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안재형이 돌아왔다…한국 남자탁구 ‘AGAIN 1986’

입력 2015.03.14 (08:02)

수정 2015.03.14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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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 남자 탁구는 딱 1986년 이전으로 돌아갔습니다."

국가대표 코치로 돌아온 안재형(50) 감독의 충격적인 진단입니다. 한때 세계 정상권을 위협하고 만리장성 중국에 일격을 가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 꼽혔던 한국 남자탁구는 오랜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계 최강 중국을 꺾기는 고사하고, 독일을 비롯한 유럽세와 늘 한 수 아래로 여겼던 일본에도 밀리고 있습니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이 열리기 전 남자 탁구가 정확히 그 정도 수준이었습니다. 70년대 사라예보 신화를 쓰며 세계 탁구계 전면에 등장한 여자와 달리, 남자는 세계 8강 수준도 힘겨웠습니다. 당시 대표팀 코치였던 강문수 총감독(63)의 말을 빌리자면 '여자 탁구의 가방모찌'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1986년부터 한국 남자 탁구는 획기적인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한국 스포츠사 최고의 명승부 가운데 빠지지 않는 장면이 바로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남자탁구 단체전 결승입니다. 당시만 해도 '중공'이란 이름을 쓴 만리장성 탁구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난공불락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그 남자 대표팀이 말 그대로 중공을 물리치는 대이변을 일으켰으니, 한반도 전체가 들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무려 5시간18분의 대혈투 끝에 얻은 기적이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최근 탁구 남자대표팀 코치로 돌아온 안재형(50)이 있었습니다. 180cm의 당시론 훤칠한 키에서 뿜어나오는 강력한 포핸드 드라이브로 장자량과 후이준 같은 최고 선수들을 차례로 제압했습니다. 안재형 코치는 당시의 사건을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기적'으로 기억합니다.

"이길 가능성이 없었다고 다들 말했죠. 그래도 한 번 해보자는 마음, 정신력으로 임했습니다. 당시는 우리 선수들 이런 도전 정신은 있었어요."

탁구 대표팀은 현재 'again 1986'을 외치고 있습니다. 대표팀 코칭스태프 구성 자체가 86 아시안게임의 추억을 떠오르게 합니다. 총감독 강문수. 남자코치 안재형. 여자코치 박지현(49). 위 3명은 86아시안게임의 영광을 함께 한 주역들입니다. 그들 3명이 한데 뭉쳐 영광 재현을 꿈꾸고 있습니다.

물론 이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습니다. 한국 탁구 침체기인 만큼 새로운 리더십을 갖고 있는 젊고 유능한 코칭스태프가 전면에 나설 때가 아니냐는 지적입니다. 분명 탁구협회가 귀기울여야 할 대목입니다. 그러나 마땅한 대안이 없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강문수 총감독을 중심으로 한 현 코칭스태프는 선수들에게 '80년대 마인드'를 주입하고 있습니다. 구닥다리 사고방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서현덕 정영식 등 젊은 선수들이 갖지 못한 80년대식 '헝그리 정신'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강문수 감독은 "86년 아시안게임 준비할 때 안재형이 발바닥 물집이 잡혀서 13번 바늘로 따준 기억이 납니다. 물론 우리가 과거에 집착해선 안되지만, 과거 우리의 강점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중국을 큰 대회에서 간혹 이길 수 있었던 요인은 기술이 떨어져도 체력과 정신력에서 중국보다 뒤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안재형 코치 역시 "지금 젊은 선수들은 중국을 결코 이길 수 없다는 패배의식이 너무 강한 것 같습니다. 도전 정신이 필요하다고 봅니다"라고 지적합니다.

안팎으로 한국 탁구가 점점 세계 정상권에서 밀려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중국을 뛰어넘기 전 우선 어느 새 우리를 추월한 일본과 유럽 탁구부터 꺾을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순서일 것입니다. 다만, 중국에 이어 '2등만 하면 된다'는 안일한 마인드는 없었는지 선수와 지도자 모두 진지하게 되돌아 봐야 할 것입니다.

돌아온 안재형 코치는 '80년대 세시봉 스타일'로 선수들의 정신력을 재무장시킬 임무를 갖고 있습니다. 미션은 또 한 가지 있습니다. 안재형 코치는 국내 코칭스태프 가운데 가장 중국말을 잘 한다는 강점이 있습니다. 이유는 잘 알려진 대로 안 코치의 부인이 80년대 중국 핑퐁의 스타 자오즈민이기 때문입니다. 정신력 뿐 아니라 기술적으로도 최고봉에 있는 중국 탁구를 세밀하게 분석해 해법을 찾는 것 역시 바로 안 코치의 몫입니다.

당장 대표팀은 이번 달 말부터 제주도에서 한 가지 특별 훈련을 실시합니다. 중국의 상비군 대표급 선수들을 초청해 합동 전지훈련을 실시하는 것입니다. 그들로부터 중국 탁구의 비밀을 얻어내야 합니다. '중국통' 안재형 코치의 활약이 기대되는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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