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남원정’의 우정과 현실

입력 2014.03.07 (11:14)

수정 2014.03.07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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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산만했던 회의장 안이 순간 얼어붙은 듯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취재기자인 제 임무는 그저 정확하게 정치인 발언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받아치는 것. 다음 발언자를 기다리는 그 짧은 순간에 회의장 안의 공기는 분명 달라졌습니다. 갑자기 쏟아진 박수. 노트북에 처박혀 있던 제 시선이 그제야 위를 향했습니다. "경기도 출신 남경필입니다." 발언자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당에서 어른 대접을 받는 중진 의원들의 박수가 터진 겁니다. 그만큼 당에서는 오래 기다려온 결심이었습니다. 그만큼 당에서는 환영한 발표였습니다. 남경필 의원이 오는 6월 경기도지사 선거 출마를 선언한 지난 5일 새누리당 최고중진연석회의 때 얘기입니다.



그 순간, 저의 시선은 불과 1,2미터 남짓 거리에 떨어져 있던 다른 사람에게 돌아갔습니다. 정치인의 표정을 읽기란 때론 어렵고, 때론 쉽습니다. 이번에는 쉬웠습니다.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제 시선을 사로잡은 주인공은 바로 새누리당 쇄신파 '남원정'의 맏형 정병국 의원입니다. 발표 며칠 전 이미 남의원과 술잔을 기울이며 출마 결심을 들었다고는 하지만 정병국 의원의 표정에는 씁쓸함이 묻어났습니다. 이미 경기지사 출마를 준비해온 정 의원에게는 숨길 수 없었던 감정인 듯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정치적 동지를 넘어 인간적인 정을 나누던 사이이기 때문이겠죠. 지난 1999년 '미래연대'에서 처음 인연을 맺은 '남원정'. 3,40대 젊은 피가 뭉친 겁니다. 17대 국회에서는 '새정치수요모임'을 주도하면서 개혁과 쇄신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영광의 순간도 있었습니다. 17대 총선을 앞두고 대대적인 보수 중진 물갈이를 성공시키기도 했고, 각종 개혁 입법에도 앞장섰습니다. 튀는 발언으로 눈길도 많이 끌었습니다. 단숨에 차세대 리더로 조명받았습니다. 영광이 오래가진 않았습니다. 2005년 전당대회와 2007년 대선을 거치면서 '남원정'은 각자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속내는 복잡했을 테고, 명분이야 많았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자기 정치를 시작하면서 현실 정치의 벽을 넘지 못한 겁니다. 다른 길은 가지만, 잡고 있던 손까지 놓아버린 건 아니었습니다. 정병국 의원에게 경기지사 출마를 권유했던 사람이 바로 남경필 의원이고, 어머니까지 정 의원을 돕고 있었다는 얘기가 들립니다. 남경필 의원이 아직은 원내대표 출마에 더 무게를 두고 있었던 지난 2월 초 출판기념회 때만 해도 "중진 차출론은 이미 뛰고 있는 사람들에게 '너희는 안돼'라고 하는 것"이라며 "없으졌으면 좋겠다"면서 정병국 의원의 편에 선 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그 손마저 잠시 놓을 때가 됐습니다. 경기지사 선거라는 같은 길을 가지만 후보 대 후보로 대결하게 됐으니까요. 서로 '아름다운 경선'을 하자며 한목소리로 말했지만, 다소 날카로운 신경전이 엿보이기도 합니다. 정병국 의원은 지방선거 필승 카드로 차출론을 꺼내든 지도부를 향해 울분을 토해내듯 당 대표도 출마하시라고 발언하기도 했습니다. 차출론, 참으로 얄궂은 단어입니다. 이미 '자출'한 후보들이 있을 경우에는 말이죠. 야권에서 인기를 가진 안철수와 인물을 가진 민주당이 화학적 결합을 시도하고 있어 이제 차출론은 총동원령에서 징집으로까지 정도가 더해졌습니다. '남원정'의 마지막 조각인 원희룡 전 의원도 차출 대상이었다가 이젠 징집 대상입니다. 경선 방식을 정하는 막바지 작업을 당에서 하고 있는데 이 결과에 따라 입영 여부가 갈릴 듯합니다.

'친박'이니, '주류'니, '실세'니 하는 단어에서 다소 거리감이 있어 최근 잊혀진 감이 있었던 '남원정'이 이번 지방선거를 계기로 다시 한번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정치권의 동맥을 지나던 신선한 젊은 피가 이제는 돌고 돌아 정맥을 지나가는 과정인 것 같은데요, 그 시절 젊은 피가 이제 유권자인 우리 심장에 흘러들어와 어떻게 가슴을 뛰게 만들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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