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의 장신으로 꼿꼿하게 고개를 들고 걷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12일 오후 3시께 국토교통부의 조사에 응하고자 김포공항 인근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 건물 앞에 모습을 드러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은 회사 임원 차량에서 내려 걸어올 때부터 고개를 숙였다.
자신을 둘러싼 200명 가까운 취재진 앞에서 눈발을 맞으며 포토라인에 선 조 전 부사장은 허리 숙여 인사했다.
조 전 부사장은 쏟아지는 카메라 플래시를 맞으며 침통한 얼굴로 한참 있다 힘겹게 입을 뗐다.
"심려를 끼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죄송합니다."
누구한테 사과하는지는 말하지 않았으나 기내에서 이륙 전 견과류(마카다미아너트) 서비스 방식 때문에 항공기를 되돌리고 승무원 사무장을 내리게 한 사건으로 분노한 국민에게 전하는 말로 읽혔다.
복잡한 심경 탓인지 목소리는 기어들어갔다.
그는 검은색 긴 코트와 바지 차림에 목도리를 두르고 두 손을 모아 가방을 든 채 질문을 받았다.
조 전 부사장은 기내에서 고성을 지르거나 욕설을 했느냐는 질문에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만 답했다. 기장과 합의하고 사무장을 비행기에서 내보냈느냐는 물음에도 "조사 과정에서 답변하겠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견과류를 봉지째 서비스했던 승무원과 비행기에서 내쫓긴 사무장에게는 직접 사과하겠다고 했다.
조 전 부사장은 "모든 자리를 다 포기하고 경영일선에서 물러난다"면서 "(앞으로의)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조 전 부사장은 쏟아지는 질문을 뒤로하고 조사를 받으러 국토부 건물 외부 계단으로 몸을 돌렸다.
이번 사건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반영하듯 월스트리트저널, 로이터, AP를 비롯해 일본 TBS 방송 등 외국 취재진도 눈에 띄었다.
앞서 1시간 30분 전에는 조 전 부사장의 아버지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대한항공 본사 로비에서 고개 숙여 사과했다.
조 회장도 어두운 낯빛을 숨길 수 없었다.
그는 "딸의 어리석은 행동을 용서해달라. 국민의 용서를 바란다"는 내용으로 준비한 짧은 메시지를 읽고는 보통 사람이 이해하기 어려운 이런 사태가 어떻게 일어났느냐는 질문에 "제가 (자식) 교육을 잘못시킨 것 같다. 죄송하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는 국민에게만 사과한다고 했을 뿐 해당 승무원 사무장 등 직원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으며 이번 일로 드러난 회사의 문제점을 고치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밝히지 않아 아쉬움을 샀다.
조 회장은 취재진의 몇 가지 질문에도 한두 문장의 짤막한 답변으로 일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