김용현(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 "북한 내부적으로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지금 시점에서 그런 유희 시설을 짓고 놀이장이랄지 이런 데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냐에 대한 기성세대의 그런 불만은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권력기반이 약한 김정은 제 1위원장 입장에선 대중의 지지를 확보하는 게 급했고 단기간에 가시적인 효과를 내는 데는 위락시설 건설만 한 게 없었다는 분석이다.

이 과정에서 친근하고 호탕하게 잘 웃는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각인시킨 것은 무엇보다 큰 소득이다.

<녹취> 전영선(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연구교수) : "김정은 체제가 출범했을 때 초기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모습들은 일단 백성들, 인민들을 위무하는 형태, 좀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이제 쉰다고 하는 것들을 보여주는 이미지가 필요했었고 일일이 백성, 인민들의 생활 모습 하나하나를 신경 쓰고 있다고 하는 이미지를 부각시켜 나왔다고 할 수가 있죠"

유희장 정치는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성과를 내고 있다. 재단장에 들어갔던 위락시설들은 공사가 완료돼 운영되고 있으며

<녹취> 조선중앙TV(지난해 7월) : "절세 위인들의 숭고한 인민관 조국관 미래관이 철저히 구현된 능라인민유원지 준공식이 성대히 진행됐습니다. "

평양시내엔 공원, 롤러스케이트장 미니골프장 대형분수대 등 새로 만들어진 위락시설이 50개가 넘는다.

이런 변화는 지방 중소 도시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과거 평양 이외에선 구경하기 힘들었던 위락시설들을 지방에서도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녹취> 정명근(개성시 청년동맹위원회 부위원장) : "우리는 이번에 자그마한 수영장이 있던 것을 통째로 들어내고 대담하게 여기다가 새로운 물놀이장을 건설했습니다. "

지난 주말 북한 티비 뉴스에선 방송 분량의 절반을 주민들이 위락 시설을 이용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할애했다.

그리고 새롭게 단장한 위락 시설들에 하루에도 수만 명의 주민들이 찾는다고 선전했다.

<녹취> 주경화(마전유원지 관리소 지배인) : "대체로 삼만명 일반적인 날에는 삼만명 이상이고 명절날에는 휴식날에는 칠만 명 이상이 들어온 것 같습니다"

위락시설을 찾는 주민들의 통계나 이용 모습을 상세히 보여준 것은 예전과는 다른 모습이다.

북한의 유희장 정치는 대외적으로도 의미를 갖는다.

북한이 폐쇄된 병영 국가가 아닌 주민들의 삶의 질을 고려하는 보통 국가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도움을 줬을 것이라는 평가다

물론 보여 지는 생활이 조금 여유로워 졌다고 해서 북한 주민들의 실제 삶의 질이 나아졌다고 판단하긴 이르다.

<녹취> 전영선(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연구교수) : "결국은 이것이 삶의 질과 일정 정도 영향을 미친다고 하는, 할 수가 있겠지만 직접적인 연관을 맺기 보다는 정책적인 선택에 의해서 이렇게 되고 있고 실질적으로 이제 북한 내에서 어떤 생활의 향상이라고 하는 부분들을 좀 더 시간이 지나야 될 부분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 같고요"

김정은 식 민생정치에 대해 기대와 냉소가 교차하는 상황에서 주민들의 삶을 실제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김정은 제 1위원장의 다음 한 수는 무엇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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