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1986년 겨울, 경남 울주군에 꿩 사냥을 나갔던 검사는 이상한 장면을 보게 됩니다.
“여러 명이 노역을 하고 몽둥이든 남자들이 감시하고 있고 사나운 개 몇 마리가 주위를 지키고 있었다”
이상했습니다.
군인도 재소자도 아닌 사람들은 왜 일을 하고 있을까.
몽둥이와 사나운 개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부랑아 선도라는 명목으로 시민을 가둔 형제복지원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계기는 이랬습니다.
숨진 사람만 513명.
사건은 유야무야 덮였고, 생존자 한종선 씨는 처음 형제복지원에 끌려간 아홉 살 그 순간에서 평생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검찰로부터 30년이 지나 뒤늦은 사과를 받았지만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은 여전히 미뤄지고 있죠.
다 끝나면 조용한 곳에서 살고 싶다는 그에게 누군가 어디로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형제복지원이 있었던 부산만 피하고 싶다고 했다죠.
아홉 살 아이에게 너무나 가혹했던 그 기억들은 부산시가 내놓은 보고서 안에 또렷이 담겨 있었습니다.
정민규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1981년, 10살 초등학생이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간 곳은 부산의 형제복지원.
길에서 놀던 중 경찰관이 불러 따라갔을 뿐인데, 그를 기다렸던 건 무자비한 폭행이었습니다.
[김대우/형제복지원 피해자 : "너무 많이 맞아가지고... 생각하면 이가 갈립니다."]
시설에서 나온 후에도 또 끌려가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러던 도중 극단적 선택도 시도했다는 김 씨, 지금도 몸 곳곳에 그 상흔이 남아있습니다.
[김대우/형제복지원 피해자 : "공부도 남들보다 잘했어요. 잘하는 애를 이유도 없이 3번이나 잡아가니까 내 인생이 송두리째 뺏긴 거에요."]
비단 김 씨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부산시가 동아대학교에 의뢰해 만든 이번 실태조사 보고서에는 피해자 149명의 목소리가 담겼습니다.
이 일이 세상에 알려진 뒤 30여 년 만에야 나온 행정기관의 사실상 첫 보고서입니다.
시설 내에서 사망자를 보거나 직접 들은 경우는 83%가 넘었고, 3.4%는 직접 사체 처리에 참여했다고 밝히는 등 당시의 지옥 같은 상황을 증언합니다.
조사를 진행한 연구진은 우리 사회의 책임을 강조합니다.
[남찬섭/동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 "중앙정부가 노력해서 그분들의 의료지원, 정서지원, 심리치료, 일상생활 지원 이런 걸 해주는 사회적 지지망을 만들어줘야겠다는..."]
국가적 차원에서 진상 조사에 나서기 위한 관련 법안은 국회 법사위에 계류된 상태여서 이대로 간다면 제20대 국회의 임기가 끝나는 다음 달, 자동 폐기될 위기에 놓였습니다.
KBS 뉴스 정민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