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섣부른 브리핑 “혼선 자초”

입력 2019.07.25 (08:11)

수정 2019.07.25 (08:33)

[기자]

앞서 보셨습니다만 현재까지 나온 러시아 정부 공식 입장은 "한국 영공을 침범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세르게이 코빌라슈/러시아 장거리비행사령관 : "한국 조종사의 조치는 비전문적이었습니다. 한국 조종사의 행동은 공중 난동에 가까웠습니다."]

적반하장도 이런 적반하장이 있나 싶으실텐데 어제 러시아의 공식 입장이 나오기까지, 국내에서는 하루종일 혼선이 빚어졌습니다.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혼선의 중심에 섰습니다.

오전, 오후 두 차례나 직접 브리핑을 자청했는데요,

오전까지만 해도 "러시아가 유감을 표명했다"는 브리핑 내용이, 불과 반나절 만에 "한국 영공을 침범한 적이 없다고 한다" 정반대로 뒤바뀐 겁니다.

어쩌다 이런 상황이 벌어진 걸까요.

윤 수석이 춘추관을 찾은 건 어제 오전 11시 15분 경입니다.

언론에 공개되지 않은 내용이 있다며, 전날 국방부에 불려들어 온 러시아 무관 (우리로 치면 대령급)의 발언을 들려주겠다고 했습니다.

윤 수석은 이 무관이 "기기 오작동으로 계획되지 않은 지역에 진입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며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러시아가 영공 침범을 인정하고 사과했다는 게 발표 요지입니다. 하지만 불과 4시간 만에 러시아가 내놓은 공식 입장은 청와대 설명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자국 군용기는 계획된 항로를 따라 비행했다", 한마디로 영공 침범은 없었다는 주장입니다.

윤 수석은 결국 오후 늦게 오전 브리핑을 정정하는 발표를 다시 해야 했습니다.

윤 수석의 해명은 간단합니다.

러시아의 입장이 하루 사이에 바뀐 것으로 본다는 이야기입니다.

23일 러시아 무관은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했고, 24일 러시아 정부는 "영공 침범 사실이 없다"는 것이니 하루 만에 달라진 건 러시아라는 설명입니다.

그런데, 우리로 치면 대령급인 러시아 무관의 발언을 과연 러시아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볼 수 있냐는 의문이 남습니다.

무관의 발언이 개인 의견인지 러시아 정부 공식입장인지 기초적인 사실 확인부터 했어야는 것 아니냐는 것이죠.

특히 러시아 무관이 언급했다는 기기 오작동 문제에 있어선 청와대와 국방부, 엇박자도 냈습니다.

윤도한 수석은 러시아 무관이 기기오작동에 따른 영공 침범을 언급했다고 했지만 국방부는 "기기 오작동일 수 없다고 판단한다"고 밝혀 정부 내에서조차 정리되지 않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동북아 정세는 미-중 대결이 본격화하는 와중에 한-일 간 파열음이 커지고 남북, 북미 관계도 여전히 유동적인, 흡사 살얼음판을 걷는 형국인데요

이렇게 급박한 외교·안보 국면에서 청와대 입 역할을 하는 국민소통수석의 한마디는 의미와 무게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어제 저녁 브리핑에서 기자들은 많은 의문을 쏟아냈습니다.

청와대가 이번 사태를 키우고 싶지 않아 러시아의 유감표명부터 먼저 발표한것 아니냐 이런 질문에 대해 윤 수석은 그렇지 않다고 부인했습니다.

말이 바뀌었으니 러시아 무관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냐는 질문에는 "상대 외교관에게 책임 묻는다는 건 처음 들어보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러시아 정부 입장을 보다 명확히 설명하겠다던 당초 의도와는 달리, 어제 결과적으로 가장 갈팡질팡한 모습을 보인 건 외교 안보 사령탑인 청와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친절한 뉴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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