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전기차 급발진 의심 사고가 발생한 건 지난 15일 새벽 0시 40분쯤입니다.
평소처럼 손님을 태우고 달리던 전기차 택시가 이상한 낌새를 보인 건 갑자기 왼쪽에서 나타난 불법 유턴 차량이 택시 뒤쪽을 들이받고 나서부터였습니다.
시속 50km로 주행하던 택시는 갑자기 급가속을 시작했고, 불과 30여 초만에 속력이 시속 188km까지 치솟았습니다.
택시 기사가 시동 버튼을 누르고, 사이드 브레이크를 채워봤지만 소용없었습니다.
37년 경력의 베테랑 기사였지만 이번 사고에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던 상황.
택시 기사 "불법 유턴 차량이 뒤쪽을 들이받고 나서부터 택시가 갑자기 빨라지더라고요. 시동 버튼도 계속 누르고, 사이드도 채우고, 브레이크도 밟았는데 소용이 없었습니다. 천만다행으로 목숨은 건졌지만, 사고 장면이 계속 생각나고...앞으로 다시는 운전대를 못 잡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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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지를 따라 2.5km의 아슬아슬한 주행을 이어가던 택시는 결국 신호 대기 차량을 들이받고 전복됐고, 반대편 차선의 나무를 들이받고 수십 미터를 더 미끄러진 후에야 멈춰 섰습니다.
이 사고로 기사는 갈비뼈가, 승객은 척추가 골절되는 등 크게 다쳤습니다.
이번 사고를 두고 택시 기사와 승객 모두 급발진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변현식/택시 승객 "제가 뒷좌석에서 살짝 일어나서 기사님의 발 위치를 봤거든요. 다리 모양이나 자세를 봐선 액셀을 밟고 있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였습니다. 시동 버튼도 누르고, 장치를 조작하는 것들도 보였고요. 그래도 속도가 줄지 않아서 '아프게 죽지만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었습니다. 앞으로 다시는 이런 사고가 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줬으면 합니다." |
전복된 사고 택시. ■
전기차 급발진 의심 사고 '국산차에 집중'전기차의 급발진 의심 사고는 갈수록 늘고 있는 상황.
실제로 올해 전기차의 누적 보급률은 1.8%인데 반해, 급발진 의심 사고에서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율은 20%에 달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전기차가 급발진 의심 사고를 가장 많이 일으켰을까.
KBS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김정재 의원을 통해 입수한 전기차 급발진 의심 사고 제조사·모델별 현황을 보면 국토교통부에 접수된 전기차 급발진 의심 31건 중 상당수가 국산차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현대는 A 모델 6건 등 총 13건, 기아는 B 모델 3건 등 총 7건, 르노는 C 모델 3건 등 총 5건으로 국산차에서만 총 26건(84%)의 의심 사례가 접수됐습니다.
이에 비해 지엠은 2건, 테슬라 1건 등 수입차는 5건(16%)으로 비교적 낮은 수치를 보였습니다.
국내 전기차 보급 현황이 국산 75%·수입 25%를 차지하는 것과 비교했을 때 보급률이 높은 국산차에 사고가 집중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급발진 땐 운행 중지할 '예방 도구' 시급전문가들은 급발진의 상당수가 전자제어 시스템의 오류로 발생한다고 지적합니다.
이 때문에 최근 전기차에서 급발진 의심 사고가 더 많이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는 겁니다.
급발진 의심 사고 전기차 택시 내부. 가장 중요한 것은 사고의 예방과 사후 원인 규명입니다.
전문가들은 사고 예방 도구로 외국 제조사에 도입되고 있는 급발진 방지 시스템에 주목합니다.
급발진 의심 상황이 발생하거나 주행 중 시스템 오류가 발생하면 차량의 운행을 강제로 중지하는 방법입니다.
국산차에도 생산 단계에서 이런 시스템을 도입해 사고를 막아야 한단 겁니다.
소비자가 급발진을 입증해야 하는 구조도 여전히 남아있는 숙제입니다.
국내에서 급발진이 인정된 것은 '0건'.
급발진 의심 사고 때 제조사의 입증 책임을 강화하는 제조물 책임법 개정안은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입니다.
김필수/대림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 "테슬라라든지 일본의 도요타가 3-4년 전부터 '소프트웨어 킬' 프로그램을 넣기 시작했어요. 우리나라 제조사들도 급발진 의심 상황일 때 자동차 운행을 멈출 수 있는 시스템의 도입이 필요합니다. 또 사후에는 제조사들이 사고 입증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도록 제도적·법적 개정이 필요하고요. 페달 블랙박스의 경우도 일부 상용화가 돼있는데 이를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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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만하면 발생하는 전기차 급발진 의심 사고.
소중한 생명을 앗아가는 일이 없도록 정부와 제조사 차원에서의 대책이 시급합니다.