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멘트>
'호갱'이라는 신조어 들어보셨을 겁니다.
호구와 고객이 합쳐진 말인데, 어수룩해서 이용하기 좋은 손님을 이르는 말이죠.
최근 우리나라에서만 비싼 제품들이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우리 국민들만 '호갱'인 거냐, 이런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는데요.
모은희 기자가 자세히 취재했죠?
<기자 멘트>
올해의 대표적인 유행어 중에 하나가 바로 호구 고객, '호갱'이죠.
그럼 왜 어수룩한 사람을 '호구'라고 부르는지 아세요?
단어 그대로 풀이하면 '호랑이 입'이라는 뜻이지만, 실은 바둑 용어예요.
상대방의 바둑알이 둥그렇게 포위하고 있는데도 그 속에 바둑알을 놓아서 잡아먹히는 어리석음을 가리키는 겁니다.
이제 호구, 호갱 뜻 다 아셨으니까 그렇게 되지는 말아야겠죠?
도대체 같은 물건도 왜 한국에만 오면 비싸지는지, 이거 소비자들 우롱당하는 건 아닌지, 답답함 좀 풀어보자고요.
<리포트>
스웨덴의 유명 가구 회사가 한국에 왔습니다.
<녹취> "이케아 광명점 오프닝에 오신 것을 기쁜 마음으로 환영합니다."
지난 18일, 1호점을 열었는데요. 사람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요즘 유행하는 북유럽 스타일에다, 실속저가형을 표방한 게 특징입니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한국에 진출하면서부터 제품 가격에 대한 논란이 적지 않았습니다.
동일 제품이어도 유독 한국에 들어오면서 가격이 다른 나라보다 비싸게 책정된 것인데요.
환율에 따라서 약간 차이는 나지만, TV 장식장은 미국보다 한국이 17만 원 더 비싸고요.
침대도 한국이 20만 원 더 비쌉니다. 소파는 일본과 무려 100만 원이나 차이가 나네요.
저렴한 가격을 기대했던 소비자들은 불만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인터뷰> 정상호(경기도 안양시) : "꼭 해외 제품이 우리나라 들어올 때 거품이 더 심한 것 같아요. 우리나라만 왜 자꾸 이런 피해를 보나 (싶어요.)"
<인터뷰> 김선실(경기도 남양주시) : "한국 소비자를 얕잡아 보는 행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가격 논란에 대해서 입장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지만, 기자들에게 어떠한 질문도 받지 않는 일방적인 태도를 보였는데요.
"한국의 시장 상황을 고려해서 합리적으로 가격을 책정했다"는 주장입니다.
그렇다면 한국 시장 상황에서는 어째서 비싸게 팔아도 되는 건가요?
일단 개장 초기라 인기는 대단한데요.
<녹취> "디자인이 단순하고요. 깔끔하기도 하고 이케아 제품 되게 좋아해요."
<인터뷰> 정동기(경기도 군포시) : "안타까운 현실이긴 하지만, 그래도 구매는 많이 할 것 같습니다. (국내 가구와 비교했을 때) 가격이 싸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요."
비싸도 사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높은 가격을 유지하는 거겠죠. 브랜드를 따지는 문화도 한몫 합니다.
<인터뷰> 김연화 원장(한국소비생활연구원) :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상당히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라 할까요. 브랜드 선호도가 높다는 환경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애초에 가격을 높게 책정하는 원인도 있다고 봅니다."
사회 전면에 등장한 말 '호갱'.
단통법 시행으로 촉발됐지만, 이케아 개장을 비롯해 올 한 해 계속 오르내리는 신조어인데요.
다양한 상품들에도 적용되고 있습니다.
이 피자 업체를 볼까요?
홈페이지를 죽 둘러봤습니다.
우리가 흔히 먹는 피자들인데요.
같은 홈페이지에서 영어로 주문을 해 봅니다.
똑같은 피자인데 가격이 달라요. 영문판이 5000원씩 더 쌉니다.
가격 차별이 논란이 되자 피자 업체가 해명을 내놓았는데요.
"소비자 선호도에 따라 자율적으로 할인 행사를 하고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호갱'이 된 거 아닌가 하는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데요.
커피전문점도 가격 논란이 적지 않습니다.
아메리카노 톨 사이즈 기준으로 한국에서는 4,100원인 가격이 미국에선 2,700원, 훨씬 쌉니다.
OECD 국가들 중에서도 6위에 해당할 정도로 가격이 높은 편이라고 하는데요.
좀 억울하죠?
또 있습니다. 요즘 수입차는 연비가 좋아서 타려는 분들 많으시죠.
그런데 우리나라만 수리비가 유독 비싸다는사실 아셨나요?
이 자동차, 국내에서 200만 원이 넘는 헤드램프가 해외 평균은 100만 원 선입니다.
소비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비싸게 수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터뷰> 서용구 학회장(한국유통학회) : "국내에서 외국 제품의 가격이 결정되는 첫 번째 조건은 소비자가 그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치재로 생각할수록 가격이 높아지고요. 두 번째는 공급업체 수가 적으면 적을수록 가격이 높아지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수입품의 가격은 다른 경쟁국보다 높게 형성되는 경향이 강합니다."
수입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이 높아지자 관세청에서 가격 실태를 발표했습니다.
15개 품목의 판매가가 수입가보다 최고 8배까지 높았습니다.
여성 수영복이 가장 차이가 많이 났는데요.
그동안 너무 비싸게 사고 있었네요.
국내 유통가를 믿을 수 없게 된 소비자들이 해외 직구로 눈을 돌리는 등 똑똑해지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인터뷰> 서용구 학회장 (한국유통학회) : "쇼핑의 탈국경화가 일어나서 직구 시장이 성장하고 있는데요. 정말 쉽게 전 세계의 매장 가격을 비교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소비자들에게 (구매) 투표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합리적인 소비 형태가 확산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가운데 내년 2월에는 공정위에서도 나서서 수입품 가격조사를 벌인다고 합니다.
국내 소비자들이 더 피해보지 않았으면, '호갱'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인데요.
소비자들도 좀 더 합리적으로 따져보고 구매하는 습관을 들여야겠네요.
<인터뷰> 김연화 원장(한국소비생활연구원) : "무조건 비싼 것이 더 좋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치를 갖고 소비 행동을 하는 것은 잘못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가격과 품질에 대해서 꼼꼼하게 확인해보고 가격이 지나치게 높은 품목에 대해서는 소비자의 태도와 행동으로 보여줘서 시장에서 소비자의 구매력을 자제하다 보면 경쟁력 있는 시장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인터넷이 발달한 시대, 요즘 소비자들은 클릭 몇번으로 물건을 더 싸게 살 정도로 똑똑해졌는데요.
그런 만큼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이윤을 많이 붙여서 파는 일부 업체들의 행태가 계속된다면, 결코 오래 사랑받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